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가 죽인 조용수, 그를 되살린 아바나

[역사와 함께하는 쿠바 자전거기행 20] 아바나를 떠나며

등록 2012.12.10 10:42수정 2012.12.10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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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로 해외여행을 하면 귀국할 때 다시 자전거를 포장할 종이상자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와 달리 외국에서 그것을 구하기는 쉽지 않다. 더구나 자원이 너무도 부족한 쿠바에서 상자를 다시 구하는 것은 시간도 많이 들고 더불어 그만큼 또 비용을 지불할 것은 뻔했다. 그래서 여행이 끝나고 아바나에 들어오는 날도 처음 묵었던 까사에서 숙박하기로 예약하고 처음 우리가 묵었던 까사 중 한 곳에 부탁해서 산티아고 데 쿠바로 떠나기 전 자전거를 포장했던 종이상자를 모두 맡겼다.

아바나에 도착하고 처음 묵었던 까사로 갔다. 떠날 때는 잘 몰랐었는데 까사는 가까운 올드 아바나(Old Habana)에 있었다. 가보니 우리가 묵기로 했던 방은 이미 다른 사람에게 선약이 되어 있었다. 할 수 없이 전 선생과 나는 근처 카리비안 호텔(Hotel Caribbean)로 갔다. 하룻밤에 50세우세로 3일간 투숙하기로 했다. 고 원장네는 까사에서 하루 더 자고 다음 날 호텔로 오기로 했다.


저녁을 먹기 위해 식당을 찾다가 30대 초반쯤 되는 한국인 관광객 커플을 만났다. 그들은 함께 여행 중이었다. 그들은 스페인어를 잘 했다. 그들에게 아바나 식당에 대한 정보를 얻어 아바나 비헤아에 있는 라 루즈(La Luz)라는 식당을 찾아 갔다. 식당 입구에 몇 명이 이미 기다리고 있었고 자리가 날 때마다 기다리던 사람들이 들어간다. 이렇게 오래 기다리다 문 닫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 속에 우리 차례가 마침내 왔다. 식당에 들어서자 매우 높은 천정이 눈길을 끌었다. 바(Bar) 같은 분위기의 넓지 않은 식당은 매우 운치가 있었다.

아무런 사고 없이 쿠바 자전거 완주를 성공하는 축하파티를 열었다. 식당에서는 럼주를 병 채로 팔지 않는다고 해 그곳에서는 간단히 저녁만 먹었다. 고 원장네 까사에서 술을 포함한 축하 파티를 하기로 했다. 우리는 아바나 클럽 7년산 1리터와 시간이 늦어 어렵게 구한 안주로 까사에서 밤 1시가 넘도록 대화하고 시간을 보냈다. 밤 늦게 나온 우리는 호텔을 제대로 못 찾아 한참 헤매다가 겨우 찾아 들어갔다. 호텔 문이 닫혀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2012년 새해 첫날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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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늦어 어렵게 구한 안주와 럼주 아바나 클럽 ⓒ 이규봉


암보스 문도스 호텔과 엘 플로리디타 까페

이튿날 쿠바의 정 선생과 김 교수 부부를 다시 만났다. 김 교수 부부는 자전거를 타지 않고 따로 여행을 다녔다. 김 교수의 안내로 아바나 비헤야 거리를 여기저기 다녔다. 우리가 간 사이 그들은 이곳을 많이 다녔나 보다. 올드 아바나라고 하는 아바나 비헤아 거리는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거리 곳곳이 마치 박물관 같았다.

현재의 아바나 비헤아 거리가 훼손되지 않고 원형 그대로 있도록 크게 기여한 인물이 에밀리오 로이구 데 레우치센링그(1889~1964) 박사다. 그는 혁명이 일어나기 전인 1938년에 구시가의 보존과 복원을 제안하고 역사관사무소를 창설했다. 혁명이 일어난 후 구시가의 복원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가 사망한 후에는 에우세비오 레알 박사가 그의 유지를 잇고 있다. 1993년 10월 국가평의회가 아바나 비헤아를 최우선 보전지구로 지정하면서 아바나 비헤아는 오늘날 쿠바 관광의 메카가 됐다.


건물이 대부분 스페인 시절 지어진 것으로 지금도 한창 보수가 진행 중이다. 오비스포 거리를 따라 메르카데레스 거리와 만나는 곳에 있는 암보스 문도스 호텔로 갔다. 호텔 511호에는 예전 헤밍웨이가 사용하던 그대로 아주 조촐하게 방이 꾸며져 있었다. 옥상에 올라가니 벽에는 여러 천사와 악마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를 환영한다는 듯 조각이 새겨져 있다. 식음료를 즐길 수 있는 까페가 있고 멀리 바다까지 보이는 전경이 펼쳐졌다.

헤밍웨이가 단골로 다녔던 까페인 엘 플로리디타(El Floridita)는 술집 겸 레스토랑으로 오비스포 거리와 베란자(Bernaza) 거리가 만나는 모퉁이에 있다. 헤밍웨이가 <만류 속의 섬들(Islands in the Stream)>에서 주인공이 비극적인 차 사고로 두 아들을 잃은 슬픔에 젖어드는 배경으로 이 술집을 소개하여 유명해졌다. 술집 한쪽 구석에는 그가 앉았던 의자를 '성 에르네스토'를 위한 사당으로 마련했다. 관광객은 여기서 헤밍웨이를 회상하며 그가 즐겨 마셨던 더블 다이퀴리(daiquiri)인 파파 도블레(Papa Doble)를 마실 수 있다.

다이퀴리라는 이름은 산티아고 데쿠바 인근에 있는 다이퀴리 광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지금 쿠바 외화획득의 일등공신이 관광하고 광업인데, 광업과 관광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었다. 또한 헤밍웨이의 연인이었던 제인 메이슨이 자신이 직접 새치 두 마리 잡은 것을 축하하는 파티가 열리는 이 술집으로 남편 몰래 나오려고 하다가 창문에서 떨어져 다치기도 했다. 그녀는 헤밍웨이 친구의 부인으로, 헤밍웨이와 바람을 피우다 남편한테 들켰다.

오전에는 그동안 쌓인 피로를 풀고 오후에는 럼주, 커피, 시가 등 갖고 갈 선물을 구입했다. 저녁은 야외식당에서 했다. 그 전날에는 주말이어서 그런지 손님이 많았는데 오늘은 바람이 무척 많이 불고 쌀쌀해서인지 손님이 많지 않았다. 한 노인이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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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에 올라서자마자 우리를 환영한다는 듯 새겨진 부조 ⓒ 이규봉


조각 공원인지 공동묘지인지

쿠바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다. 시내관광버스를 타고 나섰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파도가 무척 셌다. 말레꼰 방파제와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버스 위에 앉아 있는 우리에게까지 물방울이 날아왔다. 말레꼰은 약 8km 정도의 해안방조제를 낀 해안도로이다. 이 방조제는 넘치는 파도를 막기 위해 1901년 미국이 지배하던 시절 세워졌다. 이 방파제를 따라 수많은 젊은이들이 음악을 연주하고 춤을 추고 데이트를 한다.

네크로폴리스 콜론(Necropolis Colon)에 도착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공동묘지이다. 말이 공동묘지이지 돌로 된 조각상이 너무 많아 광활한 조각공원을 연상케 한다. 묘지 가운데 길을 따라 가면 돔 형식의 성당이 나온다. 막 장례식이 끝났는지 관을 메고 일행이 나온다. 묘역에 있는 조각상들은 죽은 사람들이 얼마나 부자였는지 다 보여주는 것 같다.

점심은 정 선생의 추천으로 나씨오날 호텔 앞에 있는 라 로카(La Roca)에서 먹었다. 얼마나 나오는지 음식의 양은 생각해보지도 않고 각자 주문했다. 음식의 질은 매우 훌륭했다. 그러나 양이 너무 많아 시킨 것을 다 먹지 못할 정도였다. 둘이 하나 먹기에 적당한 양이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피자를 먹었다.

한 노인이 거의 고물에 가까운 피아노를 연주한다. 연주는 훌륭하나 소리는 듣기에 불편했다. 피아노가 너무 낡아 분명 조율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 같았다. 나오면서 음식 값을 지불하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다른 손님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쿠바의 만만디를 또 다시 경험한다. 식대를 지불하지 않고 그냥 나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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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 안에 즐비하게 늘어선 조각상들 ⓒ 이규봉


박정희가 죽인 <민족일보> 사장 조용수와 아바나

1962년 1월 쿠바 아바나에서는 전 세계 48개국 신문편집자를 대표하는 국제신문인협회(The International Press Institute)의 국제회의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한국의 <민족일보> 사장 조용수에게 만장일치로 국제기자상을 추서하기로 결정했다. 박정희가 죽인 <민족일보> 사장 조용수를 아바나가 살린 것이다.

조용수는 진보 성향의 <민족일보>를 창간한 언론인이다. 그는 평화통일을 주장하다 공산주의자로 몰려 당시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잡았던 박정희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군사정권은 1961년 12월 21일 오후 4시경 가족에게 알리지도 않고 사형을 집행한 후(당시 31세) 다음 날 가족에게 시신을 인계했다. 일제강점기 시대에도 없던 언론인에 대한 사형집행이었다.

국내 언론에서는 거의 취급되지 못했지만 일본을 비롯한 해외의 양심은 '언론의 자유를 사형으로 탄압하는 행위'라고 거세게 박정희 군사정권을 비난했다. 군사정권은 조용수의 장례식도 제대로 하지 못하게 하여 공식적인 추도식은 그 다음 해 4월 30일 국내가 아닌 일본에서 할 수 있었다.

이 사건은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잡았지만 미국으로부터 사상을 의심받고 있던 박정희가 군사반란의 정체성이 반공이라는 사실을 미국에 보여주기 위해 꾸민 사건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군 장교였던 박정희는 해방 후 남로당에 가입하는 등 공산주의자가 되었던 전력이 있다. 그가 정권을 잡자 의심의 눈초리로 보던 미국을 안심시키려고 진보 성향의 <민족일보>를 탄압하고 사장인 조용수를 용공좌익의 누명을 씌워 사형시킨 것이다.

이 사건은 당시 판사로 재판에 함께 한 이회창이 1997년 2월 정치권에 입문하면서 기자의 질문에 이 사건에 대한 회한을 표시하면서 사형 집행 후 처음으로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5년 후 한나라당 총재였던 이회창이 대통령 후보로 나서기 직전 또 다시 논란이 되었다. 그러나 이회창은 끝내 공개적인 사과는 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그는 당선이 매우 낙관적이었던 두 번의 대통령 선거에서 모두 패했다.

조용수는 2008년 1월 16일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압수된 GPS를 찾아 아래로 위로 다니다

오늘은 쿠바를 떠나야 할 날이다. 전날 예약한 밴이 새벽 4시 30분에 각 숙소를 다니며 우리를 태우고 호세 마르티 공항으로 갔다. 고맙게도 정 선생이 나와주었다. 공항에 도착하자 나의 관심은 온통 압수당한 GPS를 찾는 데 있었다. 왜냐하면 보관증을 분실했기 때문이다. 압수당했다는 우울한 기분에 보관증을 잘 챙기지 않았더니 어디에 떨어뜨렸는지 찾질 못했다.

정 선생과 함께 안내소에 가서 사정을 말하고 문의했더니 일단 통관한 후에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세관원이 드나드는 입구에서 정 선생은 세관원에게 지속적으로 사정을 설명했더니 일단 들어오면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단다. 나는 이 상황을 스페인어로 적어달라고 한 후 정 선생과 헤어지고 일단 검색대를 통과했다. 한 세관원에게 쪽지를 보여주었더니 그는 어디론가 전화하며 잠시 기다리라고 한다. 조금 전 입구에서 만났던 전형적인 뮬라토인 키 큰 여자 세관원이 왔다.

그녀를 따라 갔다. 바로 옆에 있는 문으로 들어서자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입구에서 또 한 번 비행기 표를 보여주고 내려갔다. 내려가는 길은 어두웠다. 아래층에 도착하니 눈에 익은 장소였다. 바로 우리가 도착해서 나왔던 곳이었다. 여기서 또 한 번 비행기 표를 확인한다. 동쪽으로 들어왔는지 서쪽으로 들어왔는지 묻는 그녀에게 대답을 제대로 못해 두 곳을 다 들렀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한참을 가로질러 가니 보관소로 갔다.

그녀는 그곳 담당자하고 한참 얘기하더니 잠시 후 담당자가 내 GPS를 찾아와 보여주며 확인한다. 확인이 되자 그녀는 앞에 있던 계산대에서 세금 용지를 출력받고 자신은 돌아갔다. 그 용지를 들고 다른 사람이 나를 데리고 계산대로 갔다. 계산대에 있는 두 여자 직원이 뭘 계산하고 있는지 우리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자기 일에 열중이다. 그도 별 참견 안 하고 마냥 기다린다.

계산을 마치더니 내 일을 봐준다. 14일 치 보관료 28세우세를 현금으로 지불했다. 영수증을 갖고 다시 보관소로 가서 서로 간에 서명을 하더니 내 GPS를 내준다. 다시 서쪽에서 동쪽으로 나를 데리고 가더니 다시 그 흑인 여자에게 나를 인계한다. 그녀를 따라왔던 길 반대 방향으로 나가니 그때까지 일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GPS를 보더니 모두 자기 일처럼 좋아했고 우리는 개선장군처럼 비행기 탑승구로 갔다. 그녀를 따라가서 찾아오는 데 걸린 시간은 꼭 40분이었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는 목동의 심정으로 아래로 위로 다녔다.

귀국길엔 누구도 자전거 비용을 추가로 지불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스스로 신고하지 않고 탑승 수속을 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전체 여정 17박 18일을 기내에서 2박, 캐나다에서 2박 쿠바에서 13박 했고 오직 자전거 여행에는 8박 9일만 소요됐다.
#조용수 #귀국 #조각공원 #헤밍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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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을 통해 사회를 분석한 <오지랖 넓은 수학의 여행>, 역사가 담긴 자전거기행문 <미안해요! 베트남>, <체게바를 따라 무작정 쿠바횡단>, <장준하 구국장정6천리 따라 자전거기행> 출간. 전 대전환경운동연합 의장, 전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장, 현 배재대 명예교수, 피리와 클라리넷 연주자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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