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 시절엔 돋보기를 몰랐을까?

돌아가신 어머니, 그립기만 합니다

등록 2007.06.07 08:30수정 2007.06.07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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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외출이라도 하고 들어올 때면 우편함 가득 끼워져 있는 인쇄물들을 보게 된다. 요즘은 왠 인쇄물들이 그렇게도 많은지…. 챙겨들고 와서 버릴 것과 보관할 것을 구별하려고 대충 훑어보려고 하면, 미간을 찡그렸다 폈다 애써봐도 또렷하지가 않다. 이쯤되면 안방에 들어가 돋보기 안경을 가지고 와 끼고서야 찬찬히 정리가 된다.

나는 돋보기를 보거나 낄 때마다 잠시 생각에 잠기곤 한다. 때로는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릴 때가 더러 있다. 이유는 어머니와의 사연때문인데, 28여년 전의 일이다.

한 번은 어머니가 막내 딸네 집에 오셔서는, "야야~ 누구네 아무댁이는 안경을 사 꼈는데 뭐든지 훤하게 그리 잘 보인단다!"라고 말씀하시기에 나는 "엄마는 시력이 좋으니 시력이 나빠서가 아니고, 나이가 들어서 노안으로 잘 안 보이는 것이니까 안경을 껴도 안 된다"라고 말했다. 엄마는 그런가 하시고는 다시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어머니 돌아가신 지 17년이 지나 내 나이 오십대 초입이고 보니 오히려 돌아가신 그 몇 년간보다도 더 자주 뜬금없이 가슴이 '멍'해지면서 목젖을 타고 뭉클뭉클 뜨끈하게 올라오는 그 무엇이 생겨나 허리를 곧추세워야만 겨우 진정이 되어 내려간다.

그래 '돋보기'를 왜 몰랐을까? 시력이 나빠서 끼는 안경이 아니라 나이가 들어서 노안이 생겨 끼는 '돋보기'를 왜 그때는 몰랐을까! 돈도 몇 푼 안 되는 것을! 지금이라도 당장 하나 장만해서 끼워드리면 "야야~!! 훤하게 잘 빈데이~!!" 하시면서 환하게 웃으실 것 같은데….

그 모습을 볼 수 없는 불효한 막내 딸의 지금 모습을 엄마는 보고 계실까. 눈물로 아린 마음을 글로써 표현해봐도 다 부질없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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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나를 울리는 돋보기 안경 ⓒ 김정옥

어느 따뜻한 봄날, 지역에서 제일 큰 재래시장 건널목을 급히 건너서 버스정거장 쪽으로 가시는 어머니를 발견한 순간, 나는 이렇게 당신은 시장을 오가시면서도 행여 막내딸 번거로울까봐 연락도 안하셨구나 하는 시큰한 마음이 들었다.

"엄마, 엄마~" 부르면서 급히 뛰어가 엄마 어깨를 돌려 마주보는 순간, 갑자기 내 몸이 솜같이 가벼워지면서 엑기스 같은 끈적함이 등에 느껴지고 다리에 힘이 풀려 머릿속에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내가 왜 이러지? 분명 우리 엄마였는데 베이지색 한복에 쪽진머리, 은비녀까지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우리 엄마는 돌아가신 지 벌써 3년째인 것을 참…. 그날 한참을 난 북적대는 정류소 한쪽에 풀이 죽어 앉아 있었다.

6남매의 막내고 바로 위 오빠와도 12년차가 나는 띠동갑 늦둥이로 태어난 나는 엄마와는 46년이란 세월을 어긋나게 만난 모녀지간이다. 내가 젊을 때는 노인된 엄마 입장에서의 실생활 틈새를 너무 몰랐고, 이제 알 때가 되니 어머니는 이미 오래 전 세상을 뜨셨으니 그로 인한 늦둥이의 부모 그리운 사연은 말로는 표현하기 힘이 든다.

주변 친구들은 아직 부모님이 계신지라 때마다 친정간다고 할 때면 어딘가 텅 빈 허전한 것이, 더 나이 들어 노년이 되어도 잊을 수 없고, 채워지지 않을 것 같다. 그리운 내 어머니! 다시 불러볼 수만 있다면 원이 없을텐데…. 야속한 어머니는 꿈 속에서도 막내딸을 자주 찾아주시지 않으니 속상하다.

나는 1녀 1남을 두었는데 자식들에게는 항상 너희들은 부모 젊어서 좋겠다. 그 외에 부족한 것이 있으면 함께 채워가며 정답게 사면 된다고 말해주곤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국정넷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국정넷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어머니 #돋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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