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지 파파라치보다 먼저 해야 할 일

등록 2009.07.07 10:11수정 2009.07.07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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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어인 '파파라치'(paparazzi)는 우리말로 순화하면 '몰래찰칵꾼' 정도인데 유명인들을 몰래 따라가서 사진을 찍어 돈을 받고 신문에 사진을 파는 직업적 사진사를 이르는 말이다. 파파라치가 사람들에게 알권리를 보장한다는 취지도 있지만 유명인들 사생활을 침해한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어떤 경우는 생명을 빼앗는 경우도 있는데 대표적인 예가 영국 다이애나 황태자비가 있다.

이 파파라치가 대한민국 사회에 한 문화가 되어가고 있다. 외국처럼 신문에 사진을 파는 직업 사진사들이 아니라 국가와 공공기관이 시민들에게 법규을 위반한 조직과 단체를 신고하면 포상금을 주는 제도인 것이 다르다.

우리나라에 파파라치 포상금이 도입된 것은 2002년 시행되었던 '카파파라치'가 처음으로 생각된다. 교통 법규를 어긴 차량 사진을 찍어 제출하면 1장에 1천 원에서 2천 원 정도 포상금을 지급했는데 한 달에 수백 만원 수입을 올리기까지 했었다. 교통 법규를 잘 지키는 약간의 효과는 있었지만 많은 부작용을 남기고 없어졌다. 하지만 차파파라치는 사라졌지만 이후 원산지를 속이거나 비위생적인 식당을 찾아내는 '식파파라치'나 '00파파라치' 따위가 생겨났다.

이 파파라치가 교육 현장까지 들어왔다. 서울시교육청이 교사의 촌지 수수나 일반 교육공무원의 비리를 신고하면 최고 3천만 원까지 보상하는 조례 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조례안을 보면 비리 감시망을 넓혀 교육계 내부 인사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까지도 신고하면 보상금을 주는 것으로 쉽게 말해 '촌지 파파라치'이다.

촌지 파파라치, 씁쓸할 뿐이다. 촌지 파파라치가 도입되어야 할 정도로 촌지가 우리 교육계에 뿌리깊은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서울교육청이 조례안을 만들 정도이면 우리 교육 현장은 선생님과 학부모 사이에 '돈'이 우리 아이들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촌지 파파라치를 도입하려고 하는 서울시교육청 자신들은 깨끗하지 못하면서 선생님들에게만 책임을 떠넘기고, 선생님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어 교육 현장을 더 불신하게 만들 수 있다는 비판도 있지만 촌지 때문에 고민하는 학부모들 생각은 조금 다른 것 같다.

어떤 학부모는 대놓고 촌지를 주었다고 했고, 촌지 때문에 6년 동안 학교를 한 번도 가지 않았다는 학부모, 자기도 넉넉하면 촌지를 주고 싶었다는 학부모들도 있었다. 아이를 둔 부모치고 촌지를 한 번도 고민하지 않은 부모는 없었다는 말이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선생님께 먹을거리와 작은 선물을 했었고, 선생님이 우리 집에서 주무셨다. 선생님과 학생이 함께 피부를 맞대고 잠까지 자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이제는 서로를 믿지 못해 학부모가 선생님을 신고해야 하는 비극이 2009년 대한민국 학교 현장이다.

하지만 촌지는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하는 것과 비슷하다. 모든 것을 선생님들 책임으로만 돌릴 수 없다는 말이다. 촌지에는 자기 자식만 생각하는 학부모 이기심도 한 몫했다. 학부모의 이기심과 돈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선생님이 낳은 비극으로 손뼉 치는 것과 같다.

이 비극을 해결하기 위해 학부모는 자기 자식만 잘 되면 된다는 이기심을 버리고, 선생님은 돈의 유혹을 이겨야 한다. 그런데 이것은 다짐으로 되지 않는다.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 그 원인은 일등만을 인정하고, 꼴등은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는 우리 사회와 학교 교육, 대입제도로 인한 공교육 붕괴가 원인이다. 공교육이 붕괴된 곳에 사교육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흥미로운 점은 촌지 파파라치 도입과 함께 학원 파파라치가 도입되었다는 점이다. 학원교습시간을 어기거나 신고 없이 개인교습을 하는 등 편법·불법운영을 하는 학원을 신고하면 최고 200만 원까지 지급하는 '학원신고 포상금'제도가 오늘(7일)부터 시행되었다.

교육 목적이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인데도 공부 잘 하는 사람만 대접받는 것으로 변질됨으로써 모든 것이 뒤틀려 버렸다. 이것을 해결하지 않고 촌지 파파라리치와 학원 파파리차만으로는 서울시교육청과 교육부가 원하는 바를 이루기는 힘들다.

촌지 파파라치 도입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학교 교육을 조금이라도 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먼저 교육이 지향해야 할 근본 목적부터 바로 잡고, 이를 위해 대입제도와 일등지상주의, 꼴등을 인정하지 않는 병폐를 고쳐야 한다. 그러면서 '돈'이 개입되는 촌지를 없애야 한다.

사실 촌지는 선생님과 학부모, 학생을 잇는 아주 좋은 풍습이었다. 선생님이 우리 집에 와서 함께 잠을 잤던 일은 다시 오지 못하겠지만 학부모와 학생이 선생님께 드리는 작은 선물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때가 빨리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촌지 파파라치 #학원 파파라치 #공교육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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