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 앉혀두고 설거지하는 시아버지

시어머니의 수평사고, 아들내외를 위한 휴식 여행

등록 2011.02.07 17:55수정 2011.02.07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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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를 위한 시어른의 봉사여행에 며느리는 고소하고 적당히 촉촉한 쿠키를 구워왔습니다. ⓒ 이안수

며느리를 위한 시어른의 봉사여행에 며느리는 고소하고 적당히 촉촉한 쿠키를 구워왔습니다. ⓒ 이안수

초등학생 남매의 모험

 

우리나라 유통을 선도하는 백화점을 짓고 운영하는 기업의 임원이었던 분이 80년대 중반 초등학교 5학년, 6학년이었던 연년생 남매 자녀와 함께 일본을 여행 중이었습니다.

 

부모님은 남매의 낯선 곳에서의 적응능력을 키우기 위해 도쿄의 가장 큰 백화점인 니혼바시 미쓰코시백화점에 데려다 놓고 얼마간의 돈을 쥐어준 후 각자 원하는 것을 사서 1시간 뒤 백화점 마지막 층 한 레스토랑으로 오도록 했습니다.

 

약속시간이 임박한 때에도 남매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기다리던 부모님이 초조해 할 때 백화점의 안내방송이 흘러나왔습니다.

 

"한국에서 온 남매가 쇼핑이 끝나지 않아 부모님과의 약속장소에 10분쯤 늦게 도착할 예정이니 부모님께서는 걱정하지 마세요."

 

6학년 누나는 원하는 문구용품을 사고 남동생이 원하는 무선조정 장난감을 사기위해 그 매장을 찾느라 시간이 허비되었고, 마침내 찾은 그 매장에서 원하는 물건을 고르는 중에 점원에게 부탁해 안내방송을 하게 했던 것입니다.

 

전자상가 밀집지역인 아키하바라에서도 이 남매는 스스로 쇼핑을 해야 했습니다.

 

원하는 게임기를 사기위해 서툰 언어로 물어서 매장을 뒤져야했고, 한국과 일본의 전압차이때문에 판매를 거부하는 점원을 설득해야했습니다.

 

며느리 휴식위한 시어머니의 기획여행

 

남매 중 아들이 6개월 전에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과 함께 분가했고 모두가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형편이기 때문에 함께하는 시간이 드물었습니다.

 

명절 연휴에 아들내외가 시어른 때문에 오히려 노동인 휴일이 되지 않도록 시어머님이 여행을 기획했습니다.

 

제게 전화를 주신 분은 바로 시어머님이었습니다.

 

"얼마 전에 결혼한 아들내외와 저희 부부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습니다. 가능하면 아들 내외가 편안해할 수 있는……."

 

저는 지금까지 딸이나 아들, 혹은 며느리가 부모님을 위한 여행을 계획하는 경우는 흔하게 접해왔지만 시어머님께서 며느리부부의 휴식을 위한 여행을 기획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설거지하는 시아버지

 

약속당일, 그 궁금했던 가족이 함께 오셨습니다. 몇 시간을 함께 헤이리를 산책하고 갤러리들을 돌았습니다.

 

그리고 저녁시간에 준비해온 음식들로 상을 차렸습니다. 그리고 저도 그 식탁에 초대받았습니다.

 

차려진 모든 음식은 하루전날 시아버지께서 메뉴를 짜고 조리한 것들이었습니다.

시아버지께서 상을 차리고 설거지까지 모두 도맡았습니다.

 

80년대 중반 초등학교 5학년의 아들의 독립심을 위해 니혼바시와 아끼하바라에서 스스로 쇼핑하도록 했던 그 아버지는 오늘 그 아들 내외를 위해 상을 차리고 설거지를 했습니다.

 

저는 기꺼이 그 가족의 만찬에 함께하면서 가족의 화목에 동화되었습니다.

 

마침 다른 약속이 있다던 딸도 함께할 수 있어서 그 식탁에서 온 가족이 함께 즐겁게 과거를 회상할 수 있었습니다.

 

여행과 예술을 포함한 다양한 삶의 가치와 태도에 대해 시아버지의 시중을 받으며 몇 시간의 대화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아들이 말했습니다.

 

"제가 맨해튼에서 공부하는 동안 한국의 친구들이 와서 그곳의 안내를 부탁받으면 한 가지 제안을 하곤 했습니다. 센트럴파크나 소호에서 5시간을 보낼 것인가 아니면 전 맨해튼을 소요할 것인가?  지금까지 아무도 센트럴파크나 소호에서 5시간을 보내겠다는 친구는 없었습니다."

 

저는 아들의 제안이 참 창의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행은 여행자가 이동하는 방식이 있고 그 대상이 이동하는 방식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맨해튼의 상징이며 뉴요커의 삶의 양태가 집적된 곳에서의 몇 시간은 그 도시의 속성을 객관적으로 읽어낼 수 있는 좋은 방편이 됩니다.

 

저는 모티프원에서 '앉아서 여행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정의하곤 합니다. 저는 방문객을 통해 세상을 관찰함으로서 스스로 세상을 여행하는 효과를 얻습니다.

 

다복한 가정의 즐거운 도전

 

시아버님이 커피를 내오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헤이리는 고집 있는 전문가 집단에 의한 참 의미 있는 삶의 실험이 진행되는 곳입니다. 이런 개성 있는 커뮤니티의 건설은 관의 주도로는 불가능합니다. 헤이리의 커뮤니티 건설은 최초로 '나라를 가르친 건설'입니다."

 

트랜디한 유통분야에서 30여년 기업의 별로서 근무하며 세계를 섭렵한 안목으로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아버님의 말씀처럼 현재 헤이리는 많은 지자체들의 벤치마킹을 위한 방문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현재 연구 및 실험성과를 종합하는 저서를 집필 중이신 시어머님은 심리학을 전공한 대학교수로서, 그리고 청소년상담센터장으로서 지금도 사회생활을 계속하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평생 그림 그리는 것을 취미삼아 오셨습니다. 아들의 결혼 선물은 어머님의 세 작품 연작 그림이었습니다. 2년 내에 회갑을 앞둔 분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의 나이에 도쿄에서 서로 의지하며 부모님의 실험을 수행했던 그 남매에게 제의했습니다.

 

"어머님의 회갑을 문화행사로 승화시키는 것은 어때요? 호텔에서의 축하연은 획일적입니다. 갤러리에서 어머님의 개인전으로 그 회갑을 대신하면 좋을 듯싶습니다. 지금부터 준비해도 늦지 않을 시간입니다. 그 전시의 오프닝에 딸이 피아노곡 몇 곡을 선보여 오프닝 음악회로 꾸미고 남편은 부인을 위한 헌시 한편을 준비해서 그 음악회의 말미에 낭송합니다. 초대하객들을 위해 며느리는 그 뛰어난 솜씨로 쿠키를 굽습니다. 아마 어머님께는 무엇보다 격조 있는 방식으로 삶을 회고하는 기회가 될 테고, 방문객들에게는 특급 호텔의 뷔페에 초대받은 것보다 더욱 신선한 문화적 만족감을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다복한 가족들은 저의 숙제를 즐거운 도전으로 받아드렸습니다.

 

저는 무엇보다 며느리내외에게 휴식을 주기위한 여행을 기획하신 시어머님, 그리고 며느리 부부를 위해 밤새 조리하고 그것을 챙겼을, 그리고 오셔서도 며느리를 앉혀두고 설거지를 하시는 시아버님의 수평적인 마인드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습니다.

덧붙이는 글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포스팅됩니다.
#가족 #모티프원 #헤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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