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즐거운 사람들, 평균 나이 70세 마음은 '청춘'

몸은 느리지만, 제품을 다루는 손놀림은 재빠른 이들

등록 2018.05.04 15:46수정 2018.05.04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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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즐거운 사람들, 평균 나이 70세 마음은 ‘청춘’ ▲ 3일 정방훈(85) 할아버지는 대화도중에도 손을 분주히 움직이며 말을 이었다. 그는 이 일을 하는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며 웃었다. ⓒ 오홍지


이면 주차로 빽빽한 골목에 미세먼지를 동반한 바람이 얼굴을 세차게 때린 3일 오후 청주 상당구 금천동 일대 고령의 노인들(청주시니어클럽)이 하나, 둘 분식집으로 들어가고 있다.


숫자를 세어보니 11명, 늦은 점심인 듯 생각하고서는 안을 들여다봤다. 그러나 그곳은 무늬만 분식집. 내부 모습은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과도 같은 작업장이면서, 경로회관 같은 느낌도 났다.

노인들은 느린 걸음으로 이곳 저곳 움직이며 제품을 나른다. 하지만 작업하는 손놀림은 느리게 걷던 모습과는 다르게 재빨랐다.

2005년부터 이곳에서 일한 85세 정방훈 할아버지는 13년 동안 오전 7시에 나와 오후 6시까지 일을 하신다. 웃으며 말하는 모습에서 여전히 정정하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곳에서 가장 고령인 96세 최순희 할머니도 13년간 일을 계속하고 있다. 거동이 느리기는 하지만, 앉아 일하시는 모습은 왠지 민첩하게 느껴졌다.

특히, 가장 막내(?)인 75세 홍선자 할머니는 누구보다 분주했다. 막내라서 그런지 늘 솔선수범이라고 정방훈 할아버지가 내내 칭찬했다.


75세인 홍 할머니는 집에서 최고 어른이나, 이곳에서 일하는 시간 동안은 급 하강한 막내라는 건 약간의 웃음 포인트 지점이다.

이들의 주된 작업은 상품을 완제품으로 만드는 일이다. 공장(주문자) 측으로부터 수출상품과 국내상품을 OEM(주문자가 요구하는 제품과 상표명으로 완제품을 생산하는 것) 받아서 이를 완제품으로 가공해 다시 공장 측에 납품하는 수동 작업이다.

제품은 힐 슈즈보드(신발보드)와 상다리 보호대 포장이다. 힐 슈즈보드는 일본으로 수출되고, 보호대는 저렴한 생활용품 같은 곳에 들어간다.

이렇게 하루 8시간을 일해도 1만원을 벌지 못한다. 개당 제품에 30원씩 책정되기 때문이다. 한 달이면 이들이 가져가는 돈은 약 30만원 가량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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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즐거운 사람들, 평균 나이 70세 마음은 ‘청춘’ ▲ 3일 최순희(96) 최고 고령 할머니가 일본 수출제품을 설명하고 있다. 할머니는 돈 보다 이 나이에도 일을할 수 있다는 것에 고맙다며 웃었다. ⓒ 오홍지


안타깝지만 오히려 노인들은 상관없다는 반응이었다. 96세 최순희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라도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오히려 감사하지요. 집에만 있으면 몸도 아프고 외롭기만 하지만, 여기 오면 비슷한 나이들이 많아 대화도 되고, 밥도 같이 먹고, 웃기도 하고 좋아요"

노인들은 돈을 떠나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일을 계속한다고 했다.

85세 정방훈 할아버지도 시간과 건강만 주어진다면 계속해 이 일을 하고 싶다며 이렇게 말했다. "2005년도에는 이 일을 하는 곳이 많지 않았지만, 지금은 많이 늘어난 추세죠. 특히 장애를 가진 우리와 같은 연배의 노인들이 많이 하고 있지요. 그래도 이 나이에 용돈 벌이 정도는 할 수 있어서 오히려 고마워요. (웃음)"

지자체 등 지역 행정기관으로부터 지원받는지를 여쭤봤다. 정 할아버지는 "그런 거 전혀 없다"며 오히려 그러기 싫다고 하신다.

현재, 이곳의 연령대는 75세 막내 홍순자 할머니를 비롯해 77세, 80세, 85세, 88세, 96세 등 고령에 속한다. 개개인 나이들이 아득하게 높지만, 이들은 지금 이 일을 좋아한다고 말하면서 계속하기를 바란다.

주변 상가들도 노인들을 극찬했다. "연세가 높으신데도 늘 제시간에 오시는 모습을 보고 처음에는 안쓰럽다고 느꼈지만, 이제는 하루라도 안 나오시면 걱정되요. 정도 많으셔서 하나라도 더 챙겨드리고 싶어요."

인근 멀티숍 대표도 말을 더하며 미소 지었다. "1년 전 이곳에 멀티숍(카페·의류 등)을 차려 주변 상가들에 빵을 준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분들 일하시는 곳이 빈 상가인 줄 알고 그냥 지나쳤는데, 할머니 몇 분이 찾아와 왜 자신들에게는 빵을 주지 않느냐고 서운함을 토로하더라구요. 얼른 빵집으로 가 빵을 사서 공손하게 전해드렸는데, 며칠 뒤 할머니들이 찾아와 고맙다며 옷을 몇 벌 사 가셨어요.(웃음) 정말 정이 많으신 분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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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즐거운 사람들, 평균 나이 70세 마음은 ‘청춘’ ▲ 3일 박정자(88) 할머니가 며느리인 신나라(57·가수) 씨에게 일본으로 수출하는 제품포장을 설명하고 있다. 신나라 씨는 자신의 시어머니를 최고의 자랑거리라고 말했다. 그녀는 어머니 호칭보다 '엄마'라는 호칭으로 30년간 부르고 있다. ⓒ 오홍지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충북넷에도 송고됐습니다.
#고령사회노인들 #노인일자리 #청주시니어클럽 #노인들용돈벌이 #지역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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