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용 사슴, 알고 보니 서울대공원 동물

동물보호단체, 도축용으로 팔리는 현장 급습... 서울대공원 측 "몰랐다"

등록 2015.08.21 15:54수정 2015.08.21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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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공원 동물원의 전시동물들이 녹용 및 고기용으로 밀반출된 사건과 관련하여, 동물보호단체 '케어'와 '동물을 위한 행동'은 도축되는 과정에서 목이 잘린 서울대공원의 새끼 흑염소 사체를 증거물로 입수, 공개하며 지난 20일 서울 시청 앞에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과 퍼포먼스를 가졌다. ⓒ 조세형


경기도에 있는 동물원의 바다코끼리 폭행, 맹수의 공격에 의한 사육사 사망, 불법 포획되어 쇼에 동원됐던 '제돌이'에서 시작된 남방큰돌고래들의 제주도 바다 귀향, 재정난에 따른 열악한 환경으로 고통받는 동물들.

최근 몇 년간 동물원 관련 기사를 관심 있게 봐왔다면, 과거 내가 그랬듯이 동물원을 생존경쟁이나 포식자의 공격으로부터 보호받는 야생동물들의 천국으로 여기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동물원의 문제는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생태와 거리가 먼 환경에 동물을 가두어 본능을 억압하고 자유를 박탈하는 것만이 아니다. 쓸모가 없는 이른바 '잉여동물'을 비인도적인 방식으로 처리하는 동물원이 있다.

지난 19일, 동물보호단체 '케어'와 '동물을 위한 행동'은 서울대공원 동물원의 전시동물 43마리가 녹용 및 고기용으로 경기도 용인시의 도축농장에 밀반출되는 상황을 추격해 현장을 급습했다.

"물사슴 1마리로 50명이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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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공원 동물원의 전시동물들이 도축농장에 밀반출된 사건과 관련하여, 동물보호단체 '케어'와 '동물을 위한 행동'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조세형


이들 단체에 따르면, 도축농장으로 밀반출된 전시동물들은 다마사슴 암컷 6마리, 물사슴 암컷 2마리, 잡종 사슴 암컷 7마리, 에조사슴 수컷 2마리, 꽃사슴 암컷 1마리와 수컷 3마리, 붉은 사슴 암컷 3마리 등 사슴 24마리와 매우 어린 새끼흑염소 19마리 등 총 43마리였다. 이 동물들은 대부분 동물원에서 반출되기 전날까지도 관람객에게 전시되던 동물들이며, 일부는 열악한 번식장에 감금된 채 방치되던 상태였다고 이들 단체는 밝혔다.

단체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 중 새끼 흑염소 1마리는 현장을 급습했을 당시 이미 도축된 상태였다. 손님을 가장한 단체 회원이 사슴을 식용으로 살 수 있는지 도축농장에 묻자, 농장에서는 "서울대공원의 동물도 바로 도축해줄 수 있다"며, "대공원 물사슴 1마리를 50명이 먹을 수 있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동물보호단체 '케어'와 '동물을 위한 행동'은 지난 20일 오후 서울시청 앞에서 서울시와 서울대공원, 국회를 상대로 재발방지대책과 대국민사과 및 동물원법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과 퍼포먼스를 가졌다.

기자회견 후에는 서울시 동물보호과·푸른도시국·서울대공원 관계자와의 면담을 통해 서울대공원 동물원장의 사과문 발표, 서울대공원장 및 서울대공원 동물원장 면담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또한, 42마리의 남은 동물들이 서울대공원 동물원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그동안 서울대공원 동물원은 동물들의 개체 수를 조절한다는 명목으로 잉여 개체들을 입찰을 통해 매각해왔다. 그런데 매각된 동물들이 도축용으로 팔린다는 것을 동물원 내부에서 알면서도 묵인해 왔다는 것이 이들 단체의 주장이다.

동물원 동물복지를 전문으로 다루는 '동물을 위한 행동'은 동물원의 한정된 예산과 시설에서 동물들이 번식할수록 잉여동물이 생길 수밖에 없으므로, 이런 동물들을 인도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꾸준히 문제제기를 해왔다.

이 단체의 전채은 대표는 이번 사건과 관련하여 "동물원에 지나치게 많은 종의 동물들이 전시되고 있는 것이 문제"라는 견해를 밝혔다. 그런 종들이 과잉 번식해 잉여동물이 생겨날 경우 인도적으로 처리하는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다는 것이 이번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것이다.

인도적인 처리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사슴·흑염소 등을 식용으로 다루는 산업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런 동물들이 비인도적으로 희생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동물원에 전시되는 종을 줄여나가는 것을 목적으로 하면서, 불임수술을 통해 잉여동물 발생을 막고, 잉여동물의 처리가 불가피할 경우 인도적으로 안락사하는 기준을 마련함으로써 동물원이라는 공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전채은 대표는 무엇보다 동물원 동물들의 복지를 보장하기 위한 동물원법이 조속히 통과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물원법은 지난 2013년 9월 장하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발의했지만, 지난 6월 법안소위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고 계류 중이다.

서울대공원 "식용으로 팔리는지 파악 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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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보호단체 '케어'와 '동물을 위한 행동'은 목이 잘린 서울대공원의 새끼 흑염소 사체를 공개하며 지난 20일 서울 시청 앞에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과 퍼포먼스를 가졌다. ⓒ 조세형


한편, 지난 20일 시위 현장을 지켜보던 서울대공원 동물원 관계자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동물원에서 매각되는 동물들의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주체가 동물 복지를 준수하는 개인이나 기관에 한정되도록 자격 기준을 정할 것"이라며 "그런 방향으로 서울동물원에서 내부 논의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사슴이나 흑염소 외에 소위 '가축'의 범주에 드는 동물들도 식용으로 팔렸을 가능성이 있지 않으냐는 물음에는 "합법적인 매각 여부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식용으로 팔리는지는 파악이 안 됐다"고 응답했다.

야생동물의 존속에 이바지하는 '보전', 동물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 관람객에게 생태지식과 생명존중 정신을 가르치는 '교육', 관람객이 동물원에서 휴식과 오락을 누릴 수 있게 하는 '위락'은 동물원의 4대 기능으로서 현대 동물원의 존재가치라 불린다. 그리고 이 4가지 기능 외에 최근 '동물 복지'라는 가치가 주목받고 있다.

불과 며칠 전까지 전시용이던 동물들이 소용 가치를 잃는 순간 식용으로 전락하는 동물원의 현실. 동물원이 과연 위에 열거된 존재가치에 부합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지 의심케 한다. 멸종위기종도 아닌 동물들을 불필요할 정도로 번식시키는 것은 종 보전과 거리가 멀다. 그렇게 생겨난 잉여동물들을 식용으로 희생시키는 것은 동물 복지에 역행할 뿐만 아니라, 생명존중 교육과도 거리가 멀다.

우리 사회에서도 동물원 동물들의 복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동물원 관련 기사에 달리는 댓글 가운데 "동물원이 사라져야 한다"는 반응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영리에만 치중하여 동물 복지에 역행하는 현재의 동물원은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따라서 서구 사회를 중심으로 도입되고 있는 것처럼, 장애가 있거나 어미를 잃어버린 어린 동물들을 비롯하여 어쩔 수 없이 인간이 거둬야만 하는 동물들로 이뤄진 생츄어리(sanctuary, 안식처) 형태의 동물원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동물원에 대한 대중의 인식 수준은 높아지고 있는데, 동물원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 서울대공원 동물원은 개인이 영리를 목적으로 운영하는 사설 동물원이 아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공영 동물원으로서 국내 동물원의 표준이 되는 역할을 하는 기관이다. 서울대공원 동물원의 현실이 이러한데, 그보다 열악한 동물원들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을지 우려된다. 또한, 이런 현실에서 국회는 계류 중인 동물원법을 언제까지 내버려둘 것인지 묻고 싶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서울대공원 #사슴 #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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