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명 넘긴 나이, 난 여전히 꿈을 꾼다

[공모-내 나이가 어때서] '수상한 그녀'가 아니면 어때?

등록 2014.02.12 15:16수정 2014.02.12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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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내 나이를 떠올리면 깜짝깜짝 놀란다. 20대 청년의 시절, '나이 서른에 우린'이라는 노래를 부르면서도 서른이 먼 날의 일처럼만 느껴졌었는데, 불혹의 나이를 넘어 지천명까지도 넘겨버린 나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러다가 또 먼 날처럼 느껴지는 이순이나 고희도 곧 맞이하고 화들짝 놀랄 것만 같다.

 

세월은 속이지 못한다는 말에는 토를 달지 못할 만큼 육체는 솔직하다. 피부는 탄력을 잃어가고 있으며, 뱃살은 처지고, 흰머리도 늘어만 가고, 입만 살아서 생각만 많아진다. 이게 오십을 넘긴 중년의 모습인가 회의감이 들기도 하지만, 나는 나이 들어감에 대해 서운하게 생각한 적은 없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나이를 산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

 

나이듦, 그 슬픔은 외부로부터 온다

 

그럼에도 슬픈 것은 나 자신에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다. 나이에 따라 '중년'으로 분류가 되고, 이런저런 설문조사에서는 '50~60대'라는 한통속으로 몰아붙이며 정치적 성향을 낙인찍고, 베이비붐 세대를 논하면서 마치 모든 50대의 평균적인 삶의 모습이 곧 나의 모습이어야 한다고 내모는 현실이 슬픈 것이다.

 

나 스스로 나이가 들었다고는 생각했지만, 늙었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이 사회가 주입한 '늙었다'는 말 속에 들어있는 이미지는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늙음이나 나이 듦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사회풍토는 육체가 느끼는 쇠퇴의 느낌보다 더 아프게 다가온다. 그래, 나는 중년이고, 가끔은 노년층이라고 분류되는 53세라는 나이를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내 나이가 어때서?

 

꿈은 젊음만의 특권이 아니다

 

나는 여전히 꿈을 꾸고 있다. 꿈을 꾸고 있으며 꿈을 향해 가고 있다. 어떤 꿈은 뒤처져 있고, 어떤 꿈은 이루기도 했고, 어떤 꿈은 남들보다 빠르게 이루기도 했지만, 나는 여전히 꿈을 꾸고 있다. 그러면 된 것 아닌가?

 

아, 이렇게 써놓고 보니 중년을 넘어서 노년의 냄새가 풀풀 풍긴다. 꿈 없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꿈이 있으니 나는 청춘이다'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중년 혹은 노년의 삶을 부정하는 일이 아닌가?

 

얼마 전 <수상한 그녀>를 봤다. 영화를 보면서 잠시 나도 20대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내 접었다. 단지 영화 같은 이야기라서가 아니라, 20대를 다시 살라고 한다면 제대로 살 자신이 없기 때문이었다.

 

과거에 대한 아쉬움은 있지만, 그 아쉬움을 달랠 수 있다면 분명 또 다른 아쉬움이 남아있을 것이다. 그냥, 지금이 좋다. 모든 것이 불안하고 확실하게 보장된 내일은 없지만, 내가 처음 살아보는 날인데 좋지 않을 이유가 없다. '수상한 그녀'가 아니면 어때?

 

나도 한때는 베스트드레서였다

 

나는 패션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편이지만, 사실 상당히 민감한 편이다. 중학교 시절부터 스스로 교복을 빨아 다려입고 다녔고, 유행에 따라 재봉틀로 나팔바지 쫄바지를 만들어 입었고, 남들이 나와 같은 것을 입는 꼴을 보지 못했다.

 

구두나 검정운동화만 강요되던 고등학교 시절에도 하얀색 무늬가 들어간 운동화나 요즘도 유행하는 컨버스화를 신고 다녔다. 하복을 입을 때는 매일매일 빨아서 다려입고 다녔고, 동대문시장 의류상가도 종종 들러서 옷을 사입곤 했다.

 

'내 옷은 내가 사 입는다(결정한다)'는 것은 지금도 상당 부분 지켜지고 있다. 갓 사회인이 되어 직장생활을 할 때에 '베스트드레서'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는데, 메이커가 패션시장을 휩쓸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심드렁해졌다. 메이커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었다. 그리고 80년대 대학 시절의 경험도 영향이 있어 겉모습보다는 속내를 가꾸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 민망하지 않을 정도로만 옷을 입는다.

 

이 사회가 규정한 나의 나이와 직업에 크게 벗어나지 않을 정도의 패션감각만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옷을 입은 것이 20년 이상 되었고, 한 번 옷을 사면 십 년 이상 헤어질 때까지 입는 탓에 유행이랄 것도 없다.

 

그런데 간혹 내 나이를 넘어서는 패션을 소화하고 싶을 때가 있다. 철없어 보이지 않을 정도의 패션을 위한 액세서리 같은 것이 그것이다. 그 중 하나가 수공예품으로 만든 팔찌종류였는데, 차마 살 용기는 없어서 대학에 다니는 딸에게 "아빠에게 어울릴만한 팔찌 하나만 사다 줘" 했더니 대뜸 돌아오는 말이 "아빤, 주책이야!"였다.

 

아내에겐 반지도 압수당하고, 겨우겨우 싸구려 손목시계 하나 차고 있는데, 이젠 내 나이에는 꾸미는 것도 주책이 되어버린 것인가. 하긴 이젠 나도 소화할 자신이 없다. 그래도 한 번쯤은 청년 시절의 패션감각으로 무장하고 거리를 활보하고 싶다. 그러면 '수상한 남자'가 아니라 '주책바가지 영감'이 되겠지.

 

이젠 겉을 꾸미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정말?

 

이젠 겉을 꾸미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럴 여력도 없지만, 분명한 것은 살아온 세월보다 살날이 짧으므로 내가 이루고 싶은 꿈을 위해 매진하기에도 벅차기 때문이다. 그래도 가끔 나이에 비해서 파격적인 패션감각을 유지하고 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하는 분들을 보면 부럽다. 물론, 주책처럼 보이지 않는 한에서이지만 남의 시선에 주눅이 들지 않는 당당함이 부러운 것이다.

 

나는 지금 이 나이에도 여전히 꿈을 꾼다는 사실이 좋다. 그중 하나는 문단에 정식으로 등단한 작가가 되고 싶은 것이며, 다른 하나는 사진작가로서의 입지를 세우는 일이다. 너무 늦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내 나이만이 소화해낼 수 있는 장점들도 있으니 늦은 것도 아니다.

 

얼마 전에는 국문학을 전공하고 있는 딸에게 "누가 먼저 문단에 등단하는지 시합하자"는 제의를 했다. 딸아이가 기특하다는 듯 도전을 받아들인다. 그러자 잠시 젊어진 듯한 생각도 들고, 사춘기 소년이 꿈을 꾸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꿈이란, 젊은이들의 전유물이 아닌데 왜 이 나이가 어때서 꿈을 꾸지 않는가?

 

당신은 그 나이가 되면 더할지도 모른다

 

젊다는 것은 단지 육체적인 나이로 주어지는 게 아니다. 물론,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늙었다는 증거다. 그럼에도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꿈을 꾼다는 것은 그가 아직도 젊다는 증거라고. 그리고 나이가 들어 꾸는 꿈은 허황한 꿈이 아니라 아주 구체적인 꿈이고, 이뤄질 가능성이 크기에 현실적인 꿈이라고.

 

그래서 나이 듦은 축복이며, 점점 소박한 현실적인 꿈을 꾸는 나이기에 '수상한 그녀'처럼 젊어지지 않아도 충분히 '수상한 그녀'처럼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니 아름다운 나이라고. 그래서 그 어떤 나이라도 '어때서?'라고 강단 있게 살아가면 되는 것이 아닐까?

 

그 나이가 되기 전에는 그 나이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고 말하지 말자. 당신은 더할지도 모를 일이다.

덧붙이는 글 | '내 나이가 어때서' 응모글 입니다. 

2014.02.12 15:16 ⓒ 2014 OhmyNews
덧붙이는 글 '내 나이가 어때서' 응모글 입니다. 
#노년 #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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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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