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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심하게 분 날, 이태원 골목 추모 메시지 모아준 시민도"

[현장] 이태원참사 유가족, 용산구에 '기억과 안전의 길 조성' 중간 정비 촉구

등록 2023.08.08 14:15수정 2023.08.08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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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 관계자들이 8일 오전 서울 용산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참사 현장 골목을 ‘기억과 안전의 길’로 조성할 것을 선언하며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골목에 대한 중간 단계 정비를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8일 낮 12시께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출구 앞 골목길 입구. 뜨거운 열기에 바짝 마른 국화꽃 아래 태우지 않은 담배 한 개비와 초코 맛 과자가 놓여 있다. 담벼락에는 국내외 시민들이 저마다의 언어로 남겨 놓은 추모 메시지들이 아크릴지 아래 붙어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이날 용산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용산구청에 참사 현장 골목에 대한 '기억과 안전의 길 조성' 중간 정비를 요청했다. 유가족들은 이날 기자회견문에서 "지난해 12월 협약서를 맺은 이태원 관광특구연합회, 유가족협의회, 시민대책회의 3자가 요구해 온 참사 현장의 중간 정비 요청은 용산구청에 의해 일관되게 무시당하고 있다"면서 "다가오는 참사 1주기 전 3주체가 약속한 협약서 정신을 제대로 이행하기 위해 참사 현장 골목을 기억과 안전의 길로 선언하고 이를 위해 적극적인 '중간 단계 정비'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참사 현장, 기억과 안전의 길로 인식하도록... 치유의 시작은 기억"
 

이태원참사 유가족 “참사 현장, 기억과 안전의 길로 인식되길...” ⓒ 유성호

 

고 이주영씨의 아버지인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박희영 용산구청장의 사퇴를 재차 촉구하면서 "무능보다 더 참을 수 없는 것은 무책임이다"라고 말했다. 이 운영위원장은 동시에 "이태원의 비극적 참사를 극복하고 치유와 회복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참사 현장을 기억과 안전의 길로 인식하고 모두의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게 노력하는 것"이라면서 "미래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야말로 남은 우리가 해야할 미래 세대에 줄 수 있는 약속이다"라고 강조했다. 

고 김현수씨의 어머니 김화숙씨는 이태원참사 1주기가 다가오고 있는 현실을 언급하며 애통함을 쏟아냈다. 김씨는 박 구청장의 보석과 구청장직 복귀 이후 용산구청 정문 앞에서 소복을 입고 42일간 사퇴 촉구 농성을 이어온 바 있다. 

김씨는 "1주기가 되는 게 우리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하고 화가 난다"면서 "아직까지 진상규명도 책임자 처벌도 제대로 되지 않았고, 책임있는 사람들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 한 마디 못들어서다"라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참사 현장을 1년이 다 되도록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방치하는 용산구와 서울시, 행정안전부에도 화가 난다"고 말하며 오열했다. 

김씨는 이날 농성 종료 사실을 알리면서 용산구의 일선 공무원들에게 당부하기도 했다. 그는 "지자체, 중앙정부 어디 하나 책임지는 자세로 나오지 않지만 여기 계신분들과 이태원역 1번출구 현장을 기억과 안전의 길로 선언하고 그에 걸맞은 길로 돌아가는 데 저도 힘을 보태겠다"면서 "또한 용산구청의 900명 가까이되는 직원 분들의 인격을 저는 믿겠다"고 말했다. 


시민들이 보존하는 '이태원 추모 기록'... "지나가던 시민, 상인들이 모아 보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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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 관계자들이 8일 오전 서울 용산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참사 현장 골목을 ‘기억과 안전의 길’로 조성할 것을 선언하며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골목에 대한 중간 단계 정비를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이태원 참사 이후 시민들과 함께 '기억담기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박이현 활동가는 지금까지도 꾸준히 시민들의 추모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기록 활동 자원봉사에는 대학생부터 고등학교 선생님, 뮤지션, 다큐멘터리 감독 등 다양한 직업군에 속한 시민들이 참여하고 있다고 했다. 박 활동가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한 참가자는 너무 큰 슬픔에 차마 공간을 찾아보지 못하고 있다가, 이런 활동을 통해 추모할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고 전했다. 

날씨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현실도 전했다. 주변 상인이나 길을 지나던 시민들의 도움으로 기록을 지켜온 일도 언급했다. 박 활동가는 이날 <오마이뉴스>와 만나 "비 예보가 있을 때는 전날에 (현장에) 가서 미리 떼어 내거나, 아크릴지를 치는 식으로 보존하기도 한다"면서 "한 번은 심하게 바람이 부는 날 활동가들이 가지 못했는데, 한 시민 분이 메시지를 모아 분향소로 전달해주시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나가던 분들이나 상인 분들이 청소를 하시다가 모아서 보내주시기도 하는데, (그럴 때) 이 공간은 모두가 관리하는 공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면서 "(기록 활동에는) 누적 인원 100여 분이 참여했고, 여러 번 오신 분들도 있다"고 전했다.  
 
#이태원 #이태원참사 #기록 #진상규명 #용산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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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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