는개에 젖은 꽃과 무상

꽃을 바라보면서 삶의 의미를 되새기며

등록 2007.06.25 19:17수정 2007.06.25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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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랏빛 색깔이 달리는 마음을 잡는다. 바삐 서두를 필요는 없다. 목적지가 있어서 가는 것도 아니다. 내리는 비가 좋아 그냥 출발한 것이다. 마음 가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정취에 빠지면 그만이다. 마음에 여백이 있으니, 들어올 자리도 많다. 마음의 문을 노크하는 고운 꽃이 손짓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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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기상

전북 완주군의 산골길이다. 도로 양옆에는 망초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그 사이로 보랏빛으로 빛나고 있으니, 우뚝하다. 주변의 것들과 다르다는 것은 차별성을 가진다. 시선이 그곳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달리는 자동차를 멈추고 내려섰다. 장마라서 그런지 하늘은 낮게 내려앉아 있지만, 비는 오는 것 같지 않다. 는개다.

꽃은 크지 않다. 국화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국화는 아닌 것 같다. 국화는 가을에 피어나는 꽃이다. 모양은 비슷하지만 색깔도 시기도 맞지 않다. 꽃 이름을 모르면 어떤가. 마음을 채워주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은가. 더 무엇을 바란단 말인가. 어차피 무상하지 않은가. 변하지 않는 것이 없지 않은가.

'제행무상 제법무아'라고 하였던가. 세상의 모든 일은 고유의 성질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 모든 것들이 인연의 법에 따라 구름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것을 잡으려고 욕심을 부려보았자, 모두가 허망한 일이 아닌가. 그렇다면 보이는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깨닫고 충실하게 채우는 것이 중요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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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개에 젖어 ⓒ 정기상

산다는 것 자체는 오고 가는 것이다. 만남으로 왔다면 이별로 떠나간다. 생각으로 관심을 두게 되는 것은 오는 것이고 그것이 사랑으로 발전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사랑이 왔으면 이어서 믿음으로 이어진다. 믿음이 없는 사랑이란 이미 사랑이 아니다. 서로 신뢰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공허한 것이다.

아픔이 있음으로 해서 기쁨도 있다. 슬픔을 극복하지 못하면 보람도 환희도 없다. 감정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아니 손바닥과 손등의 관계다. 따로 떼서 생각할 수가 없다. 하나가 존재함으로써 다른 정서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고통이 힘들어 버리게 되면 결국 다른 좋은 감정들도 함께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꽃은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꽃이 피어나는 것도 지는 것도 너무 기뻐하거나 너무 서러워할 필요가 없다. 즐거움이 너무 크거나 별리의 아픔이 너무 깊으면 극복하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꽃이 피면 피는 대로 꽃이 지면 지는 대로 인정하고 수용하면 될 일이다. 그럴 때 비로소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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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멋 ⓒ 정기상

꽃은 는개에 젖어 있다. 꽃은 는개를 거부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반기고 즐거워한다. 햇볕이 내리쬐면 그것대로 즐기고 는개가 내리면 그것에 맞게 젖는 것이다. 인생도 이와 같이 한다면 더 바랄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꽃을 바라보면서 삶의 의미를 되새기며, 새로운 사실을 알아채는 것이 여행의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덧붙이는 글 | 사진은 전북 완주군에서 촬영(07.6.24)

덧붙이는 글 사진은 전북 완주군에서 촬영(07.6.24)
#는개 #꽃 #여행의 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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