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인수위'는 '4가지'가 없다

[분석] '소통·박근혜·집권당·48% 국민' 사라진 '박근혜 리더십'

등록 2013.01.30 12:03수정 2013.01.30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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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28일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청와대 본관 백악실에서 단독회동을 위해 만났다. ⓒ 청와대


29일 '가는 정부'는 측근 비리 인사 특별사면으로 욕을 먹고, '오는 정부'는 첫 총리 후보자 낙마로 위기에 봉착했다. 가는 정부와 오는 정부 모두 '최고 권력자의 오기'가 원인이라는 점에서 닮았다. 국민 법 감정을 어겨가며 오기 특사를 강행한 이명박 대통령이나, '깜깜이 인사'에 대한 비판에 귀 닫은 채 '나홀로 검증'을 계속 밀어붙인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닮았다는 것이다.

문제는 가는 정부가 아니라 오는 정부다. 미래권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언론 탓만 있을 뿐, 해명은 없다. 김용준 총리 후보자와 인수위는 인사청문회 통과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서가 아니라 박근혜 당선인에게 정치적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큰 결단'을 한 모양새를 취했다. 과연 그럴까?

김용준 후보자에게 제기된 병역·투기 등의 의혹만으로도 이미 '법·원칙·신뢰'로 대표되는 박 당선인의 정치적 자산과 국민적 믿음은 깊은 상처를 입었다. 김 후보 지명의 가장 큰 이유였던 법치주의, 사회적 약자편 등의 가치가 모두 무너진 것이다. '법과 원칙'을 들이대며 이 대통령의 특사 강행을 비판하던 날, 박 당선인의 '법과 원칙'이 사퇴를 한 셈이다. '박근혜 리더십'의 총체적 위기가 '김용준 낙마'로 귀결됐다는 지적이다.

[소통이 없다] 김용준 낙마는 '예고된 참사'

새 정부 출범 전 첫 총리 인선 실패라는 '초대형 악재'의 배경에는 박 당선인의 '불통 보안 인선'이 자리 잡고 있다. 박 당선인은 지난해 8월 새누리당 대선후보 초청 <SBS 시사토론>에 출연, "현 정부의 최대 실책은 인사문제"라며 "현 정부에 대한 불신도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회전문 인사 등 인사문제에서 시작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불행히도 현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만은 소통이 안됐다는 것"이라며 '불통 문제'도 거론했다.

그랬던 박 당선인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출범 전후 '철통 보안' 원칙을 내세우며 인선 작업은 물론이고 인수위 활동에까지 '비밀주의' 원칙을 유지했다. 노골적으로 '점령군' 행세를 한 5년 전 인수위를 반면교사로 '낮은 자세'와 '조용한 인수위'를 강조했지만, 정작 국민과의 소통에는 실패했다는 평가다. '점령군' 행세를 하는 인수위원 대신 언론을 피해 도망 다니다가 신발이 벗겨지는 인수위원이 등장한 것이다.

'밀봉 인수위' '깜깜이 인수위'라는 오명도 얻었다. 윤창중 대변인이 인수위원장 인선 내용이 담긴 서류봉투를 기자들 앞에서 뜯어 보이는 '쇼'를 하면서 '밀봉'이라는 주홍글씨가 처음 새겨졌다. 윤 대변인이 인수위 첫 워크숍에 대해 "영양가 없다"고 말한 것은 '깜깜이 인수위'라는 비판을 자초했다.


확정되지 않은 업무보고 내용은 아예 브리핑도 않겠다고 해서 '불통 인수위'라는 원성이 커졌고, 업무보고 브리핑을 다시 하겠다고 했으나 제목만 읽어주는 식이었다. 정부의 업무보고를 언론에 전했던 과거 인수위와 확실한 차별화였지만, 국민과도 멀어지는 수순을 밟은 것이다. 역시 '밀봉 인선'이었던 김용준 후보의 실패가 '예고된 참사'라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박근혜 스타일'을 수정하지 않은 이상, 이런 참사는 얼마든지 반복될 수 있다.

['박근혜'가 없다] 연예인도 아닌데... 국민과의 공감은 누가?

또 다른 '불통'은 박 당선인의 '신비주의 전략'과 연결돼 있다. 대선 이후 박 당선인은 '자택'에만 머물며 외부 활동을 많이 하지 않고, 말도 아꼈다. 보안을 너무 강조하다보니, 국민에 의해 선출된 '박근혜'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인수위 운영 및 인사에서 보인 '불통·독선'의 이미지도 박 당선인의 신비주의적 처신에서 기인한다. 연예인도 아닌 대통령 당선인이 대중 앞에 잘 나타나지 않음으로써 몸값을 높이는 이른바 '신비주의 마케팅(?)'을 구사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지적도 있다.

박 당선인이 인수위 구성 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소재 인수위 사무실을 방문한 것은 손가락에 꼽힐 정도다. 통의동 집무실에도 외국 대사 접견 등 공식 일정이 있을 때만 모습을 나타낸다. 대신 인선, 조각, 공약·정책 점검 등 대부분의 업무를 자택에서 극소수의 측근들과 함께 처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일각에선 삼청동 금융연수원이 아니라 박 당선인의 삼성동 자택이 실질적인 인수위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최근 박 당선인에 대한 여론 지지율은 60% 수준에 머물러 있다. 80%선이었던 이전 대통령 당선인들의 경우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수치이다.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과 정치쇄신특위 위원을 지낸 이상돈 중앙대 법학과 교수는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TV에서 매일 보는 김용준 인수위원장과 윤창중 대변인으로는 국민 눈높이에서 공감을 얻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정치평론가 유창선 박사 역시 박 당선인의 낮은 지지율에 대해 '불통 논란'을 첫 번째 이유로 꼽으면서 "박 당선인이 국민 앞에 보이지 않으면서 관심을 못 받은 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런 점에서 박 당선인이 지난 26일부터 이례적으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국정과제토론회 녹취록을 공개하고 있는 것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정치권에서는 박 당선인이 낮은 지지율을 염두에 둔 '소통 행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집권당이 없다] '식물정당', '박근혜 거수기'로 전락... "쓴소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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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후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새누리당-인수위 첫 연석회의에서 진영 인수위 부위원장,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김용준 인수위원장 등 참석자들이 회의 시작 전 카메라 기자들을 위해 잠시 서 있다. ⓒ 권우성


또 다른 주목 대상은 새누리당이다. 권력 인수 과정에서 새누리당의 존재감을 거의 느낄 수 없다. 집권당으로서 국민과 박 당선인 간에 소통과 연계 역할을 하지 못했다. 잇따른 인선 논란에 대해 침묵하거나 옹호하기에만 급급했다. 박 당선인 역시 새누리당 지도부와 만나기는 했지만, 정책 내용이나 인선에 대해 '당의 이해를 구하고 협조를 부탁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29일 김용준 후보자가 전격 사퇴한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에 대해서도 새누리당은 최대한 말을 아끼면서 답답함과 안도감을 동시에 표출했다. 당의 한 관계자는 "당은 이미 식물정당화됐다"며 "(당선인) 주변에 쓴소리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비판했다.

새누리당은 인수위가 일방적으로 '통보'한 정부 조직 개편안의 경우 입법 과정에서 '거수기' 노릇을 요구받고 있다. 당초 이한구 원내대표는 29일 오후 관련법을 국회에 발의할 예정이었다. 이를 위해 이날 오전 9시쯤 소속 의원들에게 "정부조직법 개정안 발의에 대한 의견이 있으면 오전 11시까지 답하라"는 취지로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당내에서는 "인수위가 당과 아무런 사전협의도 하지 않은 채 당 지도부를 통해 밀어붙이고 있다"는 불만이 쏟아졌고, 결국 30일 의원총회를 열어서 정부조직 개편안의 취지를 듣기로 했다.

박 당선인의 리더십 스타일을 살펴보면 일면 이해가 된다. 박 당선인은 어떤 결정을 만들어가는 과정보다 만들어진 것을 던져주고 따라오라는 방식의 리더십을 선호한다. 재작년 말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공천심사위원 인선 발표 과정에서 "촉새가 나불거려서"라고 말한 것은 이제 유명한 일화도 아니다. 간혹 주변에서 조언이라도 할라치면 "제가 알아서 할게요"라는 한마디로 정리된다. 새누리당의 한 의원은 "당이 '거수기'보다는 '비판적 지지' 역할을 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48% 국민'이 없다] 4대강·쌍용차 국조에 침묵하는 박근혜

소외감은 집권당뿐 아니라 국민들도 느끼고 있다. 말로는 '100% 국민대통합'을 외치면서도 대선에서 박 당선인에게 반대표를 던졌던 절반 가까운 국민들의 마음을 여전히 얻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수위 산하 국민대통합위원회 수석부위원장에 임명된 김경재 전 민주당 의원은 대선 직후 "(문재인 전 후보를 찍은) 48%도 중요하지만 (박근혜 당선인을 찍은) 51.6%가 더 중요하다"고 말해 논란이 된 바 있다.

실제 박 당선인이 사실상 첫 인사로 지명한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해 '48% 껴안기'와 '대탕평 인사'에 반하는 인사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 후보자의 출신(대구)과 그동안의 보수성향 판결을 근거로 야권은 물론 여권 일부에서조차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이상돈 교수는 "국민의 3분의 2가 반대하고 있는 4대강 사업의 문제점에 대해 박 당선인이 명확히 밝혀야 한다"며 "4대강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하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

4대강 사업에 대해 이명박 정부는 감사원의 감사결과를 검증하겠다고 반박하고 나선 반면, 박 당선인은 "의혹이 있으면 밝히고 고칠 것이 있으면 고치고, 보완할 것이 있으면 보완해 나가야 한다"(윤창중 인수위 대변인)는 입장이다. 그러나 인수위 경제2분과는 당장 4대강 사업에 대한 현장 방문 등의 조사활동을 벌이지 않기로 했다. 일단 손을 대지 않고 방임하겠다는 것이다. 대선 기간 약속한 쌍용차 국정조사에 대해 새누리당이 입장을 180도 바꾼 것에 대해서도 박 당선인은 침묵하고 있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박 당선인을 지지하지 않은 48%의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이명박 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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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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