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고 답답해서 죽어버릴끼다"

밀양 송전탑건설반대 동화전마을 농성장에서의 1박2일

등록 2014.02.17 14:49수정 2014.02.17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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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산에 세워지고 있는 765kv 송전탑은 마을과 매우 가깝다 ⓒ 오창균


15일, 서울을 출발하여 어스름 저녁노을이 산등성이를 물들일 쯤, 밀양 동화전마을회관에 도착했다. 전날 대보름행사를 한 흔적이 남아있는 회관 앞마당에서는 공사 중인 765kV송전탑이 바로 눈 앞에서 보였다.

"미치고 답답해서 죽어버릴끼다."

농성장에서 하룻밤 묵어갈 일행을 맞이하러 오는 김정회 동화전마을 송전탑반대대책위 위원장을 기다리는 동안 회관 마당을 지나쳐가는 할배의 혼잣말이 들렸다. 송전탑 자재를 실어나르는 헬기의 소음으로 신경이 더욱 예민해진 할배의 얼굴에서 강한 분노와 억울함이 뒤섞인 것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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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루에서 열린 136번째 송전탑반대 촛불집회 ⓒ 허갑열


할매 한 명에 경찰차 한 대씩

토요일마다 영남루에서 열리는 촛불집회에 참석하러 가는 할매들이 회관에 모이고 곧이어 김 위원장이 할매들을 태우러 왔다. 할매들은 우리 일행과 정겹게 인사를 나누며 지난 1, 2차 희망버스 때 이야기를 나누며 136번 째 송전탑 반대 촛불집회 현장으로 갔다.

"보상금은 필요없다. 송전탑을 폐기해라! 폐기해라! 폐기해라!"

영남루 돌계단에서 촛불을 든 참가자들의 구호가 울려퍼지고 문화공연과 각 마을별로 상황보고가 있었다. 할매 한 명에 경찰차가 한 대씩 붙여졌다는 말에 웃음들이 터졌지만, 한편으로는 갈수록 한전과 경찰의 송전탑 반대주민들에 대한 압박이 심해지고 있음을 알수 있다.


이날 집회장에서 가까운 도로에는 불법주차한 승합차 두 대가 있었다. 이계삼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 사무국장은 "경찰의 정보차량"이라고 했다. 합법적인 집회까지 감시하고 따라다니는 경찰이 이제는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상이 된 것 같았다. 이날 집회장의 피켓에는 경찰의 폭력을 규탄하는 글들이 많이 보였다.

이계삼 사무국장의 보고에서는 현재 추진 중인 '빈집 프로젝트'가 있었다. 마을에 연대하러 오는 단체와 개인이 오랫동안 머물면서 지낼 집과 농사지을 땅을 마련하겠다는 것. 대책위는 오는 18일 법원에 한국전력을 상대로 공사중지 가처분신청을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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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뒷산에 들어서고 있는 765kv 송전탑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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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과 비닐로 바람막이를 한 농성장 내부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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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폭력이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 오창균


촛불집회를 마치고 마을 뒷산에 세워진 송전탑 아래 농성장에 도착했다. 근거리에서는 번쩍거리는 경광등 불빛과 경찰들의 말소리가 가끔씩 들려왔다. 천막과 비닐로 가려진 농성장 안에는 두 명의 주민이 지키고 있었다. 전기장판이 있는 자리를 빼고는 시린 찬공기에 몸이 저절로 움츠러들었지만 여럿이 둘러앉으니 사람의 온기로 인해서 추위는 금세 잊을수 있었다.

주민 김은숙씨는 이날 아침에 주민사유지의 농성장 길로 차를 몰고간 한전직원의 사과를 요구하다가 경찰에게 둘러싸여 밀쳐진 상황을 찍은 휴대폰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흔들리는 화면 속에는 경찰의 조롱섞인 말들이 들렸다. 주민들은 경찰과 충돌없이 지내는 것을 바라고 있지만 수시로 경찰병력이 바뀌고 책임자가 교체될 때 마다 겪어야 하는 스트레스는 또 다른 폭력이 되고 있었다.

이날도 새로 온 경찰 담당자의 한전 측을 비호하는 일방적인 대처에 주민들은 분노하고 있었다. 또한 경찰은 주민들을 자극하는 언행으로 도발을 부추기는가 하면, 드러나지 않는 교묘한 신체폭력이 자행되고 있다고 했다. 주민들은 경찰이 주민들을 둘러싸고 밀쳐내는 과정에서 몸싸움을 일부러 유도한다며, 그것에 말려들지 않도록 화를 억누르면서 오는 심리적인 분노가 매우 크다고 했다. 주민들에게 수시로 들이대는 채증카메라도 마찬가지다.

농성장에서 만난 주민 손아무개씨는 경찰에게 "저녁에 송전탑에 목 매달러 갈거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사람이 너무 억울하고 분할 때는 방법을 찾다가 안 되면 왜 자살로 항의를 하는지 알 것 같다"면서 자신도 그런 충동이 수시로 생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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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 뒷산으로 오르는 입구 전체를 24시간 막고있는 경찰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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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산으로 오르는 길을 경찰이 막고 있다 ⓒ 오창균


억울하고 분한 주민들, 연대해주는 시민의 힘 필요

환한 보름달과 선명한 북두칠성 별빛이 농성장 천막을 밝혀주는 자정 무렵에 밖으로 나간 주민과 경찰이 실랑이를 벌이는 소리가 들렸다. 함께 있던 주민들과 일행이 따라나갔다. 그 사이에 경찰병력은 30여 명으로 증원되어 주민과 일행을 막아서고 한 사람에 서너 명의 경찰이 밀착하여 채증카메라의 플래시를 비추면서 따라다녔다.

길 걷는 것을 왜 막아서냐고 물어도 아무말 없이 바라만 보고 있는 의경들에게 딱히 할 말은 없었다. 이제 갓 스무 살을 넘긴 어린 의경들은 다른 지역에서 새로 임무를 맡아서 왔다고 한다. 이들에게 주민들은 항의가 아닌 마을과 송전탑에 대한 상황 등을 이야기해주고 저녁에 산길을 다닐 때의 주의할 점 등을 말해주기도 했다.

조용한 밤하늘을 가르는 무전기 소리가 농성장 주변 뒷산으로 어지럽게 흩어졌다 모이기를 반복하다가 별다른 충돌없이 마무리되었다. 숨바꼭질 같은 상황에 마음이 매우 착잡했다.

새벽이 걷히고 여명이 밝아오는 이른 아침, 길을 나서는 김정회 위원장을 만났다. 다른 지역으로 일을 나가는 길이라고 한다. 주민들은 생계를 위한 일들을 하면서 반대싸움도 같이하고 있어서 무척 힘들지만, 연대하러 오는 전국의 시민들이 큰 힘이 된다며 지속적으로 밀양을 찾아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아울러 언론의 취재도 계속되어서 마을의 진실된 상황들이 알려지기를 바라고 있었다.
#밀양 #밀양송전탑 #동화전마을 #영남루 #밀양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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