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굴암의 원형으로 여겨지는 감실석불의 원경과 근경
정만진
석굴암의 원형 '남산 감실석불'현장을 찾아보면, 높이 3m, 폭 4m 가량 되는 바위에 깊이 60cm, 높이 1.7m, 폭 1.2m 정도 되는 굴을 파고 그 안에 1.4m쯤 되는 부처가 모셔져 있다. 석굴암이 아직 없던 당대에는 최고의 '작품'으로 대단한 이름을 떨쳤을 게 분명하다. 게다가 선덕여왕을 모델로 했다면 유명세는 더 더욱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치솟았을 터이다.
할매부처는 오후에 찾아야 한다. 오전 중으로 찾아뵈면 감실의 할매부처는 아직 잠이 덜 깬 듯 얼굴을 반쯤 그림자로 가린 채 고개를 숙이고 있다. 동쪽에서 비치는 아침 햇살이 바위그늘을 만들어 할매부처의 얼굴을 반쯤 어둡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후에 다시 찾아뵈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온통 얼굴을 환하게 밝힌 채 사람을 맞는다. 고개는 여전히 숙이고 있지만, 곱게 늙어 수줍은 듯한 미소는 영락없는 우리나라 전통 '할매'의 친근감을 가득 보여준다.
이 마애불상은 이곳 골짜기에 불곡(佛谷)이라는 이름이 붙도록 만들었다. 후세의 석굴암에 비견되는 '할매 부처'였으니 많은 신라인들이 찾았을 것이고, 시대를 대표하는 불상이었으니 그것이 있는 골짜기를 '부처골'로 불렀을 것이다. 부처골의 한자어 표기가 곧 불곡이다. 부처골을 불곡으로 바꾼 것은 경덕왕 때인 757년일 듯하다. 우리나라의 사람이름, 땅이름, 산이름 등을 중국식으로 대거 바꾼 것이 바로 그때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