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화 혈흔만으로 살인죄 증거 부족...대법 '무죄'

70대 할머니 살해 혐의 30대 무죄...유죄 증거 부족해

등록 2011.10.10 17:45수정 2011.10.10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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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해된 피해자의 혈흔이 피고인의 운동화에 묻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범행 당시 묻은 것으로 단정할 수 없다면, 피고인에게 유죄를 인정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한 마디로 증거부족으로, 설령 유죄의 의심이 간다고 하더라도 판사가 유죄 판결을 내릴 만큼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입증이 이뤄지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K(33)씨는 지난해 2월 경남 함안군에 있는 방앗간 주인 할머니(76)가 생활비를 빌려달라는 부탁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격분해 둔기로 때려 두개골 골절상 등으로 숨지게 해 살인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검찰은 피해자의 혈흔이 묻어 있는 피고인의 운동화를 근거로 범행 당시 피가 튄 것으로 판단했고, 또 평소 피고인이 이웃 주민들에게 돈을 빌리고 잘 갚지 않거나 술을 마시면 폭력성이 있다는 주민들의 진술을 더해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반면 K씨는 "사건 당일 소방차 싸이렌 소리를 듣고 피해자의 집으로 갔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 호기심에 범행 현장인 방앗간 안으로 들어가 쓰러져 있는 피해자의 사체를 덮은 부직포를 들어보다 혈흔이 묻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며 범행을 부인했다.

한편 K씨는 2007년경부터 피해자의 집 근처에 살면서 피해자의 일을 도와주기도 했고, 다른 이웃 아주머니들과 함께 피해자의 집에 가서 밥을 먹기도 하는 등 친분이 있었다.

이 사건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됐고, 1심인 청주지법 제4형사부(재판장 서승렬 부장판사)는 지난해 4월 배심원 9명 전원의 무죄 평결을 존중해 K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먼저 "평소 이웃주민들도 왕래를 했는데, 수사단계에서 피고인의 신발만 압수해 피해자의 피나 유전자가 묻어있는지 조사했을 뿐, 다른 마을사람들의 신발이나 의복에는 피해자의 피가 묻어있는지 여부를 전혀 조사하지 않아 피고인의 운동화에만 피해자의 피가 묻었다는 것에 대하여도 의심이 간다"고 밝혔다.

또 "피해자의 사체는 방앗간에서 발견됐는데, 마을 주민들뿐만 아니라 다른 마을 주민들도 피해자의 방앗간을 이용하고 있었고, 피해자의 집은 국도로 들어서는 입구에 있었기 때문에 외지 사람이 이 마을을 지나가면서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고도 피해자의 집에 쉽게 침입할 수 있어 이 사건 범행이 제3자의 소행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여기에다 피고인이 평소 마을 주민들로부터 돈을 빌리고 잘 갚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피해자를 살해할 만한 동기가 입증됐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결국 검사가 제출한 모든 증거들을 살펴봐도 피고인의 운동화에 묻은 혈흔이 범행 당시에 묻었다고 단정할 수 없는 이상, 공소사실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진실하다는 입증이 이루어졌다고 보기는 어려워 범죄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하고, 배심원들 역시 전원이 무죄의 의견을 권고하므로 무죄를 선고한다"고 판시했다.

이에 검가가 항소했으나, 부산고법 제1형사부(재판장 최인석 부장판사)는 지난 5월 검사의 항소를 기각하고 K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을 유지했다.

사건은 검사의 상고로 대법원으로 올라갔으나, 대법원 제1부(주심 안대희 대법관)는 생활비를 빌려달라는 부탁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이웃에 사는 70대 할머니를 살해한 혐의(살인)로 기소된 K(33)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0일 밝혔다.

재판부는 "형사소송에서는 범죄사실이 있다는 증거는 검사가 제시해야 하고, 피고인의 변소가 불합리해 거짓말 같다고 해도 그것 때문에 피고인을 불리하게 할 수 없으며, 범죄사실의 증명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고도의 개연성을 인정할 수 있는 심증을 갖게 해야 하는 것이고, 이러한 정도의 심증을 형성하는 증거가 없다면 설령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피고인의 운동화에서 피해자 상처에서 튀어 묻은 것으로 보이는 혈흔이 발견됐지만, 검사가 제출한 모든 증거를 살펴봐도, 피고인의 운동화에 묻은 혈흔이 범행 당시 묻었다고 단정할 수 없는 이상,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했다는 공소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증거부족 #혈흔 #무죄 #국민참여재판 #운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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