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비에 환한 얼굴, 수선화

금비에 생명의 기운이 넘쳐

등록 2008.03.24 20:45수정 2008.03.24 20:45
0
원고료로 응원

‘왜 오시지 않는 거예요? 빨리 오세요.’

 

귓가에 맴돌고 있었다. 감미로운 유혹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나 몸이 머뭇거려진다. 마음은 그곳으로 향하고 있었지만, 날씨가 주저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어제까지 맑은 햇살이 그렇게 좋았는데, 갑자기 구름이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아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실비는 봄비였지만, 선뜻 결단을 내릴 수 없게 하였다.

 

a

일주문 내장사 ⓒ 정기상

▲ 일주문 내장사 ⓒ 정기상

 

“내장사에 가자.”

“비 오는데요?”

 

집사람의 눈이 동그래진다. 창밖에 비가 내리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었다. 그러나 결코 싫지 않은 표정이었다. 봄비로 인해 가라앉은 마음을 달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목소리에 섞여 있었다. 반어법의 묘미를 느끼면서 아이들을 바라본다. 아이들은 고개를 옆으로 흔든다. 부족한 잠을 보충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동차의 시동을 걸게 되니, 엔진소리에 마음이 바뀐다. 걱정스럽단 생각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가벼워지는 것이다. 는개였다. 소리 없이 내리고 있어 은은하게 만든다. 달리는 차창으로 들어오는 풍광이 봄이라는 사실을 실감 나게 하였다. 언제 그렇게 피어났을까? 봄꽃들이 활짝 피어나 있지 않은가?

 

목련은 하얀 꽃봉오리를 반절쯤 드러내놓고 있었고 청매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노란 개나리까지도 노란 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내리고 있는 는개는 나무들에게는 생명을 불어넣어주고 있는 금비였다.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보물과 같은 존재였다. 그동안 봄 가뭄으로 고통받고 있던 수많은 생명들이 새로운 힘을 얻고 있었다.

 

a

봄기운 터널 ⓒ 정기상

▲ 봄기운 터널 ⓒ 정기상

 

신태인을 지나 내장사로 들어섰다. 새롭게 뚫린 도로를 통해서 아무런 불편도 없이 달릴 수 있었다. 상쾌한 기분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도로 양 옆의 나뭇가지에도 봄기운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빨갛게 드러나고 있었다. 봄기운을 받으면서 달리는 기분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비가 내리고 있는 데에도 내장사를 찾는 사람들은 있었다. 붐비지는 않지만 내장사의 봄을 즐기려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았다. 봄비를 즐기고 싶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관심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고 하였던가? 관심이 없으면 인생 자체가 어려워지고 다른 사람에게는 해를 끼칠 수 있다는 말이 생각난다.

 

a

수선화 노란 ⓒ 정기상

▲ 수선화 노란 ⓒ 정기상

 

계절이 바뀌고 있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놀라는 나 자신이 더 이상한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탐방소 앞에 자동차를 주차하고 내려서니, 벼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는개로 인해 나뭇가지들에는 수많은 별들이 만들어져 있었다. 마음에 그대로 빛이 되었다. 물방울별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일주문을 지나 숲길을 걸어가게 되니, 새들이 반갑게 인사한다. 겨우내 답답하였던 마음을 털어버린 탓인지,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다. 맑은 새소리는 리듬이 되어 청아하게 마음에 공명된다. 어찌나 투명하고 고운지 진한 여운을 남긴다. 새들의 크기도 그리고 색깔도 가지가지다. 그들의 환영의 노랫소리가 세상을 밝게 해준다.

 

a

보랏빛 ⓒ 정기상

▲ 꿈 보랏빛 ⓒ 정기상

 

대웅전 뒷산에는 노란 산수유가 활짝 피어 있어서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화엄동산이란 저런 곳을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은은한 색깔이 우주를 포근하게 만들고 있었다. 욕심을 버린 마음이 바로 저런 모습이 아닐까? 세진을 씻어내고 원래의 청정한 마음을 보는 것 같아서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노란 수선화가 벌써 피었네.”

 

는개는 금비였다. 세상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어주고 있는 금비였다. 귓가에 맴돌던 소리가 바로 수선화가 부르는 소리였다. 두꺼운 지표면을 뚫고 나오는 힘찬 모습을 보여주기 위하여 부르고 있었다. 솟구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노란 꽃을 피워낸 것이다. 세상이 온통 노랗다. 봄의 절정이었다.

 

한 두 송이가 아니라 무더기로 피어 있는 꽃들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아직은 활짝 피어나지는 않았지만 꽃봉오리를 맺고 있는 모습까지도 어찌나 앙증맞은지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자연의 위대함을 세삼 실감할 수가 있었다. 봄이 아니면 그 누가 저런 힘을 발휘할 수 있단 말인가?

 

a

화엄 세상 ⓒ 정기상

▲ 화엄 세상 ⓒ 정기상

 

“보라색 꽃도 있어요.”

 

수선화들 사이에서 보랏빛으로 꽃봉오리를 내밀고 있는 것도 있었다. 수선화처럼 보였지만 자세히 보니, 수선화는 아니다. 꽃의 모습도 사뭇 다르다. 세상에는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것이 참으로 많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노란 세상에 보랏빛으로 우뚝하니, 또 다른 멋을 느낄 수 있었다.

 

계단을 내려서니, 물고기들이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크지 않은 연못에 무리를 지어서 헤엄치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세상은 봄이 넘쳐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땅뿐만 아니라 하늘 그리고 물속에 이르기까지 봄기운이 만연하고 있었다. 금비에 생명의 기운이 넘치고 있으니,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덧붙이는 글 | 사진은 3월 23일 전북 내장사에서 촬영

2008.03.24 20:45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사진은 3월 23일 전북 내장사에서 촬영
#수선화 #는개 #봄기운 #내장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아이 어휘력이 떨어져요"... 예상치 못한 교사의 말
  2. 2 한국인들만 모르는, 외국인들에게 소름 돋는 '어메이징 코리아'
  3. 3 그가 입을 열까 불안? 황당한 윤석열표 장성 인사
  4. 4 7세 아들이 김밥 앞에서 코 막은 사연
  5. 5 참전용사 선창에 후배해병들 화답 "윤석열 거부권? 사생결단낸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