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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동안 해온일, 열정으로 더 행복하게 삽니다"

[성공한 사람들 100인의 인터뷰] 한성대학교 박보석 교수

등록 2013.03.26 17:28수정 2013.03.26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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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사람들 100인의 인터뷰'는 '생활 속 성공인'들을 릴레이로 추천받아 그들의 삶과 행복 그리고 성공에 대한 노하우를 들어봅니다. 행복은 숫자나 비교가 아니라 작은 노하우와 실천에서 이뤄진다는 작은 생각에서 시작됐습니다. - 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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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Cyber Chicken캔타우로스는 몸은 말 얼굴은 사람이지만, 이 작품은 얼굴은 닭이고 몸은 싸이버틱한 환영이다. 가상공간에 존대하는건지, 현실에 존재하는 건지, 둘 다에 존재하는 건지, 모호한 세상이 아닌가? [박보석작품.작가주] ⓒ 박보석



한성대학교 멀티미디어학과의 박보석 교수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최근 드라마 '보고싶다'에 박보석 교수의 플랙탈아트가 선보이면서 플랙탈아트라는 것에 대한 관심이 생겼지만, 한국에 들어온 지 2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일반인들은 생소하기만 하다.

진행하는 내내 박보석 교수의 말 속에는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열정이 있었다. 지난 18일에 그를 인터뷰할 수 있었다. 아래는 그와 나눈 일문일답.

- 교수님 프랙탈아트가 뭔지 설명해주시겠어요.
"프랙탈아트는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자기유사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사리 같은 식물의 큰 외형은 삼각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큰 잎을 확대 해봐도 다시 작은 삼각형으로 이루어져 있죠. 그런 것을 자기 유사성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흔히 디지털아트에서 쓰이는 그림을 확대시켜놓으면 픽셀이라는 기본적 단위로 밖에 표현이 안 됩니다. 그런 것은 '자기유사성'이 아니죠.

한국에 프랙탈아트는 하는 작가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제가 1992년도에 프랙탈아트를 미국잡지에서 처음 보고 매료 되었는데, 벌써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프랙탈아트 자체를 모르는 사람도 많이 있으니까요. 서라벌대의 김만태 교수님도 프랙탈아트를 하시는데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교수님과 제가 주로 검색이 됩니다."

- 아까 92년이라고 하셨는데 벌써 20여년을 프랙탈 아트를 하신 거군요. 그런데 교수님의 원래 전공이 프랙탈아트나 미술 쪽 이셨나요.
"그렇지는 않았습니다.(웃음) 원래의 전공은 전산이었습니다. 그런데 저하고는 맞지 않았어요.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으니까요. 그렇게 중퇴를 하고는 군대에 갔다 왔습니다. 92년 당시에 한참 유행하던 것이 맥킨토시 컴퓨터로 그래픽작업을 하는 것이었는데 그때 처음 프랙탈아트라는 것은 잡지에서 보았습니다. 그 잡지는 아직도 가지고 있는데, 그 충격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학원에서 CG강사도 별로 없던 때였는데 프랙탈이라는 것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도 몰랐었으니까요. 불어라서 이렇게 영어식으로 읽어도 되는 건지도 몰랐었으니까요. 요즘에는 그냥 사람들이 프랙탈아트라고 하니까 그러게 아는 거지 그땐 참... 포토샵에 필터중 하나로 이름이 숨어있을 정도로 프랙탈아트는 자료조차 없었습니다. 그것을 찾느라 일본에 홍콩에 가서 겨우 한두 권 구할 수 있을 뿐이었죠.

2000년도에 인터넷이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프랙탈아트라고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6년 정도가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작품들이 검색되기 시작했죠.
전 원래 미술을 전공으로 하지도 않았고, 더군다나 다들 말하는 메이저 미대를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심지어 한국에서는 프랙탈아트에 대한 관심이 미술계보다 수학이나 과학계 쪽에서 더 관심이 있습니다.

프랙탈아트 자체가 원래 수학의 개념에서 나오는 거거든요. 요즘 들어오는 학생들 중에서는 수학시간에 들었다고 하는 친구들이 있을 정도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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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랙탈 갈대-1갈대. 꽃꽂이에 갈대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을 프랙탈을 통하여 만들었다. 프랙탈 이미지를 가지고 한번에 이렇게 만들지 못한다. 위 글 설명과 같이 비슷한 여러장의 프랙탈 이미지를 가지고 포토샵에서 에디팅을 하여 만들어낸 작품이다.[박보석작품.작가주] ⓒ 박보석


- 최근 종영한 드라마 '보고 싶다'에서도 교수님의 프랙탈아트 작품이 협찬되어 화면에서 몇 번 보인 적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우문이긴 하지만 작품을 만드는 데는 대략 어느 정도가 걸리나요.
"짧은 것은 3~4일 걸리는 것도 있는데 대부분은 장기적으로 작품을 만들게 됩니다. 어떤 작품은 1년 이상 걸리는 것들도 있고, 심지어 원래의 의도와 다르게 되어 오랜 기간동안 작업을 하다가 사장되어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언제완성이 되겠다는 계획자체가 무의미한 것이지요. 일반적 회화를 예를 들자면, 정물화를 그릴 때 그 작품의 대상이 되는 정물의 느낌과 유사하게 만들어지면 완성이잖아요. 그런데 프랙탈아트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만드는 사람조차도 언제 완성될지 모를 정도로 우리의 인생과 비슷한 부분이 있어서 더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시쳇말로 노가다의 산물이죠."

- 뜬금없는 질문인데요. 교수님 작품 활동을 하시면서 행복하세요?
"스스로 만든 작품을 보고 감동받아 눈물이 날 때도 있었습니다. 단순히 잘 만들고 못 만들고의 문제가 아니라 예측할 수 없는 디지털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과 결과에 대해서 감동을 받게 되는 거지요. 그러면 나가서 사람들에게 막 자랑하고 싶습니다. "

- 그럼 언제가 가장 힘드셨어요?
"20년이 넘게 프랙탈아트를 하는 동안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칠 때나 사람들의 조언을 들을 때면 힘을 때도 있었죠. 말 그대로 아트니까요.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이 분야 자체를 모르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죠. 다른 분야의 직장생활을 하면서 작품 활동을 할 때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스스로에게는 편견이 조금 있는데 처음부터 미술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란 생각에 가끔은 자신감이 떨어질 때도 있었습니다. 미술전공자가 아닌 전산전공자가 말이죠. 나중에 디자인을 전공하기는 했습니다만... 90년대 직장생활을 하면서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재미있으니까, 즐거우니까 지금까지 하고 있는 거겠죠. 창작에서 오는 행복감도, 그리고 디지털이라는 특징도 제게는 힘든 부분을 잊게 만드는 부분이었었던 것 같습니다."

- 그럼 교수님의 꿈은 뭔지 알려주실 수 있으세요.
"지금도 작품 활동을 계속 해왔지만,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에 매진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드는 것에 제 꿈입니다. 제게는 모토라고 할까 철학이라고 할까 하는 작품 활동에 없어서는 안 될 기조가 하나 있는데요. 가수들의 CD처럼 '디지털 앨범으로 만들어진 작품집'을 계속 내는 것이 꿈입니다. 마치 가수들이 10곡정도의 음악을 담아서 CD를 만들 듯이 제 작품들을 일정 갯수만큼 담아서 1집, 2집 식으로 계속 만들어 내는 것이 제 꿈이죠. 벌써 1집이 나오기는 했습니다. 이걸 시작으로 계속 만들어 내야죠. 그 1집에 벌써 2008년에 나왔거든요."

교수님의 방에는 드라마 '보고 싶다'에 협찬했던 디지털 액자가 벽에 걸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디지털 액자에는 10여 편의 작품이 계속 돌아가고 있었는데 보면 볼수록 신비한 매력을 선사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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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랙탈 늪박보석교수의 프랠락아트 작품 : 늪, 자기들만의 세상, 자기만의 세상으로 빠져드는 자기들만의 생각, 자기만의 공간, 자기와 같은 사람, 자기와 같은 행동... 우리 주위에는 똑같은 사람들만 모인다. 늪에 빠진 우리모습. 나와 다른 생각, 나와 다른 사람은 어디있을까? [박보석작품.작가주] ⓒ 박보석


- 디지털 아트니까 저렇게 디지털 액자로 하니까 예쁘네요. 그런데 저런 작품을 소장하는 데는 비용이 꽤 들겠어요.
"그렇지 않습니다. 제 꿈을 말씀드리면서 CD처럼 확대 생산되는 것을 말씀드렸는데요. 우리가 흔히 집에 있는 TV에 제 작품을 UBS에 담아서 지속적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판매하고 있습니다. 기존 디지털 작품들은 개인이 소장할 시에는 원본을 삭제한다는 계약규정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게 복제를 막고 또 희소성을 높이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것이 틀렸다는 생각은 아니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디지털, 그리고 인터넷 시대에는 공유하고 배포하는 것이 문화예요. 비싸게 작품을 팔게 된다면 희소성은 높아질지 모르겠지만, 공휴하고 함께 본다는 의미에서는 반감이 되는 부분이 있겠죠. 단순히 마케팅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유튜브가 없었다면 싸이의 '강남스타일'도 빠르게 확산되지 않았을 거란 생각을 하시죠? 전 제 프랙탈아트 작품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작품이 중요하긴 하죠. 그리고 그걸로 돈을 벌면 더 좋겠죠. 하지만, 그보다도 제 작품을 사람들이 많이 볼 수 있고, 또 편하게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작품보다 중요한 것은 작가니까요."

- 교수님께서 제자들을 가르치실 때 가장 중요시 여기는 것이 뭔가요.
"제가 학생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은 바로 '자유로움'입니다. 학생들은 이미 수많은 규칙과 규범들을 배우고 들어오거든요. 그런데 그 규칙들 속에 갇혀서 진정한 자유로움을 누리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미술입시가 그렇지 않습니까? 모두 데생을 배우고, 모두 미술의 기본적 규칙들을 배워서 그것을 가지고 얼마만큼 잘 활용하느냐가 관건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부분은 조금 다릅니다. 어떤 면에서 미술은 한부분이 모든 것을 표현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하거든요. 심지어 가끔 농담 삼아서 이렇게 말합니다. "범죄선이 아니면 다 해봐라" 그래서 저도 학생들과 최대한 같은 수평선상에서 같이 해주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학생들은 그 과정에서 조금 부담을 느끼고 힘들어하기도 합니다. 왜냐면 수많은 규칙과 규범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자유 자체를 누리는 것을 어색해 하거든요. 심지어 그 자유로움 속에서 느끼게 되는 책임감에 대해서 더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졸업한 학생들은 그런 자유로움, 창의성들이 나중에 취업을 하고나서 너무 도움이 된다고들 했습니다. 그래서 행복하다는 친구도 있었으니까요.

예전에 호주에서 몇 개월 동안 여행을 하면서 살았던 적이 있었는데, 하루는 너무 심하게 감기에 걸려서 앓고 있었죠. 외국인 친구가 자기 집에 와서 따뜻하고 맛있는 것을 좀 먹으면서 몸조리하라고 했습니다. 그 집에 갔을 때 6살짜리 아이가 제 어깨에 어깨동무를 해주면서 힘내라고 해주더군요.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죠. 감히 어른한테……. 그런데 그때 전 느꼈습니다. 이 집에서는 이 아이를 그냥 아이로 키우지 않고 인간으로 키우고 있구나. 학생을 학생이 아닌 인간으로 대우하고 가르치고 싶은 것이 제 꿈입니다."

- 교수님 그럼 마지막으로 교수님의 인생에 성공키워드를 뭐라고 표현하실 수 있을까요.
"전 '열정'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지금 현실에서 하루하루 충실하면서 열정적으로 사는 거요. 제가 20여년을 프랙탈아트라는 이름의 도구를 가지고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은 하루하루 열정적으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제가 하는 일 뿐만이 아니라 집에서도 그렇습니다. 자랑이 아니라(기자가 느끼기는 자랑으로 들렸음 ^^) 아내가 별로 불만을 갖지 않습니다. 왜냐면 전 집에서도 열정적으로 충실하거든요. 가장으로서 남편으로서 또 아버지로서 말이죠."
덧붙이는 글 기자의 개인 블로그(blog.naver.com/h_interview)에 함께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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