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고통서 살아남은 자들의 증언 '나 저기 살았어'

[인터뷰] 이사랑 재단법인 진실의 힘 간사 "인간의 삶은 폭력보다 강하다"

등록 2019.06.24 19:38수정 2019.06.24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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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쌀한 어느 가을의 주말, 지인으로부터 반가운 연락을 받았다. "'서승, 기억의 루트'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할 생각이 없냐"는 연락이었다. 부랴부랴 서승이라는 인물을 검색해 조작 간첩에 대해 자그마한 지식을 쌓았다. 글로 접한 이야기는 마치 교과서 같았다. 서대문구치소 자리에서 무뚝뚝하게 말을 내뱉는 서승 선생님을 보면서 그제야 인간 책을 읽고 있다는 실감이 났다. 

필자는 다가오는 6·26 유엔 고문 생존자 지원의 날을 맞아 5월 30일 재단법인 '진실의 힘'을 방문해 이사랑 간사와 인터뷰를 했다.

진실의 힘은 피해자의 손을 잡아주는 곳
 

사법농단 피해자들과 함께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이사랑 진실의힘 간사 ⓒ 진실의 힘

 
- 활동을 하게 된 계기를 소개해달라.
"부모님이 학생 운동을 하다가 만났다. 그 영향을 받아 자연스레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환경에서 자랐다. 당연히 커서도 인권 쪽에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다. 법학과에 진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인권법에 관련된 활동을 시작했고 진보적인 활동가들의 국제연대 조직이라 불리는 인권 단체 '팍스 로마나 국제가톨릭학생운동(ICMICA)'에서 인턴십을 경험했다."

- 인턴십을 경험한 것이 진실의 힘 활동을 시작한 중요한 계기가 된 것인가.
"사실 인권활동가로 사는 것에 대해 자신감이 없었던 시기도 잠시 있었다. 오전에만 인권단체에서 하는 인턴십을 신청하고, 오후에는 그런 일들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과 지냈다. 그런데 두 가지 삶의 온도 차이가 극명했다. 밀양 송전탑 행정대집행, 세월호 사건 등이 터졌을 때 오전에는 함께 울고 분노할 사람들이 있었지만 오후의 세상은 너무도 조용했다. 차이가 큰 두 삶으로 인해 괴로움도 커지면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중에 '진실의 힘'을 알게 됐다.

진실의 힘은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직접 만든 단체이기도 하고, 피해자들과 직접 연결되는 활동이 많은 곳이다. 그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게 뭐지? 어떻게 이런 꿈같은 단체가 있을 수 있지?'싶은 놀라움으로 가득했다. 비록 조작 간첩에 관한 활동은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의제였지만 막상 일을 시작하겠다고 결심했을 때는 오히려 마음이 가볍고 설렜다."

- 진실의 힘 활동을 소개해달라 
"진실의 힘은 고문과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함께 일했던 사람들과 만든 단체다. 당신들이 겪은 일이 재발하지 않게 하려고 만들어졌다. 국내 피해자들 외에도 아시아 국가 내 캄캄한 동굴 속에 있는 사람들의 손을 잡아주고 싶은 마음도 컸다. 현재 진실의 힘은 국가폭력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일을 하고 있다. 피해자들을 치유하는 사업, 피해자들이 또 다른 생존자들에게 손을 내밀고 연대하는 사업도 하고 있다. 치유 사업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조작 간첩 피해자들과 함께 하는 집단치유 프로그램이 있고 '마이데이'와 '기억의 루트'처럼 당사자가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증언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국가로부터 직접 가해지는 폭력 행위 외에도 국가폭력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기에 그와 관련한 활동도 다양해지고 있다."

- '마이데이' 프로그램은 어떻게 진행되는가 
"고문 피해자는 지독한 고통 속에 살아간다. 오로지 고통을 겪은 사람만 이해할 수 있다고 할 정도다. 고문은 국가가 한 인간을 파괴하는 것이다. 피해자가 부서진 삶, 부서진 관계, 부서진 마음을 다시 추스르기 위해서는 조금 더 많은 사람이 그 이야기를 들어주는 과정이 필요하며, 단순히 들어주는 것뿐만 아니라 들으면서 느낀 것들을 적극적으로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전문용어로 '증언 치유'(testimonial therapy)라고 한다. 마이데이는 국가폭력(고문 피해) 생존자가 주인공이 되는 날을 만들어 당신의 삶을 이야기 하는 프로그램이다."

역사를 증언하는 이들,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 사람들
 

‘서승, 기억의 루트’ 참가자들의 모습 ⓒ 장성하


- 언론이 피해자-증언자를 다루는 방식과는 질적으로 다른 느낌이다
"피해자가 토론회나 언론에 나와서 자신의 사례를 증언하는 자리는 정말 많았다. 피해자들은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이야기를 하지만 언론은 피해자의 이야기 중 가장 극적인 내용만 소비한다. 마이데이는 고문을 겪었던 날뿐만 아니라 평범했던 이전의 삶과 끔찍했던 고문을 견뎌낸 이후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 가장 최근에 했던 마이데이 프로그램을 소개한다면 
"최근에는 5.18 생존자인 안성례 선생님과 마이데이를 했다. 안성례 선생님의 남편은 5·18 광주항쟁 수습대책위원이기도 했고, 당신 스스로도 기독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며 5·18의 중심에 서 있었다. 평생을 광주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싸웠던 안성례 선생님이 마이데이의 주인공이 되어서 청중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특별했다. 안성례 선생님의 따님이자 광주트라우마센터에서 상담사로 일하고 있는 명지원 선생님은 '아버지가 고문 피해에 대해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지만, 센터에 오는 5·18 생존자들에게서 아버지를 보았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당시 참가했던 대학생 관객이 '5.18은 역사 교과서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일상 속에 들어왔다는 느낌'이라고 말했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마이데이 같은 프로그램이 모든 걸 해결해주진 않겠지만 조금이나마 외로움을 덜어줄 수 있겠구나 싶었다."

- 앞서 말했던 기억의 루트라는 프로그램은 어떤가 
"기억의 루트는 '다크투어'의 성격을 갖는다. 기억의 루트는 여타의 다크투어 프로그램과는 달리 국가폭력의 생존자와 함께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서승, 기억의 루트'는 서승 선생님이 보안사에서 고문을 받던 중 분신을 시도해 국군수도통합병원(현재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옮겨졌기에 이곳에서 시작됐다. 이후 서울구치소(현재 서대문형무소박물관)로 향했다. 서승 선생님이 직접 그곳에 겪었던 일들을 젊은 사람들에게 해준 것 자체로 의미가 있었다.  

'박동운, 기억의 루트'는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고 할 정도로 악명 높았던 남산 안기부의 이야기가 중심이었다. 당시 남산으로 끌려갔던 피해자 대부분은 눈이 가려진 상황이었기 때문에 본인이 고문을 받았던 장소를 정확히 인지할 수 없었다. 박동운 선생님이 63일 동안 고문받고 조작 간첩이 되었던 장소를 참가자들과 함께 다시 찾은 것도 그런 점에서 인상 깊었다."

- 이전까지는 그 끔찍한 공간에서 있었던 이야기가 '책'처럼 느껴졌는데, 서승 선생님이 '나 저기 살았어'라며 공간을 설명하는 것을 듣고 피부에 와 닿는 현실이 되었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나조차도 충격적일 때가 있다. 기억의 루트는 그런 끔찍한 고통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 때문에, 참가자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후 책이나 활자로 읽는 것 이상으로 자신의 삶에 대해 의미를 찾게 되리라 생각한다. 기억의 루트가 찾는 장소 대다수는 국가 폭력의 역사를 지워내려고 한 곳들이다. 대표적인 장소가 남산이다. 과거 보안사 건물은 흔적을 찾기도 어렵다. 국가가 지우려고 한 역사의 현장을 직접 찾고, 그 역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 지난해 남영동 대공분실은 민주인권기념관으로 개관했다. 민주인권기념관은 앞으로 어떤 공간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좋을까
"남영동 대공분실은 2005년부터 경찰청 인권센터로 이용되다가 2018년 12월 민관으로 이관됐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한 시대를 대표하는 김수근 건축가에 의해 지어진 건물이다. 설계도에서부터 사람을 고문할 것을 염두에 둔 것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진실의 힘에서 남영동 대공분실의 고문 피해에 관한 실태조사를 했다. 민주인권기념관이 애도와 기념을 위한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피해 사실에 대해 명확히 짚어내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현재는 남영동 고문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하고 있다. 단순히 피해자들이 겪었던 끔찍한 고문의 사실만을 묻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에서 남영동이 가지게 된 의미와 남영동 이후의 삶에 대해 충분히 알아보고자 했다. 독일이나 폴란드의 홀로코스트 기념관 측은 피해자들을 숫자 또는 규모로만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들의 삶 하나하나를 기억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민주인권기념관도 그런 공간이 될 수 있길 바란다."

국가폭력은 여전히 발생한다

- '국가폭력'에 대한 정의를 내릴 수 있을까? 특히 민주화 이후 2010년대에 일어난 국가폭력은 어떤 것들이 있나 
"1984년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고문방지협약에 따르면 고문의 주체는 '공무원 또는 공무 수행자'로 정의된다. 세계적으로 고문에 대한 해석은 더 넓어지고 있으며 국가폭력의 개념 또한 확장되고 있다. 흔히 '고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일제 강점기 혹은 독재정권 하에서 안기부나 대공분실 같은 공간에서 이루어졌던 구타, 물고문 같은 폭력 행위다. 이런 형태의 고문은 민주화가 이뤄지면서 사라졌다고 볼 수 있지만 국가폭력은 여전히 발생한다. 

국가가 그 의무를 수행하지 않고 제도적 문제를 방관하여 발생하는 죽음과 고통 또한 국가폭력의 범주에 든다고 생각한다. 오래된 배를 수입하고 증축을 가능하게 한 제도, 거대한 배가 바다에 가라앉았을 때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했던 무능한 해경 그리고 존재하지 않았던 '콘트롤 타워' 등 여전히 진실이 규명되지 않은 세월호 참사에서도 국가폭력은 발생했다. 일터에서 목숨을 잃은 고 김용균씨의 죽음도 마찬가지다. 과거처럼 어떤 폭력행위의 주체가 국가인 경우로만 국한되진 않는다. 재난과 사고가 발생했을 때 이에 대처할 수 없는 부실한 시스템을 운영하는 국가의 방만함, 무책임함 또한 국가가 행하는 폭력에 해당한다."

- 국가폭력 피해자를 위한 트라우마 치유의 중요성에 대해 알려달라 
"진실을 밝히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피해자가 가능한 모든 기록을 모으는 것이다. 고문 피해자의 경우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나 가해에 대한 증거를 모으기 쉽지 않다. 피해자들은 재심을 하는 과정에서 당시의 상황은 물론 신체에 남아있는 고문의 상흔을 가능한 한 자세하게 기록해야 한다. 자신이 겪었던 끔찍한 고통의 기억을 되새길 때 트라우마가 발현될 수 있기에, 고문 피해자들의 재심 과정에서 이 심리적 상흔을 치유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감했다. 

정혜신 진실의 힘 이사와 함께 고문 피해자들의 개인 상담, 집단상담, 마이데이와 같은 증언치유 프로그램 등 다양한 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피해자들뿐만 아니라 가족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운영했다. 국가폭력의 피해자 대부분은 '나의 고통은 나밖에 이해할 수 없다'는 고독한 고통에 시달린다. 정말 운 좋게 재심을 통해서 배상을 받는다고 해서 고통이 끝났다고 볼 수도 없다. 수많은 피해자를 낳았던 국가보안법, 보안관찰법이 아직도 존재하고, 고문으로 인한 허위자백을 증거능력으로 인정하게 만든 형사소송법 조항 등은 여전히 존재한다. 가끔은 법정에서 재판관이 피해자들에게 사과하는 때도 있지만, 재발 방지를 위한 국가시스템이 마련될 때 비로소 피해자들의 오랜 상처가 아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국가폭력 생존자들의 연대, 서로에게 힘이 되다

- 진실의 힘 인권상도 소개해달라.
"진실의 힘 인권상은 고문 피해 및 국가폭력에 대항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헌신한 분에게 드리기 위해 2011년에 만들어졌다. 인권상 시상식은 유엔 고문생존자 지원의 날인 6월 26일에 연다. 이날은 유엔 사무총장이었던 고 코피 아난이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어낸 이들을 오늘 단 하루만이라도 전 세계 사람들이 기억하고 존경하는 날로 만들자'는 취지로 제안한 기념일이다. 고문 피해자들은 이전에도 6월 26일을 기념하며 크고 작은 기념행사를 치렀는데, 진실의 힘 설립 후 더욱 뜻깊은 프로그램을 만들자는 논의가 있었다. 인권상 수상자는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역의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한다. 식민지배와 독재정권 등 한국과 비슷한 결을 가진 아시아 여러 국가들에서 고문과 국가폭력에 대항해 삶을 희생한 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 역대 인권상에 어떤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었나
"제1회 수상자는 서승 선생님이다. 서승 선생님은 고문을 이겨낸 사람을 상징하는 존재 그 자체다. 제2회 수상자는 김근태 선생님이다. 김근태 선생님은 2011년 제1회 수상식에 혼자 참석하셔서 많이 울고 가셨다고 들었다. 김근태 선생님의 저서 <남영동>에는 고문 당시 상황과 고문 가해자를 고발한 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안타깝게도 당신은 시상식 전에 고문 후유증인 파킨슨병으로 돌아가셨다. 시상식에는 평생의 동지이자 공동 수상자인 인재근 선생님이 참석하셨다. 제3회 수상자는 초대 인권 변호사로 국가폭력 피해자들과 늘 함께했던 홍성우 변호사였다. 홍 선생님은 조사실과 감옥에서 괴로워했던 고문 피해자들의 가장 든든한 조력자였다.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1980~1990년대 있었던 웬만한 국가폭력 사건을 도맡아 변호했고, 국가폭력 사건을 변론한 기록을 모아 <인권변론의 한 시대>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카메라를 응시하는 우윈틴(U Win Tin)의 모습 ⓒ 진실의 힘

 
- 앞선 수상자들은 한국 사회가 기억하지 않을 수 없는 상징적인 존재인 것 같다. 아시아 국가의 수상자도 소개해달라
"미얀마의 우윈틴 선생님은 제4회 인권상 수상자였다. 반군사독재 운동을 위해 민족민주동맹(NLD) 창당에 힘쓴 우윈틴 선생님은 19년간 수감생활을 했다. '버마에 단 한 명의 양심수도 남아있지 않을 때까지 수의를 벗지 않겠다'며 석방 후에도 돌아가실 때까지 감옥에서 입던 옷을 벗지 않았다. 우윈틴 선생님은 시상식을 2달 남겨놓고 2015년 4월 21일에 돌아가셨다. 인권상 상금은 우윈틴 선생님이 양심수와 언론인을 위해 만든 재단인 우윈틴 재단으로 전달되었고, 그 기금은 미얀마 고문피해자들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병원 운영에 쓰이고 있다.

제7회 수상자인 베드조 운퉁 선생님도 소개하고 싶다. 인도네시아도 한국과 굉장히 비슷한 역사를 갖고 있다. 1965~1966년 수하르토 정권 당시 공산당원 혹은 공산당에 동조했다는 의심만으로 50~300만 명이 학살됐다. 베드조 선생님은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이 진상규명을 위해 만든 YPKP65의 대표다. 수하르토 독재정권이 감추고 있는 당시 생존자의 증언 기록, 집단학살 무덤 기록, 진실화해위원회법 입법운동 등 학살의 진상규명를 위한 일부터 시민사회와의 연대활동을 직접하고 있는 분이다. 그런데 인도네시아에서 당시 일어난 학살은 아직도 금기어에 가깝다. 피해자들의 진상규명 운동은 군부, 무슬림 우익 세력들의 심한 탄압을 받고 있으며, 베드조 선생님 당신도 살해 협박을 여러 차례 받았다고 밝힐 정도다."

- 아직 한국 사회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인 것 같다. 닮은꼴인 두 사회의 모습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까
"인권상 수상 이후 베드조 선생님은 작년에는 4·3을 맞아 제주에, 올해는 5·18을 기념해 광주에 방문해 당신의 이야기를 증언했다. 선생님은 광주 심포지엄이 끝난 후 서울을 방문했다. 마침 그날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유족회의 집회가 열려서 그 자리에도 참석했다. 과거사법 개정을 요구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유골을 들고 상경한 유족들 앞에서 발언하는 베드조 선생님의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베드조 선생님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눈을 바라보기만 해도 이해할 수 있다'며 '오늘 우리가 만나게 된 것은 신의 뜻이다. 앞으로 함께 싸우고, 함께 투쟁해나가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비록 언어와 국적이 다르고 서로가 겪었던 일을 자세히 알지 못했지만, 서로의 경험을 나눠보니 두 사건이 굉장히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학살과 관련한 그 사건들뿐만 아니라 그 이후 이어진 사회의 모습까지도 굉장히 비슷했다. 끔찍한 고통을 겪어내고 그 참상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삶을 바치고 있는 국가폭력 생존자들의 연대가 서로에게 힘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 것만 같았다."

인간의 삶은 폭력보다 강하다

- '진화위법' 관련 논의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참여정부 때 '진화위(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5년간 활동하고 마무리됐다. 당시 진화위는 피해자들이 진실규명을 신청할 수 있는 기간을 1년으로 제한했다.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만 해도 피해자의 규모가 수백만 명으로 추정되는데, 피해자로 인정된 사람은 수백 명에 불과했다. 또한 진화위의 조사가 권고 수준으로밖에 결론을 내릴 수 없었고 수사권을 갖지 못한 한계도 있었다.

문재인 정부는 100대 국정 과제 중 세 번째로 '국민 눈높이에 맞는 과거사 문제 해결'을 꼽았고, 2018년 상반기부터 진화위 활동을 재개하겠다고 약속했다. 제2기 진화위 출범을 위해서는 진화위법의 개정이 필요한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여전히 진화위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야당도 비협조적이지만, 여당 내에도 진화위법을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의원 딱히 없다."

- 현재 진행형인 '과거사'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의 역할은 무엇일까
"국제사회는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을 해결하려면 국가가 최소한 진상규명, 정의(가해자 처벌), 배상과 재발방지 조처를 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이와같은 조처는커녕 진실을 밝히기 위해 삶을 희생한 피해자들을 괴롭히고 있다.

진도 일가족 (조작)간첩단 사건의 피해자인 박동운 선생님은 1981년 전라남도 진도에서 남산 안기부로 끌려왔다. 일가족이 68일간 고문을 받았고, 당신은 17년간 감옥에 수감됐다. 석방 이후에도 보안관찰 대상이 됐다. 출소 직후에는 가족, 다른 고문피해자들과 함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애썼다. 28년이 지난 후에야 재심에서 무죄를 받아낸 박동운 선생님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2심까지 승소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파기환송 판결과 함께 "박동운 선생님에게 1심에서 받은 손해배상금을 법정이자와 함께 돌려내라"고 했다.

그런데 당시 대법원의 판결은 이후 양승태 사법농단에서 재판거래의 대상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사법농단의 실체가 드러난 이후인 지난해 8월, 박 선생님은 한법소원을 청구해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에서 소멸시효를 적용할 수 없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다시 받아냈다. 선생님은 헌재의 결정을 근거로 손해배상에 대한 민사 재심을 시작해서 올해 4월 승소했다. 그리나 국가는 또 상고했다. 국가는 단 한 번도 박동운 선생님을 비롯한 고문, 국가폭력 피해자들에게 완전한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진실의 힘은 '인간의 삶은 폭력보다 강하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고문이 인간을 부수고 파괴하는 것이 목적이라 할지라도 완전히 소멸되고 폐허가 되어 재밖에 남지 않는 곳에서도 삶은 다시 시작될 수 있고, 재생된 삶은 고귀하고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힘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능한 많은 이들이 과거에 일어난 고문과 국가폭력이 현재 우리의 삶과도 이어진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게 우리 모두가 기억하는 것을 시작으로 국가가 진상규명, 손해배상, 재활과 재발방지를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해야 한다."

남영동 - 고문기술자 이근안!! 그는 누구인가?

김근태 지음,
중원문화, 2012

이 책의 다른 기사

김근태 "남영동은 인간도살장"

인권변론 한 시대 - 홍성우 변호사의 증언

한인섭, 홍성우 (지은이),
경인문화사,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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