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아그라 짝퉁회사에서 여자를 위해 만든 약은?'

[길 위에서 쓰는 편지 21] 경남 의령에서 경북 대구로

등록 2010.09.02 15:26수정 2010.09.03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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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0일 시작한 국내여행이 벌써 두 달째입니다. 그 사이 태풍과 잇따른 집중호우로 잠시 여정을 중단한 바도 있지만 여튼 부지런히, 무엇보다 신나게 걸어 왔습니다. 그간 구포, 봉하, 창원, 진해, 거제, 통영, 고성, 사천, 함안, 창녕, 하동, 진주, 의령을 거쳐 오늘(8월 30일) 드디어 경상북도 대구에 진입했습니다. 

지금은 서대구터미널 근처 모 스포츠센터 찜질방에 앉아 있습니다. 새로 지은 건물인 듯 내부가 상당히 깨끗한데 오후 6시 이전에 입장해 이용료가 고작 5천 원이었습니다. 하룻밤 묵는 가격으로 더이상 저렴하긴 힘들지요. 어느새 9월이 코앞입니다. 제법 감개가 무량한데, 오늘은 요며칠 못다 한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외딴 시골마을서 홀로 보낸 사흘밤  

의령에선 뜻밖에 닷새나 머물렀는데요. 그 중에 사흘을 의령읍 부근 숲속 찜질방에서 잠을 잤습니다. 경비를 아끼려는 차원에서 그나마 맘놓고 잘 수 있는 2만 원대 여관이나 모텔을 포기한 것인데, 사실 조금 불편함을 감수하는 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제가 머문 사흘 동안 이 외딴 찜질방에 손님이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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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서 사흘간 홀로 머문 숲속 찜질방. ⓒ 이명주


상상이 가시나요? 귀뚜라미 소리만 저렁저렁 울리고 주변은 온통 칠흑 같은 어둠인데, 넓은 방 가운데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는. 처음엔 너무 소란스러운 것보다 낫다 생각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커다란 적막 속에 신경이 예민해져 갔습니다. 새벽 한두 시면 어쩔 수 없이 눈이 감겼지만 반쯤은 의식이 깨어 있어 아침이면 머리가 지끈거렸고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낮 동안은 전혀 무섬증이 일지도, 되레 주변의 산과 논밭, 풀숲의 작은 생명들의 기척에 정겹고 평온하기만 한데 왜 밤이면 그토록 불안해질까 의문이었습니다. 결국은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마음이 변화를 겪는 것인데, 그 원인 중에 하나가 우리네 삶이 갈수록 자연과는 동떨어져 세계와 '교감'하는 방법을 상실해서 아닌가 싶었습니다.

도시에선 밤이 돼도 온갖 건물의 네온사인이 주변을 환하게 밝히지 않습니까. 이런 '빛공해' 때문에 동식물들은(사람도 예외가 아닙니다) 제 삶의 패턴을 잃기도 하고요. 우리가 언제부터 이리 된 것일까요? 왜 어둠 속에 가만히 누워 나와 공존하는 크고 작은 다른 생명들을 느끼지 못하고, 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본 지가 이토록 오래 돼버렸을까요….


'아줌마 마스크'도 두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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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아줌마 마스크' ⓒ 이명주


어제는 의령읍내 구경을 하던 중에 재미있는 사실 한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딱히 길을 묻지 않아도 힐끔힐끔 쳐다보는 주변인들이 있었는데요. 처음엔 그저 외지서 온 이방인은 어떻게 해도 표가 나서 그러겠지 여겼습니다. 그러다 문득 유리창 비친 제 모습에 제가 웃고 말았습니다.

일명 '아줌마 마스크'를 아시나요? 산책길에서 이것을 착용한 아주머니들을 보고 화들짝 놀란 적도 있는데요. 자외선 차단을 위해 눈만 빼고 얼굴 전부를 가리는 이 물건은 기능은 여느 마스크와 다름 없지만 그 모양이 다소 이색적이라 스타일이 생명인 사람들은 절대 마다할 그런 것입니다.

저 역시 여행 초반까지도 줌마 마스크에 대한 확고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180도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스타일을 고려해 처음 사용했던 버프는 섬유가 굵고 밀착력이 커서 갑갑함이 심했지만 줌마 마스크의 경우 커버 면적이 넓으면서도 시원해 하루종일 착용해도 불편함이 없습니다. 그러니 어딜 가나 마스크만은 꼭 챙기게 되었는데 한낮에도 맨얼굴로 농사일 보는 시골 어르신들께는 제 모습이 영 기이했었겠지요.

이 또한 외부 환경으로 인한 마음의 변화라 하겠으니, 무엇이든 스스로 절실해보지 않고 대상을 단정짓는 일은 경계해야겠다 싶었습니다.

'뿔난생각' 광수씨와 첫사랑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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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 신반리의 서점. 어렵사리 책 한 권을 구해 그 가치를 다시금 깨닫는 것도 여행이 주는 묘미다. ⓒ 이명주


비아그라 짝퉁회사에서 여자들을 위해 만든 약은? 정답 : <오므라들그라>

오후 2시경 의령 신반리에서 대구오는 차를 기다리며 책 한 권을 샀습니다. '별난생각'으로 유명한 광수씨의 '광수의 뿔난생각 - 악마의 백과사전'이란 신간입니다. 아침부터 신문 한 장 살 곳이 없어 답답해하던 참에 어렵사리 서점을 겸한 문구점을 발견해 급히 읽을거리를 장만했습니다.

도시에선 집 근처 어디서나, 아예 방 안에 앉아 인터넷 클릭 한번이면 반나절 안에 구할 수 있는 물건도 여행 중엔 며칠씩 공을 들여 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당시엔 고생스럽다 짜증이 날 수도 있지만 지나고 보면 익숙한 것들의 가치를 다시금 깨닫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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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수의 뿔난 생각 - 악마의 백과사전' ⓒ 이명주

첫 장부터 은밀한 유머로 본인을 '빵' 웃게 만든 이 책은 저자의 친숙한 만화와 함께 웃음 속에 뼈가 있는 일화와 다양한 금언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비아그라, 오므라들그라 식의 유머도 나쁘진 않지만 무엇보다 이 책을 집어들게 한 건 다음의 구절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인생이 끝나는 순간에 이렇게 말하리라는 걸 알고 있다. "젠장, 더 깊이 생각하고 더 많이 행동할 걸…." 

순간 두 다리에 힘이 불끈 쥐어졌습니다.

대구 오는 한 시간 반 동안 책 보는 재미에 푹 빠졌는데 그 사이, 까맣게 잊고 있던 추억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광수씨가 친구 서우영과의 우정을 소개한 대목에서였는데, 오래 전에 서우영이란 가수의 콘서트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게스트로 광수씨와 윤도현씨가 나와 무대를 훈훈하게 달궜는데 이 기억이 특별한 건 바로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사람 때문입니다. 지금껏 살면서 가장 찬란한 연애를 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뭐, 고작 7개월 사귀고 7년을 못잊다 지금은 가끔 만취해서 한참 전 주인이 바뀐 전화번호를 눌러보는 게 다입니다만…. 문득 떠오른 지난날 생각에 마음에 촉촉해졌습니다. 저에게 첫사랑의 날카로운 추억을 되돌려준 박광수의 신간, 필요하신 분은 연락주십시오. 원가보다 싼 가격에 넘기겠습니다.(gaegosang@naver.com)

의령 신반리 맛집 '롯데 보리 쌈밥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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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 신반리 맛집 '롯데 보리 보쌈집' ⓒ 이명주



끝으로 맛집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십여 년 자취생활에 단 게 설탕이요, 짜면 소금이다 정도의 저렴한 입맛을 갖고 있지만 이 집만은 웬만한 미식가들도 반하겠다 확신이 듭니다. 두 시간쯤 차 기다리는 사이 골목골목 걷다 우연히 찾은 밥집인데, 아담하고 깔끔한 실내에 '절대 동안'의 아주머니가 운영하는 곳입니다.

기호에 따라 쌀발, 보리밥 선택해서 쌈밥을 주문하면 구수한 된장에 각종 쌈, 조기 비롯한 맛갈스런 반찬 한 상을 5천 원에 먹을 수 있습니다. 아주머니 왈 "내 평생 먹어서 탈 안 나고 내내 맛있는 음식이라 장사를 시작했다" 하셨습니다. 밥이며 된장이며 푸짐하게 리필도 해주시니 기회되면 꼭 가서 맛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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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보리 보쌈집 쌈밥정식 5천 원 ⓒ 이명주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네이버와 다음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합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네이버와 다음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합니다.
#국내여행 #전국일주 #박광수 #맛집 #첫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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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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