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 오후, 한담으로 즐긴 한나절 여행

프랑스와 벨기에 그리고 호주

등록 2013.08.17 12:30수정 2013.08.17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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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모티프원을 방문한 니꼴라 일행과의 한담 ⓒ 이안수


길 위에서 친구가 된 사람들

지난 7월 29일, 제니퍼소프트에서의 전시 '어떤 사물이 눈에 익지 아니하다' 展이 끝나는 때에, 프랑스에서 온 일군의 작가들이 모티프원을 방문했습니다. 서재에서 우리는 흉금을 털어놓는 한담을 즐겼습니다. 그 때 친구가 된 니꼴라(Blum Nicolas)에게서 메시지가 왔습니다. 


"다음 주 헤이리에 다시 갈 예정인데 선생님과 수다를 즐길 짬이 허락될까요."

그제(8월 14일) 오후 니꼴라가 모티프원으로 들어왔습니다. 

"두 호주친구와 벨기에 친구와 함께 왔어요. 그들과 함께해도 될까요."

그들을 집 밖에 세워두고 함께 방문해도 좋을 지를 물었습니다.

바깥은 몇 일째의 폭염이 이어졌습니다. 집으로 들어온 그들의 얼굴은 빨갛게 익어있었습니다.


"차와 커피 그리고 물이 있습니다. 무엇을 먹고 싶습니까?"

서재에 앉히고 의향을 물었습니다.

"물이요."

그들은 이미 땀을 흘린 뒤라 갈증이 심한듯했습니다. 큰 페트병 물과 컵을 꺼내놓자 모두가 두어 컵씩 들이켰습니다.

"지난번 니꼴라와 함께할 때 우리는 지리산의 봄 산야초 100가지 새순으로 만든 백초차를 마셨지요. 하지만 제일 완벽한 것은 물입니다. 아무리 좋은 차와 커피라고 하더라도 물과 같을 수는 없습니다. 물은 하늘이 만든 것이지요. 마시는 것들 중에서 가장 완전한 것은 물입니다. 인간이 만든 어떤 음료도 마시지 않는다고 죽지는 않지만 물을 마시지 못하면 죽습니다. 중국의 사상가 노자는 세상에서 가장 선한 것은 물이라고 했습니다."

막 갈증을 푼 그들은 물에 대한 장황한 제 설명을 특별한 느낌으로 주목했습니다.

가장 좋은 여행계획은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는 것 

2달쯤 예정으로 한국에 온 니꼴라는 그동안 머물렀던 지인의 집을 떠나 홍대인근의 '크로스로드 백팩커스'라는 게스트하우스로 옮겨서 지내고 있다고 했습니다.

함께한 친구들은 그곳에서 만난 친구와 그 친구의 친구들이었습니다. 지내는 곳도 모두 달랐지만 누군가가 방문할 좋은 곳을 제안하면 이렇게 함께 방문하기도합니다.

금방 친구가 되고, 가진 정보와 소스를 서로 나누는 이들을 보자 제가 세계의 뒷골목을 떠돌던 backpacker시절이 생각났습니다. 가진 것이 많지 않은 객지의 배낭여행객들은 이렇게 서로 섞여서 가진 정보와 경험을 나누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모티프원의 방문은 니꼴라가 주도했습니다. 호주 시드니에서 온 제럴드(Gerard Vasta)는 한때 축구선수였고 여전히 축구에 관심이 많습니다. 각국을 다니며 경기를 보고 그 경기를 즐기는 관중들의 양태를 관찰하는 것을 즐기고 있습니다. 경기의 스타일과 그것을 즐기는 사람들의 양상만으로도 각 나라의 문화적 차이와 성격들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물론 한국에서도 경기를 보았습니다. 

호주 멜버른에서 온 윌(Will Neal)은 직장을 다니다가 여행에 나섰습니다. 호주에서 가장 예술적인 도시라고 할 수 있는 멜버른의 분위기를 전해주었습니다. 시드니에서도 예술가가 되고 싶어 하는 많은 사람들이 멜버른으로 이주한다고….

두 호주 젊은이들은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지만 부산․경주․안동을 여행하는 동안 경주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지금도 계속 서로를 알아가는 사이입니다.

벨기에서 온 톰(Tom Dobbels)은 대만,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왔습니다. 1년 남짓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데 여동생이 출산할 예정이라서 그때쯤 벨기에로 돌아갈 예정이었습니다.

- 여동생이 출산하는데 왜 오빠가 돌아가야 되나요?
"여동생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어요. 남자친구와는 결혼을 생각중인데 그래도 중요한 일에 가족이 함께 있어야하니까요." 

낙천적인 성격의 톰은 여행스타일도 그랬습니다.

"한국은 완전히 제게 또 다른 우주입니다. 제게 지금까지 경험한 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곳이에요."

동양을 처음 여행하는 그에게 서울은 신세계 같은 것이었나 봅니다. 그는 매일의 일과를 계획하고 여행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오늘 어찌 알겠어요. 저는 그날그날 제게 일어나는 일들을 즐깁니다. 다음에 한국의 어디를 가야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이 없습니다."

저도 톰의 생각에 동의했습니다.

"맞아요. 이렇게 혼자 하는 여행의 경우, 가장 좋은 여행계획은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음 도시를 방문할 계획을 철저하게 준비해두었는데 오늘 미녀와 사랑에 빠지는 일이 발생한다면 어쩌겠어요?"

니꼴라에게는 그동안 남한을 경험한 생각들을 물었습니다.

"남한을 경험할수록 'chaotic(혼돈된)'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연한 체계가 있기는 한가 싶은…. 10년 뒤에는 한국이 어떤 모습일지가 궁금해요."

이번 전시에서 북한의 기묘한(weird) 상황을 웹에서 수집한 북한의 사진을 새롭게 배열하고 가공하는 방식으로 북한의 현실을 표현했던 그에게 남한은 또 다른 모습의 북한처럼 '기묘한'곳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흔히 외국교포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을 '재미없는 천국', 한국을 "재미있는 지옥'이라고 표현하곤 합니다. 니꼴라도 이미 이것을 간파한 듯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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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대한 대외적 이미지를 표현한 니꼴라의 작품 ⓒ 니꼴라


여행자에게 기록은 수행

저는 녹색사과를 냈습니다. 그리고 씻은 사과를 껍질을 깎지 않은 채 뚝뚝 잘랐습니다. 사과를 모두 자르는데 불과 몇 초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나는 저렇게 사과를 깎는 법을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어."

윌이 혼잣말처럼 말했습니다. 

"이것은 무농약 사과입니다. 껍질을 벗길 필요가 없습니다. 사과를 비롯해 많은 과일들이 과육보다 껍질에 더 많은 식이섬유와 영양소가 들어있습니다. 그러므로 모양이 반듯한 과일보다 가능하면 껍질째 먹을 수 있는 농산품을 구하세요. 그리고 음식을 장식하는데 시간을 허비하기보다 본질에 집중하는 것, 그것이 제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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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와 프랑스 그리고 벨리에서 온 여행자들 ⓒ 이안수


저는 일행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니꼴라가 사는 낭트(Nantes)를 가로지르는 루아르(Loire)강 유역에는 르네상스시대에 지어진 왕가나 귀족들의 멋진 성들이 많아요. 그리고 루아르강 일대는 유명한 포도산지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인생의 제일 주제는 즐겁게 사는 것입니다. 톰이 돈 많은 한국 여자를 사귀어요. 그리고 니꼴라가 루아르강가의 멋진 고성을 빌리는 겁니다. 우리 모두는 그 성에서 밤마다 포도주 파티를 즐기면서 인생을 향유하는 거지요."

모두가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톰이 난색을 표명했습니다. 

"전 돈 많은 한국 여자를 사귈 자신이 없어요." 

여행을 기록하고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제럴드는 그날의 인상적인 내용의 주제들만 메모하고 여행을 끝내고 그것들을 기반으로 글을 쓴다고 했습니다. 윌은 빼곡하게 기록한 자신의 여행노트를 보여주었습니다. 가능하면 그날그날 완성도 있는 글을 마무리 짓는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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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기록하고 있는 윌의 노트 ⓒ 이안수


특히 여행을 좋아하고 장기여행을 즐기는 톰은 독창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저는 2010년 제 친구 David와 함께 남미를 여행하기로 했지요. 그리고 '두 벨기에인(two belgians)'이라는 블로그를 개설했어요. 각자 자신의 여행기를 그곳에 함께 포스팅했습니다. 함께 출발했고 처음에는 같은 루트를 갔지만 나중에는 각자 자신이 원하는 루트를 따로 여행하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지역을 여행할 때는 한 대상의 다른 시각을 볼 수 있었고, 다른 지역을 여행할 때는 내가 여행하지 않은 곳의 새로운 정보도 함께 알 수 있었지요. 지금은 그 프로젝트가 끝나서 계속 업데이트가 되고 있진 않지만요."

니꼴라는 매일매일의 느낌을 작품의 소재로 모으고 있습니다.

"여행이 기록되지 않으면 관광으로 끝나기 쉽습니다. 수도승들은 면벽좌선(面壁坐禪)을 통해 수행을 합니다. 하지만 여행자들은 자신의 하루를 기록하는 과정이 수행이 됩니다. 그 과정 즉 기록을 위한 숙려(熟慮)의 과정을 통해 새로운 지각과 단순한 경험들에 가치가 부여됩니다. 그때그때 경중에 관계없이 작은 결론을 내리는 글쓰기를 권합니다. 여행자에게 기록은 수행입니다. 톰도 포스팅을 계속하면 좋겠습니다. 비록 남미나 아시아의 여행이 아니라도 매일의 일상이 여행입니다. 그러니 '두 벨기에인'의 포스팅은 중단 없이 계속될 수 있습니다."

어렵게 방문한 그들이 서울로 돌아가기 전에 헤이리에서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가 완전히 기울기 전에 여름날 오후의 한담을 끝냈습니다. 바깥은 해가 많이 기울었지만 아직 땡볕이었습니다.

"길을 걷기에는 더운 날씨네요."

저의 작별 인사말을 톰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비가 오지 않으니 얼마나 다행이에요."

톰의 그 자세가 좋았습니다.

"맞아요. 인생의 모든 순간들을 긍정하고 즐기세요. 그리고 내게 다가오는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것들을 사랑하세요. 세상은 즐기는 자와 사랑하는 자의 것입니다. 그것이 이 세상의 주인이 되는 법이지요."
덧붙이는 글 모티프원의 블로그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윌 #제럴드 #니꼴라 #톰 #모티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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