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아리 속에 들어앉은 사람을 볼 수 있는 곳

[대한해협과 현해탄 건너뛰기: 큐슈 북부 답사 ⑧] 요시노가리 북분구묘

등록 2008.03.12 08:43수정 2008.04.02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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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동산 모양의 무덤인 북분구묘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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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자와 입주 너머로 분구묘가 보인다. ⓒ 이상기


북분구묘(北墳丘墓)는 요시노가리 지역을 통치하던 왕들의 무덤이 있는 일종의 묘역이다. 분구묘란 죽은 사람을 매장하고 나서 흙을 높게 쌓아 올려 작은 언덕처럼 만든 초기 형태의 고분이다. 멀리서 보아도 사다리꼴 형태의 육면체임을 알 수 있다. 북분구묘는 북내곽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북분구묘로 가는 길에 보니 2008년(平成 20) 2월1일에 개장하였다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그렇다면 개원한 지 20여일밖에 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우리가 한국 사람으로는 북분구묘를 처음 보는지도 모르겠다. 이번 여행에서 남내곽과 북내곽 외에 북분구묘를 보게 된 것은 우리에게 큰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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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분구묘 가는 길에 만난 옹관묘열 ⓒ 이상기


북분구묘로 가는 길에서 우리는 먼저 옹관묘열을 만난다. 옹관묘란 시신을 옹관에 넣어 매장한 것으로 야요이 시대 중기의 대표적인 매장 방식이다. 이를 통해 북분구묘가 야요이 시대 중기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분구묘와 대조되는 옹관묘는 집단 구성원들의 묘로 추정된다. 요시노가리 유적에서 2500기의 옹관묘가 확인된다고 하는데 이곳에는 수십 기 정도가 복원되어 있다.

옹관묘열을 지나면 사당이 나온다. 이 사당은 앞뒤가 트여 있는 건물로 제를 올릴 때 제수용품을 진설하는 용도로 쓰였을 것 같다. 사당 뒤 분구묘 앞에는 나무로 만든 높은 기둥이 세워져 있는데, 이것을 입주(立柱)라고 부른다. 입주 앞 안내판에는 '2,100년 전 왕의 위광(威光)'이라는 설명문이 붙어 있다. 분구묘 입구는 이들을 지나 북쪽에서 남쪽으로 들어가도록 되어 있다.

분구묘는 현장을 재현한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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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분구묘 내부 모습 ⓒ 이상기


분구묘에 들어가니 기온차 때문에 안경에 김이 서린다. 입구에 있던 직원이 "메가네"('안경'이란 뜻) 하면서 휴지를 건네준다. 일본 사람들의 친절을 당할 수가 없다. 김을 닦아내고 안을 살펴보니 가운데 발굴된 옹관묘들이 있고 가장자리에 길을 내어 한 바퀴 돌 수 있도록 만들었다. 안내문에 따르면 분구묘는 남북이 40m, 동서가 27m, 높이가 4.5m 정도 되는 평면 장방형 무덤이다.


이 분구묘에서는 14기의 옹관묘가 확인되었으며, 8기의 옹관묘에서 세형동검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 중 1기(옹관번호 1002)의 옹관묘에서는 칼자루 장식이 달려 있는 유병세형동검(有柄細形銅劍)과 유리로 만든 대롱모양의 옥이 79점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옹관묘가 더 지위가 높은 왕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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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관 안에 들어있는 사람의 모습 ⓒ 이상기


매장되었던 옹관묘들은 이제 겉으로 드러나 보이도록 만들었으며, 그 안에 들어 있던 부장품들은 모두 전시실로 옮겨진 상태다. 그러므로 바닥에는 깨진 옹관묘만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가장자리에 설명 판넬과 함께 옹관묘를 재현하고는 그 안에 당시 사람의 모습을 만들어 넣었다.

흰 바지에 빨간 저고리를 입고 아주 편안한 자세로 누워 있다. 그리고 가슴에는 대롱 모양의 옥으로 장식한 목걸이가 늘어뜨려져 있으며, 그 위에 유병세형동검 모양의 모조품이 놓여 있다. 주검이 너무나 화려하고 깨끗해서 죽은 게 아니고 잠을 자고 있는 듯하다.

분구묘 안에는 또한 이곳 옹관묘의 부장품과 같은 것들이 한국과 중국에서도 발견된다는 설명과 함께 분포 지도가 걸려 있다. 그리고 옹관묘의 일련번호, 만든 시기, 방향, 출토 유물들이 도표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그 외에도 야요이 시대부터 현재까지 북분구묘의 역사를 기록한 패널이 걸려 있다.

유물전시실에서 요시노가리 유적 전체를 다시 한 번 복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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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분구묘에서 바라 본 북내곽 ⓒ 이상기


북분구묘를 나와 남쪽을 바라보니 북내곽이 한눈에 들어온다. 나올 때는 고상창고군쪽으로 돌면서 V자형 해자를 자세히 살펴본다. 해자는 깊이가 3m 정도 되고 폭은 4-5m쯤 되어 보인다. 가장 넓은 곳의 폭은 6.3m에 이른다고 한다. 외환호를 이루는 해자를 끼고 남내곽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과거 역사를 복원해 놓은 일본 사람들의 연구 저력과 꼼꼼함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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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전시실에 있는 옹관들 ⓒ 이상기


더욱이 이곳에서 나온 유물들을 전시실에 잘 분류, 전시하고 있어 다시 한 번 요시노가리 역사유적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전시실에 들어가니 가장 먼저 토기편과 옹관이 눈에 들어온다. 이들 옹관은 형태가 다양한데, 두 개를 결합할 수 있도록 만든 것도 있고 뚜껑으로 덮은 것도 있다.

그 옆에는 야요이 시대 전반에 대한 설명과 함께 그에 따른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그리고 또 환호취락의 발생에 대한 설명을 해서 요시노가리의 특징을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청동기 시대와 관련된 유물로는 화살촉, 세형동검, 청동거울 등이 눈에 띈다. 분구묘에서 출토된 8점의 세형동검이 이곳에 나란히 전시되어 있어 우리는 자연스럽게 2100년 전으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청동거울은 작고 부식이 심한 편이지만 과거의 역사를 우리에게 전해주는 귀중한 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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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관에 들어있는 인골 ⓒ 이상기


이들 유물과 다른 공간에는 옹관과 관련된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야요이 시대를 대표하는 옹관과 토기가 전기, 중기, 후기로 분류되어 진열되어 있다. 그리고 다른 쪽에는 옹관에 들어 있는 인골이 전시되어 있다. 척추와 갈비뼈, 대퇴골 등이 보인다. 이곳에 머리가 없는 것으로 보아 전쟁을 하다 죽은 사람의 시신으로 추정할 수 있겠다. 손목과 어깨뼈에 상처가 있다고 하는데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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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분구묘 발굴 현장 ⓒ 이상기


복원과 정비과정을 연도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981년 6월: 요시노가리 지역에 대한 공업단지 검토 착수
1986년 5월: 문화재 발굴조사 시작
1989년 2월: 유적의 조사 결과를 매스콤에 보도
1989년 11월: 요시노가리 유적을 임시로 정비 
1991년 5월: 요시노가리 유적을 특별사적으로 지정
1992년 10월: 국영 요시노가리 역사공원 지정
1993년 5월: 요시노가리 역사공원 기본계획 확정
1995년 11월: 역사공원 공사 착수
2001년 4월: 요시노가리 역사공원 개장
2008년 2월: 요시노가리 역사공원 내 북분구묘 개장


#큐슈 #옹관묘 #세형동검 #유리 대롱옥 #북군구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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