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수육 시키면 짜장면 공짜? 맛은 보장 못합니다

[取중眞담] 중국집 세트 메뉴와 모바일 결합상품, '동네방송'의 비애

등록 2015.12.10 08:43수정 2015.12.10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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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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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의 매력 가운데 하나는 중국집마다 서로 다른 맛을 내는 다양성이다. ⓒ 김시연


이 글은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 합병과 모바일 결합상품 논란을 중국집 세트 메뉴에 빗대 쓴 것으로, 특정 중국집과 전혀 관련 없습니다. - 기자 말

우리 동네 '중국집(유료방송)'은 네 곳이다. '올레성(KT)', '스크루(SK텔레콤)', '유플각(LG유플러스)' 세 곳은 중국요리 전국 체인점(IPTV)이고, 면 요리 전문점(케이블TV)인 '헬로제면소(CJ헬로비전)'는 일부 지역에만 있다. 대신 헬로제면소는 형제가 운영하는 '제일마트(CJ 계열사)'에서 좋은 재료(프로그램)를 공급 받아 '짜장면'(방송)만큼은 체인점에 뒤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중국요리 체인점에서 탕수육(이동통신)에 짜장면이나 짬뽕, 볶음밥(초고속인터넷)을 결합한 '탕수육 세트(모바일 결합상품)'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세트 메뉴를 시키면 여러 음식을 한꺼번에 맛볼 수 있고, 하나씩 시킬 때보다 가격이 훨씬 싸서 큰 인기를 끌었다.

탕수육 시키면 짜장면 공짜? 짜장 맛 떨어질라

체인점끼리 탕수육 세트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군만두, 물만두 서비스는 물론 '탕수육 시키면 짜장면 공짜'라며 손님을 끌어들였다. 이 때문에 탕수육 세트를 만들 수 없는 동네 짜장면 전문점들은 울상이었다. 오죽했으면 정부에서 세트 메뉴 경쟁 때문에 짜장 맛이 떨어진다며 '공짜 마케팅'을 규제하고 나섰을까?(관련기사: 통신비 내리고 방송요금 올리고? 미래부 '조삼모사')

탕수육을 안 만들던 헬로제면소도 더는 버틸 재간이 없었다. 별 수 없이 올레성과 스크루에서 탕수육 반제품(알뜰폰 '헬로모바일')을 들여다 '알뜰 탕수육 세트'를 만들어 팔았지만 대세를 뒤집기엔 역부족이었다.

탕수육 전문점(한국이동통신)으로 출발해 면 요리, 밥 요리(하나로텔레콤)로 차츰 영역을 넓힌 스크루가 이번엔 헬로제면소에 눈독을 들였다. 탕수육만큼은 자신 있었지만 면 요리는 짜장면 명가 '스카이면'(KT스카이라이프)을 인수한 올레성에 한참 뒤처졌기 때문이다. 스크루 사장조차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 짜장면(B TV)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스스로 인정했을 정도다.


결국 스크루는 헬로제면소를 인수해 하나로 합치기로 했다. 올레성과 유플각이 바로 반발했다. 체인점들 가운데 면 요리에 가장 강했던 올레성은 스크루가 탕수육 우세를 앞세워 면 요리까지 장악하려고 한다고 성을 냈고, 군소 체인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한 유플각은 면 요리의 다양성이 사라진다고 각을 세웠다.(관련기사: SK CJ "KT 독주 끝났다" 미디어업계 지각 변동)  

우리 집에선 그동안 '헬로 짜장면'과 '스크루 탕수육'을 좋아했다. 하지만 따로 시키면 비싸서 값싼 체인점 탕수육 세트를 주로 시켜 먹었다. 그런데 이제 그 중국집들이 하나로 합치기로 했으니 반가운 일 아닌가?

짜장면의 경쟁력은 다양한 맛, '방송 획일화'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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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료방송 시장은 민간 경쟁 영역이면서도 공공성, 다양성, 지역성 때문에 소유와 겸영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2015년 12월 3일 현재 방송사 소유 겸영 규제 현황. ⓒ 미래창조과학부


여기엔 몇 가지 함정이 있다. 우선 스크루와 헬로제면소를 합친다고 짜장면 맛이 더 좋아진다는 보장이 없다. 스크루는 제일마트와 손잡고 음식 재료를 계속 공급받기로 했다지만, 주인이 바뀌면 음식 맛도 달라지는 법이다. 오히려 체인점들끼리 탕수육 세트 판매 경쟁에 매달려 짜장면 값을 더 내리려고 값싼 재료를 쓰면 짜장 맛이 더 떨어질 수도 있다.

또 스크루 사장은 두 중국집을 합치더라도 종업원 수를 당장 줄이지는 않겠다고 했지만, 굳이 한 동네에 같은 중국집 두 곳을 둘 필요가 없다. 결국 헬로제면소 손님들을 스크루로 옮기게 만들고 체인점 숫자도 줄이려할 텐데, 그 과정에서 기존 종업원들과 헬로제면소 단골손님들이 피해를 볼 수도 있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국민 음식' 짜장면 맛의 생명은 다양성이다. 대기업 체인점이 늘어나고 동네 중국집들이 하나둘 문을 닫는다면 짜장면 맛도 획일화될 수밖에 없다. 하물며 공공성과 다양성, 지역성이 생명인 '방송'은 더 말해 무엇 하랴.

○ 편집ㅣ장지혜 기자

#SK텔레콤 #CJ헬로비전 #IPTV #케이블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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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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