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즘 혹은 폭력에 대한 단상

문부식 형에게

등록 2002.07.14 01:05수정 2002.07.15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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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오랜만이군요.
요즘 날씨가 꽤 더운데 지내기가 어떠신지요.
식사를 할 때 유난히 땀을 많이 흘리는 형을 기억하며 빙그레 웃습니다.

나도 땀을 꽤 많이 흘리는 편이지요.
가끔 형과 함께 지냈던 순간들을 추억하며 지내기도 했는데, 오늘은 추억을 함께 나누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이 조금 아쉽기도 합니다.

먼저 조선일보에 실린 형의 인터뷰 기사를 아주 잘 읽었습니다. 여전히 계간 <당대비평>도 잘 만들고 있고, 무엇보다 단행본이 나온다니 축하드립니다.

곧 나온다는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의 주요한 내용은 주로 '우리 안의 파시즘'에 대한 성찰인 것 같은데 인터뷰 내용은 약간 왜곡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의대 사건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와 견해를 조선일보가 아주 드높이 샀던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 동안 <당대비평>을 통해서 끊임없이 '우리 안의 파시즘'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던 형이기에 이번의 문제 제기도 그 연장선에 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먼저 나는 형의 문제 제기의 방식에 대해 동의합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개인이 자신의 견해나 혹은 이념과 사상을 마음대로 제기하고 표현할 수 없다면,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아닌 것이지요. 하필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했느냐고 비판하는 측들도 있는데 나는 그것도 문제될 것이 없다고 봅니다.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하든 한겨레신문과 인터뷰를 하든 그것은 순전히 개인의 자유의지와 관련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두번째 "민주화운동이라도 면책특권은 없다"라는 형의 견해에도 동의합니다. 아울러 합법을 위장하고 가장한 파시즘 체제 정권이나(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전두환 정권을 비롯한 군부독재정권) 국가의 비인도적인 범죄에도 면책특권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면책특권의 뒤에 숨어서 온갖 범죄를 저질렀던 자들이 여전히 기득권을 누리고 있지 않습니까? 인터뷰를 읽어보면 폭력의 면책특권을 받은 사람들이나 기관이 오로지 동의대 학생들이나 과거 민주화운동을 했던 사람들뿐이라는 오해의 소지가 충분했습니다. 그것은 균형의 문제에 있어서 상당히 어긋나는, 국가 폭력의 정당성 쪽으로 저울추가 기울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세번째 "우리 안의 폭력부터 성찰해야 국가 폭력도 비판할 수 있다"는 형의 견해는 내 견해와는 다르더군요. 이것은 순서와 절차의 문제인데 '우리 안의 폭력'을 성찰하는 것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하지만 국가의 폭력부터 성찰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생각합니다.

국가의 폭력은 군대, 경찰, 법으로 중무장하고 개인을 철저하게 파괴합니다. 그것을 나는 중편소설 <친구는 멀리 갔어도>에서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 안의 폭력'에 대해서는 1997년 6월에 장편소설 <지상의 시간>을 통해 처절할 정도로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주목받지 못하고 말았지만, 나는 늘 우리 안의 파시즘과 폭력에 대해 늘 고민해왔습니다.

<지상의 시간> 속에는 프락치로 잡혀온 사람이 학생들한테 고문당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주인공이 그 사람을 무조건 석방해줍니다. 이것은 내가 학교를 다닐 때 겪었던 실화인데 내 입장에서는 그것을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에 무조건 석방했던 것입니다.

그 장면의 앞뒤 맥락은 시간이 날 때 소설을 읽어보시면 될 것입니다. 또한 형은 "사회적 논의 과정에서 국가 폭력의 부당성을 주장할 수 있다"라고 했는데 그게 진실입니까? 박종철이가 물고문을 당하고 있을 때 그럼 우리는 사회적 논의를 하고 있었어야 한다는 겁니까?

이한열이가 쇠파이프에 맞아 죽고 있을 때 사회적 논의를 거쳐 국가 폭력이 부당하니 이제부턴 싸워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어야만 하는 겁니까? 폭력의 순간 순간을 겪어낸 사람의 주장치고는 앞뒤가 맞지 않았습니다.

아울러 지난 역사에 있어서 보도연맹 관련자 학살사건, 전국 각지에서 자행된 양민학살 사건은 여전히 폭력적으로 은폐되어 있습니다. 이런 국가 폭력에 대해서도 우리 안의 폭력을 먼저 성찰한 뒤에야 문제를 제기해야 마땅한지 묻고 싶습니다.

네번째 "우리 행동으로 무고한 생명이 희생된 데 책임을 느껴 부산 미문화원 사건을 민주화운동으로 보상신청을 할 수 없었다"라고 했는데 참 잘 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무고한 생명을 희생시키지 않고 민주화운동을 했는데도 신청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간명합니다. 학생시절에 민주화운동을 할 때, 무슨 보상이나 명예회복을 바란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에는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의 활동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다섯째, "우리 안의 파시즘"이란 무엇입니까? 나는 어떤 주장에 대해 일체화를 강요하는 것이 파시즘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아가 나와 견해가 다르면 폭력적으로 공격하고 '왕따'시키는 것이 "우리 안의 파시즘" 아니던가요?

그런 면에서 나는 "우리 안의 파시즘"에 대해 거의 증오에 가까운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파시즘이란 무지개를 부정하는 논리이기 때문입니다. 파시스트들은 무지개가 일곱 색깔인 것을 도무지 견뎌내지 못합니다. 무지개를 온통 파란 색이나 흰색으로만 판단하고 그것을 여러 사람들에게 혹은 국민들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이 바로 파시즘이죠. 파시스트들은 무지개에 붉은 색이 있다고 해서 무지개를 무조건 붉은 색으로만 보는 견해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 의도나 견해가 우리 내면 속에 존재한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 안의 파시즘"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얼마 전에 나는 <노사모>가 조선일보 절독운동을 하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냈었습니다. 물론 내 의견이 채택된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솔직히 나도 학생시절엔 나의 논리를 후배들에게 강요한 적이 많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내 안의 파시즘'이었습니다. 그 후배의 삶에 결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면서 학생운동을 일방적으로 강요했던 순간들을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여섯째 "자기만 옳다고 확신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선민(選民)의식과 메시아 의식이 그것이다. 문씨는 바로 이 독선적 비판론에 조용한, 그러나 분명한 '아니오'를 던진 것이다"라는 조선일보의 7월 12일자의 사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자기만 옳다고 확신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선민(選民)의식과 메시아 의식으로 똘똘 뭉친 언론기업이 바로 조선일보 아니던가요? 조선일보 얘기가 나왔으니까 조금 더 얘기하겠습니다.

나는 생명과 평화를 지키기보다는 생명을 경시하고 평화를 파괴하는 어떤 논리를 파시즘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번 서해교전에 관련된 조선일보의 태도는 "왜 전쟁을 하지 않았는가?"로 요약될 수 있으며 그것이 바로 파시즘을 교묘하게 드러내는 행위라고 나는 판단합니다.

조선일보야 예전부터 파시즘에 경도되어 있는 언론기업이니까 탓하진 않겠습니다. 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는 사람이니까요. 다만 조선일보의 파시즘적 논리에 동의하지 않을 뿐입니다. 그것은 조선일보의 자유이니까요.

새벽 한 시가 넘었습니다. 오늘이 일요일이라고 아이들이 텔레비전에서 방송하고 있는 스필버그 감독의 <인디아나 존스>를 보고 있습니다. 형과 내가 처음 만났을 때에는 아이들이 없었는데……. 언젠가 형이 무던히도 딸 자랑을 하던 게 생각나 그냥 웃어봅니다.

우리 건강하게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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