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부부' 아내가 빗속 지나 주중에 온 이유는...

등록 2015.02.17 10:36수정 2015.02.17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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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초여름, 막 퇴근한 아내의 머리카락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거반 백발이 된 모습에 놀라 아내의 흰머리를 사진에 담았다. ⓒ 이안수


#1


아내는 서울에서 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헤이리로 와서 내가 필요한 것들을 사주고 다시 서울로 돌아갑니다.

주말 부부인 셈이지요.

서울에 직장이 있는 본인의 입장 외에도 서울의 전셋집에서 아내가 생활해야할 이유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활동무대가 서울인 첫딸의 생활을 위해서도, 작년까지는 치매인 친정 엄마를 모시는 이유로, 최근에는 아흔 넘은 시아버지와 시어머님을 모셔야하는 이유로...


또한 시프트의 근무 스케줄에 따라 새벽에 출근해야하는 경우도 적지 않아서 50km가 넘는 출근길을 신새벽에 나서야하는 것이 쉬운 일도 아닙니다.

보통 다음날이 휴일인 경우 내게로 오지만 아내의 근무 스케줄을 알지 못하는 나는 아내가 언제 헤이리로 올 수 있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일전에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오늘 당신께 갈까요?" 

나는 무심코 다음날의 근무 스케줄을 물었고 아내는 새벽 4시쯤에 집을 나서야하는 스케줄이었습니다. 나는 먼 길을 와서 몇 시간 눈을 붙이고 가는 스케줄이라면 올 필요가 없지않겠느냐고 답했습니다.

며칠 뒤에 온 아내는 그 날의 내 말을 몹시 서운해 했습니다. 

그날 아내는 몹시 스트레스로 남는 일이 많았고 위로를 받고 싶은 상황이었음을 말했습니다. 그날 이후 나는 아내에게 전화가 오면 이유를 묻지 않고 오라고 답하곤 합니다.

#2

"오늘 파주 갑니다!"  

카톡에 아내의 문자가 남겨져있었습니다. 

부슬부슬 내리는 밤비를 감수하고 초저녁에 도착한 아내와 저녁식사로 헤이리 근동에서 우리 부부의 습관대로 아내는 순두부를 나는 된장찌개를 나누어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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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저녁식사를 마치고 들어오는 길, 는개가 흩뿌리는 굽은 골목길의 적막한 어둠을 가로등이 밝히고 있다. ⓒ 이안수


내심 내일도 새벽에 헤이리를 떠나야하는 상황에 아내가 온 이유가 있지 싶었지만 결코 먼저 묻지 않았습니다.

집에 돌아와 서재에서 책을 펴고 앉았던 아내가 고개를 들어 회사 동료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며칠전 2년 뒤가 정년인 분과 함께 퇴근했어요. 그분은 일찍 남편을 여의고도 홀로 두 아들을 잘 키워 모두 제 갈 길을 가게했어요. 첫째는 회사 근무중에 다시 전문성을 심화시키기 위해 독일로 유학을 가 있는 상황이고... 은행원이었던 남편은 당직 중에 식당일을 마치고 늦은 퇴근을 하는 아주머니가 먼 길을 걸어가는 것이 안쓰러워 오토바이로 버스정류소로 태워주는 중에 전주와 부딪치는 사고가 났데요. 응급실 입원 일주일 만에 돌아가셨는데 그때가 30년 전 아들이 5살, 7살이었다는군요. 그 분은 지름길인 병원의 장례식장이 보이는 길로는 가지 않으려고 해요. 이유를 물으니 장례식장을 지날 때마다 남편이 생각난다는 거예요. 지난주에는 퇴근길에 그리움이 사무쳐 발길을 멈추고 한참을 울었다는군요. 단 10분만 와서 얼굴을 보여주고 가면 안 되느냐고..."  

그 말을 하던 아내의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그렁그렁해진 눈물을 훔치고 잠시 끊었던 말을 다시 이었습니다. 

"그 분은 사별한 지 30년이 지난 신랑을 단 10분이라도 볼 수 있다면 여한이 없겠다는데 나야 살아있는 남편을 보기위해 50km를 왜 못 달려오겠어요."
덧붙이는 글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아내 #는개 #헤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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