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학부모도 아닌데, 교원평가 창이 열리네"

[교원평가 ①] 비밀 보장 안 되는 '엉터리 교원평가 프로그램'

등록 2010.07.06 17:23수정 2010.07.06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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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처음 학교 현장에서 이뤄지고 있는 교원평가를 지켜보면서 이런 교원평가는 얻는 점보다는 잃는 점이 더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이뤄지고 있는 교원평가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어보면서, 아이들과 학부모와 교사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교원평가의 방향을 제시해 보려고 합니다. - <기자 말>

요즘 각 학교에서는 온라인 교원능력개발평가(아래부터 '교원평가')가 한창입니다. 교원평가는 교과부가 올해 처음 야심차게 실시하는 것입니다. 사실 교원평가는 관련 법이 만들어지기 전에 무리하게 도입을 추진한다는 이유로, 평가방법이나 절차에도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지적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현재 전국의 학교에서는 교과부의 지시대로 학부모 만족도, 동료교사 만족도, 담임교사 만족도, 교과교사 만족도를 평가하는 교원평가를 실시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미 6월 말로 교원능력개발평가를 끝낸 학교도 있고, 현재 진행 중인 학교도 있습니다. 우리학교도 9일 마감합니다. 교원평가는 서면이 아닌 온라인으로 합니다. 학교마다 홈페이지 첫 화면에 '교원능력개발평가' 배너가 떠 있는데, 학부모와 학생, 교사들이 이 배너를 클릭하고 들어가 평가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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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부가 밝히고 있는 교원평가 절차 교과부가 보내오는 홍보메일 '교원능력평가 이해하기' 16번째 '평가절차'에 나와있는 내용 중 일부입니다. ⓒ 이부영


학부모들에게는 가정통신문을 보내서 관리자와 담임교사와 교과담당교사에 대한 온라인 평가를 하시도록 안내를 했고, 4,5,6학년 아이들은 교사들이 한 반씩 컴퓨터실에 데리고 가서 담임교사와 교과담당교사, 비교과교사(보건, 영양, 특수교사)들에 대한 평가를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혹시 담임이 있으면 평가를 솔직하게 할 수 없을까 봐 담임교사가 반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가지 않는 원칙을 세워놓기도 합니다. 평가한 것은 누가 했는지 모르게 익명으로 처리된다고 합니다. 교사들도 물론 교원평가를 하게 돼 있는데 동료교사와 관리자를 평가합니다.

그러나 저는 아직까지 교원평가를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 않을 작정입니다. 아니 못하겠습니다. 교과부 방침인데 왜 못하겠느냐고요? 지금부터 몇 번에 나누어서 제가 왜 교원평가를 할 수 없는지 그 까닭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아무나 쉽게 들어갈 수 있어요, '온라인 교원평가 시스템'

온라인 교원평가를 어떻게 하나 궁금해서 한 학교 홈페이지에 띄워있는 '2010 교원능력개발평가' 배너를 클릭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다음과 같은 화면이 뜨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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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교원능력개발평가 첫 화면 학교마다 홈페이지에 떠 있는 배너를 클릭하면 이 화면이 뜹니다. 단, 평가 기간동안에만 열립니다. ⓒ 이부영


해당되는 사람이 들어가게끔 학생과 학부모, 교원과 관리자 이렇게 넷으로 메뉴를 분류해 놓았습니다. 그냥 '학부모'를 클릭해 보았습니다. 학부모 이름과 학생 학년 반, 학생 이름, 학생주민번호 뒷자리를 써넣게 돼 있습니다.

제가 학부모가 아니니 아무 것도 써넣지 않은 채 그냥 '확인'을 클릭해 봤습니다. 그랬더니 이럴수가! 분명 아무것도 써넣지 않고 '확인'만 눌렀는데도 바로 로그인이 되면서 '학부모 만족도 조사' 내용이 뜨고 '교장, 교감', '교과담당교사', '보건교사', 심지어 '담임교사'에 대한 만족도를 조사할 수 있는 메뉴가 뜨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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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원능력개발 평가 학부모 로그인 화면 로그인을 하려면 학부모 이름, 학생학년반, 학생이름, 학생 주민등록번호 뒷자릴 넣어야한다고 되어있지만, 일부 학교에서는 아무 것도 넣지않고 '확인'만 눌러도 그냥 자동으로 로그인이 됩니다. ⓒ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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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이 되어 열려진 화면 아무 정보도 넣지않았는데도 로그인 상태가 되어 교장과 교감, 담임교사, 교과전담교사, 보건교사를 평가할 수 있습니다. ⓒ 이부영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싶어서 해당 교사 메뉴를 클릭해 보았더니 해당 교사의 사진과 이름과 함께 해당 교사에 대한 설문내용이 뜨고 '매우 그렇다', '그렇다', '보통이다', '그렇지 않다', '전혀 그렇지 않다'의 5단계로 표시하는 창이 뜨는 겁니다. 그냥 한번 '보건교사(물론 저는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모르는 분입니다)' 설문내용을 띄워 모두 '매우 그렇다'를 표시해 봤습니다. 그런데 표시가 됩니다. 다 한 다음에 아래 '제출하기'를 클릭해 보니 '설문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는 '확인' 창이 뜹니다. 그리고는 처음 학부모만족도 조사 첫 화면에 보건교사가 '완료'로 뜨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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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교사 설문 응답 확인 창 보건교사 설문지를 띄워서 모두 '매우 그렇다'를 평가한 뒤 '제출하기'를 눌렀더니 '확인' 창이 뜹니다. 결국 저는 다른 학교 보건교사를 아무런 로그인 절차도 없이 평가한 것입니다. 같은 방법으로 교장, 교감선생님도 그 학교 담임선생님도 교과전담 교사도 평가할 수 있습니다. ⓒ 이부영


그러고 보니 저는 얼떨결에 다른 학교 보건교사를 평가하게 된 것입니다. 가만 보니 이 온라인 시스템이 아무런 정보를 넣지 않아도 로그인이 되어 이 학교 보건교사 말고도 제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4학년 1반 담임선생님도, 영양교사도 심지어 교장과 교감 선생님도 평가할 수 있게 돼 있었습니다. 정확하게 해야 할 교원평가 시스템에 누구나 이렇게 쉽게 들어가서 아무나 평가할 수 있다는 게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조사학교 반 이상이 엉터리 온라인 시스템

단지 이 학교만의 문제일까 궁금했습니다. 우리 학교를 비롯해서 현재 온라인 교원평가 중인 학교를 무작위로 열 개쯤 정해 학교 홈페이지에 떠 있는 '온라인 교원능력개발평가' 배너를 클릭해서 들어가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역시 아무런 정보를 입력하지 않아도 로그인이 되고 설문을 띄워 응답해서 제출까지 할 수 있는 곳이 50%나 됐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미 평가를 끝내서 교원능력개발평가 시스템에 들어가 볼 수 없는 학교의 경우에도 이와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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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학교생활 점검하기'도 쉽게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학생 메뉴에 들어가려면 학생이름, 학년반,주민번호뒷자리를 넣게 되어있지만, 아무런 정보도 넣지 않고 '확인'만 눌렀는데도 '나의 학교생활 점검하기'설문내용이 뜨고 이처럼 '제출하기'를 할 수 있습니다. ⓒ 이부영


아무런 정보없이 그냥 '확인'만 눌러도 로그인이 되는 메뉴는 주로 학생의 '나의 학교생활 점검하기'와 학부모의 '교장과 교감', '보건교사'와 '영양교사' 평가가 가장 많았습니다. 가끔 교과전담교사와 담임교사를 평가할 수 있는 곳도 있었습니다. 대신에 확인해 본 학교 가운데 교원과 관리자 메뉴는 학생과 학부모 메뉴처럼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치지 않고 확인만 눌러서 들어갈 수는 없었습니다.

교과부는 엄청난 예산을 들여서 교원평가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스템이 완전하지 못해서 누구나 쉽게 들어가 아무나 평가할 수 있게 된다면 그 평가 결과를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요?

이 점이 바로 제가 교원평가에 참여할 수 없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그 다음, 설사 교원평가 온라인 시스템이 완벽하게 돼 있다라도, 서로 간 소통없이 '익명'인 상태로 교원을 평가하는 것은 (교원의) 전문성을 향상시키자는 본래 목적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이에 대한 문제는 다음 번에 자세하게 쓰려고 합니다.
#교원능력개발평가 #교육과학기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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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만에 독립한 프리랜서 초등교사. 일놀이공부연구소 대표, 경기마을교육공동체 일놀이공부꿈의학교장, 서울특별시교육청 시민감사관(학사), 교육연구자, 농부, 작가, 강사. 단독저서, '서울형혁신학교 이야기' 외 열세 권, 공저 '혁신학교, 한국 교육의 미래를 열다.'외 이십여 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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