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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시간은 3시간"... '돌봄 굴레'에 갇힌 청년들을 아십니까

가족을 돌보는 청년, '영 케어러'...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지원책 필요해

등록 2023.09.11 11:09수정 2023.09.12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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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 ⓒ Freepik

 
[기사 수정 : 12일 오후 5시 34분]

아버지를 위해 인당수에 뛰어든 심청이는 명실상부한 효의 아이콘이다. 그런데 최근 '심청이는 효녀다'라는 명제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사실 심청이는 효녀가 되는 걸 원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자신의 삶을 돌아볼 새도 없이 병든 가족을 돌보는 '21세기 심청이'들의 모습은 어떨까.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며 노년층 부양을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해졌다. 지금 같은 인구 변화가 지속되면 청(소)년기에 장년이나 노년이 된 부모를 부양하거나, 형제자매 없이 홀로 돌봄을 감당해야 하는 일은 만연해질 것이다. 따라서 돌봄은 한 가정 내에서 효심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이뤄져야 하는 일이다.

드디어 첫발 뗀 실태 조사

2021년 5월, 병든 아버지를 홀로 돌보던 아들이 생활고에 시달리다 끝내 아버지를 방치해 사망에 이르게 한 '대구 청년 간병 사건'은 그동안 수면 아래 있던 영 케어러의 문제를 떠오르게 했다. 영 케어러(young carer)는 질병이나 장애를 가진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청(소)년을 일컫는 말로, 국내에서 화두에 오른 건 비교적 최근이다.

지난해 보건복지부는 만 13~34세 영 케어러 4만 명을 대상으로 한 정부 차원 전국 실태조사를 처음으로 실시했다. 그 결과, 이들이 느끼는 우울감 유병률이 일반 청년의 7~8배인 약 61%로 나타나는 등의 심각성을 인지할 수 있었다.

해당 실태조사는 정부 차원에서 국내 영 케어러의 현황을 파악하기 위한 첫 시도라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하지만 연령에 따른 세부적인 조사는 이뤄지지 않아서, '전체 규모 파악에만 그쳤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영 케어러는 정상적 생애 과업 수행이 어려워 생애 주기별로 지원 체계를 구축해야 하기 때문이다.


20대 영 케어러, 자유는 사치

개인 생애 주기에 의하면, 20대는 경제적 자립을 위한 사회적 역량개발이 필요하다. 국가에서 제시하는 다양한 청년 지원책이 이를 방증하듯, 사회는 청년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북돋아 주고 있다. 그러나 20대를 영 케어러로 살아온 K씨(30대, 직장인)는 "자기 계발이 되게 중요한 시기였지만, 그럴 시간조차 없었다"며 사회적인 역량을 개발할 물리적인 시간이 없었음을 호소했다.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2022 가족돌봄청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영 케어러의 주당 평균 돌봄 시간은 약 21.6시간으로 하루 평균 약 3시간이다. 그러나 김동숙 사회복지사는 "심리적 상태 파악 등 환자 바로 곁에서 늘 돌봐야 하므로 하루 평균 6시간 이상 돌봄 시간이 소요된다"며 통계를 반박했다. 물리적으로 환자를 돌보는 것 외에도, 환자를 지속해 파악하기 위해 투자하는 시간은 더 많을 것이란 주장이다.

K씨도 해당 통계를 보며 터무니없음을 주장했는데, "오히려 자유시간이 3시간에 가깝다"며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전했다. 실제로 방문요양 보호사 무료지원 시간은 하루 최대 4시간이기에, 무임금 가정 돌봄이 3시간에 그칠지는 의문이라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의 통계와 달리, 20대 청년이 주 보호자일 경우 감당해야 할 돌봄 시간은 3시간 이상으로 예측된다. 이에 20대 청년들은 진로와 돌봄의 갈림길에 서기도 한다. 지난 2022년 말부터 2023년 초까지 진행된 '서울시 가족돌봄청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서울특별시에서 추정한 영 케어러 900명 중 108명이 대학생이었다. 이들은 학업에 전념해야 할 시기에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며 고통을 호소하였다.

문제는 학업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서울시 가족돌봄청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영 케어러의 45%가 월 평균 소득이 100만 원 이하로 생계를 이어 나가고 있었다. 돌봄을 택한 영 케어러가 또다시 마주한 건 '빈곤'인 것이다. 결국 영 케어러는 돌봄의 악순환에 빠지고 있다.

"영 케어러? 들어본 적 없어요"

특히 20대는 상대적으로 돌봄에 대한 경험이 적어 큰 어려움을 겪는다. 심지어 본인과 비슷한 처지의 주변인을 찾기 쉽지 않아 남은 방편으로 인터넷 정보검색에 의지하게 된다. 그러나 K씨는 자신이 '20대 때는 영 케어러라는 단어조차 없어 지원 제도를 검색할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자신의 처지를 요약해서 표현할 수 있는 단어의 존재 여부는 정보의 정확성과 습득의 용이함에 있어 큰 차이를 가져온다.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있고, 그 단어가 사회적으로 공유된다는 것은 자아정체성 구축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2022년 서울시 청년 활동 지원센터 생활 안정 지원사업 '영 케어러 케어링' 사업 효과성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사회가 부여한 '영 케어러'라는 명명은 연구참여자들이 스스로 '영 케어러'라는 자의식을 갖게 하였고, 자기 스스로를 인정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때 해당 정체성을 사회가 어떤 시선으로 보는지가 중요한데, 사회적 시선이 본인의 인식과 태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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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일대에서 영 케어러 인식 조사를 하는 모습 ⓒ 이수현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는 '영 케어러' 개념조차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수준이다. 지난 6월, 영 케어러 인식 정도를 파악하기 위해 광화문 일대에서 10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결과는 '안다' 14%, '모른다' 86%로 영 케어러 단어 자체를 모르는 이의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아픈 가족 구성원을 돌보기 위해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 기회를 박탈당한 채 돌봄에만 전념한다는 것은 중요한 사회적 문제이다. 이에 걸맞은 인식 수준을 갖추지 못한 결과 나타나는 관심 결여는 결국 영 케어러의 어려움으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하지만 이 같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영 케어러를 향한 지원제도는 미비한 상황이다. 그나마 시행되고 있는 강남복지재단 '행복동행', 서울시 청년 활동 지원센터 '영 케어러 케어링', '영 케어러 Care Together' 등도 지자체 차원에서만 이뤄지고 있으며, 소정의 문화 여가비 또한 돌봄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영 케어러들은 복잡한 지원체계로 돌봄에 난관을 겪기도 한다. 2023년 강남복지재단은 강남구에 거주하는 간병인을 대상으로 돌봄 지원을 실시했다. 간병인의 거주지가 대상의 기준이 되는 것은 비단 강남만이 아니다. 다수의 지원책이 환자가 아닌, 신청자 간병인의 주소지로 지원 대상을 선정한다.

실제로 K씨는 서울에 거주지가 있는 어머니를 위해 서울특별시의 돌봄 지원제도를 신청하였지만, 간병인 본인이 용인에 거주한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김동숙 사회복지사는 "지원책이 부족하고 많이 활성화되지 않은 상황이다"라고 말하며 현재 시행되는 지원제도에 허점이 있음을 지적했다.

영 케어러에게 필요한 실질적인 지원책은?

현재 지자체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영 케어러 사업은 대부분 신청주의에 기반하여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자신이 영 케어러인지 모르는 경우, 지원제도를 신청하지 못해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문제점이 있다. 특히, 영 케어러는 그 개념 자체가 널리 알려지지 않아 해당 문제점이 더욱 두드러진다. 이에 정부는 학교, 병원, 자치단체 등과 협력하여 발굴주의 방식의 지원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영 케어러 지원금이 교육비, 자기 계발비, 문화 여가비 등의 형태로 지급되는 것도 문제이다. K씨는 "공연 관람비, 학원 등록비 등을 지원하는 건 실효성이 없어요. 그건 돌봄에서 벗어나 시간과 여유가 있어야 사용할 수 있는 거죠"라며 현 지원 제도의 한계를 지적했다. 영 케어러 지원 제도는 방문 요양사 등 돌봄 인력 지원이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효(孝)라는 인식이 방해물이 될 때

돌봄을 노동으로 인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아직 우리 사회는 가족을 간병하는 자녀를 효녀·효자로 바라보는 시선이 만연하다. 이러한 시선은 '돌봄은 안타깝지만, 자녀로서 당연한 것'이라는 인식을 형성하여 영 케어러의 법적 인정과 관련 제도를 마련하는 데 방해물로 작용한다.

영 케어러 관련 사업이 활발하게 시행되고 있는 영국의 경우, 가족돌봄청년의 노동 가치를 인정하는 아동복지법안을 제정하였다. 해당 법안과 추후 신설된 '영 케어러 의원협회'를 통해 영 케어러들은 연간 보조금을 지급받을 수 있게 되었다.

김동숙 사회복지사는 "현재 우리나라는 영 케어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족한 상황이기에 이를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홍보하여 이들에 대한 인식과 지원책을 활성화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사람은 누구나 영 케어러가 될 수도, 돌봄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돌봄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이다. 영 케어러 지원 제도는 개인과 지자체 차원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정부는 영 케어러의 목소리가 담긴 실질적인 정책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영케어러 #가족돌봄청년 #돌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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