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생활지도 왜?

이 시대, 학생과 교사 그 끈끈한 인연

등록 2007.05.21 20:09수정 2007.05.21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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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넘게 교직생활을 해 오면서도 학생들을 지도하는데 한계에 부딪히면 정말 회의스럽고 무기력해서 힘이 빠질 때가 많다. 지도를 하다가 하다가 안 될 때는 “그런 피[血統]가 있는 가 보다”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만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든다.

최근에 “여성이 불륜을 저지르는 유전인자가 있다”라는 연구가 나왔다지만 그건 비단 여성에 국한된 것은 아닐 것이며, 불륜에 국한된 것만도 아닐 것이다. 더 심한 범죄나 비행, 바람피우기, 노름 등….

심리학자들은 모든 인간은 타고난 생물학적이고 유전적인 요인에 후천적인 환경(사회문화적) 요인이 합쳐져서 한 사람의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선천적인 요소와 후천적인 요소 중 어느 부분에 더 가중치를 두느냐는 연구결과를 접하는 연구자 개인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어떤 연구들에서는 거의 수정될 때 인생의 궤적이 이미 그려질 정도로 선천적인 요소가 삶을 지배한다는 결과들을 접할 때 우리 교육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정말 절망감이 들 수밖에 없다.

결정론을 주장하는 심리학자들의 이론대로 이미 수정되는 유전인자에 의해, 아니면 뱃속에 있는 열 달, 혹은 3세나 7세까지 지능은 물론 성격, 사회성의 대부분이 이미 이런저런 형태로 결정된다고 보면, 초기 양육기에 영향을 미치는 부모나 보육원, 유아원 교사나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얘기이다. 그러면 초, 중, 고등학교 단계에서는 교육과정에 편성된 교과 학습을 지도하면 된다는 결론인데 그게 그렇지를 않다는 얘기이다.

자기가 먹는 과자를 알맹이는 입에 까 넣고 그 껍질은 자신이 있는 곳이 교실이든 복도든 길거리든 간에 하등의 망설임 없이 바닥에 마구잡이로 버리고 있고, 자신의 신체 안전에 대한 것부터 사용하는 말씨도 도저히 교육을 받는 학생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의 욕설이나 비속어를 예사로 사용하기도 한다.

공동생활을 하면서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를 전혀 할줄 모르는 많은 아이들을 접하면서 과연 우리 교육이 담당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혼란스럽기까지 한 것이다.

그럼에도 배우는 과정에 있는 “학생”이라는 말이 “한없이 열려 있는 가능성이나 잠재력”을 의미한다는 것 때문에 희망을 가지고 다시 시작하고 또다시 시작하고 하게 되는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자신이 경험한 것이야 말로 가장 확실한 지식이 된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지만 인간이 이 세상 모든 걸 다 경험할 수는 없다. 그럴 경우 여러 가지 간접 체험을 통해 미루어 알 수도 있으련만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그렇게 입이 마르고 닳도록 얘길 해 줘도 정작 제대로 듣고, 마음에 새겨야 되는 얘들은 ‘응! 선생 니는 떠들어라. 나는 내 쪼대로 떠들고 있을 테니까’(실제 말로 그렇게 하진 않지만 그 아이들의 행동이 그렇다)하고 있고, 실제 그런 말을 들을 필요가 없는 잘하고 있는 아이들만 눈을 말똥말똥 하며 새겨듣고 앉아 있는 걸 보면서 자주 체념적인 심정이 된다.
저런 애들이 크면 저런 어른이 되겠지 하고 눈에 훤히 읽힘에도 지도에 효과가 없어서 기운 빠질 때가 많다는 얘기다.

하다 하다 안되면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그래? 선천적으로 저런 피가 있는가보다’하고 포기 해 버릴 수도 있고, “그래 아이가 저래 자라도록 놔둔 부모가 골뱅 들지…”하고 무심해 질 수도 있다.

솔직히 담임 맡아서 많아야 1, 2년. 진급이나 졸업시키고 나면 ‘지하고 내 하고 몇 번 볼 거라고’ 하는 생각도 든다. 하물며 일주일에 교과목 두어 번 들어가서 씨도 안 먹히는 잔소리 해봐야 저거 귀 시끄럽고 내 입 아프고… 학생지도를 포기할 수 있는 핑계는 수도 없다.

그러나 교사를 그만두면 모르되, 하고 있는 동안은 포기할 수 없다는 게 교사들의 “화두” 이니 문제는 지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교사로서의 직무유기라는 투철한 직업의식 이전에 그런 걸 못 봐 내는 사람들이 대다수 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다.

세상이 아무리 요령피우고 대충대충 현실과 타협하고 넘어가도 “아직 배우는 학생들에게 그렇게 가르칠 수는 없다”는 게 교사들의 입장인 것이다.

사회에서 원칙이 통하고, 이기적이기 보다는 함께 살아가는 다른 사람의 삶도 돌아봐 줄줄 알며 사회적으로 약자를 보호해 주려는 정의감을 갖고 자라도록 해주고 싶은 것이다.

이 시대는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물결 아래 있고, 학생들이 학교 교문 밖만 나서면 외모 지상주의에 모든 상업적인 유혹에 노출되어 있다.

대한민국에서 출간되는 여성지를 한번이라도 들춰 본 사람이라면 이해가 갈 것이다. 옷, 가구, 화장품 등 글씨를 몰라도 책을 보기에 별로 지장이 없다, 그나마 활자로 들어가 있는 내용도 유명지도층 인사나 연예인들의 스캔들 등 매우 선정적이고 말초적인 호기심을 유발 하는 기사들로 꽉 차있다.

학교라고 그런 사회에서 뚝 떨어져 나와 어디 섬으로 홀로 존재할 수 없는 한 그러한 사회 풍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몸담고 있는 개개의 가정이 이러한 사회 속에 속해 있고, 그 구성원인 가족들이 이러한 사회 풍토를 만들어 낸다고 보면 학교에서 교사의 지도력이 미칠 수 있는 영향은 정말 하찮은 것이다. 그러함에도 교사들은 욕심을 부린다.

이 아이들은 그들 부모세대에 비해 살아온 날보다는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고, 또 60-70씩 나이 든, 더 이상 변화 불가능한 노인들이 아니라 뭔가 변화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희망 때문에 어떨 때는 정말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욕심을 버리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학교에서 ‘하지마라’는 것만 골라서 해 오면서 아침 학교 들어서자마자 학생부 선생님이나 누구 선생님들 눈에 뜨일까 싶어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마음 졸이고 눈치 보면서 들어서는 떳떳하지 못한 아이들….

한창 나이에 튀고 싶고, 좀 색다르게 자신을 표현해보려는 마음이 안쓰럽기도 하지만 아침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학교라고 등교하면서 눈치나 살피고 있는 아이들이 하루종일 학교에서 얻고 가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자문해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목숨을 걸고 지키고자 하는 게 과연 어떤 것일까? 그리고 그럴 만큼 가치를 지닌 것인가?

어차피 모양이나 색깔이 제한된 교복을 입고 등교하면서, 머리를 파마하고 오거나 염색을 해서 노랗게 빨갛게 물들이고 오는 것이고, 화장, 형형색색의 매니큐어, 특색 있는 양말, 원색의 신발, 안경테 착용 등….

교복을 뭣 같이 줄여서 활동성은 고사하고, ‘내 가슴 크다. 봐-라’ 하는 듯 앞으로 내밀대로 내밀고, 허리 잘록 들어가게 옷 붙여서 입고, 엉덩이 터질듯이 해서 자신의 몸매를 드러내는데 그렇게 목숨을 건다는 것이다.

남학생들은 발을 끼기도 어려울 정도로 줄여 입은 바지, 머리에 젤 발라서 넘기고 담배 피우고 술 마시며 어른 흉내 내거나, 오토바이 뒤에 남자친구 두어 명 태우거나, 여자친구 태워서 죽을 둥 살 둥, 속력 있는 대로 내고 신나게 달리면서 온 길거리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일 등이다.

중학교에서 20년 넘게 근무를 했는데 설마 청소년기의 심리적 특성을 이해 못 해서 그런 것이 결코 아니다. 목숨을 걸 데가 그런 것밖에 안 되도록 자라게 한 우리 사회의 세태나 풍토. 아이들의 양육환경이 너무 기가 막히고, 아이들의 문제는 곧 우리 어른들의 문제임을 절감하게 되는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기본적인 사고나 태도를 부모로부터 물려받아야 함에도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본 것도 배운 것도 없는 채 마음 내키는 대로, 기분 내키는 대로 하루살이처럼 살아가도록 방치된 아이들.

그런 학생들의 유형을 몇 가지로 분류 해보면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대화가 잘 안되는 노인들과 살고 있거나, 큰집, 삼촌 집으로 떠돌아다니며 덤으로 얹혀서 눈치 보며 살아가는 경우가 그 한 가지이다.

그 다음이 이혼이나 별거하고 있는 부모를 둔 자녀의 경우이다. 여러 가지 가치관이 혼란하고 아직 정체성이 형성되지 않은 청소년은 학업이나 진학, 이성문제, 친구관계 등 자신의 문제만 해도 복잡하기 짝이 없는데 냉랭한 가정 분위기 속에서 숨 막힐 듯한 긴장과 갈등을 오랜 기간 겪는 경우, 십중팔구 어긋나는 경우가 많다.

그 다음이 부모가 돈 번다고 아이를 방치 한 경우이다. 이런 경우는 우선 부모들 자체가 ‘대한민국 사회에서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경우가 많고, 자녀에게 가져야 할 관심과 사랑 대신에 물질로 보상해 준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 경우의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이 갖지 못하는 고급 물품들로 아이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거나 아니면 부모의 생각을 매우 경멸하고, 싫어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부모의 사고방식을 닮아 가는 경우가 많다.

또 이러한 경우 부모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만 벌면 된다는 생각에 사로 잡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불건전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해결사나 조직 폭력 같은 음성적 직업을 비롯하여 나이트클럽이나 술집, 노래주점 같은 유흥업소 운영이 그러 한 예가 된다.

요즘의 학교생활 부적응 학생은 먹고 살기 위해 자녀를 본의 아니게 방치하는 생계 유지형 가정이나 시설 등에 속하는 아이들보다는 이혼으로 인한, 혹은 경제적으로는 풍족한 가정의 자녀인 경우가 많다. 학교에 오시는 부모님들을 보면 일단 외형적으로 엄마는 연예인 못잖은 멋쟁이에, 아버지는 사장님이 남부럽지 않게 신수 훤해 보이는 경우들이 허다하다. 그러나 부모의 가치관 교육이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 오히려 재력이 아이를 망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 주기도 한다.

물론 학생들의 행동과는 별도로 학업이 우수한 학생도 간혹 있지만 대부분 학생들은 전혀 학업이 따라주지 못하여 기초 학력이 부진하고 학업에 흥미가 없다보니 다른 금지하는 부분에 기를 쓰고 몰입하는 것이 공통적인 특징이다.

아동에서 어른으로 가는 시기, 사춘기 한때의 반항이나 규범에 대한 거부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아직 가치관이나 문제 해결력이 부족한 시기 한때의 잘못으로 인생이 꽃피기도 전에 꺾여져 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몇 년 전 실업계 학교 기숙사에서 친구를 폭행한 경우처럼 친구들끼리의 패싸움으로 목숨을 잃기도 하고, 친구를 죽인 범죄자가 되기도 한다.

일전에 중학교 남학생이 임신한 여자친구를 여러 차례 칼로 찔러 죽여 아직 인생이 채 꽃 피어보기도 전에 삶의 좌절을 겪는 경우도 있고, 여학생들이 아이를 출산하거나 유기하여 사회적 물의를 빚기도 한다. 게다가 어떤 경우 특별히 별난 아이가 아닌,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학생이 어느 날, 아파트에서 투신을 하여 싸늘한 주검으로 우리 앞에 놓여진다는 점 때문에 사람들은 더 충격을 받는다.

중학교 시절 엄청 애를 먹여도 졸업해 나가기만 하면 고등학교 시절에 많이 철이 들기도 하긴 하는 모양이다. 간혹 길거리에서 만날라치면 “선생님 그때는 왜 그렇게 철이 없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쓸데없는 일들로 선생님들 애먹이고 속 썩게 하고…”하고 겸연쩍게 얘길하는 제자들을 만나기도 한다.

그럴 것이다. 개인의 능력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 정상적인 성인으로 성장해서 여러 곳에서 제각기 한몫들을 해 내는 걸 보면 말이다. 물론 특수하고 예외적인 경우가 있겠지만 대다수 사람은 머리모양, 복장 등의 외양적인 모습이 그 사람의 사고방식을 반영하고 있기가 일쑤이다.

교사를 예로 들자면,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데 지장 없는 복장, 치마길이가 너무 짧아도 안 되고, 여름에 아무리 더워도 팔 부분의 소매가 없는 옷은 잘 입어지지 않는다. 옷 색상도 되도록 화려하기 보다는 수수한 색상을 선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교사들이라고 수녀도 아니고 고리타분한 복장만 하라는 법은 없다. 시내에 나가면 정말 화려하고, 유행의 첨단을 가고 있는데 교사도 아이들에게 화려하고 예쁜 옷 입은 모습을 보여주어 감각을 길러주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얘기를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교사는 유행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건 옷이나 머리 모양의 패션을 주도하는 사람들의 상업적 이익과 맞물려 잘 돌아가고 있고, 연예인이나 최첨단의 유행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의 몫이다. 또 자라나는 아이들의 호기심이란 그런 건 특별히 안 가르쳐도 너무나 잘 따라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반면, 학업이나 올바른 가치판단을 위한 도덕성 기르기, 인격형성을 위한 일들은 굳은 의지와 부단한 노력을 요구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학교는 가만히 두어도 너무나 잘 따라하는 그런 분야 말고 무심코 두면 아무 생각 없이 따라 해 버릴 그런 일에 제동을 걸고, 올바른 의미를 가르치고 문제점을 지적하는 일을 담당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게 교육의 몫인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생활지도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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