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이란> 스틸 사진
튜브엔터테인먼트
처음 책을 펼치자마자 어느 나라 문자인지 알 수 없는 글들이 나와 순간 불량인가 싶어 당황스러웠다. 두 페이지 더 넘겨보니 한글로 번역된 들어가는 글이 나온다. 베트남 출신 결혼이주여성으로 옥천군결혼이주여성협의회 회장인 부티탄화가 쓴 글이다.
그녀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대한민국에 이주여성 정책을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주인으로서 권리를 행사할 것이고, 우리의 목소리가 관철되는 그날까지 싸울 것이라는 당당한 선언과 함께 연대해달라는 호소로 글을 시작한다.
'국적을 취득하기 위해 매매혼을 하고 한국에서 번 돈을 본국에 송금하는 여자들.'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가장 흔한 편견이다.
세계화로 자국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 없고 고용허가제로 입국할 형편도 안 되는 '가난한 집 맏딸'인 여성들이 가정을 살리고 빈곤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결혼이주를 택한다. 여기에 저출산, 고령화 문제와 돌봄노동 공백 문제의 해결이라는 대한민국 정부의 전략과 상업적 국제결혼 중개업이 결합한다.
이들은 "'돈 몇 푼에 시집온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 잘살아 보려는 꿈과 희망'을 가지고 들어온 것"이다. 결혼이주여성은 "무급노동인 가사노동, 출산과 육아, 시부모 모시기, 가내노동(농사)를 수행하며 생계비도 벌며 '잘살아 보겠다'는 기획을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개척하는 생존자"이고, "현실의 굴레 속에서 꿈과 희망을 접을 때도 있지만 이에 좌절하지 않고 생업 일선에 뛰어들어 노동을 수행하는 '똑같은' 사람"이다.
그러나 잘살아 보겠다는 이주여성들의 기대와 꿈은 곧 좌절된다. 이들은 '노는 사람' 취급당하고, 버는 돈은 남편이나 시부모의 수중으로 들어간다. 반말은 다반사이고 돈만 주면 살 수 있는 존재, 성매매할 수 있는 존재로 취급되는 등 일상적 차별 속에 있다. 엄연한 유권자이지만 이들을 위한 공약 하나 없다.
결혼이주여성은 다양한 문화가 섞여 있는 가족을 의미하는 다문화가족의 일원이지만, "자라온 문화, 언어, 전통을 모두 버리고 한국문화에 동화되도록 강제"될 뿐이다. 한국에 왔으니 한국 법만 따르라고 하고 모국어를 못 쓰게 하고 모국의 방송도 못 보게 하고 모국의 음식도 못 먹게 한다.
자신의 자녀와 모국어로 소통하는 것조차 못하게 해 자녀와의 관계는 멀어지고 오해와 갈등이 쌓인다. 중국계 미국인 작가 켄 리우의 단편소설 <종이동물원>에는 미국인 남성과 결혼한 중국인 여성이 낳은 아들이 엄마에게 영어로 말하라며 중국어로 대화하는 것을 거부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아마도 작가 자신이나 주변의 현실을 반영한, 이주민들이 겪는 보편적인 상황인가 보다. 결혼이주여성의 모국어가 영어라면 이런 대우를 받을까? 우리 안의 인종주의가 낳은 씁쓸한 풍경이다.
한국의 '가부장 문화'를 둘러싼 갈등도 심하다. 우리는 흔히 베트남 등 결혼이주여성 출신국이 못사는 나라라는 이유로 우리보다 후진적이라고 무시하지만, 성평등에서만은 오히려 정반대이다.
자국 문화권에서는 남녀가 동등한 양육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거나 친정을 시댁과 똑같이 대하는데, 한국은 '시댁중심'이고 '가사는 여자가'하는 일이다. 그러나 질문은 금기시되고, 친정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현 가족에게만 충실하라는 요구를 받는다.
가정폭력도 심각하다. 결혼이주여성의 42.1%가 가정폭력을 당한다. 피해자인 여성에게 남편은 너희 나라로 떠나라고 겁박한다. 폭력을 피할 쉼터가 없고 신고해도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다. 경제적 능력 없어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하고 아이 양육권을 뺏길까 봐 이혼을 쉽게 결심하지 못한다.
이주여성들, 함께 일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