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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원 이름 석 자, 대통령은 기억하고 있을까

문중원 열사 사망 1주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필요하다

등록 2020.11.30 21:40수정 2020.11.30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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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문중원 기수 영정 서울대병원 장레식장에 마련된 고 문중원 기수의 영정 사진이다. ⓒ 김철관


2019년 11월 29일,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일하던 문중원 기수가 숨진 채 발견됐다. 세 장짜리 유서에는 조교사가 부정 경마를 지시했고, 조교사 개업 심사 과정에서는 비리가 있었으며, 그간 수많은 부조리와 갑질에 시달려왔다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같은 경마공원에서 일어난 7번째 죽음이었다.

1년이 지나는 동안, 유족과 시민들은 슬퍼할 틈도 없이 싸움에 내몰려야 했다. 유족들은 죽음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해달라는, 지극히 당연한 요구를 했지만 경찰에 의해 매번 제압됐다. '죽음의 경마를 멈춰달라'며 전국에서 서명운동을 펼쳤고, 108배와 오체투지도 했다. 2월 27일에는 광화문광장에 차려진 분향소가 경찰과 용역에 의해 침탈당했다. 함께 분향소를 지켰던 사람들이 국가폭력에 쓰러져갔다. 3월 6일에는 대책위와 마사회 간 합의가 극적으로 이뤄져 다음날 장례를 치를 수 있었지만, 그 약속들은 이행되지 않고 있다. 공공기관의 약속이 파묻히는 동안, 기수, 조교사, 말 관리사들의 억울한 죽음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정부의 책임이 크다. 말 타는 노동자들이 한국마사회의 비리와 갑질에 시달리다 못해 세상을 등질 때까지 노동 존중과 적폐 청산이라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부의 말뿐인 약속 앞에 셀 수 없이 많은 가정이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유족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고, 고인의 장례를 치르기 전에 투쟁에 나서야 하는 기가 막힐 일이 계속되고 있다.

'싸울 필요 없는 죽음'을 꿈꾼다

다른 사람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고,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 그것이 추모의 의미다. 그러나 국가와 자본은 유독 노동자의 죽음, 가진 것 없는 이들의 비참한 죽음 앞에서 추모를 포기한다. 죽음을 애도하는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다음 죽음을 막기 위해, 이번 죽음을 알리고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죽음 앞에서 애도하는 이들과 애도를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이들 사이에 전선이 생기면, 애도를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이들이 늘 우위에 있다. 기수 문중원의 죽음도 그랬고, 구의역 김군, 태안화력 김용균의 죽음도 그랬다.

지난 2018년 한 해에만 2000명이 넘는 노동자가 사망했다. 이 말은 고인과 고인의 가족을 위로하고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한다는 추모의 목적도 2000번 넘게 상실했다는 의미다.

여전히 문 기수의 유족과 그가 몸담았던 노동조합은 이미 이뤄진 합의를 이행하라고 외치고 있다. 국회 앞, 청와대 앞, 광화문과 법원과 시청 앞에 잊힌 수많은 이름이 적힌 천막과 현수막이 널려있다. 소중한 사람의 죽음 앞에서 싸움을 벌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하나같이 싸움이 필요한, 싸워야만 온전히 슬퍼할 수 있는 죽음들이기에 이들은 오늘도 투쟁 현장으로 내몰린다.

'온전한' 추모를 쟁취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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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고용노동청 앞에서 11월 26일 유족과 노동시민사회단체가 추모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김보성


노동 현장에서 비참한 죽음이 생기면 추모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은 재발방지책 마련, 책임자 처벌, 진상규명 등을 요구한다. 내가 활동가로 일하며 수없이 봐온 죽음의 현장에서 이 구호가 내걸리지 않은 곳은 없었다. 문 기수 또한 마찬가지였다. 투쟁 끝에 합의문도 쓰였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사람이 죽으면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책 마련은 당연한 절차여야 한다. 이 최소한의 장치가 없었기에 그간 문 기수를 포함한 노동자들은 세 가지 요구를 위해 싸워야 했고, 합의를 이룬다 해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국가와 기업은 굳이 법에도 적혀있지 않은 노동자들의 요구를 들어줄 필요가 없었고, 그 때문에 노동자들을 사람 취급하지 않고 비용으로 취급했던 것이 아닌가.

그 요구를 합의가 아닌 절차로, 선의가 아닌 책임에 의한 이행으로 만드는 법이 바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은 책임자 처벌의 수위를 높여 기업으로 하여금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기술적・제도적・관행적 장치를 마련하게 하고, 만일 재해가 일어난다 해도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해 기업이 스스로 움직이도록 만들 것이다. 때문에 문 기수 대책위도 1주기를 맞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중점과제로 내세웠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문 기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법이다. 실제로 2018년을 기준으로 한국의 노동자 200명 중 1명이 일하다 다친다. 기수는 200명 중 145명이 다친다. 산재 사망률은 OECD 국가 중 독보적 1위인데, 많은 노동자가 일하다 다치거나 죽어도 산재를 신청하지 않거나 신청하더라도 불합리하게 인정되지 않는 사례에 비춰볼 때 현실은 훨씬 비참할 것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돼 산재 사망률이 OECD 평균으로만 떨어진다고 가정해도 내년에는 약 1400명을 살릴 수 있다. 최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이유도 이것이 너무나 시급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청와대부터 지방의회 의석까지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는 여당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움직임에 동참하기는커녕 천금 같은 법 제정 기회를 발로 차고 있다. 얼마 전에는 고작 현행법보다 벌금 500만 원을 늘리는 개정안을 내놨다.

정부는 과연 노동자 200명 중 144명이 다치는 공공기관이 정상적이라고 생각해서 마사회가 죽음의 경주를 이어가도록 두는 것인지, 과연 2000명이 일하다 죽는 나라가 정상적이라고 생각해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공약을 무시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180석 의석으로 법 제정을 막는 게 연 1400명의 노동자를 살리는 것보다 더 큰 정치적인 의미를 갖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일하다 죽지 않는 일터를 위해

박근혜 정권 시기 민주당과 문재인 당시 의원이 보여주었던 모습을 기억한다. 세월호 유가족과 함께 동조 단식에 나섰고, 국가로부터 소외받은 자들과 함께 국가폭력에 저항했다. 노조 집회마다, 민중총궐기가 열릴 때마다, 민주당은 노동자, 서민을 지켜야 한다며 정권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사람 사는 세상, 사람이 먼저라는 구호도, 노동존중사회와 적폐 청산이라는 약속도 기억한다.

그러나 당시에는 힘없는 노동자들과 함께 싸웠던 정부 여당이 이제는 노동자들을 향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실제로 지난 2월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가 문 기수 유족을 만난 자리에서 이 원내대표가 건넨 첫 얘기가 '코로나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중략) 아직 이것에 대해 검토를 많이 해보지 못했다'였다고 한다. 문 기수는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되기 전에 사망했는데도 말이다.

박근혜 정부 당시 민주당과 지금의 민주당이 다른 당이 아니라면, 정부여당의 뜻과 유족, 시민의 뜻은 전혀 다르지 않다. 일하다 죽지 않는 일터를 만들자는 호소 앞에 도대체 어떤 정치적 고려가 필요한가.

뜻을 이룰 방법은 모두 마련되어 있다. 이제 실천에만 옮기면 된다. 정부와 집권여당에 촉구한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으로 그 뜻을 이루기 위해 나아가자. 노동자의 영정을 앞에 두고 투쟁에 나서는 비상식적 사회에 종지부를 찍고, 이러한 죽음이 더 이상 우리의 일상에 찾아오지 않도록 하자. 무사히 죽는 것을 꿈꾸는 사회가 아닌 무사히 사는 것을 꿈꾸는 사회를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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