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악처와 결혼했다

멀고도 험한 가장의 길

등록 2011.04.05 08:24수정 2011.04.05 08:24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제가 아무리 바빠도 퇴근시간을 정확히 아는 이유는 전화벨 소리 때문입니다.


"몇 시에 집에 올 거야?"
"오늘은 일이 있어서 야근 좀 해야 할 것 같은데..."
"술 야근이 아니고?"

집사람과의 대화내용입니다.

이런 미련 곰탱이 같은 인간!

a

00소주병 뚜껑 지난해 소주병 뚜껑 6개를 모아오면 1명에 대해서는 영화가 공짜라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집사람과 영화구경 가려고 죽어라 마셨는데, 뚜껑이 11개입니다. ⓒ 신광태


작년 이맘때였을 겁니다.

"이런 미련 곰탱이 같은 인간!"


아침부터 집사람이 내게 퍼부어댔던 말입니다.
'더듬어 보자... 어제 무슨 일이 있었지!'
동료직원과 술을 마셨던 기억 외에 집에 어떻게 왔는지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술을 마셔야 했던 건 그 당시 ○○소주 병뚜껑 6개를 모아서 ○○영화관에 가져가면 한 명에 대해서는 영화가 공짜라는 빅(?) 뉴스를 트위터를 통해서 들었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그날은 금요일이라 옆자리의 동료가 약속이 있다는 것을 어렵게 꼬드겨서 술을 마시러 갔습니다. 그 친구는 내가 병뚜껑을 모으려는 수작인지 전혀 모르고 자기가 내게 특별한 사람이기에 소주를 마시러 가자고 내가 제안한 것으로 생각했을 겁니다.

그렇게 술을 마신 기억은 있는데 집에 어떻게 왔는지 전혀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주머니를 보니까, 병뚜껑 11개가 있는 겁니다. 둘이서 11병?  이건 내게 치사량입니다. 그런데 1병만 더 마셨으면 2명이 공짜로 영화를 볼 수 있는데, 병뚜껑이 11개는 또 뭡니까!

아침에 그 병뚜껑을 자랑스럽게 내민 내게 집사람은 카드 영수증(무려12만원이 넘었습니다)을 보이며 "이 정도면 영화 20명은 보겠다...이 미련 곰탱이 같은 인간아~" 그러고는 그 소중한 병뚜껑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아이들을 데리고 쇼핑을 가버렸습니다. 칭찬 들을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가장의 길은 참 멀고도 험난합니다.

나도 스마트폰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습관처럼 술만 마시면 머리가 포멧되는 결과는 핸드폰 분실로 이어졌습니다. 별로 좋은 모델도 아니지만 그것을 찾으려고 무진 애를 썼던 건 전화기안에 등록된 수백 명의 사람들 때문이었을 겁니다.

조회해 봤더니춘천 00동에서 최종 수신된 걸로 나옵니다. '신기하기도 해라' 얘가 어떻게 춘천까지 갔는지 모를 일입니다(화천에서 술을 마셨는데 말입니다).

위기는 찬스라고 했습니다. 집사람에게 정중히 부탁을 했습니다.
"스마트폰 하나만 사주지?"

대꾸도 하지 않습니다. 그랬는데, 하루가 지난 다음날 부르기에 드디어 스마트폰 하나 사주시려나 보다 하고 달려갔더니. 어디서 중고폰을 구해다 주는 게 아닙니까!
"또 술 마시면 잃어버릴 건데 좋으면 뭐해!"
참 해도 해도 너무합니다.

a

이게 그 중고폰입니다 ⓒ 신광태


아들 녀석이 시험에서 1등 했다고 터치폰 사달라고 할 때는 군말 없이 사주고, 딸애가 닌텐도 사달라고 해도 아무 말 없이 그냥 사주면서, 왜 난 스마트폰을 안 사주는 걸까!  돈벌어 오는 건  난데. 알 수 없는 의문.

확 집을 나가 버릴까! 그러면 또 아이폰 안 사줘서 집 나갔다고 동네방네 떠들고 돌아다닐 테고. 그러면 또 쪽팔린 건 나고. 역시 가장의 길은 멀고도 험난합니다.

더덕까는 남자

"오늘 자기가 좋아하는 오징어 볶음 안주랑 소주 사다 놓은 거 있는데 빨리 올 거지?"

살다보니 참 별일도 다 있다 싶었습니다. 오붓하게 집에서 집사람과 술한잔 하며 '무슨 이야기를 할까' 하는 행복한 상상을 하면서 집에 모처럼 일찍 들어갔는데, '밥 먹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말합니다. '뭐 별거 아니겠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집사람은 큰 대야에 하나 가득 더덕을 담아 가지고 나오는 겁니다.

"오늘 5일장에 갔는데, 시골에 사시는 할머님이 재배한거라 샀어."

결국 소주 한잔 하자고 빨리 오라는 건 순전히 사기였고, 빨리 와서 더덕 까라고 꼬신 겁니다. 차라리 설거지를 하라면 그래도 좀 낫겠는데, 더덕 까는 건 찐덕한 진 때문에 손톱이 까맣게 되는 건 차치하고라도 아침이면 손톱이 무척 아픕니다.

그것도 그냥 하는 대로 내버려두면 좋으련만 "이쪽에 껍질이 그냥 남았잖아. 무슨 남자가 제대로 하는 게 없냐" 옆에서 온갖 잔소리는 다해댑니다. 차라리 조금 더 비싸더라도 까서 파는 더덕을 사 올 일이지, 이 여편네는 남편 괴롭히는 게 무슨 취미인 것 같습니다.
#나울 #신광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밝고 정직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오마이뉴스...10만인 클럽으로 오십시오~

AD

AD

AD

인기기사

  1. 1 금반지 찾아준 사람이 뽑힐 줄이야, 500분의 1 기적
  2. 2 검찰의 돌변... 특수활동비가 아킬레스건인 이유
  3. 3 '조중동 논리' 읊어대던 민주당 의원들, 왜 반성 안 하나
  4. 4 '윤석열 안방' 무너지나... 박근혜보다 안 좋은 징후
  5. 5 "미국·일본에게 '호구' 된 윤 정부... 3년 진짜 길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