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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산재로 잃은 두 딸, 한국건설 상대로 37일만에 사과 받았다

만삭 딸 등 온 가족 회사 앞에서 1인 시위... 한국건설 홈페이지에 사죄문 게재

등록 2023.07.18 16:48수정 2023.07.18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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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1일 광주광역시 남구 봉선동 한국아파트 신축 현장에서 산재 사고로 숨진 고 마채진(58)씨의 두 딸이 이달 10일 원청 한국건설 본사 앞에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며 시위하는 모습. ⓒ 유족 마혜진씨 제공


광주광역시에 기반을 둔 아파트 건설업체 '한국건설'이 아파트 신축 현장에서 산재 사망을 당한 하청농동자 유족에게 결국 백기를 들었다.

사고 발생 37일 만이자, 만삭의 몸으로 고인의 딸들이 얼굴과 실명을 드러내고 시위에 나선 지 일주일 만에 사죄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한국건설은 18일 회사 홈페이지에 '고 마채진(58)님의 사고에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는 제목의 사죄문을 임직원 일동 명의로 올렸다.

사죄문에서 회사 측은 "지난 6월 11일 광주 남구 봉선동 일원 공동주택 신축공사 현장에서 작업 중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고 마채진 님의 죽음에 대해 깊이 애도하며, 유가족에게 진심으로 사죄 말씀을 올린다"고 밝혔다.

회사 측은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철저한 사고 원인조사를 통한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고,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안전환 현장과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나홀로 근무, 공동주택 건설용 승강기에 깔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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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건설 홈페이지에 올라온 사죄문 ⓒ 한국건설


이 사고는 지난달 11일 오후 1시30분께 광주시 남구 봉선동 한국아델리움더펜트57 건설현장에서 발생했다.

고인이 된 마씨는 이날 하청업체로부터 출근 요청을 받고 현장으로 가 건설현장 화물용 승강기 자동화설비 설치 작업 중 갑자기 떨어진 승강기에 깔려 숨진 것으로 조사됐다.


위험 작업임에도 2인 1조가 아닌 홀로 근무가 이뤄진 탓에 사고 발생 2시간 만인 오후 3시30분께 회사 측 관리자가 사고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다만 갑자기 승강기가 추락한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으며, 경찰은 관련 조사를 이어가고 있다.

경찰은 현장소장 등 한국건설 소속 안전관리 책임자 2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입건하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광주지방고용노동청은 대표이사 등 경영진을 중대재해처벌법에 근거해 처벌할 수 있는지 조사 중이다.

유족들이 시공사이자 원청인 한국건설을 상대로 사과를 받기까지는 적잖은 노력이 필요했다.

사고 초기 시공사 측은 산재 사실을 인정하고 장례비 등 사고 수습 일체를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유족 측에 밝혔다가 돌연 연락을 끊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광주전남지역본부 등 시민사회단체와 유족들이 광주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사과,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으나 한국건설 측은 꿈쩍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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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발생 초기 한국건설 산재 사망사고 유족이 건설노조 광주전남지역본부를 찾아 대응책에 관해 조언을 구하는 모습 ⓒ 건설노조 광주전남지역본부


그러다 지난 10일 고인의 두 딸과 배우자가 한국건설 본사 앞에서 1인 시위에 돌입했고, 지역사회 여론이 악화하자 뒤늦게 유족과의 면담 자리에 회사 측이 응했다고 한다.

한국건설이 돌연 입장을 바꾸고 대납하기로 한 장례비용 조차 납부를 거부하며 유족 측과 연락을 끊은 이유는 원청만 혼자 책임질 수 없다는 계산이 작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국건설은 지역사회 비판 여론이 고조되고 유족 반발 또한 거세지자 사과문 발표와 함께 오는 19일 오전 봉선동 사고 현장에서 고인의 추모제를 열기로 했다. 유족과의 보상 협의에도 성실히 응하겠다는 뜻도 전달했다고 한다.

고인의 딸 마혜진씨는 "안전관리 미흡으로 유명을 달리하신 아버지를 대신해 건설사로부터 사과 한마디를 듣기까지 한 달이 넘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저희 가족의 노력도 있었지만 지역사회의 연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건설 현장에서 더 이상 안타까운 목숨이 희생되지 않도록 관계당국이 철저하게 관리감독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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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소방안전본부 구조대원들이 지난 6월 11일 오후 남구 봉선동 한국건설 아파트 신축 공사 현장에서 추락한 건설용 승강기에 깔린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 마채진(58)씨를 구조하는 모습. 마씨는 작업 현장에 홀로 투입된 탓에 즉각 구조되지 못하고 사고 발생 3시간 이상이 흐른 뒤 오후 5시께 숨진 채로 수습됐다. ⓒ 광주시소방안전본부


 
#한국건설 #산재사망 #봉선동아파트 #1인시위 #연락두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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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라본부 상근기자. 제보 및 기사에 대한 의견은 ssal198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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