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이 꽃처럼 피어나는 길, 여기있다

[걸으면 행복해요, 강원도 길] 고성 화진포

등록 2011.12.02 17:16수정 2011.12.02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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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별장에서 바라본 소나무와 바닷가 풍경 ⓒ 최삼경

김일성 별장에서 바라본 소나무와 바닷가 풍경 ⓒ 최삼경

화진포..., 꽃으로 어우러진 포구라니, 어떤 모습일까. 몇 년 전 봄에 보았던 풍광을 기억하지 못하는 지금, 게다가 12월의 겨울 속에서 보는 깜냥으로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다. 한겨울의 초입이었지만 날씨는 그다지 험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강원도의 최북단에 있는 석호를 끼고 있어서인지, 바닷물도 유난히 코발트블루의 짙은 옥색으로 그렁이고 있었다.


호수와 어우러진 풍광이 워낙 빼어나서인지 이승만, 김일성, 이기붕의 별장이 마을의 민가처럼 군데군데에 자리 잡은 이곳의 요사이 주인은 단연 청둥오리라고 할 수 있다. 사람도, 추억도 떨어져가는 바닷가 안쪽에는 제철을 맞은 철새들의 군락으로 활기를 띠고 있었다. 그렇게 많은 새들이 떼 지어 나는데 어떻게 부딪치지 않을까. 거울처럼 드리워진 호수의 표면에 새들이 몇 개의 길을 만들었다가 지우고 있고, 그 위로 많은 새들이 공중의 길을 새로이 개설하고 있었다.

 

"황금물결 찰랑대는 정다운 바닷가, 아름다운 화진포에 맺은 사랑아…."

 

바닷가 풍경 ⓒ 최삼경

바닷가 풍경 ⓒ 최삼경

겨울 철새들의 낙원이 된 화진포 ⓒ 최삼경

겨울 철새들의 낙원이 된 화진포 ⓒ 최삼경

1960년대 말 이씨스터즈가 불러서 히트를 쳤던 '화진포에서 맺은 사랑'의 노랫말이다. 아무래도 사랑을 맺기에는 아름다운 풍광이 무대처럼 놓여져야 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곳에 전해오는 전설에 의하면 화진포 호수의 이름은 원래 열산호로 불렸다고도 한다.

 

화진포 건너 마을에 열산이라고 하는 마을이 있고 화진포 물속에는 옛날의 열산현이 있었는데 어느 해 큰 비가 내려서 열산현 마을이 송두리째 물에 떠내려가고 마을이 있던 곳이 차차 물에 잠기기 시작하여 지금의 호수가 되었다는 얘기가 그것인데... 어딘가 허술하고 허전하기까지 하다.

 

꽃이 진들 너를 잊으랴~

 

하기야 허술하고 허전한 풍광이야 영을 넘어 이곳으로 오는 길가에 흔한 것이었다. 얼마 전까지 금강산을 오르내리는 차로 북적거리던 길이었다. 서울이고 부산이고 금강산을 가자면, 꼭 들러야하는 곳이 이곳 속초와 고성이었다.

 

속초 아바이 마을은 북한 쪽에 고향을 둔 실향민의 마을로 유명한 곳이지만, 이곳 고성에도 꽤 많은 사람들이 곳곳에 살고 있다고 한다. 어떻든 금강산관광이 시작되고 본격적으로 지역경기가 살아나던 이곳은 지난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의 총기피살사건 이후 누구는 '폐허'라는 말을 써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침체되기 시작하였다.

 

그러고 보면 길은 언제나 열려 있어야 한다. 테드 코노버라는 미국의 유명 논픽션 작가는 그가 쓴 <로드>라는 책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로와 자동차, 혹은 실현 가능한 대안, 아직 등장하지 않은 무엇인가가 없다면 인류의 모든 진보와 경제활동은 멈춰서고 말 것이다. 우리는 거의 만장일치로 길이 유용하다고 공언한다. 길은 인간 세계의 혈액순환계이다"라고 얘기했다.

 

겨울 철새들의 군무 ⓒ 최삼경

겨울 철새들의 군무 ⓒ 최삼경

저물어가는 화진포 풍경 ⓒ 최삼경

저물어가는 화진포 풍경 ⓒ 최삼경

길의 부작용을 지적하는 많은 내용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혈관 없는 몸이 존재하지 못하는 것처럼 사람들이 살고 있는 한 길은 결국 필연의 것이리라. 따라서 기왕에 놓인 길이고, 또한 오래 전부터 이어왔던 길이 어떤 이유로 기능을 잃는 것은 그 길 주변에 사는 사람들에게 때 아닌 횡액(뜻밖에 닥쳐오는 불행)으로 다가 오기도 하는 것이다. 

 

화진포는 동해안에 분포된 많은 석호 중 남한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바다의 일부가 파도의 퇴적물로 막히면서 형성된 호수로 지리학계에서는 이를 석호라고 부른다. 자연 환경적으로도 생태적으로도 그 가치가 중요한 호수라고 한다. 게다가 화진포는 바다 쪽의 맑은 백사장과 기암괴석, 병풍처럼 둘러진 소나무 숲으로 아늑하게 자리 잡은 호수이다. 어떤 사람들은 멀리서 보면 크로바 잎처럼 생겼다고 하지만 확인이 용이치 않다.

 

어떻든 겨울 바다는 쓸쓸하다. 하기야 꽃이 피었다 진 봄날, 비인 가지도 서러운 법인데 꽃이 지고도 한참이 지난 겨울의 바닷가야 또 일러 무엇하랴. 코발트 블루의 바닷가에서 고개만 돌리면 호수는 깊은 옥색으로 펼쳐져 있다. 바다는 쉬임 없는 파도로 세월을 되새기고 있지만 호수는 가만가만 추억을 곱씹으며 있는 것이라는 건가? 가만히 새들에게 제 몸을 내어주고 있다. 겨울의 화진포에 서면 확연히 명료해지는 것이 있다. 꽃이 진들 너를 잊으랴~

2011.12.02 17:16 ⓒ 2011 OhmyNews
#여행 #길 #화진포 #금강산 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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