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여 년 전 조국 떠난 그들 가슴 속에 "고향의 집이 있다"

원주 극단 노뜰 2023년 신작 <그의 집이 있다> 후용공연예술센터서 막 올려

등록 2023.08.28 10:05수정 2023.08.28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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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의무는 국가 구성 3대 요소 중 하나인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다. 국가가 지켜주지 않았을 때 국민의 고통은 심각하다. 조선이 무너지고 격동의 대한제국 시기 인천의 제물포에서 한반도를 떠났던 사람들은 태평양 한복판의 하와이와 유카탄 반도인 멕시코로 이산(離散, diaspora)당했다. 120여 년 전의 아픔을 온몸으로 풀어내는 공연이 8월의 뜨거운 열기 속에 막을 올렸다.

강원도 원주에서 활동하는 극단 노뜰(대표 원영오)의 2023년 신작 <그의 집이 있다>가 원주(8월 24~26일)의 외곽에 있는 후용공연예술센터 야외에서 공연됐다.

<그의 집이 있다>는 1905년, 묵서가(멕시코)로 최초 이민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조국이 백성을 지켜주지 못하자 배고픔을 이겨내기 위해 가난한 조국을 떠나 지구 반대편의 생경한 나라로 간 1033명의 재멕조선인(Korea)들은 애니깽(용설란, Henequen)을 수확(용설란에서 뽑아낸 섬유질로 노끈과 밧줄 등 생산)했다. 그들은 칼끝보다 날카로운 애니깽 입에 상처를 입기도 했고, 강제노역 등을 이어가며 고통스런 삶을 살아오기도 했다. 연극은 이민의 역사를 과거부터 현재 우리들의 삶까지 연결하며 미학적으로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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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집이 있다 원주(8월 24~26일)의 외곽에 있는 후용공연예술센터에서 공연을 알리는 사진 ⓒ 극단 노뜰


목숨을 건 항해 끝에 도착한 멕시코에서 그들은 에네켄 농장의 채무노동자가 되었다. 
그들은 고향의 풍경을 그렸다. 산의 능선, 들꽃, 풀벌레, 새... 눈으로 본, 코로 냄새 맡던, 귀로 듣던, 온몸에 남아있는 기억을 그렸다. 기억하는 것들을 마음에 남겼다. 하늘과 땅 그 사이를 강산이라 부르던 사람들,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이동해 버린 그리운 나의 집.

그들은 그렇게 조국의 집을 마음속에 그리며 하루 하루의 삶을 살아야 했다. <그의 집이 있다>는 '이민자의 삶'을 통해 이산(離散, diaspora)될 수밖에 없었던, 국가와 민족에 관한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대한민국과 멕시코, 서로 다른 국가의 공통적인 고민을 통해 보편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였으며, 대한민국 국민이 애니깽의 이야기를 낮설게 받아들이는 만큼 '민족은 허구의 공동체, 상상의 공동체'라는 화두를 던진다. 이번 작품은 단지 대한민국만의 이야기가 아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자 풀어나가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이은아, 홍한별, 콘스엘로(María del Consuelo Meneses Carrillo), 에드거(Edgar Gochez Núñez) 등 10명의 배우들이 잔디밭을 온 몸으로 뒹글며 고통스러움을 표현할 때는 관객들도 호흡을 멈추고 하나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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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집이 있다> 공연 태평양을 건너 유카탄 반도로 간 재멕조선인(한국)들의 고통을 표현하는 배우들 ⓒ 박진우

 
연출을 맡은 원영오 극단 노뜰 대표는 "미학적인 상징과 비유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섬세한 장면화([mise en scène, 총체적 설계)와 신체훈련에 특화된 노뜰 배우들의 서사가 녹아든 움직임을 토대로 광활한 태평양의 여정을 동화처럼 그렸다"며 "지역에서 시작된 창작 작업이 전 세계의 관객과 만나는 과정을 통해 큰 성과를 이룰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원 감독은 이전에도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는 전쟁연작1 '국가', 전쟁연작2 ' 침묵', 전쟁연작3 '당신의 몸-Your Body' 등을 무대에 올렸다.

노뜰은 1993년 창단하여 강원도 원주문막의 폐교(구.후용초등학교)를 거점으로 활동하면서도 이탈리아, 멕시코, 페루, 루마니아, 일본, 중국, 인도네시아 등 다양한 세계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인간의 보편성을 주제로 하여 독창적인 공연으로 시민들과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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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을 기획한 두 나라 감독 공연장에서 함께 한 원영오 연출 감독과 멕시코 호세(Jose Carlos Alonso) 연출 감독 ⓒ 박진우

 
이번 신작은 극단 노뜰과 멕시코 TETIEM 극단이 협업하여 그 의미를 한층 더했다. 단순히 이산에 관한 상상으로 그치는 작품이 아닌, 서로의 삶과 문화, 역사, 생각, 고민 등을 담아낸 세밀한 작품으로 완성되었다. 


<그의 집이 있다>는 8월 원주 초연 이후, 9월 멕시코 현지 공연을 앞두고 있다. 지역에서 시작된 창작 작업이 파생되어 전 세계의 관객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이 유의미한 과정은 공연예술계에 큰 성과와 자양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지난해 재일조선인들의 삶에 이어 올해 멕시코 조선인들의 삶을 그려낸 극단 노뜰은 내년에는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고려인(Korea)의 역사를 다룰 예정이다.
#애니깽 #멕시코 #이산 #디아스포라 #노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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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에 보장된 정의의 실현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과정이라 생각하며, 주권자로서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실천하는 시민들의 다양한 노력이 지속될 때 가능하리라 믿는다. 지방자치는 민주주의를 완성하는 토대이며,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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