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전체가 개 집이 된 사연, 이렇습니다

전남 고흥 고등학생들의 유기견 구출 작전 그리고 성장

등록 2015.11.11 10:25수정 2015.11.11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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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새가 하나둘 떨어지는 날, 전남 고흥 녹동고등학교에 마스코트가 생겼다. 모든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킨 그는 바로, 강아지다.


조금만 기다려 줘, 구하러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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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고'가 처음 발견되었을 때. '녹고'가 처음 우리들에 의해 발견되었을 때, 이런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 조경선


11월 5일이었다. 그날도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일상이었다. 갑자기 한 학생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 저기... 빨리 좀 와보세요!"

숨이 넘어갈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학생을 따라가 학교 매점 옆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곳에 도착했다. 철조망 한가운데에는 '주의, 고압선'이라는 팻말이 붙어있고 건물과 철조망 사이 아주 좁은 통로에 강아지가 있었다.

그걸 지켜보는 사람 중 몇몇은 119를 불러 빨리 구출해야 한다고 소리를 높였다. 그때, 한 남학생이 용기를 내 철조망에 올라 그 아이를 꺼내왔다. 주변에서 간절히 부탁해 오는데,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위험을 감수한 것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의 관심 속에 '그 아이'는 우리 곁으로 왔다.


인상적인 첫 만남, 학교 전체가 너의 집이다

하얗고 복슬복슬한 털, 똘망똘망한 눈망울로 학생들 모두를 사로잡아버린 그 아이는 사람이 다가와도 도망가지 않았다. 짖지도 않았다. 그저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최근 인근 동네에서 새끼강아지가 누군가에 의해 검은 비닐봉지에 담겨 버려졌다는 소식이 있었는데, 이 아이도 사람 곁에 있다 버려진 아이 중 하나였을까.

시간이 지나자 이 아이는 학교 이곳 저곳을 누비며 사람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기 시작했다. 밤에는 국어 선생님의 배려로 도서관 안에서 안전하게 밤을 보낼 수 있었다. 그 아이에겐 학교 전체가 집이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국어 선생님이 직접 그 아이를 동물병원으로 데려갔다. 자세히 살펴보니 온몸에 진드기가 잔뜩 붙어있고 뒷다리는 날카로운 무언가에 심하게 베어 뼈가 보일 정도로 패여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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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고가 이렇게 다쳤다. 날카로운 무언가에 베인 녹고. ⓒ 한아름


털을 모두 깎고 나서야 진드기 때문에 여기저기가 파여있는 몸이 보였다. 털을 깎고, 사람들과 함께 살기 위해 사상충 검사를 마쳤다. 다리 수술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는데 수술비가 15만 원이었다. 처음 보는 강아지에게 어느 누가 선뜻 15만 원이라는 돈을 내줄 수 있을까. 그래도 살리는 것이 먼저였기에 수술 날짜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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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고를 위한 모금활동 증. 바로 옆에는 각티슈 상자를 들고 모금활동 중이었고 한편에서는 이름 투표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한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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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금함을 열어보니… 학교 사람들이 모금해준 돈을 모두 모아보았다. 생각보다 많은 돈이 모였다. ⓒ 조경선


학생들에게 이 사실이 퍼졌다. 몇몇 학생들을 중심으로 강아지를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이 모아졌다. 비어있는 각티슈 상자는 모금함으로 변했다. 아침 등교 시간, 교문 앞에서 모금활동이 이루어졌다. 또 강아지 이름을 지어주자며 투표가 진행했다.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시작하기 시작했다. 잠깐 모금했는데 여러 선생님과 1, 2학년 학생들의 힘이 모여 거뜬히 수술비가 모였다. 이름도 생겼다. 녹동고를 줄여 '녹고'라고 부르겠다고 한다.

좋은 곳에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건 엄청난 행복이다. 한 생명을 위해 우리가 행복을 주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 녹동고등학교 학생 모두가 그런 역할을 거뜬히 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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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을 모두 마친 녹고. 다리 수술을 다 마친 녹고, 오늘도 사람들 사이에서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다. ⓒ 조경선


그 이후에 녹고는 다리 수술을 잘 마쳤다. 국어 선생님 집에 있으면서 다른 강아지와도 잘 지내는 모습이 보인다. 학교에는 녹고와 관련된 문제를 담당하는 학생들도 생겼다. 물론 이것도 자발적인 행동이었다. 시작은 1살 반짜리 조그만 강아지였는데, 그 끝에는 학교 곳곳의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어느새 녹고는 우리의 일부분이 되어 있었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덧붙이는 글 - 한아름 기자는 전남고흥녹동고등학교 학생입니다.
#전남고흥녹동고등학교 #녹고 #강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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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 살고 있습니다. 사람을 좋아하는 대학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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