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조 원대 재력가의 황당한 핵무장론

[정욱식 칼럼] 안락함에 젖은 정몽준, 핵무장론에 앞서 민생을 봐라

등록 2012.06.04 14:48수정 2012.06.04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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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권도전에 나선 새누리당 정몽준 예비후보. ⓒ 유성호

대권도전에 나선 새누리당 정몽준 예비후보. ⓒ 유성호

정치인들의 무책임한 주장이나 정책결정은 이에 따른 책임을 지지 않거나 피해를 당하지 않을 때 자주 나온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가장 큰 덕목으로 강조되는 것이 바로 정치인의 책임성이고 정치인의 무모함을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이다.


6월 3일 기자회견을 통해 한국의 핵무장론을 들고 나온 새누리당 정몽준 전 대표의 모습을 보면서 책임성 실종의 한국 정치의 폐해를 또 다시 절감하게 된다. 대권 도전을 선언한 정 전 대표는 "북한의 핵무장을 더 이상 말장난 수준으로 취급할 수 없고 두려움 없이 진실의 순간을 마주해야 한다"며 "대통령이 된다면 핵보유 능력을 갖춰서라도 북한 핵을 없애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이 헌법에 '핵보유국'을 명시한 것을 상기시키면서 "지난 20여 년에 걸친 한반도 비핵화 외교는 실패"했고, "(북핵) 핵폐기가 더 이상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의미"이며, "'핵에는 핵'이라는 '공포의 균형'이 없이는 평화를 얻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 바로 "핵무기 보유 능력을 갖춰서라도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당장 자체 핵무기를 갖지 않더라도 적어도 보유능력은 확보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또한 5개 정책과제도 제시했다. 첫째는 독자적인 핵무장론이고, 둘째는 "북한의 핵 보유국 지위 인정은 어떤 경우에도 허용될 수 없고, 이를 위한 국제공조체제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2015년 전시작전권 전환계획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고, 넷째는 "중국과의 전략대화 강화", 그리고 끝으로는 "안보부서들의 유기적 협조 체제를 강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안락함에 젖은 정몽준의 안일한 생각


정몽준 전 대표는 "지금은 비상한 상황"이라며, "지금의 안락한 생활을 잃어버리기 싫어서, 또는 너무 큰 문제라 생각하기 싫어서, 이 비상한 상황을 외면한다면 우리 앞에는 너무나 끔찍한 결과가 기다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많은 희생이 뒤따르더라도 핵무장 능력 확보라는 용단을 내려야 한다는 취지이다.


바로 이 부분에서 정 전 대표의 책임성의 결핍이 여실히 드러난다. 잘 알려진 것처럼 정 전 대표는 2조 원대 재력가로 국회의원 가운데 제일 부자이다. 핵무장 추진으로 한국의 무역이 심대한 타격을 입고 국제사회의 제재에 직면해 경제와 민생이 만신창이가 되더라도 자신은 먹고사는 데 큰 문제가 없을 수준의 재력이다.


한국이 핵무장 능력을 갖추려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조치협정과 핵확산금지조약(NPT)을 '심각하게', 그러나 들키지 않게 위반해야 한다. 이것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그것도 IAEA와 미국의 감시망이 촘촘한 현실에서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몰래 하다가 걸리면 유엔 안보리 회부 및 제재 조치는 피할 수 없다. 북한처럼 IAEA를 쫓아내고 NPT에서 탈퇴하면 될 일일까? 세계 최빈국 가운데 하나인 북한의 오늘이 한국의 미래가 되어도 좋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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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준 의원이 누리집에 올린 기자회견문 ⓒ 정몽준 누리집 갈무리

정몽준 의원이 누리집에 올린 기자회견문 ⓒ 정몽준 누리집 갈무리

정 전 대표가 제시한 5개 정책과제도 모순덩어리이다. 가장 큰 실소를 자아내게 하는 주장은 '공포의 균형'을 통해 북핵을 포기시킬 수 있다는 발상이다. 남한이 핵을 가지면 북한이 '아이구 무서워' 하고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뜻이다. 1만 개 안팎의 핵을 갖고 있는 미국도 핵 위협을 통해 북한을 굴복시키는 데 실패했다. 오히려 북한은 미국의 핵 위협을 핵무장의 빌미로 이용했다.


역사적으로도 '공포의 균형'을 통해 핵 폐기에 성공한 사례는 한 번도 없다. 미국과 소련의 핵협상은 핵 '감축' 협상이었으며, 이마저도 레이건의 '변신'과 고르바초프의 '신사고'에 힘입은 결과였다.

 

그런데 한국이 몇 개의 핵무기, 혹은 핵무장 잠재력을 갖춰 북한을 굴복시킬 수 있다는 발상의 근거가 무엇인지 참으로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이런 식의 주장은 핵무장으로 미국의 핵 위협을 제거해 "조선반도 비핵화"를 달성할 수 있다는 북한의 궤변과 너무나도 닮은꼴이다.

 

'공포의 균형'으로 북핵 폐기?

 

또 한 가지 유아적 발상은 한국이 핵무장을 추진하면서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강화하자는 주장이다. 협력의 기초는 신뢰와 이익으로부터 나온다. 그런데 한국의 핵무장은 국제사회와의 신뢰를 깨는 것이자 국제사회가 가장 경계하는 것 가운데 하나이다. 쉽게 말해 한국이 핵무장에 나서면 국제공조는 고사하고 국제적 고립과 제재를 자초하게 된다는 것이다.

 

정몽준 전 대표는 "미국에 의존하는 핵전략을 넘어 우리도 핵무기 보유 능력을 갖춰야 한다"면서도 한미동맹 강화를 외치고 있다. 미국의 핵우산도 믿을 수 없어 독자적인 핵무장을 추진하면서 어떻게 한미동맹을 강화할 수 있을까?


그는 또한 중국은 "실패한 6자회담의 의장국"이고, "북한 핵 보유는 중국외교의 실패"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도 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과의 전략대화를 강화"를 주문한다. 협상은 의미가 없고 한국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면서 중국과의 전략대화를 무슨 수로 강화할 수 있을까? 중국은 북한의 무모함 못지않게 한-미-일이 대북 협상에 성실하게 나서지 않은 것을 북핵 문제 악화의 원인으로 보고 있다.


결론적으로 정 전 대표의 핵무장론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데에는 성공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대통령 후보로서의 자질과 안목, 그리고 책임성에는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것을 거듭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정욱식의 뚜벅뚜벅(http://blog.ohmynews.com/wooksik/)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쓴 책으로 <핵의 세계사>(아카이브, 2012)가 있습니다.
#정몽준 #핵무장론 #북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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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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