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응팔 버거', 1980년대 햄버거 '살아 있다'

[르포] 2016년에 만나는 그때 그 시절... 아메리카나, 달라스 1980년대 햄버거들 현존

등록 2016.01.31 13:59수정 2016.01.31 13:59
4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청주터미널에 위치한 아메리카나 점포 ⓒ 박장식


1979년 롯데리아의 한국 1호점 상륙과 함께 시작된 햄버거 프랜차이즈의 역사는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당시 미국에서 들어온 고급 문화로 받아들여진 햄버거는, 어느새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 산업의 상징이요, 역사 그 자체가 되었다. 특히 서울올림픽을 전후한 1988년에는 맥도날드, 웬디스, 피자인, 타코벨과 같은 다양한 외국식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가 수입되어 많은 이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고, 하나의 고급 외식으로 받아들여졌다.


1988년 패스트푸드 열풍에 대해 <동아일보>는 연간 700억 원의 규모를 가진 햄버거 시장이, 1970년대부터 매년 20%를 웃도는 성장세를 보이며 하나의 신진산업으로 변모했다고 진단했던 바 있다. 가장 저렴한 가격의 외식이자, 간단한 한끼 식사로 많은 시민에게 자리잡은 햄버거의 역사는 많이 쳐줘야 40년 가량에 불과하지만, 맥도날드, 하디스, 파파이스, 웬디스, 프레시니스 버거, 아메리카나, 달라스 등 많은 브랜드가 난립하고 사라지는 등의 '격동의 프랜차이즈사(史)' 그 자체가 되어 있었다.

'응팔'은 햄버거 춘추전국시대... 여러 브랜드 진검승부 벌여

가장 많은 햄버거 프랜차이즈가 대한민국에 옹립했던 시기는 언제일까. 최근 성황리에 방영된 드라마인 <응답하라 1988>의 시간적 배경인 1988년이 그 답이다. 서울올림픽과 함께 서울을 외국인들이 찾기 쉬운 도시로 만들기 위해 외국산 프랜차이즈를 장려하면서 가장 많은 햄버거 체인점이 생겨났다.

1984년 탑골공원에 1호점이 세워진 KFC, 역시 1984년 탑골공원에 첫 매장이 만들어진 버거킹은 번화가에 점포를 개설하며 왕성한 활동을 보였다. 1988년 3월 첫 매장이 만들어진 맥도날드는 첫 매장 개점식날 인산인해를 이루는 등 재미있는 일이 많이 일어났다.

당시 사람들에게 가장 크게 각인된 프랜차이즈를 꼽자면 압구정에 1호점을 개점한 당일 가장 긴 줄이 늘어섰다는 맥도날드, 그리고 프랜차이즈가 없었던 지방 중소도시와 군 지역에서 햄버거를 판매하는 유일한 프랜차이즈였던 달라스 햄버거, 그리고 당시에는 생소했던 미국스러운 이름의 버거인 '양키버거'를 판매했던 아메리카나가 아니었을까.


달라스 매장의 모습. 남아있는 대다수의 점포에서는 분식이나 식사류를 같이 취급하고 있다. ⓒ 박장식


맥도날드야 현재도 젊은 이미지를 고수하는 프랜차이즈로 2015년 기준 전국에 400여 개의 점포를 가지고 있고,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1988'을 거친 많은 이들은 아메리카나와 달라스, 이 두 체인은 완전히 없어진 추억으로 생각한다. 많은 프랜차이즈가 생기고 사라지는 과정에서, 많은 프랜차이즈 매장의 이름이 잊혀진 지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사람들은 "국민학생 시절 어머니가 도시락을 못 싸줬을 때, 햄버거라도 사 먹으라며 주었던 돈으로 달라스에 가서 에그버거를 사먹곤 했다", "가족과 함께 병음료수를 먹으며 창경원에 산책 갔다가 시내의 아메리카나에서 양키버거와 밀크쉐이크를 먹고 집에 돌아오던 그때가 가장 행복했다"라며, 추억을 다시금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격동의 시대를 지나면서도 이 두 체인은 끈질기게 살아남아있다. 옛날 그때의 분위기도 그대로이다. 아메리카나는 시세 확장을 멈췄던 1990년대의 디자인으로, 달라스는 점포확장을 했던 1980년대의 디자인으로 남아있다는 것이 차이긴 하지만 말이다. '1988'을 겪은 모든 이들이 추억하고 기억했던, 그 당시에는 더할나위 없는 고급 음식으로 받아들여졌던 그때 그 햄버거의 이야기를 풀어본다.

'살아있는 햄버거 박물관' 아메리카나 10여 개 점포 운영 중

아메리카나의 메뉴판. 디자인은 오래된 듯하면서도 외관은 오래되지 않은 듯한 메뉴판이 돋보인다. ⓒ 박장식


아메리카나는 당초 미국식 햄버거 가게임을 전방위적으로 어필하던 유일한 가게였다. 충무로에 첫 점포를 개점했을 당시의 시그니처 버거가 '양키 버거'였다. 또, 지금은 익숙하지 않은 조합이지만 밀크쉐이크를 햄버거와 세트메뉴로 판매하는 등 1980년대의 미국식 패스트푸드를 그대로 재현해냈다. 양키 버거라는 이름은 오래가지 못했는데, 1980년대 중후반 이후 반미감정이 확산되면서 양키가 비하명칭으로 변했고, 양키버거는 이윽고 아메리카나 버거라는 이름이 되었다.

서울 안짝인 쌍문동에 살았을 덕선이와 택이, 이들에게 가장 익숙했을 아메리카나는 현재까지도 '대한민국 정통 패스트푸드'라는 슬로건을 달고 영업하고 있다. 이는 1980년대 초반 전두환 전 대통령의 우민화 정책에 힘입어 막 개방돼 쏟아지기 시작한 외국의 이색적인 '신문명'에 대한 갈망을 해소시켜주던 수단이었다. 1988년 4월 압구정에 첫 매장이 들어선 맥도날드는 줄이 너무 길었으니 말이다.

지금도 아메리카나 홈페이지가 관리되고 있음은 물론 2015년 겨울을 맞아 따뜻한 음료를 판매하는 등, 운영하는 업체 측에서도 별도의 홍보는 없지만 퍽 공을 들여 브랜드를 유지하고 있음이 눈에 띈다. 눈길을 끄는 것은 햄버거 박물관이라는 카데고리. 1980년대 당시의 점포 사진을 띄워놓았는데, 시내 여러 곳에 청춘남녀의 상징으로 아메리카나가 있었던 것은 물론 당시 서울에 구경온 지방 아이들이 꼭 들렀다는 63빌딩에도 매장이 있었다는 설명을 하면서 전성기를 추억하고 있었다.

아메리카나의 대표버거인 아메리카나 버거. 이전에는 '양키버거'라는 이름으로 팔렸다고 한다. ⓒ 박장식


충청권을 중심으로 남아있는 아메리카나 점포들은 1990년대의 모양새에서 그대로 멈춘 모습을 하고 있다. IMF 직전에 많이 보던 그 메뉴판 디자인이다. 아메리카나 버거의 모양도, 두껍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얄팍하지는 않은 그때의 그 모양이다.

패티의 색깔도 대세로 자리잡은 고동색의 진한 패티가 아니다. 간이 적게 되어 닭 본연의 맛을 즐길 수 있었던 치킨과 잘 튀겨낸 감자튀김은 한때 맥도날드보다도 맛있었던 음식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치킨과 감자튀김, 그리고 한때 아메리카나 음료의 상징이었던 쉐이크는 지금도 메뉴판에 남아 지나가던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한양쇼핑에, 미도파에 엄마 손 잡고 쇼핑을 따라갔다가, 점심 때에 아메리카나에서 300원 내지 400원짜리 버거를 먹었던 아이들은 이제 커서 어머니의 도움 없이 혼자서도 쇼핑하러 다니고, 원하는 옷을 살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

뒤에 0자가 하나 더 붙은 채(실제로도 스페셜 버거 등의 버거는 청주터미널점에서 3000원에 판매중이다), 그때의 그 메뉴가 그대로 적혀있는 메뉴판을 본다면, 지금은 사라진 스티로폼 박스를 열고 햄버거를 꺼내며 가장 행복했던 기억이 떠오르고 하나만 먹으면 온 세상을 가진 듯했던 어릴적 덕선이로, 정환이로 돌아가지 않을까.

어린 시절 생일파티 하던 그때의 '달라스', 기억하시나요?

달라스 햄버거 장호원점의 모습. ⓒ 박장식


달라스 햄버거는 서울, 부산 등 크게 발달된 도시보다 조그마한 도시나 읍면지역에서 기억하던 브랜드였다. 현재도 남아있다고 알려진 점포가 의성, 봉화, 단양 등 군 단위 지자체에 주소를 두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30년 전에는 경양식당에서 주로 다루었던 음식인 돈가스, 피자파이, 함박스테이크, 핫도그 등의 양식을 달라스에서 처음 접했다는 사람들도 많다.

지금 달라스라는 체인 자체는 역사속으로 사라진 지 오래이다. 가맹점을 모집하지도 않는다. 달라스에 사용되었던 식자재를 생산하던 경북 영천 공장은 개인 햄버거가게, 군대 등의 곳에서 소비되는 패티만을 만드는 패티 공장이 되었다.

지금도 남아있는 달라스의 가맹점들은 이 패티공장에서 패티만을 공급받는다. 나머지는 점주의 마음대로이다. 원래 하던대로 양배추를 썰어 만든 코울슬로 위에 계란과 패티를 올려 에그버거를 만들기도 하고, 시중에 팔리는 동그랗게 모양이 잡힌 돈까스를 튀겨서 내놓기도 한다. 일부 점포는 분식을 내놓기도 한다. 가격도 헐하다. 아무리 비싼 버거라도 3000원을 넘지 않는다. 매점이나 편의점에서 보던 버거보다도 싸다.

가장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달라스 햄버거인 '에그 햄버거'. 17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달라스가 있는 지역을 찾은 여행객들을 소중한 추억으로 안내하는 접점 역할이 되어준다. ⓒ 박장식


쌍문동 동룡이네에 가려진 작은 도시나 군의 1988년, 그때 그대로의 모습을 달라스를 통해 볼 수 있었다. 군 지역 단위는 오지라는 원래의 인식에서 벗어나, 점점 최신 문물이 물류와 교통의 발달을 타고 들어와 도시와 다를 바 없이 변해갔다. 하지만 커다란 프랜차이즈 회사들은 이 작은 읍면을 거들떠보지 않았고, 여기에 특화된 브랜드가 생겨났으니 이것이 바로 달라스이다.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지방의 작은 지역에서도 쉽게 먹을 수 있었던 양식 브랜드임을 어필했던 달라스는 읍면에 많은 점포를 거느렸지만 어느 순간 점포가 점점 사라지더니, 지금은 10여 개도 되지 않는 점포로 남아 세월을 무상하게 만들고 있다. 다만 현재도 남아있는 점포들이 계속해서 달라스 스타일의 햄버거를 만들고 있다. 달라스가 있는 몇몇 지역에서 아버지가 간식으로 자주 먹었던 달라스 햄버거를 이제는 자녀가 즐겨먹는 모습을 접할 수 있는 것은 덤이다.

달라스 햄버거의 메뉴판 지금은 보기 힘든 콘셉트가 눈에 띈다. 세월 앞에 장사 없는지, 가격표는 여러번 바뀐 흔적이 보인다. ⓒ 박장식


달라스 햄버거 대부분 점포에는 1988년의 분위기가 그대로 남아있다. 메뉴판부터 시작해서 매장의 인테리어, 주문을 받으면 프라이팬에 빵과 패티를 일일이 구워 바로 만든 코울슬로를 얹어 내놓는 동안 <캔디 캔디>와 같이, 당시 유행했던 순정 만화책을 읽으면서 기다리는 재미가 있다. <보물섬>이나 <점프> 등 당대 최고의 만화잡지가 남아있는 점포도 있다.

어린 시절, 저 멀리 서울에서 먼 길 찾아오신 손님이 친구들과 과자라도 사먹으라며 쥐어준 돈에, 동네 친구들과 신이 나서 달라스로 달려가던 그때 그 추억은 달라스를 겪어본 사람들이 떠올리는 풍경이다. 에그 햄버거와 함께 포크를 뒤집어 밥을 떠먹으며 돈가스를 먹다보면, 어느새 그때의 가장 아름다웠던 날이 창 밖으로 비치지는 않을까.

복고 열풍, 힘든 지금을 달래는 '씁쓸한 열풍'

지금은 느낄 수 없는 옛 추억은 복고 열풍으로 큰 원동력을 얻었다. '응답하라' 시리즈가 방영된 직후에는 여러 기업이 앞다투어 그때를 배경으로 한 상품을 재생산하고, 그때의 음원이 가장 잘 팔리는 등 많은 '복고 특수'를 낳기도 한다.

하지만 복고 특수의 이면에는 경제불황으로 인한 불안심리를 해소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노력이 들어가 있다. 개개인의 황금기이자, 사회 전체의 전성기였던 그때 그 시절을 추억하며 '그때는 그랬지'라는 행복감을 가져올 수 있는 하나의 아드레날린인 셈이다.

무한도전의 토토가도 그랬고, 롯데의 '가나초코렡' 포장, 그리고 지금 작성하는 이 기사도 어찌 보면 장기불황이 이끌어낸 하나의 '추억팔이'이다. 매년 복고를 소재로 한 콘텐츠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을 보아도 말이다.

상기한 두 햄버거도 그랬다. 간단히 맛을 추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 걱정없이 부모님과 쇼핑을 했던, 청춘시절과 유년시절의 가장 큰 즐거움거리 중 하나였던 그 추억을 되새김질하는 대표적인 소재이다. 갈수록 팍팍해지는 우리의 삶. 그 사이에 햄버거 하나만 있으면 더 바랄 것이 없었던 어린 시절로, 잠깐 돌아가보는 것은 어떨까.
#햄버거 #추억 #달라스 #음식 #아메리카나
댓글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캐나다서 본 한국어 마스크 봉투... "수치스럽다"
  2. 2 황석영 작가 "윤 대통령, 차라리 빨리 하야해야"
  3. 3 300만명이 매달 '월급 20만원'을 도둑맞고 있습니다
  4. 4 '25만원 지원' 효과? 이 나라에서 이미 효과가 검증되었다
  5. 5 샌디에이고에 부는 'K-아줌마' 돌풍, 심상치 않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