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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크레인 조종사 직고용, 정말 어렵습니까?

[주장] 노동자끼리 부족한 일자리 경쟁을 시키는 나쁜 정부

등록 2023.05.03 10:15수정 2023.05.03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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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현장의 타워크레인 대구광역시 어느 아파트 건설현장 위로 타워크레인이 서 있는 모습이다. ⓒ 이경수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타워크레인 조종사는 종합건설회사의 중기사업부 소속이었다. 당시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건설회사 대부분이 굴삭기, 덤프, 도저, 지게차, 콘크리트 펌프카, 롤러, 등을 전문으로 취급 및 정비하는 중기부가 따로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다 건설회사들은 장비를 하나둘씩 매각한 뒤 중기사업부도 점차 없애기 시작했다. 뒤이어 IMF 사태를 거치며 건설회사에 직고용된 중장비 기사는 거의 볼 수 없게 됐다.

타워크레인 조종사들도 이들처럼 영세한 타워크레인 임대사 소속이 되어 건설현장은 파견자 신분으로 나가 일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무리한 작업을 바라는 원청과 건설업체의 압박은 일상이 되었고, 불안정한 계약직 신분에 근무 여건은 훨씬 나빠졌음에도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의 급여는 오르지 않았다. 심지어 인력이 넘쳐날 땐 오히려 깎이기도 했다. 타워크레인 임대료에서 조종사 임금을 적게 지급하면 그만큼 임대사 수입으로 남는 탓이었다.

일부 임대사는 당장 일자리가 아쉬운 몇 사람을 저울질 해가며 급여를 낮췄다. 그렇다고 해서 주말에 편히 쉴 수도 없었다. 한 달에 잘해야 격주로 두 번을 쉬는 게 전부인 경우가 흔했다.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 불안전한 공중에서 중량물을 운반하다 보면 거듭된 긴장과 스트레스로 녹초가 될 수밖에 없었다. 타워크레인은 사고가 한번 발생하면 조종사뿐만 아니라 근처에서 함께 일하는 노동자도 큰 피해를 입는다.

그래서 이들은 불안한 작업을 앞두고 있거나 강한 돌풍이 불어올 땐 감당하기 어려운 스트레스를 받는다. 타워크레인 작업은 네모반듯하고 보기 좋은 건설 자재만 운반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약 60% 정도는 작업자들이 현장에서 필요한 철근, 유로폼, 서포트와 각종 목재 등을 쌓아 놓은 걸 옮겨야 하는 경우다. 불안정한 작업일수록 타워크레인 조종사가 신경 써야 할 것들이 수도 없이 많다. 매번 상황이 변하는 비와 바람과 장비의 성능을 감안해야 하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사실 2020년 이후로 타워크레인 조종사의 실수로 사고가 나서 죽거나 다친 사람은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개인적으로 판단하기에 정부의 깊은 관심 때문이라기보다, 양대 노총이 대형 사고를 줄이기 위해 우수 조종사를 선별하여 가입시킨 것과 직업의식을 끌어올린 게 컸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작년 말부터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의 월례비 문제가 불거졌다. 올 초엔 월례비는 지난 수십 년 동안 관행처럼 이어온 것이기에 사실상의 급여로 본다는 법원의 판결도 있었다.

그러나 국토부는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이 소속된 노동조합의 잘못된 점만 크게 언론에 알렸다. 타워크레인 조종사들로선 낭패였다. 이에 불만을 갖게 된 일부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은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작업과 연장근무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월례비 문제에서 책임이 쏙 빠진 건설회사


그러자 국토부는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을 태업이란 구실로 면허 정지와 취소까지 하겠다며 압박해 왔다. 또한 건설현장 노동자에게 이들의 불법을 발견하면 즉시 신고하란 스티커도 여러 종류가 제작되어 대대적으로 뿌려졌다. 

심지어 국토교통부는 지난 3월 타워크레인 조종사가 안전을 이유로 고의로 작업을 지연하거나 거부하는 경우, '성실의무 위반'으로 간주해 면허정지 처분을 내리겠다는 방침을 내놓기도 했다. 15가지를 면허정지 처분 사유가 되는 '불성실 업무 유형'에는 순간풍속이 법상 위험기준치(초속 15m)를 초과했단 이유로 조종사가 원도급사 승인 없이 조종석을 이탈하는 경우 등이 거론됐다. 

건설현장의 안전이 더욱 강화되어도 모자랄 판에 사흘이 멀다고 내려온 국토부의 시행령으로 인해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이 지난 수십 년 동안 건설업체와 다져온 안전작업 협조 요청도 무용지물이 될 지경에 이르렀다. 정부가 월례비 문제에서 책임이 가장 큰 건설회사는 쏙 빼놓고 타워크레인 조종사들만 줄기차게 압박해 온 결과다.

역대 어느 정부도 이토록 특정 직종에 깊이 관여하여 노동자를 못살게 한 적은 없었다고 본다. 사실 타워크레인 조종사의 성과급은 어느 한순간에 불거진 일이 아니다. 이미 지난 수십 년 전부터 있어 왔기에 건설업 종사자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타워크레인 조종사를 탄압하여 꼬인 문제를 쉽게 풀어나가겠다는 국토부의 방향은 애초에 틀렸다.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이 그동안 급여로 간주해 온 성과급에 관심을 갖게 된 원인을 따져보면 건설회사(원청)에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이런 문제에서 비껴가려는 듯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늘 고용 불안을 겪고 있는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의 불만은 커져갈 수밖에 없다. 임대사는 노조에 가입되지 않은 경험이 부족한 저임금 조종사만 찾아 나서고, 건설회사는 임대사만 압박하는 현재의 상황은 누가 보더라도 비정상일 뿐이다. 이것을 쉽게 되돌릴 방법은 있다. 건설회사가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을 직접 고용하면 된다.

신축 건물의 뼈대를 100% 담당하는 타워크레인 조종사의 인건비가 부담이 되어 정규직 고용을 망설인다면 누가 믿겠는가. 이것은 애초부터 건설분야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설계된 타워크레인 없이 아파트와 빌딩을 짓겠다는 것과 같다. 타워크레인 조종사를 건설회사가 직접 고용하게 되면 이들의 인건비가 아파트 분양가에 반영이 될 거라는 말은 아주 그럴듯한 핑계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이 맡은 일의 중요도로 봐선 정규직 고용이 맞다.

경제 규모가 훨씬 낮았던 30년 전에도 정규직 채용이 가능했었는데, 분양가가 네다섯 배나 오른 지금은 안 된다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건설회사는 만약에 있을 대형 사고의 책임도 벗고, 위험 작업이 있을 때마다 자기들 마음대로 타워크레인 조종사를 쓰겠다는 속내가 있는 것 아닐까. 

지난 4월 29일 오전 경기도에서 타워크레인을 점검하던 두 분이 안타깝게도 사고로 돌아가셨다. 이날은 비가 와서 더욱 미끄러웠을 것이다. 짧으면 몇 달에서 1년 안에 이와 같은 대형 사고가 또 생기지 말란 법이 없다. 정부는 건설회사 경영자 몇 사람보다, 그들을 지금껏 배불리 먹여 살린 노동자가 훨씬 많단 사실을 결코 잊어선 안 된다.
덧붙이는 글 노동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갑시다.
#타워크레인 #조종사 #정규직 #국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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