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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도 직업병이에요"

[기획] 노동안전보건운동의 발자취 ③-1 한국 사회 노동자의 정신건강 문제

등록 2020.11.03 15:50수정 2020.11.03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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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창립 초기부터 '노동자 정신건강'이라는 주제에 주목해왔다. 도시철도 기관사 공황장애 및 자살 사건, 청구성심병원과 하이텍알씨디 집단 정신질환 산재신청, 요양 중인 산재 노동자 정신건강 문제 등으로부터 시작된 고민은, 일터괴롭힘과 가학적 노무관리, 자살 대국에서 과소평가되고 있는 노동자 자살 문제, 감정노동과 작업거부권 등으로 확장되어 왔다.

그 사이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정신질환 산재 신청 건수와 승인율이 증가하는 등 사회적 변화도 있었다. 최근에는 직장내괴롭힘과 감정노동과 관련된 중요한 노동법상의 변화도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의 노동자 자살을 반복하게 하는 구조적 요인은 변화가 없고, 치료, 심리상담, 산재신청 등 개별적인 대응만 활발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든다. 200호까지 <일터>가 다뤄왔던 노동자 주요 이슈를 훑어보면서, 노동자 정신건강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를 돌아보고, 향후 과제를 짚어본다.

산재 요양 중인 노동자의 정신건강
 

노동자 정신건강과 관련한 문제의식은 '산재 요양 중인 노동자의 정신건강' 문제에서 출발해야 할 것 같다. 일터 초기에 소개된 노동자 자살은 주로 산재 요양과 관련된 것이었다. 다쳤지만 산재를 신청하지 못하거나 승인을 받아도 불충분한 요양으로 요양 중, 혹은 회복되지 못한 채 일터에 복귀한 후의 자살을 꾸준히 소개했다. 사실 <일터> 발간이 시작되기도 전인 1999년 이상관 투쟁이 있었다. 1999년 대우국민차 창원공장에서 일하다 허리를 다쳐 산재로 요양하던 20대 청년 노동자 이상관은, 제대로 걷지도 못할 정도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도 요양을 종결하라는 근로복지공단 직원의 종용을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IMF 사태에 따른 근로복지공단의 예산 절감 방편으로 세워진 '산재보험급여 거품 제거 대책'의 희생양 중 하나였다.

당시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155일간의 농성 투쟁이 이어졌고, 이 과정에 시민사회단체와 현장 노동자, 의사 등 다양한 사람들이 연대했다. 이 연대투쟁 과정에서 산업재해, 산업안전보건, 산재추방운동이라는 말 대신 노동재해, 노동안전보건, 노동안전보건운동이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상관의 죽음은 끝내 산재로 인정되지 않았고, 책임자인 근로복지공단 이사장도 자리를 보전했다.

하지만 이 투쟁으로 산재 요양 중인 노동자의 정신건강 문제가 위기라는 것이 알려지게 되었고, 산재 요양 중 이와 관련하여 발생한 정신질환이나 자살의 경우 산재로 인정되는 건이 늘었다. 2005년 당시 근로복지공단은 요양 중 발생한 우울증은 업무상 재해와는 무관한 것이라는 일관된 판단을 내리고 있었는데, <일터>에서는 산재요양 과정 중 발생한 우울증이 산재라고 인정한 법원 판결을 소개하기도 했다.

최근에도 산재 요양 노동자 자살이 지속되고 있다. 얼마 전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2003년에서 2014년 사이 업무상 사고를 당해 산업재해보상보험 요양급여를 수급한 15~79세 노동자 약 77만 명 중 2796명이 2003년에서 2015년 사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들 산재 노동자의 자살 사망률은 전체 경제활동인구에 비해 2.21배 높게 나타났다. (Hye-Eun Lee, Inah Kim, Myoung-Hee Kim, Ichiro Kawachi. 2020."Increased risk of suicide after occupational injury in Korea." Occupational & Environmental Medicine, BMJ Journals.)

사고 당시 임시직에 종사한 노동자는 상용직보다 자살 사망률이 더 높았고, 특히 남성 산재 사고 노동자의 경우 장해가 발생하지 않은 노동자가 중증 장해를 앓는 노동자보다 자살 사망률이 더 높은 역설적인 결과가 나타났다. 장해가 없는 산재 사고 노동자는 장해등급 1~3급의 중증 장해 노동자에게 지급되는 연금을 받지 못하고 계속해서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처지에 놓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산재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정책 개입뿐 아니라, 산재 사고 노동자들이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회복하고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

논문의 주저자인 이혜은 직업환경의학전문의는 이메일을 통해 "산재 요양 중 자살이 산재로 인정된 지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렇지만 정작 산재 노동자의 자살을 예방하는 노력은 부족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향후 산재노동자 자살의 구체적인 경로 파악과 예방 대책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또, "장해 수준과 상관없이, 오히려 장해가 없는 산재노동자들의 자살률이 더 유의하게 높았다는 점"이 연구의 중요 결과라며, "산재요양이 종결되어 산재보험의 경제적 지원이 끝나고 산재 이전보다 소득이 줄어든 경우에 대해 특별히 대책이 필요"하다고도 지적했다.
 

열차를 운영 중인 지하철 기관사. 위 사진은 일터 통권 12호(2004.07) "스크린 도어로 기관사 정신건강을 보장할 수는 없다"에 수록되어 있다.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도시철도 기관사 이야기

일상적 노동환경의 문제로 발생한 최초의 집단적인 정신질환 직업병 사례로 <일터>가 주목한 것이 도시철도 기관사들의 공황장애와 자살이었다. 2003년 당시 서울 지하철 5~8호선을 운영하던 서울도시철도공사에서 기관사 2명이 연달아 자살했다.

당시 도시철도노동조합 승무본부 사묵국장이었던 윤성호 기관사는 "처음부터 정신건강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접근했던 건 아니었다"라고 기억한다. 처음으로 자살이 연달아 발생한 2003년은 노동조합 집행부의 대폭 물갈이가 있던 해였다. 선거운동하던 중 기관사 한 명이 자살했고, 당선되고 새로운 임기를 준비하던 중 다른 한 명이 연달아 자살했다. 두 명이 연달아 이런 일을 당하자, 뭔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1~4호선을 운영하는 1기 지하철에서는 자살하는 노동자가 없는데, 도시철도에서만 기관사가 자살한다면, 노동환경에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닐까?

당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공유정옥 직업환경의학 전문의가 '정신질환도 직업병으로 발생할 수 있다'고 안내해줬다. 새로운 노동조합 집행부의 첫 활동이 되었다. 도시철도는 지하철공사에서 분사하면서 권위적이고 위계적인 조직문화가 만들어져 있었다. 거기에 혼자 전철을 운전하며, 서비스까지 담당해야 하는 기관사들은 책임감과 서비스 강요에, 자주 혼나고 억눌려 있었다. 연달아 발생한 자살이 노동환경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얘기하자 주변에서 그동안 참고 있던 울분을 터뜨렸다. 윤성호 기관사는 정신건강 문제는 조합원들에게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고 기억한다. 다들 공감하던 문제였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개별 사건의 산재 보상을 청구했을 뿐 아니라, 서울도시철도공사 내 모든 기관사에 대해 직무스트레스와 정신건강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정신건강 상태가 매우 좋지 않은 기관사가 다수 발견되었고, 먼저 공황장애를 진단받은 기관사들이 연달아 업무 관련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정신건강과 관련이 높은 요인으로, 운전 중 사상사고 경험 여부뿐만 아니라, 도시철도에서 운영 중인 1인 승무제도와 권위적인 인사노무관리도 문제로 지적됐다. 하지만, 사상사고를 줄이기 위한 안전문 도입과 사고가 발생했을 때 기관사가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지 않도록 하는 등의 대책에만 합의할 수 있었다. 2인 승무 제도 도입은 결국 합의되지 못했다. 사상사고와 같은 극적인 단일 사건에 의한 정신질환 발생은 산재로 인정해도, '1인 승무' 등과 같은 일상적인 스트레스 요인에 따른 정신건강 영향은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여전한 관행이다.
 

지하철 기관사가 운영하는 열차 운전석에서 바라본 선로.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그래도 안전문 설치는 인명 사고 발생 가능성 때문에 운전 내내 긴장할 수밖에 없던 기관사들의 압박감을 상당히 낮춰주었고, 승객 안전 측면에서도 진일보한 정책이었다. 그 후 일상적인 개선결과 평가와 피드백이 잘 이루어지지는 않던 차에, 2011년 다시 기관사 자살 사건이 발생했다. 2013년 다시 기관사 전체를 대상으로 실태조사에서, 사상사고 이외에도 권위적 조직문화 등이 직무스트레스에 중요한 원인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고위험군 노동자들을 잘 관리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 또한 확인하였다.

이를 교훈 삼아, 작업장 기반의 노동자 정신건강 관리를 위해 '도시철도 힐링센터'가 문을 열었다. 의사, 간호사, 임상심리사 등이 상주하며 개별 노동자 혹은 노동자 가족의 심리상담과 치료 지원, 조직 차원의 정기적인 직무스트레스 검사와 작업복귀 프로그램, 정신건강 증진 프로그램 등을 시행하고 있다.

도시철도공사의 정신건강 관리 프로그램 도입 과정은 크게 두 가지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선 정신건강 관련 논의가 본격화되기 전에 일찍이 종합적 접근의 중요성을 깨닫고, 체계적으로 문제 해결을 도모하였다. 다음으로 긴 시간에 걸쳐 노동자 당사자들의 요구와 참여를 바탕으로 개선 방안 마련했다. 노동자 정신건강의 예방 및 치료에서 개별적이고 단편적 접근이 아닌 집단적이고 총체적인 접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보여준 사례였다.

윤성호 기관사는 특히 "그전까지 노사는 항상 대립하는 상대였는데, 힐링센터가 세워지면서, 직무스트레스를 줄이고, 기관사를 보호해야 한다는 같은 방향의 고민을 노사가 함께 한다는 것이 신기한 경험이었다"라고 회상한다. 회사로부터 독립적이고, 단순히 심리상담뿐 아니라 전직이나 업무 복귀 상담까지 포괄하고. 직무스트레스 관리와 노동환경 평가까지 다면적으로 접근하는 힐링센터의 경험은 "웬만한 규모가 있는 회사에서는 다 했으면 좋겠다"라고 추천한다.

☞ 다음 기사 : 어떻게 마음 다치지 않고, 인간답게 일할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최민입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잡지 <일터> 10, 11월 합본호에도 연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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