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랑 고양이가 싸우면 개가 이길 것 같죠?"

농촌아낙 '아줌마 K'의 재미있는 이야기들... "무는 해 따라 돌면서 커요"

등록 2011.12.24 11:51수정 2011.12.24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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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에서의 모습. ⓒ 서재호


미당 서정주는 이렇게 말했다지.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었다"고. '미당'식으로 말하자면 귀농 후 나를 키운 건 8할이 '그녀'였다. 좀 양보하자면 8할까지는 아니더라도 3할은 그녀 덕이었다 할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그녀'는 과연 누구인가. 미리 말하거니와 그녀는 아가씨도 새댁도 아닌 연상의 아줌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옆옆 마을에 사는 농촌아낙 '아줌마 K'가 바로 그녀이다. 아줌마 K, 그녀와는 몇 년 전 산판일(벌목)을 함께 한 계기로 알게 되었다. 혼자 사는 여인네여서 그런지 생활력이 강하고 일머리가 좋았다. 호흡이 잘 맞았다. 그 뒤 지역풍물패 활동도 같이했고 지역 현안 일에서도 자주 만나게 되었다. 자주 만나다 보니 차츰 친해졌다.

어느 정도 친분이 쌓이다보니 내게 고추밭도 빌려주었고 소소한 농사 멘토링도 해주었다. 어떨 때는 "겨울 김장했으니 돼지수육에 소주 한 잔 먹으라" 청하기도 해서 여럿이 찾아가 민폐를 끼치기도 했다.

그녀는 오랜 농촌생활로 터득하게 된 생활의 지혜를 많이 알고 있었다. 농사와 관련된 엑기스 정보도 많지만 오랜 세월 농촌에 살면서 알게 된 묵은 얘기거리들이 무궁무진했다. 또한 그녀는 성격이 화통했다. 알고 있는 지식을 나눠주는 데 조금의 인색함도 없었다. 귀농 초기, 나는 그녀를 통해서 많은 이야기를 들으며 농촌생활에 필요한 도움을 받았다. 물론 그녀가 이야기해 주는 모든 정보가 고급정보였던 건 아니었다. 그 중 어떤 말들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내용들도 더러 있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멧돼지를 만나면 사시로 삐딱하게 봐야 돼요"

그녀의 주옥같은 어록들 중 미심쩍은 것들에는 이런 게 있다.


"뱀을 묵을라 하면 말이지요. 꼭 다섯 마리 이상을 한꺼번에 고아 먹어야 좋심니더. 뱀마다 독이 다 다른 기라요. 그 다른 독들이 섞이야 탈도 없고 약이 되는 기라요."

또 이런 정보도 흘려준다.

"산에서 멧돼지를 만나면 안있는교. 도망가면 안 돼요. 도망가면 덤벼요. 딱! 쳐다봐야 돼요. 그란데 쳐다볼 때 마주보면 안 돼요. 사시로 봐야 돼요. 정면으로 말고 삐딱하게 봐야 돼요. 그래야 멧돼지가 헷갈리 가지고 도망가는 기라요."

또 또 이런 고급 정보도 말해준다.

"무시(무) 키아(키워) 봤어요? 무시는 돌면서 크는 놈이라요. 자라면서 해를 따라 도는 놈이 무시라요. 해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돌잖아요. 무시도 똑같아요. 같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돌면서 커는 겁니더."

또, 또, 또. 그녀만의 중요한 경험도 들려준다.

"개하고 고양이하고 싸우면 누가 이기는 줄 알아요? 개가 이길 것 같지요? 아입니더. 고양이가 이깁니더. 개가 고양이를 구석으로 몰고 가지요. 구석에 몰리면 고양이가 우찌 하는줄 아는교. 개 얼굴에 침을 "탁" 뱉어뿐다 아입니꺼. 개가 안 돼요. "

또 또 또 또. 그녀가 내게 가르쳐 준 것들은 그외에도 많다. 그때는 그녀의 말하는 표정이 하도 진지해서 그 이야기들이 모두 다 사실인 줄 알았다. 나보다 나이도 많고 농촌에서 나고 자랐으니 경험에서 우러나고 확인된 것들만 들려 주는 줄 알았다. 살아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서서히 알게 되었다. 몇 년이 지나고 나도 촌에서 제법 '짠밥'이 늘다 보니 이제 정보를 가려서 듣게 되었다. 그녀가 분명히 사실이라고 믿고 내게 일러준 이야기들이 꼭 다 맞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 거다.

그래서 그녀의 이야기 중에 어떤 것은 직접 실험을 통해서 확인해 본 것도 있다. 실험해 본것은 '무가 정말 회전하면서 자라는지'에 관한 거였다. 집 텃밭에 무를 심어놓고 어느 정도 자라 땅위로 무 뿌리가 올라왔을때 시도해 보았다. 허연 무 뿌리 어깨쯤에 검은 매직으로 선을 그어 표시해놓고 매일 쪼그려 앉아 관찰했다.

학창시절에도 해보지 않던 실험정신을 발휘한 거다. 물론 매일 텃밭에 쪼그리고 앉아 궁상스레 무뿌리를 들여다 보는 내모습을 아내는 무척 한심스러워 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역사의 위대한 실험 뒤에는 항상 세인들의 조롱이 따랐음을 알기 때문이다. 실험결과는 사실이 아닌 걸로 드러났다. '무'는 전혀 회전하지 않았다. 

"우이 쉬~ 속았다."

또 하나 사실이 아닌 걸로 드러난 게 있다. '개와 고양이의 싸움'에 관한 불편한 진실이다. 그 이야기는 바로 아래에 이어진다.

"개랑 고양이가 싸우면 누가 이기는 줄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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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 있는 진돗개를 실컷 놀리고 돌아서는 고양이. ⓒ 서재호


우리 가족은 집에 동물을 몇 종류 키우고 있다. 동물 종류를 나열해 보자면 이렇다. 우선 진돗개 두 마리와 고양이 한 마리가 있다. 그리고 닭장에 닭 다섯 마리를 키운다. 또 집안에는 애들이 얻어와서 키우는 고슴도치 한 마리가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벌통 1기에 토종벌 7000마리도 있다. 이렇게 쭉 적어보니 제법 많은 것 같기도 하다.

우리집은 아직 집 울타리가 없는 탓에 진돗개 두 마리는 묶어서 키우고 고양이는 풀어서 키운다. 진돗개 중에서 암놈인 '보들이'는 사냥 본능이 강하다. 숫놈 진돗개는 생고기를 주면 못 먹지만 암컷인 '보들이'는 닭대가리나 생선, 동물의 내장도 잘 먹는다. 입에 피를 질질 묻히면서 생식을 즐긴다.

사냥솜씨도 좋아 개집 주변에서 쥐도 잘 잡아 죽인다. 웬만한 고양이보다 쥐를 잘 잡는 편 일 게다. 쉽게 말해 '한 성질'한다는 얘기고 그 성질 건드리면 좋지 않다는 말이기도 하다. 문제는 고양이다. 대개 그렇겠지만 이런 진돗개 앞에서 고양이는 항상 약을 올린다. 개줄이 묶인 걸 알고 개줄의 길이를 가늠하며 그 사정권 가까이를 맴돈다.

개 먹이를 줄 때엔 더 하다. 개밥그릇 근처에 와서 개밥을 노리듯이 깐족거리다가 물러나곤 한다. 이때는 진돗개 '보들이'가 약이 올라 환장을 한다. 눈은 튀어나올 듯하고 온몸은 고양이를 향해 내달리려 하지만 개줄에 묶여 헛힘만 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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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놀릴 때 진돗개 보들이의 분해하는 모습. ⓒ 서재호


그러던 어느 날. 그러니까 며칠 전이었다. 중학교 다니는 큰 딸을 버스정류장까지 태워주고 돌아왔을 때였다. 개줄을 매어두는 연결고리의 나사가 풀렸던 모양이었다.(얼마나 용을 썼으면…)

우선 내 눈에 들어온 풍경은 암캐 보들이가 개줄을 매달고 질주하는 거였다. 금방 내 앞을 후다닥 달려 이리저리 뛰는데 개 앞에 무언가가 앞서 달리는 게 보였다. 고양이였다. 우리집 고양이 뭉치였다. 쫓기고 있었다.

약이 바짝 오른 개가 개줄을 끊었고, 개줄이 풀리자마자 냅다 달린 거였다. 고양이는 안심하고 있다가 기겁했을 것이다. 사정권 밖이라 안심하고 있다가 봉변을 당한 거였다. 쫓고 쫓기는 추격이 시작되었다. 일방적인 추격이었다. 평소에 맺힌 감정이 있을 터이니 잡히면 요절을 낼 것 같았다. 추격과 도망은 마당과 헛간을 돌아 텃밭쪽으로 이어졌다.

내가 쫓아가며 보들이를 향해서 소리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내 말이 통할 상황이 아닌 듯했다. 둘 다 본능의 목소리에만 충실하고 있었다. '복수와 생존'. 그 두 가지의 본능말이다. 이리저리 쫒기던 고양이는 결국 집 앞 느티나무 위로 올라갔다. 어지간히 급하긴 급했나 보다. 그 다급한 순간에도 나는 카메라가 생각났다. 집안에 소리쳐서 아내에게 카메라를 들고 나오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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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큰일날 뻔 했네. 급한 마음에 나무 위로 도망가긴 했는데... ⓒ 서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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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지, 이젠 어떻게 내려가지? ⓒ 서재호


나무 위로 올라간 고양이는 한숨을 돌리고 나무 아래 보들이는 위쪽을 쳐다보고 짖기 시작했다. 보들이는 '닭 쫓던 개'가 아니라 '고양이 쫓던 개'가 되었다. 급해서 올라간 고양이도 형편이 좋진 못했다. 워낙 급한 마음에 나무 위로 올라갔겠지만 그 뒤에 대한 대책을 가지고 올라간 건 아닌 모양이었다.

이미 내가 개를 다시 묶었지만 고양이는 벌벌 떨기만 할 뿐 내려오질 못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 여러 번 이름을 불렀지만 내려오기 겁 나는 것 같았다. 할 수 없이 집에서 제일 긴 사다리를 가져와 느티나무에 걸치고 나무 위로 올라갔다. 가지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나무가 휘청거려 겨우 고양이를 손에 안을 수 있었다. 나도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이다. 고양이를 안고 내려오는데 다리가 후들거린다. 한 손에는 고양이를 다른 한 손으로는 사다리를 잡고 내려오며 속으로 궁시렁 거렸다. 그 궁시렁 거림은 아줌마 K를 향한 거였다.

"뭐라고요? 고양이가 침을 탁 뱉으면서 개한테 이긴다고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제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개와 고양이 #불편한 진실 #귀농 #느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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