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평가, 조중동만 웃고 대학은 멍 든다

[상아탑 별곡①] 국내 보수 언론사들은 왜 대학을 평가하나?

등록 2014.10.06 12:01수정 2014.10.06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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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수정 : 6일 오후 5시 55분]

언론계에서 20여년 근무하다 지금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학생선발에 관한 업무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잘 알려지지 않은 상아탑의 울고 웃는 의제들을 공유하고 더 나은 혜안을 찾아 함께 고민하고자 합니다. - 기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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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사 대학평가 결과를 한 대학이 내부 구성원들게 알린 공문. ⓒ 박주현


"중앙일보에서 실시한 평가결과를 아래와 같이 알려드리니 관련 부서(기관)에서는 자체적으로 결과를 검토하여 업무 추진에 만전을 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입시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며 대학들이 바빠졌다. 입학부서와 각 학부·학과들은 학생 선발을 위해 눈코 뜰 새가 없다. 그런데 특정 보수 신문사들의 대학평가가 신경을 곤두세우게 한다. 해마다 이맘 때만 되면 실시하는 신문사들의 대학평가에 대학본부까지 가세해 "만전을 기할 것"을 주문한다. 공문서를 총장 명의로 전 단과대학 및 부서에 시달하니, 이중·삼중고를 떠안은 부서는 곡소리가 높다. 

최근 <중앙일보>가 전국 4년제 대학 148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학과평가 결과가 공개됐다. 각 대학의 학과가 순위로 매겨져 언론에 발표되고 공문으로 전 해당 대학과 학과들에 통보됐다.

왜 하필 입시철 앞두고 대학평가 공개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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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대학평가 홈페이지. ⓒ 중앙일보


'최상', '상', '중상'으로 삼등분하여 각 대학의 학과를 해당 등급 칸에 매겨 줄을 세우는 모양새가 거북스럽다. 교육환경, 교수역량, 재정지원, 교육효과 등의 평가영역을 제시하긴 했지만, 과연 평가의 신뢰성과 타당성, 공정성을 담보했는지 그 근거는 찾아보기 힘들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 신문은 10월 중에 각 대학의 평판도 등 종합평가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어서 입시철을 맞아 대학들로서는 신경이 곤두서지 않을 수 없다. 신문이 하위권에 줄을 세우는 대학들은 상대적으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을 것이 뻔하다.
    
가뜩이나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아래 대교협)가 실시하는 셀 수 없을 정도의 수많은 연중 대학평가 때문에 대학의 해당 부서들은 평가 자료를 수시로 만들어 제출하느라 파김치가 되고는 한다. 이러한 현상은 이명박 정부 이후 부쩍 늘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평가결과에 따라 예산을 차등지급하는 것이 점점 고착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특정 언론사가 대학평가를 한다며 수시로 자료를 요청해 올 때, 과연 진정성 있게 모든 정보를 아낌없이, 꾸밈없이 제공할 대학이 몇이나 될까?
 
최근 고려대 총학생회가 중앙일보 대학평가 거부를 선언했다(관련 기사 : "중앙일보 대학 순위평가, 마음도 받지 않겠습니다"). 이 파장이 점차 다른 곳으로 확대되는 모습을 보면, 대학평가와 관련하여 내재한 갈등과 반목이 폭발한 것은 아닐까. 오죽했으면 총학생회가 나서서 언론사의 대학평가에 반기를 들었을까?

고려대 총학생회의 거부선언은 그 명분도 명료하다. "중앙일보의 대학평가가 대학의 본질을 훼손하고, 대학의 질을 정량화해 서열화 시키며, 대학의 다양성을 가지쳐내고, 대학을 기업화하는 등 대학을 함부로 재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학서열화·학벌주의 부추기며 구조조정 수단으로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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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지난 1월 전국 국립대에 내려보낸 공문. ⓒ 교육부

대학평가는 지난 이명박 정부 이후 강력한 상아탑 통제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부정책에 말을 잘 듣는 대학들에는 당근을, 그렇지 않은 대학들엔 채찍을 가하는 '길들이기용'의 '평가'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헌법에 명시된 대학의 자율성을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교육부의 대학평가는 '퇴출'이라는 강력한 대학 구조조정 수단으로까지 활용되고 있다. 정부 재정지원 사업 참여 가능 여부, 예산 지원을 넘어 대학의 존폐 문제가 교육부 평가에 달려있다. 대학들은 평가를 지휘하는 교육부와 실제 평가를 시행하는 대교협 앞에만 서면 왜소해지고 있다.

대학 내부에서조차 이러한 대학평가가 교육의 질 제고보다는 상대평가를 통한 줄 세우기에 목적이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퇴출 대상 대학을 추려내는 데 악용된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상황이 이러니 학생충원율이나 취업률처럼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성과 위주의 평가지표가 강조된다. 대학들은 이 바람에 취업률을 부풀리고 어떻게 하면 평가에서 유리한 점수를 받을지에 골몰하는 양태이다.

대학교육연구소가 지난 9월 25일자로 낸 논평에 따르면, 국내 언론사의 대학평가는 지난 1994년 <중앙일보>가 시작했다. 이후 2009년 <조선일보>가 영국 대학평가기관인 QS(Quacquarelli Symonds)와 공동으로 대학평가에 뛰어들었다. 2013년에는 <동아일보>까지 가세해 국내 3대 보수신문인 조·중·동이 모두 대학평가에 열을 올리는 모양새다. <경향신문>은 지난 2010년부터 대학지속가능지수를 평가해왔으나 2013년부터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중·동' 대학평가, '신뢰·타당·공정성' 논란

보수신문의 대학평가는 지표가 제각각 다르며 평가결과의 공개시점도 다르다. <중앙일보>는 학과평가의 경우 9월, 종합평가는 10월에, <조선일보>는 아시아대학평가의 경우 5월, 세계대학종합평가는 9월에 실시하고 있다. 또 <동아일보>는 8월에 평가결과를 공개한다. "대학들이 연중 내내 평가 준비에 시달리고 있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학생과 학부모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대학 간 선의의 경쟁을 유도해 고등교육의 발전을 추구한다."

많은 언론들은 위와 같은 이유로 자신들의 대학평가를 정당화해왔지만, 특정 언론사에 의한 대학평가는 신뢰성과 타당성, 공정성 등의 측면에서 논란이 돼왔다.

교육부와 대교협이 실시하는 대학평가지표와 비슷하지만, 이들 신문사는 대학 취업률과 정부와 기업체 인사담당자, 교육 및 예술계 인사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까지 한다. 대학교육연구소에 따르면, 일부 신문사는 설문조사 배점이 무려 50%나 될 정도인 것으로 나타나 신뢰성에 의문이 절로 가게 했다.

특히 대학들간 재정 격차가 큰 것으로 알려진 우리나라에선 같은 지표로 계량화 해 대학의 순번을 매기는 '정량평가'에서 제대로 된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재정규모와 정부의 지원 정도에 따라 교수들의 연구비 수주와 연구 성과가 다르고, 전임교수 확보율과 외국 학생 유입 등이 다르기 때문이다.

더욱 문제시되는 부분은 대학 평가를 시행하는 언론사가 직간접적으로 경영에 관여하는 대학들까지 평가에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평가기관과 이해관계가 있는 대학을 회피·배제하지 않는 결과가 공정할 수 있을까.

대학교육연구소는 8월부터 10월에 주로 집중돼 있는 언론사들의 평가결과 발표 시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때는 대학들이 수시모집을 시행하면서 정시모집을 준비하는 중대한 시기다. 이런 점을 노려 신문사들은 평가결과를 집중적으로 공개한다.

학생들 '평가거부' 문제제기, 결실 맺으려면 교수들 나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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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총학생회는 22일 공식 페이스북에 올린 “마음도 받지 않겠습니다, 대학순위평가 거부운동을 시작하며”라는 제목의 포스터에서 “<중앙일보> 대학순위평가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고려대 총학생회 페이스북 포스터) ⓒ 고려대 총학생회


해마다 이때가 되면 대학교육 수요자들은 대학순위에 가장 목말라 한다. 이 점을 노려 신문사들은 대학평가를 빌미로 광고료를 챙기고 대학들은 홍보효과를 노린다. 묘한 공통분모가 함께 작동한다. 그래서 보수 신문의 대학평가 결과 발표 시점을 전후로 대학들의 광고가 봇물을 이루는 경우를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이 시기 대학들이 홍보에 쓰는 예산은 적지 않습니다. 대학교육연구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전국 4년제 사립대학의 홍보비는 2009년(193개 대학) 985억 원, 2010년(198개 대학) 1045억 원, 2011년(197개 대학) 1096억 원, 2012년(195개 대학) 1160억 원, 2013년(194개 대학) 1180억 원에 이른다. 해마다 증가해 2010년부터는 연간 홍보비가 1000억 원을 넘어서고 있다. 

언론들은 이 시기 대학 광고를 가져오기 위해, 압력을 행사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특히 평가결과, 상위권에 포함된 대학은 광고를 거절하기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 상위권 대학들의 이미지 광고가 언론사 평가결과 시점과 맞물려 집중적으로 노출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최근 학생들이 보여준 용기와 문제제기가 소중한 결실을 맺으려면 아직 멀었다. 대학본부 핵심 구성원, 즉 교수들의 참여와 연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교수들은 이에 대해 묵묵부답으로 일관해오고 있다.

대학평가 문제의 핵심은 단순한 지표개선이 아니다. 목적은 타당한지, 그 수단이 되는 지표는 적합한지 따져야 할 문제이다. 교육부가 나서서 대학평가를 개선하고, 대학은 스스로 방향성을 설정하여 학문의 질과 대학 본연의 자율성을 스스로 회복해야 한다. 개선은 요원하기만 할 것이다.
#대학평가 #조중동 #대학 자율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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