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타령 안에는 살 것도 많은데, 우리네 살림은 찌들기만 해

[옛 소리 세태풍자 5] - 장타령

등록 2009.12.24 14:12수정 2009.12.24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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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바 요즈음은 전문연희집단인 품바들이 무리를 지어 공연을 한다. 어디나 그 흥겨움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찾아든다. ⓒ 하주성


강릉장은 단오장 통잘 치는 통천장
달을 본다 영월장 이제 왔소 인제장
장이 많아 이천장 쌀이 좋은 여주장
안성에는 유기장 예산 많다 예산장
공술 많은 공주장 술 취해서 청주장 
입이 커서 대구장 거창해서 거창장
해 넘어가 서산장 싸움 많은 대전장
명주 팔아 원주장 아가씨 많은 정선장
영광에는 굴비장 한산에는 모시장
맛이 좋아 구미장 이리 길찾아 이리장
아산 둔포장엔 큰아기 술장수 제일이고
충청북도 괴산장은 매운고추가 많이 난다
보은 청산장은 대추장 처녀장꾼이 제일이고
광주하면 무등장 무등 수박이 많이 나네


시원하게 목소리를 높여 엉덩춤을 추면서 불러 젖히는 장타령. 흔히 우리는 '장타령'을 '각설이타령'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자면 장타령과 각설이 타령은 다른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장의 특색을 이야기한 장타령

<장타령>은 우리나라의 5일장을 특색 있게 꾸며 부르고 있다. 이 장타령은 창자(唱者)의 기능에 따라서 사설이 달라진다. 그저 어떤 장이든지 자신이 알만한 것을 꾸며 부르면 그만이다. 이에 비해서 <각설이타령>은 유랑집단의 한 류파인 각설이패들이 이 장 저 장을 돌아다니거나, 집집마다 다니면서 자신들의 연희인 각설이타령을 부르면서, 먹을 것이나 금전 등을 구걸해 삶을 영위하는 소리를 말한다. 그 각설이패들의 소리는 다양해서 장타령은 물론 우리가 요즘 흔히 <품바타령>도 이에 속한다.

이런 점으로 볼 때 각설이패들이 소리를 한다고 해서 다 장타령은 아니다. 엄밀히 따져보면 장타령은 5일장의 특징을 사설로 만들어 부르는 것이고, 각설이타령은 각설이패들이 부르는 모든 소리를 일컬어 각설이타령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각설이패들은 조선조 말기에 생활이 어려워지면서 생겨난 유랑집단의 한 패거리이다. 육당 최남선 선생도 염천교를 지나다 이 각설이패들의 소리를 듣고 극찬했다고도 한다. 그럴 정도로 각설이패들의 소리 기능이 뛰어났는가보다. 유랑집단이 언제부터 이였는가는 정확지가 않다. 일설에는 <해동역사>에 이미 신라 때부터 유랑 민중놀이집단이 있었다고 하지만, 이때의 유랑 민중집단은 조선조 말의 유랑집단과는 그 형태가 다른 것으로 보인다.


조선조 말의 유랑집단은 그 연희의 방법이나 구성에 따라 사당패, 남사당패, 중매구패, 솟대쟁이패, 각설이패, 걸립패 등으로 구분을 지었다. 이들은 각각 자신들이 갖고 있는 기예를 보여주고, 적당한 대가를 받아 생활을 했다. 이 유랑집단이 많을 때는 전국에 걸쳐 수많은 유랑집단들이 활동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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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덕이 안성 서운면 청룡리에 있는 바우덕이 사당안에 조성된 바우덕이 동상 ⓒ 하주성


수많은 유랑집단들이 기능을 선보이던 시절

중요무형문화재 평택농악의 기능보유자였던 고 이돌천 선생은 걸립패의 일원으로 전국을 다녔다고 한다. 살아생전 당시 이돌천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들이 어렸을 때부터 절걸립패를 꾸며 전국을 돌아다녔어. 그때는 절에서 어느 절에서 나온 걸립패라고 신표를 주었지. 그것이 없으면 걸립도 마음대로 할 수도 없었고. 아마 세상이 하도 어려워서 그랬겠지만, 다니면서 보면 딴 패거리가 동네를 다녀간 적도 있고, 한 마을에 여러 패거리들이 들어가서 놀기도 했지."

그만큼 조선조 말에는 전국 각처에서 유랑집단들이 다니면서 기능을 팔아 연명을 했다. 그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활동을 한 것이 바로 <안성 바우덕이패>이다. 바우덕이는 안성남사당패의 꼭두쇠로 무리를 이끌고 경복궁의 중건사업장에 나아가 일꾼들을 격려해 중건이 무사히 마무리하게 하였다. 그래서 대원군으로부터 양반들이 탕건에 붙이는 '옥관자'를 받아 영기에 붙이게 되고, 이 기에게 당상관이라는 관직을 하사했다. 길에서 모든 유랑집단패거리들이 이 기를 만나면 자신들의 기를 숙여 인사를 했다는 것이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소고만 들어도 돈 나온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치마만 들쳐도 돈 나온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줄 위에 오르니 돈 쏟아진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바람 결에 잘도 떠나가네.

이 짧은 노래가 당시 바우덕이의 위상이 어떠했는가를 잘 말해주고 있다. 현재 바우덕이의 묘는 안성 서운면에서 청룡사로 가는 길가에 있다. 예전에는 그 묘 쪽으로 길이 있었지만, 도로를 확장하면서 도로와는 조금 떨어진 개울 건너에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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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덕이 묘 안성 서운면 청룡사를 가는 길가 개울 건너편에 있는 바우덕이묘 ⓒ 하주성


장타령은 흥겨운데, 정작 장에만 가면 주눅이 드는 사람들

요즈음도 5일장에 나가면 신나게 장타령을 부르면서 엿 등을 파는 각설이를 만날 수가 있다. 지금은 품바라고 부르지만 정확하게는 각설이다. 그것이 세상이 변하면서 각설이라는 명칭이 거슬렸는지 품바라고 부른다. 품바는 장을 다니면서 구걸을 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며, 품바타령이란 장타령의 후렴구에 나오는 '얼시구 품바가 잘도 한다'라는 어구에서 따온 것이다. 이런 점으로 볼 때 이 소리는 장타령이나 각설이타령이라고 해야 하며, 이 소리를 하는 사람들도 품바가 아닌 '각설이'로 불러야 할 것이다.

문제는 이 각설이패들이 신명나게 부르는 장타령을 들어보면, 전국적으로 참 많은 물건들이 있다. 장마다 나름대로 특색 있는 물건들이 있고, 장꾼들은 그 물건을 구하러 5일장으로 모여들기도 한다. 5일장에 나가면 훈훈한 인정이 있다. 조금만 더 달라고 하면, 한 움큼 듬뿍 주기도 한다. 그런 인정이 있는 곳이 바로 우리의 장이고, 없는 사람들도 그런 따스한 정감어린 마음들이 있어 살기가 좋았다.

그런데 요즈음은 팍팍하다. 물건에는 정찰제라는 것을 써 붙여놓고, 도대체 값을 깎아주지도 않고 덤도 없다.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대형마켓은 오히려 물건 값이 비싸다고도 한다. 이런 저런 이유로 장바구니는 가벼워지고, 장을 보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공허한 바람만 분다. 서민들은 점점 살기가 힘들어지는데 한편에서는 말도 안 되는 짓거리들을 하면서 배를 불리고 있다. 이럴 때 가장 듣고 싶은 것이 바로 각설이타령이다. 아니 솔직한 심정으로는 차라리 각설이가 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마음이 차가운 이때 5일장이라도 나가 신명나게 가위를 마주치고 북을 두드리면서 불러 젖히는 '장타령'이라도 들었으면. 조금은 그 차가운 마음이 녹으려나. 답답한 세상이다.
#장타령 #각설이패 #바우덕이 #유랑집단 #품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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