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장두노미', 그리고 꿩 이야기

등록 2011.01.27 14:37수정 2011.01.27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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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시작하면서


혹시 여러분은 눈이 내리지 않는 겨울을 생각해 보신 적이 있는가. 100일 가까운 긴 시간 동안 건조한 상태가 지속되는 마른 겨울. 날마다 영하의 강추위가 몰아닥치고, 차디찬 북풍이 살갗을 에는 시퍼렇게 날선 겨울날의 행진. 그런 겨울날에 눈은 우리를 구원하는 하늘의 전령이다. 눈이 오시는 날 우리는 환희와 추억과 꿈의 세계로 날개를 펼친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에서 중년사내의 외로움을 떠올리고, '설인'을 생각하며 눈 덮인 신비의 땅 히말라야를 연상한다. '설화석고'로 만들어진 멤피스의 스핑크스를 보고 오래 전 멸망한 왕조를 추억한다. 그뿐인가. '형설지공'에 담긴 옛사람의 학문에 대한 열망에서 깨우침을 얻고, '설상가상'에서는 결코 나아지지 않는 절망의 극한을 독서한다. 

<교수신문>에서는 해마다 그해를 함축적으로 나타내는 사자성어를 선정하여 발표한다. 2010년을 대표하는 사자성어로 꼽힌 것은 '장두노미(藏頭露尾)'였다. 머리를 감추면 꼬리가 드러난다는 뜻이다. 한자만 보면 어려워 보이지만, 실상 뜻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누군가 갑자기 무방비 상태의 당신을 때리려고 주먹을 치켜든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아마 당신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두 눈을 질끈 감을 것이다. 당신이 호신술을 배우지 않았거나, 무예의 고수가 아니라면.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본능을 금방 이해할 수 있다. 위험에 노출될 경우 사람은 우선 머리부터 보호하고, 눈을 질끈 감아버린다. 그러면서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똑같은 이치를 다음 이야기에서 즐겁게 확인하시기 바란다.

겨울방학과 눈


지난 세기 후반기에 무작정 상경하신 부모님을 따라 서울에 오고 난 다음 나와 동생은 여름이나 겨울방학을 외갓집에서 보내곤 했다. 문자 그대로 식구를 줄이는 방책이었지만,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해방감을 맛보았음은 불문가지. 그것 말고 또 있다. 대자연과 함께 하는 두 달 가까운 시간은 소년기의 삶을 무척 풍성하고 다채롭게 수놓았더랬다.

외갓집은 호남평야의 한복판, 즉 김제·만경평야에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이 보인다고 해서 해마다 가을이면 '지평선축제'가 열리는 곳이다. 여름방학 때 겪은 흥미로운 일은 나중에 전하기로 하고, 눈과 꿩에 얽힌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대구에는 눈이 귀하지만, 호남 서해안 지역은 겨울이면 눈이 허벅지다. 한강이나 낙동강 같은 큰 하천은 없지만 호남이 한국 벼농사의 중핵을 이룬 데에는 나름 까닭이 있는 법. 그것 가운데 하나가 연중 강수량이 매우 흐뭇하다는 것이다. 김제 '벽골제'는 제천 '의림지', 밀양 '수산제'와 더불어 인구에 회자되지만, 그건 부차적인 사안일 따름이다.

예나 지금이나 눈과 비가 넘쳐나는 곳에서 유·소년기를 보낸 나는 건조한 지역에서 생활하는 게 쉽지 않다. 여기 더하여 얼마간 경험한 도이칠란트의 습한 생활로 인해 메마른 기후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다. 꿈과 미래에 의지해서 사는 젊은 축들은 활달하게 적응하지만, 나이든 축들은 지나간 시간과 공간, 관계망 어딘가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아련한 옛날이야기

어느 해 겨울 방학인가 거의 세 달 가까운 시간을 외갓집에서 보냈다. 고등학교 평준화가 서울과 부산, 두 곳에서 시범적으로 시행되었던 1973년 말, 74년 초 일이다. 박정희와 김종필 두 권력자가 자식들을 좋은 고등학교에 입학시키려고 시작했다던 말이 나돌았던 고교 평준화. 그 덕에 나는 경기에 들어갔고, 박지만은 중앙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요즘 보수 우파들이 평준화 해체와 고교입시 부활을 주장하는 걸 보면 역설적인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점점 두꺼워지는 그자들의 안면가죽과 추한 언행에는 끝없는 악마성이 있다. 예전 우파들은 민족이니 국가니 하는 걸 들먹이는 약간의 품위라도 있었는데, 지금 우파들은 개인과 가족, 집단의 이익을 빼놓으면 머리에 떠오르는 게 없어 보인다.)

하여튼, 당시에도 외갓집 동네에는 눈이 풍성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언제나 하늘에 계신 그분께 기도드리곤 했다. '제발 눈을 내려주세요!' "야, 눈이다!" 하는 소리를 들으며 아침에 눈을 뜨면 얼마나 행복했던가! 나와 사촌 동생들은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완전무장을 갖추고 집을 나섰다. 전장에 나아가는 병사들처럼 씩씩하게.

외갓집에는 '독구'라 불리는 누렁이가 한 마리 있었다. '어려운' 영어로 개를 '독(dog)'이라고 하는데, 그걸 제대로 발음하기 어려워 '독구'라 불렀던 게다. 하기야 나보다 네 살 적은 사촌 동생은 방학일기에 '꿩'이라 쓰지 못하고 늘 '꾸엉'이라고 써서 나를 흐뭇하게 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독구'를 앞세우고 우리는 의기양양하게 대문을 나섰다.

꿩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

눈이 내리면 꿩은 먹이를 구하러 인가 근처로 내려오는데, 녀석들의 주거지는 대나무가 밀집한 대밭이었다. 우리는 먼저 대밭으로 가서 꿩 발자국을 찾았다. 하얀 눈 위에 선명하게 자취를 남기는 녀석들의 발자국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사품엔가 하늘로 꿩이 솟구쳐 날아오른다. 그럴라치면 어디선가 "날렀다아~" 하는 소리가 허공을 가르는 것이었다.

꿩은 날개 크기나 힘에 비해 몸집이 큰 조류다. 그로 인해 장거리비행에 능하지 못하고, 참새나 박새 혹은 직박구리 같은 작은 새들에 비해 지구력도 상대적으로 약하다. 하늘로 솟아오른 다음에 꿩의 운명은 우리 같은 각다귀 패의 손에 절반은 달린 셈이다. 우리는 꿩이 날아간 쪽으로 무작정 달려간다. 쫓고 쫓기는 사냥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아무래도 꿩이 날아가는 게 빠르지, 우리가 빠르겠는가. 숨이 턱에 닿을 만큼 지쳐 있노라면, 어디선가 "날렀다아~"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웃 마을에서 놀던 아이들이 다시 꿩을 몰기 시작한 것이다. 그 아이들마저 지칠 무렵이면, 또 다시 "날렀다아~" 하는 소리가 들리고, 다른 아이들이 꿩을 몰기 시작한다. 우리 눈에 걸려든 꿩은 잡힐 때까지 그런 식으로 온종일 시달려야 했다. 물론 운 좋은 녀석들은 고단한 하루를 넘기도 했지만.

억세게 재수가 좋으면 기진맥진한 꿩이 눈앞에서 눈 속으로 곤두박질친다. 꿩도 사람과 같아서 머리만 눈 속에 처박으면 아무 일 없다고 느끼는 것이다. 눈앞에 뵈는 게 없으니 당연한 노릇 아닌가. 이런 판국에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다. 가장 빨리 달려가 눈 속에 처박힌 꿩을 덥석 잡아채면 상황 끝이다. 나는 한 번도 그런 행운을 경험하지 못했다.

'장두노미'와 사필귀정

해거름 때가 돼서 지치고 춥고 배고파서 집으로 돌아올라치면 외할머니는 빙그레 웃으시면서 "너들 덕에 나도 꿩고기 좀 먹어보자!" 말씀하시곤 했다. 이웃에 살던 '용철'이란 이가 정말이지 꿩 잡는 도사였다. 우리 막내이모와 동갑내기였던 그이는 장끼를 잡으면 가장 긴 털을 뽑아서 이모에게 주었다. 아, 그 찬란한 깃털의 아름다움과 우아함이라니!

지치고 지쳐버린 꿩이 눈 속으로 처박히며 보이는 행태가 '장두노미'다. 머리는 어찌어찌 감추었지만, 꼬리까지 감추지는 못한다. 세상만사가 그러하다. "거짓말은 짧은 다리를 가지고 있다"는 서양속담도 같은 뜻을 품고 있다. 언젠가 낱낱이 드러나게 돼있다. 권력을 쥔 자들은 무소불위의 힘과 우격다짐으로, 뻔뻔스러움과 추악함으로 하루하루 버티고 있지만, 시간은 언제나 민초들의 몫이다. 그것이 역사의 흐름이고, 그것이 순리다.

(튀니지를 보시라! 튀니지에서 날아온 불똥은 이웃나라 이집트까지 번지고 있다.)

도도하게 흐르는 역사를 느끼고, 하늘같은 민중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어떤가. 불의와 부정은 반드시 죄 갚음을 하게 되어 있다. '사필귀정'이라 하지 않았는가. 선진국에서는 그것이 법과 제도로 보장되어 있지만, 후진국에서는 세월과 민중의 피와 눈물이 소용된다. 하지만 그것은 예정된 수순이다. <교수신문>이 제기한 '장두노미'의 교훈이다.

(지금도 눈이 푸지게 오시는 날이면 꿩을 몰러 다니던 그날들의 추억에 한없이 빠져들곤 한다. 부시도록 아름다운 장끼 한 마리가 어디 멀리서 허공을 차고 오르는 기막힌 환영이 떠오른다. 눈이 멀도록 하얀 설원을 달리는 열댓 살의 나와 어린 아우들을 보는 것이다. 아아, 지나간 시간의 꿈이여, 다시 올 수 없는 기억이여! 세월의 덧없음이여!)
#눈 #장두노미 #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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