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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명의 국회의원, 윤미향은 박수받아야 한다

관동대학살 추도식 참가가 왜 문제? 남·북·재외동포들 연대 당연한 일

등록 2023.09.05 17:40수정 2023.09.05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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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속 윤미향 의원이 5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 참석, 자리에 앉아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2023.9.5 ⓒ 연합뉴스

 
4일 오전 윤 대통령이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자유민주주의 국체를 흔들고 파괴하려는 반국가행위에 대해 정치진영에 관계없이 모든 국민과 함께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미향 의원이 일본 도쿄에서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100년 동경 추도회'에 참석한 것을 문제 삼았다는 해석이다.

이에 발맞춘 듯 전주혜 국민의 힘 원내대변인과 조명희 원내부대표가 이날 국회 의안과에 윤미향 의원에 대한 징계안을 제출했다. 엄마부대와 위안부사기청산연대 또한 서울서부지검에 윤미향 의원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고발했다.

9월 1일 오후 1시 30분에 열린 '관동 대진재 조선인 학살 100년 동경 추도회'에 참석해 꽃을 바친 것이 과연 반국가 행위이고 제소당해야 할 사항인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조사받아야만 할 일인가.

가장 상징적인 추모 행사

우선 흥분을 가라앉히고 이날 행사가 열린 도쿄 요코아미초공원과 이곳의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공원에는 관동대지진과 1945년 도쿄 대공습 때 죽은 일본인의 유골이 안치된 도쿄도위령당이 있다. 또 공원 입구 오른쪽에는 도쿄도부흥관이 있어 재해를 이겨내고 도쿄가 재건된 역사를 보여준다. 말하자면 요코아미초공원은 일본인에게 추모의 마음과 긍지가 함께 하는 공간인 셈이다.

이런 장소에 일본 시민이 주체가 된 '간토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행사실행위원회'가 관동대학살 50주년을 맞은 1973년  '조선인 추도비'를 세웠다. 당시 도쿄도의회도 건립에 찬성했고 비문에는 "대지진의 혼란 가운데 잘못된 책동과 유언비어로 6000여 명에 이르는 조선인이 그 귀한 생명을 빼앗겼습니다"라고 조선인이 학살 때문에 죽었음을 분명하게 적고 있다.

그래서 해마다 요코아미초공원의 이 비 앞에서 조선인 영령을 기리는 추도식이 50년째 열렸고 도쿄도지사가 추도사를 보내는 것이 숭고한 전통이었다. 망언 제조기라 불린 이시하라 신타로도 재임 시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추도문을 보냈을 정도다. 


그렇기에 윤미향 의원이 참석한 이 행사는 사이타마, 가나가와, 지바 등 관동 각지에서 열리는 수많은 추도 집회 중에서 가장 상징성 있는 추도식이다. 한국에서 결성된 '간토학살 100주기 추도사업추진위원회'의 초청을 받아 건너간 윤미향 의원이 가장 챙겨야 할 추도 모임이었던 셈이다.

윤 의원이 참석한 행사는 이것만이 아니다. 8월 31일에는 사이타마현의 쇼주인에서 열린 조선인 엿장수 구학영의 추모 집회에 참석했다. 울산이 고향인 그는 학살 당시 28살의 청년으로 요리이경찰분서 유지창으로 밀고 들어온 요도무라 자경단에게 무려 62곳이나 베이고 찔려 숨졌다. 분한 마음에 "나는 죄가 없다 일본을 벌하라"고 유치장 바닥에 피로 쓴 글씨를 남긴 동포다.

이날 밤 윤미향 의원은 도쿄 분쿄구 '시빅홀'에서 열린 조선인·중국인을 추모하는 집회에도 참석했다. 당시 조선인만이 아니라 중국인도 750명 정도가 학살당했기에 연대 행사가 열렸고 1800여 좌석이 꽉 찰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고 윤 의원의 현지 추모 활동을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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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요코아미초 조선인 희생자 추모행사 중 추모비에 헌화하기 위해 기다리는 윤미향 의원. ⓒ 윤미향 의원 페이스북 갈무리

 
일본 시민단체가 주최의 중심이었다

윤 의원이 참석한 '관동 대진재 조선인 학살 100년 동경 추도회'는 총련 외에도 '동경 조선인 강제연행 진상조사단'과 '평화포럼'이 주최와 후원으로 함께하고 있다.

강제연행 진상조사단은 1972년 오키나와에서 결성되어 도쿄를 비롯한 일본 전역 25개 지역에 조사단을 두고 활동하는 일본의 대표 시민단체다. 조선인 강제연행에 대해 수십 년 동안 조사활동을 벌여 2007년까지 무려 20권이나 되는 자료집을 만들었고 남북 및 일본이 화해하고 평화를 지키자며 헌신해 온 단체다.

평화포럼도 일본을 대표하는 시민단체로서 핵무기 폐지나 탈원전 활동, 빈민 구제와 같은 사업을 펼치고 있다. 일본교사연합이나 일본소비자연맹, 일본기독교교회협의회 등 많은 조직이 회원 단체로 활동하고 있다.

따라서 9월 1일 1시 30분에 개최된 행사는 평화와 인권을 사랑하고 조선인 차별에 반대하는 일본의 양심적인 시민이 조선인 대학살 백주기를 맞아 한마음으로 요코아미초공원에 집결해 치러낸 것이다. 조총련은 재일조 선인의 차별에 맞서 싸워왔기에 당연히 주최 단체 중 하나로 참여했다.

윤미향 의원은 이 행사에 대한민국 국회의원으로서 사상 처음으로 참여했다. 많은 일본인은 이를 두고 이제야 한국 국회의원이 참여했다며 반가워했고 그동안의 무관심을 나무라기도 했다. 윤 의원은 이런 시선을 무겁게 받아들였다고 한다.    

요코아미초공원 추도비는 일본 극우에 눈엣가시

9월 1일 '관동 대진재 조선인 학살 100년 동경추도회'가 열리기 전 요코아미초공원에는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다. 이곳에 있는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와 추도식은 일본의 극우에 눈엣가시였다. '소요가제'라는 극우 단체는 추도식 옆에서 해마다 조선인 혐오를 선동하는 집회를 열며 행사를 방해했다. 이날도 도쿄도가 이 단체에 공원 점유 허가를 내줘 맞불 집회가 예상되었다. 자칫 몸싸움이 일어나 추도식이 제대로 열리지 못할까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일본의 시민사회는 기민하게 움직였다. 관동 대학살을 다룬 <9월 도쿄의 거리에서>를 쓴 작가 가토 나오키와 소설가 나카자와 게이 등은 8월 29일 일본 시민사회에 도쿄도에 집회 허가를 취소하라는 압력을 넣자고 긴급히 호소했다. 많은 항의 전화에도 도쿄도는 허가를 취소하지 않았다.

하지만 헤이트 스피치(혐오 발언)를 반대하는 일본의 시민단체 '카운터스'가 추도식을 튼튼히 지켜 극우의 반대 집회는 결국 무산되었고 추도행사는 순조롭게 마칠 수 있었다.

이렇듯 요코아미초공원은 조선인 학살을 기리는 평화 애호 세력과 일본의 극우가 첨예하게 맞붙는 전선이었다. 이런 곳을 지키기 위해 대한민국의 국회의원 윤미향이 홀로 나선 셈이다. 이를 격려하고 늦었지만 박수를 보내도 시원찮은데 공격을 하는 이 상황은 진정 해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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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7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공동 기자회견을 마친 후 나란히 이동하고 있다. 2023.5.8 ⓒ 대통령실 제공

 
대통령, 그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기시다에게 말하라

관동대학살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제노사이드(국민, 인종, 민족, 종교 따위의 차이로 집단을 박해하고 살해하는 행위)다. 사망자가 9만 9331명, 부상자가 10만 3733명에 이를 정도로 큰 피해가 발생한 대지진을 수습하려고 당시 야마모토 곤베에 내각은 '조선인 습격설'을 명분으로 계엄령을 발동했다. 조선인을 진압하라는 임무를 받고 출동한 계엄군에 경찰, 자경단이 합세한 연합 대오가 만들어졌고 조선인은 갑자기 재해의 원흉처럼 내몰렸다.

조선에서는 한 번도 겪지 못한 지진에 넋이 나간 상태에서 조선인은 갑자기 공격 목표가 되어 거리에서 무차별로 학살당했다. <독립신문>은 1923년 12월 5일 6661명이 학살당했다고 보도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인 노동자 노동운동가와 사회주의자도 무차별 학살을 당했다. 야마모토 내각과 계엄당국은 지진을 빌미로 체제에 저항하거나 부담이 되는 모든 세력을 공격한 것이다. 그 뿌리에는 조선인에 대한 혐오, 일본 식민 체제에 거세게 저항하는 조선인에 대한 증오심이 있었던 것이다.

대학살 직후 상해임시정부는 조소앙 외무 장관 명의로 일본에 항의 공문을 보내고 책임자 처벌과 강제로 잡힌 한국인의 석방을 강력히 요구했다. 그 후 백년 동안 일본 정부는 학살 범죄에 모르쇠로 일관했다. 일본 정부의 대변인 격인 마츠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백주기를 하루 앞둔 8월 30일에도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박진 외무부 장관은 윤미향 의원을 향해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그는 왜 마츠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의 발언에 대해 부적절하다고 항의하지 않을까? 임시정부의 외무부장이었던 조소앙의 뜻을 왜 이어받지 않는 것일까?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4일 국회예산결산특별위 전체회의에서 "현행법을 위반했다, 윤 의원은 조총련 행사 참석과 관련해 통일부에 사전 접촉신고를 한 바가 없다"고 밝혔다. 과태료 부과까지 거론되는 울고 싶은 상황이다.

교전 중인 국가 사이에도 휴전과 평화를 위한 교섭과 대화는 이어진다. 남북이 지금 팽팽하게 대치하는 상황에서 조총련이 주최자의 하나로 참석한 자리를 빌려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총련 인사들과 자연스레 얘기를 나누고 꽉 막힌 남북 관계를 풀 수 있는 실마리라도 찾으면 좋은 일 아닌가? 통일부가 외려 대화를 권유하고 할 수 있는 지원을 찾아보는 게 맞지 않았나?

관동대학살은 인류사에서 가장 잔인했던 학살 범죄다. 이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더불어민주당 유기홍 의원이 올해 3월 여야 의원 100명의 서명을 받아 '간토대학살 진상규명 및 피해자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을 발의한 상태다(관련기사: "흥분한 사람들이 했다? 일본 정부가 한 일입니다" https://omn.kr/25g18).

관동대학살의 유족 권재익·조광환씨는 일본 국가를 '인류의 법정'에 세우기 위해 소송을 준비중이다. 일본제국주의의 침략 범죄를 고발하는 일에 여야가 있을 수 없다. 남북이 구분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 조총련과 민단을 가를 필요가 없다. 남북이 힘을 합하고 재외동포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

윤 대통령은 윤미향 의원을 공격할 게 아니라 그 쩌렁쩌렁한 목소리와 기개를 일본 기시다 총리에게 돌려야 한다. 조선인 대학살에 대해 사죄하고 배상하라고!

[관련 기사]
한국 정부의 착각, 일본에선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https://omn.kr/22z7i
"산 사람을 불 속에" 일본에서 벌어진 일 끝까지 추적 https://omn.kr/23buf
나는 야마모토, 한국인들의 끔찍한 죽음 추적중입니다 https://omn.kr/23mji
사라진 한국인 시신들... 일본 경찰이 빼돌렸다 https://omn.kr/23wld
덧붙이는 글 글쓴이 민병래 작가는 관동대학살을 계속 파헤치고 있으며 최근 출간된 책 <1923 간토대학살 침묵을 깨라>를 썼다.
#윤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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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수필로 쓰는 만인보" 줄여서 '사수만보'를 쓰고 있습니다. 우리 시대 민초들의 이야기를 빚어내는 일에서 보람과 즐거움을 느낍니다.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삶에 조명을 비추고 의미를 부여코자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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