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평가, 취업률 지표는 완전히 폐기해야 한다

[창비주간논평] MB 정부 정책과 다를 게 없는 박근혜 정부, 과오 바로잡아야

등록 2013.08.07 16:38수정 2013.08.07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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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취지로 추진된 구조조정 혹은 구조개혁은 1990년대 김영삼 정부에서 시작돼 국민의 정부·참여정부로 이어진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5·31교육개혁조치로 대학의 '경쟁력'을 의제로 제시한 김영삼 정부에 이어 국민의 정부는 BK21 같은 대규모 재정지원을 통해 학부정원 감축·학과 통폐합 등을 유도했고, 참여정부는 더욱 본격적으로 대학구조 개혁에 나서 유사학과 통폐합과 특성화 등을 추진했다.

그러나 현재 대학이 처한 총체적인 위기는 지난 이명박 정부의 무절제한 신자유주의적 정책이 초래한 재앙이다. 학령인구의 급격한 감소가 예상되던 시점에서 지난 정부가 대학구조개혁을 중요한 정책목표로 삼은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지난 정부의 대학정책은 두 가지 최악의 방향으로 밀어붙여 대학교육에 심각한 혼란과 왜곡을 초래했다. 하나는 부실사학 퇴출 시나리오에 따라 모든 대학을 성과지표를 매개로 한 상호경쟁의 도가니에 몰아넣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과거 비리와 전횡으로 대학을 황폐화시킨 끝에 퇴출된 족벌 학교법인들을 정상화의 이름으로 대학에 복귀시킨 것이다. 대학의 질적인 발전에 기여해야 할 구조개혁 과정은 이 두 가지 정책적 과오 때문에 악몽이 됐고, 교육 현장을 거의 망가뜨려 놓았다.

정상적 대학개혁 아닌 마구잡이식 퇴출정책의 결과

수년 전부터 진행돼 오다 지난해 후반기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수십 개 대학에서 학과 통폐합 문제가 한꺼번에 돌출한 것은 대학교육의 질을 높이려는 정상적인 구조조정의 결과가 아니라 이명박 정부의 마구잡이식 퇴출정책 탓이다. 전체 대학에 성과지표에 따른 순위를 매겨서 하위 15%를 재정지원 제한 대학으로 지정하는데 이것이 퇴출을 위한 첫 단계가 된다. 이미 43개 대학이 재정지원 제한 대학이 됐고, 연속 지정되는 경우 경영컨설팅을 거쳐 결국 퇴출대상으로 지목되기 때문에, 대학들이 성과지표를 높이기에 사력을 다해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대학의 체제를 개편하고 교육의 질을 제고하는 방향이 아니라 상호경쟁을 통해서 희생자가 가려지는 생존게임의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 자체가 큰 문제이지만, 그 평가 기준에도 그야말로 대학교육을 왜곡시키는 암적인 지표가 있다. 그것이 바로 취업률이다. 취업률의 반영비율이 20%에 달하고 요건에 미달하면 바로 대상 대학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대학마다 취업률 높이기를 지상의 과제로 삼아 단순히 취업독려 차원을 넘어서 갖가지 편법을 동원할 뿐 아니라, 대학교육의 내용·정책·개혁방향 등 거의 모든 것을 취업률이라는 지상명제에 종속시킨다. 이명박 정부를 거치는 동안 대학은 그 본령이 훼손된 채 취업률을 섬기는 물신(物神)의 장소가 됐다.

그렇다면 과연 박근혜 정부의 정책은 전 정부와 차별성이 있는가. 지난 7월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평가방식의 개선을 언급하면서 인문·예체능 계열에는 취업률 지표를 없애겠다고 했고, 8월 초 열린 대학구조개혁위원회에서 이 방침이 확정됐다. 대학들의 학과 통폐합 과정에서 '돈 안되고 취업 안되는' 학과로 낙인찍힌 철학과·국문과·회화과 등 인문 및 예술학과들이 집중적으로 피해를 입는 상황에서 이 자체는 일정한 개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이것으로 문제가 해결된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을 뿐더러 이같은 미봉책이 오히려 새로운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더 크다.

특정 분야 제외하는 미봉책이 더 큰 문제 키울라

우선 취업이 대학 진학의 유일한 목표가 아닌 분야가 비단 인문학과 예술뿐이겠는가? 순수학문이라고 할 자연과학도 그렇고, 응용학문 영역의 공학 경영학 등도 상대적으로 기술습득과 취업에 더 유관할 뿐이지 그 나름의 학문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반면 인문학과 예술 또한 정신만이 아니라 기술의 차원과도 결합돼 있고, 취업도 공부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다. 따라서 인문학과 예술은 취업과 무관하고 여타의 학과들은 취업이 중요하다는 생각은 지나친 이분법적 발상이다. 이는 최근의 학문경향에서 강조되고 있는 학제간 융합과도 어긋날 뿐더러 대학마다 편제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전공의 성격을 둘러싼 논란이 불가피할 것이다. 이번에 20%에서 15%로 축소하긴 했지만 취업률의 비중이 아직도 결정적인 여건에서 각 대학은 취업률에 목을 맬 수밖에 없고 지표 상승과는 무관한 인문학과 예술에 대한 푸대접은 오히려 더 심해질 것이다.

무엇보다 현 정부는 대학의 공교육 체제를 확립하겠다는 장기적 전망 없이 군대의 선착순처럼 하위 15%를 솎아내려는 전 정부의 대학구조조정 정책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거기서 더 나아가 이번 대학구조개혁위원회의 결정에서 보듯 부실대학으로 지정된 대학에 대해서는 국가장학금지급을 제한하겠다는 방침을 세워서 오히려 대학들을 더 강하게 압박한다. 대학들이 더욱 과도한 지표경쟁으로 내몰릴 것은 불을 보듯 뻔하고 그 관건이 될 취업률 물신도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 예상된다.

학령인구의 감소로 대학의 정원조정과 개편은 불가피한 일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대학교육이 희생돼서는 안되며 퇴출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대학체제를 새롭게 개편함으로써 대학교육의 질을 선진화하는 계기로 삼는 것이 중요하다. 취업률을 대학평가의 기준으로 삼는 곳은 세계 어디에도 없거니와 그것이 대학을 판단하는 주요지표가 되는 한 판단력과 사고력 그리고 창의성을 키우는 대학교육의 본령은 훼손된다.

현 정부는 지난 정부와의 차별성을 내세우는데, 인문 및 예체능계에서 취업률 지표를 배제하겠다는 것도 그 하나다. 그러나 대학이 취업 학원으로 변질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최소한 취업률 지표만큼은 대학평가에서 완전히 제외하는 게 지난 정부의 과오를 바로잡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쓴 윤지관 기자는 덕성여대 영문과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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