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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떠난 지 100일... 아버지는 코스트코 쪽에선 눈을 감는다

[인터뷰] 폭염 속 숨진 코스트코 노동자 고 김동호씨, 그는 어떤 사람이었나

등록 2023.09.18 12:26수정 2023.09.19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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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아침저녁 바람이 서늘해졌지만, 여전히 무더운 여름 속 가슴 아픈 기억에 사는 사람들이 있다. 코스트코 노동자 고 김동호(29)씨의 가족이다. 폭염주의보가 내린 지난 6월 19일, 동호씨는 35℃가 넘는 코스트코 주차장에서 일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9월 26일, 추석 연휴를 이틀 앞둔 그날은 동호씨가 세상을 떠난 지 백일이 되는 날이다.

공식적으로 김씨는 산업재해 피해자가 아니다. 지난 8월 22일 유족은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를 인정해달라는 서류를 제출했는데 아직 판정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죽은 지 백일이 돼가는데, 동호씨와 29년간 같이 보내던 추석 명절이 다가오는데, 그의 사고는 유가족에게 고스란히 슬픔으로 남아있다. 만약 산재 판정을 받지 못하면 그는 일하다가 죽은 사람이 아니라, '몸이 약해서 죽은 사람'이 돼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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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2일 오전 경기 성남시 중원구 근로복지공단 성남지사에서 '코스트코 사망 근로자' 유족이 산업재해 신청서를 내고 있다. ⓒ 연합뉴스

 
이는 유가족이 증언한 코스트코 대표이사의 말 때문이기도 하다. 동호씨의 아버지 김길성씨는 지난 7월 27일자 SBS와의 인터뷰에서 "(아들이) 자기가 빠지면 나머지 동료 직원들이 너무 힘이 드니까 조퇴를 못 했다"면서 "대표이사도 (빈소에) 와서 '병 있지, 병 있지' 하고, '병 있는데 숨기고 입사했지'라고(했다)"고 밝혔다.

유가족은 슬픔 속에서 동호씨를 꺼내고 싶다. 억울한 사고의 원인을 밝히고 싶다. 회사와 경영진에게 책임을 묻고 같은 사고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지난 9월 14일, 아버지 김길성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아버지는 차분하고 조심스럽게 먼저 보낸 아들에 대한 자신의 심정을 밝혔다.

"딸 같은 아들이었어요"

"아들보다는 딸이었던 것 같아요. 아들 때문에 항상 집안 분위기가 밝았어요. 동호였으니까. 워낙 밝고, 사랑스러운 면이 많은 아들이었어요"

아버지는 아들의 회사 동료에게 '코스트코 전 직원을 다 아는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모든 사람과 두루두루 잘 지냈단다. "사람들이랑 무척 잘 어울렸어요. 집에서는 우리 동호가 조금 철딱서니가 없었지만, 너무 순수하고 정 많은 착한 아들이었어요. 그런데 사회생활은 좀 달랐나 봐요."

장례식장에는 수많은 동료가 아들을 찾아왔다. 아버지 대신 장례식장을 지켰던 첫째 아들은 그들이 모두 자발적으로 와준 것이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그들을 만날 수 없었다. 장례식장에 가지 못했다. 차마 갈 수가 없었다.


회사 동료들은 집까지 찾아와 아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고 한다. 아들은 늘 성실하게 일하고, 신뢰도 많이 받는 직원이었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아들이 사회생활을 잘하는지 몰랐다. 마냥 귀엽기만 했던 아들이 회사에서 그렇게 어른스럽게 지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동호씨의 죽음 이후 동료들도 충격을 받았다. 직원 중 몇몇은 정신과 약을 먹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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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트코 주차장에서 일하던 고 김동호 씨의 모습. ⓒ 김길성 제공

 
동료들은 아들이 항상 자기 이야기를 잘 들어줘서 정말 고맙다고 했다. 동료들이 함께 슬퍼해 주고, 아들이 어땠는지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동안 아들을 너무 몰랐구나 싶었다. 아들이 자랑스러웠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아들을 찾아왔는지 이야기하며 아버지는 눈물을 흘렸다.

아들은 6살 터울 막내 동생도 늘 잘 챙겼다. 두 형제가 코스트코에서 함께 일했다.

"회사에 형제, 자매가 같이 일하는 직원들이 많았어요. 회사에서 서로 대화를 많이 하지는 않는다네요. 그런데 우리 아들들은 매일 같이 있으면서도 할 얘기가 늘 많았어요. 서로 비밀도 없고."

아들은 밤 10시에 퇴근했다. 야간 조인 동생 퇴근 시간에 맞춰 자정까지 2시간을 더 기다렸다. 그런 다음 동생을 차에 태우고 매일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밤늦게까지 아들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아들은 거의 새벽 1시에나 집에 들어왔다. 아버지는 그때 아들과 잠깐 대화하곤 했다. 이제 동생은 아버지에게 매일 운전 연수를 받는다. 형 없이 직접 운전하기 위해서다. 아버지는 둘째 아들에게도 두 달간 운전 연수를 해줬었다.

아버지는 언젠가 아들이 떠난 그 주차장에 서서 아들의 이름을 불러봤었다. "동호야." 막상 불러보니 그러면 안 될 것만 같았다. 그곳에 갈 일이 있을 때마다 아버지는 눈을 감고 주차장을 지나친다. 눈을 뜨고 볼 수 없었다.

드라마와 영화 좋아했던 아들... 꿈은 특수분장사

동호씨는 어릴 때부터 드라마와 영화 보는 걸 좋아했다. 일하고 집에 돌아오면 항상 드라마를 봤다. 엄마와 드라마 이야기를 자주 나눴다. 다음 화는 어떻게 전개될지, 열띤 토론을 벌이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다. 하지만 아들은 요즘 이 드라마가 재미있으니 꼭 보라고 추천했다. 그런 아들의 꿈은 미국에 가서 특수분장을 배우는 것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미군이 될 생각도 있었다.

손도 빠르고, 야무져서 일을 잘하던 아들이었다. 요리도 참 잘했다. 코스트코 입사 전, 호주로 떠난 워킹 홀리데이에서 몇 가지 요리를 배워왔다. 요리법과 재료만 있으면 뭐든지 척척 만들었다. 가족들을 위한 요리도 자주 했다. 가장 자주 만들던 메뉴는 스파게티와 직접 구운 고기였다. 대학도 조리학과를 희망했었는데, 그때는 아버지가 말렸다.

가장 좋아했던 음식은 피자였다. 치킨, 햄버거 같은 음식들을 좋아하는 아이 입맛이었다. 사고 당일은 아빠가 퇴원하는 날이었다. 그날 부자는 같이 피자를 시켜 먹자고 약속했었다. 먹는 것도, 요리하는 것도 좋아하던 아들이었다. 불규칙한 근무 일정 속에서도 일찍 일어나야 했던 아들은 아침은 가끔 과일만 챙겨 먹었다.

아버지는 아들 신발을 볼 때 아들 생각이 가장 많이 난다. 아들은 신발과 옷 사는 걸 좋아했다. 아버지는 사고 후로 아들 방을 딱 일곱 번밖에 들어가 보지 못했다. 방에 들어가면, 아들의 옷장을 열어 옷들을 가만히 만져 본다. 아들을 쓰다듬는 것처럼.

아들이 남긴 흔적을 바라보다 방을 나온다. 침대에는 왜인지 아들이 누워 잠이 들어있는 것만 같다. 깨우면 꼭 일어날 것만 같았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나지막이 속삭인다.

"잘 자. 자고 있지? 잘 자고 가."

아들의 신발은 아직도 현관에 놓여 있다. 처분하려고 했지만, 아들과 가장 사이가 좋았던 막내아들이 신는다고 해서 계속 뒀다. 형의 마지막 물건이었다.

사촌 형들이 부모님에게 차 사주는 것을 보고 나중에 아버지에게 차를 사주고 싶다던 동호씨였다. 엄마와는 사이가 더 각별했다. 엄마에게는 자주 화장품이나 여러 선물을 했다. 다 떨어진 생활용품들도 손수 채워두는 아들이었다.

아들은 정도 많고 밝은 성격이지만, 자주 토라지곤 했다. 마음보다 행동이 더 앞서나가 가끔 뒤늦은 후회를 하는 일도 있었다. 그런 아들이 아버지는 조금 걱정스러웠다. 그런 아들에게 아버지는 말했다. 사람들과 늘 잘 지내야 한다. 아버지는 이제 아들이 그 누구보다 그 약속을 잘 지켰다는 것을 안다.

아들에게는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런 아들의 모습이 속상해 여러 번 혼내기도 했었다. 그런데도 버릇이 잘 고쳐지지 않아 크게 혼낸 적도 있다. 그 기억은 아버지의 마음에 무겁게 남아 있다.

마음이 여렸던 아들은 욕도 잘 못 하고, 하고 싶은 말도 꾹 참았다.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있어도 바로 대응하지 않았다. 한참을 듣고 있다 나중에야 말을 꺼내곤 했다. 엄마와 아빠는 그런 아들을 생각하며 아직도 운다. 아들도 아버지를 닮아 눈물이 참 많았다.

'아빠 나 왔어'

아버지는 "일상이 무너져 내렸다"고 말한다. 눈을 떴을 때 아들이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조금 마음이 놓인다. '일하러 먼저 나갔겠지?' 어딘가에 있겠거니 싶다. 그러다 죽었다는 현실을 깨달으면, 그때부터 생활은 무너진다.

아버지는 아침에 일어나면 아들 휴대전화부터 본다. 혹시 아들한테 온 문자가 있을까 봐. 열 때마다 문자창은 비어 있다. 사고 이후 같이 일했던 동료들에게서 몇 번 문자가 온 적이 있었다. 아버지도 아들에게 문자를 보낸다. 아들에게 문자를 수시로 보내도, 좀처럼 '1' 표시(미확인)는 사라지지 않는다. 아버지는 아들의 휴대전화를 열어 대신 문자를 읽는다.

아들이 퇴근할 시간대나, 중간에 생각이 날 때쯤 그냥 전화를 건다. 아들의 전화 대기음 노래를 몇 번이고 끝까지 듣는다. 받지 않을 전화인 걸 알지만, 계속 듣는다. 듣고 있으면 언젠가 꼭 받을 것만 같다.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하고 보고 싶은 착한 아들 천사 동호야'라고 저장했다.

"누워 있다가도 아들 퇴근 시간이 되면 '아빠 나 왔어' 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요. 전화해도 받지 않으니 혼자서 대화를 주고받아요. 아들 생각 안 하려고 하는데도 불현듯 생각이 나요."

무뚝뚝하고 말이 없던 큰형은 동생의 빈자리를 채우려고 노력한다. 항상 명랑하고 말도 많았던 동생처럼 가족들에게 말도 자주 건다. 생전 안 하던 설거지도 자주 한다. 직접 밥상도 차려 아버지의 끼니를 챙긴다. 그러나 아버지와 어머니가 느끼는 빈자리는 다 채울 수 없다. 형은 그동안 가족들이 동생에 대해 아는 게 너무 부족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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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동호 씨의 모습. ⓒ 김길성 제공

 
엄마는 바깥에서 아들과 또래로 보이는 청년들을 보면 막 울음이 나온다고 한다. 버스를 탈 때도, 장을 보러 다닐 때도. 울음이 나오면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직도 엄마와 아빠는 아들 생각만 하면 저절로 눈물이 난다.

"엄마, 나 오늘 4만3000보 걸었다."

사고 전날 아들이 엄마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었다.

이번 추석엔 어디도 갈 수가 없다

동호씨네는 추석엔 집에서 차례를 지낸 뒤 늘 외삼촌네에 갔었단다. 거기서 친척들 모두가 모였다. 아들은 사람들 많이 모이는 장소를 좋아했다. 친척들과 왁자지껄하게 있는 것도 즐거워했다. 사촌들과 단체 문자방을 만들어 대화도 많이 나눌 정도로 친했다. 아들은 최근에 결혼한 사촌 내외를 꼭 만나러 가고 싶어했다. 동호씨는 친척들과 함께하는 식사도 무척 좋아했다. 아버지나 다른 형제들은 반찬 한두 가지만 있어도 좋아하는데, 아들은 넉넉하게 차리는 걸 더 좋아했다.

이번 추석에는 큰아들과 막내 아들만 외삼촌네에 갈 예정이다. 아빠와 엄마는 가지 않기로 했다. 어떤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가족들은 행복한데, 왜 우리 가족은 그럴 수 없을까... 왜 우리 아들은 먼저 떠났나 하고 생각해요."

추석만큼은 사랑하는 가족을 만나기 위해 모두가 먼 곳으로 떠난다. 짧은 시간이지만 보고 싶었던 가족들과 함께한다. 그러나 김동호씨 가족은 아들을, 형을, 동생을 만날 수 없다.

아버지는 매일 새벽과 밤마다 기도를 드린다. 아들의 사고 백일을 앞둔 지금, 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지금 우리 곁에는 없지만 네가 자랑스러웠어. 워낙 사랑스러웠던 아들이라 좋은 곳에 있을 것이라 믿어. 아직도 네가 죽었다는 사실이 잘 믿기지 않아. 우리 가슴 속에서, 좋은 곳에서 있을 거야.

물론 보고 느낄 수는 없지만, 잘 있으리라 생각해. 네가 평소에 항상 하고 싶어 했던 것도 모두 했으면 좋겠다. 듣지는 못하겠지만, 이렇게 전해본다. 엄마, 아빠한테 다 받지 못한 사랑, 할아버지, 할머니 곁에서 많이 받으며 잘 있어. 잘 지내고 우리 나중에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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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박스를 깔고 휴식을 취하던 동호씨의 모습. ⓒ 김길성 제공

 
동호씨 아버지를 만나고 난 뒤 생전에 아니, 살아있는 그를 본 듯한 느낌을 받았다. 가족에게는 고통과 슬픔, 끊어지지 않는 한이 이어지고 있다. 사고 100일이 지나기 전, 아니 추석 전에 코스트코는 산업재해 책임을 인정하고 책임자는 자리를 물러나야 하지 않을까? 가족들이 모여 동호씨와의 즐거운 추억을 떠올릴 수 있도록… 다시 코스트코에서 이런 비극이 생기지 않을 수 있도록.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향진 기자의 블로그 <이향진 기자의 산재 로그온>에도 게재됩니다.
#코스트코 #산업재해사고 #산재 #온열질환 #중대재해처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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