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시민을 계급사회로 이끄는 일제고사

등록 2009.02.17 16:05수정 2009.02.17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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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학기술부가 16일 공개한 학업성취도 평가(일제고사) 결과를 보면서 마음이 착잡했다. 하루 아침에 일등부터 꼴등까지 전국 180개 학군을 줄세워버린 대단한 교과부 능력때문만은 아니다. 얼마 있지 않으면 초등학교 1학년, 3학년, 4학년인 우리 아이들도 일등부터 꼴등 사이 중 어느 한 자리에 서야 하기 때문이다.

 

공부 못하는 '학생' 공부못하는 '학교'와 공부하는 못하는 '학군'을 만들어가는 대한민국 교육 현실을 우리 아이들이 견딜 수 있을지. 나와 아내는 공부 못하는 아이가 아니라 공부 잘하는 아이로 만들고, 공부 못하는 학교가 아니라 공부 잘하는 학교, 공부 못하는 학군이 아니라 공부 잘 하는 학교에 보내려는 유혹을 떨치고 '그래 공부가 다는 아니야'라고 아이들에게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지 두렵다.

 

오늘(17일) 초등학교 1학년인 막둥이가 '학교생활통지표'를 가져와서 불쑥 내밀었다. 얼굴은 보름 후 2학년에 된다는 설레임이 묻어 있었다. 생활통지표 내용에는 이런 대목이 있었다.

 

수학 1-가 한 가지 기준으로 조사하여 세기를 잘하지만 문장제 해결은 미흡함

수학 1-나 두 자리 수의 대소 관계를 부등호를 써서 잘 나타내지만 문장제 해결이 미흡함

 

염려했던 결과다. 1학년 들어가기 전부터 읽기과 쓰기 뿐만 아니라 수학 따위를 잘했던 형과 누나에 비하여 막둥이는 많이 늦었다. 한 해 늦게 보내려고 생각까지 했었다. 이런 막둥이를 생각할 때마다 일제고사 말만 나오면 마음이 얼마나 아팠는지 모른다.

 

기초학력미달이 의미하는 바가 100점 만점에 몇 점을 뜻하지는 모르겠지만 '문장제 해결은 미흡함'이라는 막둥이 수학 평가를 본다면 우수한 성적으로 평가 받기는 힘들다. 잘하면 보통을 될 수 있겠지만 어쩌면 기초학력미달에 들어갈 수도 있으리라.

 

내 아이가 기초학력미달 학생으로 포함된다면 “우리 지역 학력 수준이 꼴찌라는 소식을 듣고 불쾌했다”거나 성적이 우수한 곳으로 "이사를 해야겠다"는 어떤 학부모들 말은 내 귀에서 맴돌고 있다.

 

문장제 해결이 미흡과 기초학력미달이 우리 아이들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겉으로는 말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 발표로 공부못하는 아이와 학교, 학군으로 평가되면서 일등 시민이 아니라 2-3등 시민으로 찍힐 가능성은 높아졌다.

 

공부 잘하는 것과 일등 시민은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일등시민이란 주인의식과 함께 이 사회는 더불어 사는 공동체임을 인식하는 민주주의를 자신과 사회에 실천하는 인민을 말한다.

 

하지만 이번 교과부 일제고사 성적 발표는 시민의식을 고양시키는 교육이 아니라 국어와 영어, 수학을 잘 하는가, 못 하는가에 따라 시민을 구분해버렸다. 성적 일등은 일등학교요, 일등학군이고, 성적이 낮은 학교와 학군은 2등과 3등 학교와 학군인데 더 넓히면 일등 학군은 일등시민이 나는 곳이요, 2-3등 학교와 학군은 2-3등 시민이 사는 곳이 되어 버렸다.

 

교육이 목적하는 바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인데도 공부잘하는 기계로 만들고, 줄세워버리는 목적으로 변질시킨 이 비극을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영어와 수학 잘 하는 것으로 시민계급을 만들어버리는 공교육에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그럼 내 대안은 무엇인가. 사교육 광풍 속으로 우리 막둥이를 몰아넣을 것인가. 아직까지는 아니다. 일등부터 꼴등까지 줄세워 1등시민, 2-3등 시민으로 나누어버린 일제고사를 이기는 방법은 사교육 속으로 내 아이들 던져 넣는 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문장제 해결에 미흡하다는 1학년 들어가기 전에 글을 완전히 읽지 못한 막둥이가 아빠에게 이제는 편지를 쓸 수 있듯이 조금 지나면 문장제도 풀이 할 수 있다. 아니 더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존중하면서 동무를 이겨야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너도 살고, 동무도 살 수 있음을 가르치는 일이다.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주기 보다는 일등부터 꼴등까지 줄세우는 일에 더 열심인 이 나라 교육 정책은 대한민국 미래를 파국으로 몰아넣고 있다. 비극이다.

2009.02.17 16:05 ⓒ 2009 OhmyNews
#일제고사 #공교육 붕괴 #줄세우기 #사교육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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