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리타에서 싯다르타까지 세상 모든 사람들, 여기에!

<명작의 풍경>(이은정 한수영 지음/지식의날개)

등록 2010.10.02 15:00수정 2010.10.02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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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의 풍경 지식의날개 ⓒ 이명화

▲ 명작의 풍경 지식의날개 ⓒ 이명화

<명작의 풍경>(이은정 한수영 지음/지식의 날개)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세계의 고전명작들 중 열 네 권의 책을 인물중심으로 읽고 그 감상을 쓴 글이다. 작품은 각기 다섯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작품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와 원작의 느낌을 살린 줄거리, 인물중심의 작품분석, 작가의 세계(즉 작가소개), 소설의 인물과 닮은꼴인 인물이 등장하는 영화에 대한 짧은 글 등이다.


이은정, 한수영 두 저자가 2008년부터 2009년까지 <독서평설>에 연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새롭게 펴낸 것이다. 우리 내면 깊은 가운데 영화든 소설이든 비극적 인물에 끌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여기 실린 14작품의 공통점 또한 그와 다르지 않다. 소설 속의 비극적 인물들을 다루었다는 것과 고통의 극점을 향해 나아가는 주인공들이다.


책속의 책, 추억을 만나다

 

나는 열 네 편의 작품을 읽으면서 오래 전에 읽었지만 잊고 있었던 소설 속의 인물들을  다시 만나는 재회의 기쁨이 있었고 그 시절에 책을 읽으며 느꼈던 느낌과 감동이 되살아나는 듯 했다. 그 옛날 십대들에겐 필독서로 여겨질 만큼 인기 있었던 헤르만 헤세의 작품들, 이 책에선 <싯다르타>가 실렸지만 헤세의 또 다른 작품들인 <데미안><지와 사랑> 등 추억을 일깨우기에 충분했다. 불면의 밤을 하얗게 새기도 했던 소녀시절로 다시 돌아간 듯 했으니까.


밀란 쿤데라는 내가 20대 초반에 만났던 책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샀던 그 장소와 시간도 떠오른다. 인천의 어느 역전 근처 동네 서점이었다. 추억이 있는 인천, 그곳 언니네 집에 갔다가 돌아오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시외버스를 타러 걸어가던 길과 크지도 작지도 않았던 서점, 나는 거기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샀다.


내 생과 존재의 가벼움과 무거움에 대해 갈등하였던 시절에 만났던 무거운 책이었기에 불현듯 떠오른 기억조차 또렷해졌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은 뒤엔 밀란 쿤데라에 오랫동안 반해 있었고 <농담><웃음과 망각의 책><느림> 등 그의 작품들을 읽어나갔다. 아마도 밀란 쿤데라는 20대에서 30대가 끝나는 시기까지 계속 만난 작가였던 것 같다.


희곡 <19호실로 가다>를 보면서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 떠올랐다. 어릴 땐 나만의 방을 몹시 갈망했고, 결혼해서도 나만의 공간, 나 혼자만의 방을 목말라 했었기에 이 작품들을 읽으면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았다. 이 작품에 공감 99.9%다. 가족을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독립적인 인간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놓을 수 없는 수잔, 결국 자신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남편과 이혼, 혼자서 '19호실'로 간다. 여성의 삶의 이면과 이율배반적 삶을 들여다보게 하는 작품이었다.


작품은 작가를, 작가는 작품을 떠날 수 없다

 

작품과 작가의 상관관계 또한 흥미롭다. 오히려 작품보다 작가의 생이 더 리얼하다. 작품은 작가와 따로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는 것임을 다시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19호실로 가다>의 작가 도리스 레싱을 보면서도 결국 작품과 작가는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라는 것, 어떤 식으로든 작품 속에 작가가 반영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성의 이율배반적이고 차별적인 삶을 다룬 <19호실로 가다>의 도리스 레싱(1919~)은 이성차별뿐 아니라 인종차별, 계급차별 등 모든 억압적인 상황에 저항하는 행동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결혼이라는 제도가 여성에 대해 갖는 이율배반적 상황들에 대해 작품 속에 녹여냈다. 도리스 레싱은 '글을 쓰기 위해서' 결혼생활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과연 <19호실로 가다>의 작가다운 삶이다.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구소련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1918-2008)은 특별한 삶을 살다갔다. 소련의 국가보안위원회(KGB)의 감시와 탄압 속에서 글을 계속 썼고 인간의 양심과 표현의 자유를 주창하는 글을 썼던 그는 원래는 평범한 시골의 교사였다.


그런 그가 전쟁에 소집되어 포병대위로 근무하던 중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스탈린을 모욕했다는 죄명으로 체포되었고 중앙아시아의 강제노동수용소를 전전, 8년간(1946-1953) 수형자생활을 했다. 그 경험이 바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로 태어났다. 그는 수용소군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진실의 전모를 한 사람의 붓으로 밝혀내기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나는 높은 탑 위에서 수용소를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수용소군도의 일부를 틈바구니에서 들여다본다."


<롤리타>의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스(1897-1977),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가 와바타야스나리의 <설국>, 마누엘 푸익의 <거미여인의 키스>, 테네시 윌리엄스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E.T.A.호프만의 <모래 사나이>, 미셸 투르니에의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등에서도 작품과 작가의 깊은 연관성이 확연히 드러난다. 작품과 작가는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고 작가를 떠나서 작품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했다.


작품 속에 우리 인생이 숨 쉰다

 

열 네 권의 작품과 작가들 속에 내가 있고 당신이 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있고 그들의 의 모든 삶과 욕망과 갈등, 번민, 사랑과 이별이 녹아 있다. 문학을 통해 우리는 내가 다 경험할 수 없고 만날 수 없는 인생들을 만난다. 문학작품을 통해 인간에 대한 환상을 깨뜨리게 되고 복잡 미묘한 인간의 이면 등 깊은 이해의 눈이 뜨인다.


열네 권의 작품 속에서 인간의 다양한 감정의 회오리를 만난다. 소설 <질투>(앙리 로브 그리예), 영화 <아마데우스><잉글리쉬 페이션트>에서는 질투가 얼마나 섬뜩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인지를 보여준다.

 

앙리로브 그리예의 <질투>는 세익스피어의 <오셀로>와는 사뭇 다른 냉철하고 얼음처럼 차고 집요한 그래서 더욱 섬뜩한 질투를 표현하고 있다. 오셀로에서 오셀로가 격노와 질투의 감정을 노출한 것이라면 앙리로브 그리예의 질투는 오히려 더 섬뜩하고 냉혹하다. 격렬한 질투를 건조한 언어로 구사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질투에 관한 작품과 비슷한 인물을 담고 있는 영화 <아마데우스><잉글리쉬 페이션트>도 흥미롭다. 이 두 작품 가운데 '아마데우스는 더욱 흥미를 끈다. 음악으로 신을 찬양하겠다는 신념으로 성실하게 음악가의 길을 걸어 드디어 궁정의 음악 장 자리에 오른 살리에는 모차르트라는 천재를 만나면서 부셔져 내리기 시작한다는 내용이다. 그는 질투에 사로잡혀서 모차르트를 옥죄고 죽음으로 몰라가고 모차르트의 죽음으로 인해 평생 고통 속에서 살아간다. 질투는 소멸하는 불이다.


사랑을 담은 영화는 <설국>, 소유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취해 비극적 운명을 맞는 소설, 혹은 영화는 블라디미르 나브코프의 <롤리타>, 미그리트 뒤라스의 <연인> 등,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 여정을 다룬 영화 <해피 투게더>, 고통을 넘어서는 인간의 의지를 다룬 작품으로는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인생이 아름답다고? <인생은 아름다워>, 이율배반적인 여성의 삶을 다룬 <19호실로 가다>(영화 <더 아워스>),


욕망을 다룬 작품, 테니시 윌리엄스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영화,'태양은 가득히'), 인간의 내면에 숨겨진 어두운 파멸의 힘을 다룬 작품, E.T.A. 호프만의 <모래 사나이>(영화 '빅 피쉬'), 삶의 진정성을 찾는 르 클레지오의 <황금 물고기>, <비포 센셋>, 문명의 저편, 미셀 투르니에의 <방드르디, 태평양끝>(영화 '아바타), 기다림을 다룬 가오싱젠의 <버스 정류장>(영화 '바그다드 카페), 강물처럼, <싯다르타>(영화 '흐르는 강물처럼') 등 우리 인생의 면면이 여기에 있다. 인간의 희노애락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여기 있다.

2010.10.02 15:00 ⓒ 2010 OhmyNews

명작의 풍경 - 롤리타에서 싯다르타까지, 세상의 모든 사람들

이은정.한수영 지음,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2010


#명작의 풍경 #지식의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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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전5: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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