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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듣기 등록 2020.04.21 15:43 수정 2020.07.03 12:48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오후 청와대에서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피해에 대한 지원금 대상 문제를 놓고 기획재정부와 더불어민주당 간의 기 싸움이 점입가경이다. 지급대상 범위를 둘러싼 당정 간의 입장차는 기본적으로 재난에 대한 보상의 기준을 인식하는 철학의 차이에서 오는 듯하다.
 
4·15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은 긴급재난지원금을 전 국민에게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이튿날 다시 공언했다. 같은 날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재난지원금을 위한 2차 추경 편성안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소득 하위 70%에게만 지급한다는 기존 방침을 역시 재확인했다.

당·정 간의 좁혀지지 않는 평행선은 20일 기획재정부 확대간부회의까지 이어졌다. 전날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정례 고위 당·정·청 협의회에서는 전 국민 대상 지급을 주장하는 더불어민주당 주장에 힘이 확실히 실리는 듯했다.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을 소득 하위 70%에서 전 국민으로 확대하겠다는 것은 더불어민주당의 총선 공약이기도 했다.
 
반면 기획재정부는 재정 건전성 유지, 별도 추경 편성에 대한 대비 등을 이유로 줄곧 하위 70% 대상 지급안을 견지해왔다. 20일 있었던 기획재정부 확대간부회의에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70% 기준은 지원 필요성, 효과성, 형평성, 제약성 등을 종합 검토해 결정된 만큼, 국회에서 동 기준이 유지될 수 있도록 최대한 설명, 설득 노력을 기울일 것"을 당부했다.

홍남기 부총리는 이 방침에 대해 "무조건 재정을 아끼자는 게 아니"며 "더 어려운 상황에 대비 추가 재정 역할과 이에 따른 국채발행 여력 등도 조금이라도 더 축적해 놓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무엇보다 "우선순위"에 집중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지원금 지급 대상을 놓고 벌어지는 논쟁은 한국만의 일은 아니다. 일본에서도 코로나19 대응 긴급 경제 대책으로 대국민 지원금 지급을 발표했지만 그 범위를 놓고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였다. 4월 초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자신의 후임으로 거론되는 기시다 후미오 자민당 정조회장(정책위의장)과 만난 자리에서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가구를 대상으로 현급 30만 엔(340만 원) 지원 방안을 결정했다. 이 결정은 7일 긴급경제대책에 포함되는 방식으로 공식화됐다.

일본 언론들은 일본 전체 5800만 가구 중 1000만 가구가 이 조치에 해당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이 결정은 보름이 지난 후 국민 1인당 10만 엔(113만 원)씩 지급하는 방안으로 급히 수정됐다. 논의 차원의 수정이 아니라 이미 각의(국무회의)를 통과한 보정예산(추경예산)을 다시 짜야 할 정도로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고 아베 총리는 결국 혼란 초래에 대해 사과까지 해야 했다.
 
정치적으로 이 해프닝은 아베 독주 시대가 서서히 저물고 각 계파가 포스트 아베를 향한 각자도생의 길로 들어서는 조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재난에 대한 보상의 성격과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의 이번 대국민 지원금 정책 수정 해프닝에는 중요한 논점이 내포돼 있다.

보편적 보상
 

코로나19 관련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한 2차 추가경정예산안 관련 서류가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의안과 앞에 놓여 있다. ⓒ 연합뉴스

 
보상은 복지와 다르다. 복지는 천부인권에 해당하는 인간의 기본권으로 특별한 동기가 없어도 부여되는 기본적 사회보장이다. 반면, 보상은 국가나 단체가 소속 구성원에게 주어진 재산상의 손실을 갚아 주기 위하여 제공하는 사회보장이다. 복지가 정상적, 평상시의 사회보장이라면 보상은 비상시, 재난시의 사회보장이라고 할 수 있다.
 
재난 가운데는 특정 사회적 계층에 집중되는 특별한 재난이 있다. 가뭄이나 홍수, 또는 산불 등은 재난으로 인해 직접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특정 직업을 가지고 있거나, 특정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직접적 손해를 입히는 재난이다. 홍수로 인한 침수는 특정 지역에 사는 사람이 입는 피해지 모두가 직접 겪는 고통은 아니다. 가뭄으로 인한 흉작은 특정 직업군에게 치명적 피해를 입히는 경우고 나머지는 차후 농산물 가격 상승 등으로 인한 간접적 피해는 입을 수 있으나 필연적이고 직접적 손실을 겪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재난의 경우 모든 국민이 보상을 받아야 할 이유도 없고 해당 피해자들에게만 선별적 보상이 주어지면 된다. 똑같은 시민권을 가지고 있으면서 특정 상황에 놓여 있었다는 이유로 부당하게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반면,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에 해당하는 큰 전염병으로 인한 재해는 지역과 직업, 계층에 관계없이 모두가 재해의 원인 앞에 노출돼 있고, 모두가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보편적 재해'다. 모든 시민이 실제 감염이 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사회적 격리, 이동의 제한 등으로 인해, 구속으로부터, 제약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기본적 시민권을 박탈당하거나 제한당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재해에 대해서는 '보편적 보상'을 받는 것이 정의에 부합한다.

코로나19의 경우 본질적으로 보편적 재해에 해당하기 때문에 보상도 당연히 보편적 보상을 실시하는 것이 합당한 이유다. 복지에도 선별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가 구별되고 성격에 맞게 적용되어야 하듯이, 재난 보상에 대해서도 이처럼 선별적 보상과 보편적 보상이 구별되고 해당 경우에 맞게 적용되어야 한다.
 
소득 하위 70% 가구만 지원금을 지급하겠다는 정부안이 모순이라는 것은 바로 이 이유에서다. 코로나19 재난은 분명 보편적 재난이고 따라서 보편적 보상이 이뤄져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번 코로나19 대응으로 정부가 내놓은 부양책에 대해 상위 30%가 느끼는 박탈감은 바로 이런 보편적 가치의 문제에서 자신들이 배제되고 있기 때문이다. 복지의 차원에서 육아, 교육, 건강, 노후 등이 보편적 문제이기 때문에 보편적 복지가 적용되어야 하듯이 재난 보상의 차원에서도 전염병과 같은 보편적 문제에 대한 보상은 보편적이어야 한다.
 
보편적 보상에 관한 철학적 문제가 그렇다면 방법론적 차원에서는 어떤 문제가 있을까? 보상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뤄져야 할까? 세금을 감면하는 방식으로 간접적인 보상을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부의 입장에서는 당장의 큰 지출 없이 보상 혜택을 제공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반면 시민들이 당장 얻을 수 있는 혜택은 적고 따라서 그 사회적 효과도 미미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수입의 급감으로 생기는 위기에 대한 보상책으로 지출을 할 경우 얻을 수 있는 혜택을 준다는 것이 앞뒤가 맞지 않아 보인다.

철학과 의지
 

지난 3월 27일 코로나19 경기부양법 서명식에 참석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연합뉴스/AP

 
그래서 나오는 개념이 재난기본소득이다. 보상이 세금감면이 아닌 소득의 형식으로, 즉 지출한 돈에 대해서가 아니라 지출할 돈의 형식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말하자면 보편적 보상을 직접적 현금으로 지급한다는 뜻이다. 일각에서는 재난수당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수당이란 뭔가 추가적으로 행해진 적극적 행위에 대해 덤으로 얻는 보수를 뜻하기 때문에 재난에 대한 보상의 개념으로 쓰기는 적절치 않아 보인다.

결국 보편적 보상을 세금 감면이 아닌 소득의 형식으로 제공하는 것을 재난기본소득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재난기본소득'이라는 표현보다 '재난 지원금' 또는 '피해 지원금'이라는 표현이 더 많이 등장하는 것은 일종의 레드 콤플렉스다. 똑같은 개념임에도 국민이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라기보다 시혜의 뉘앙스를 풍김으로써 수급받는 국민 입장에서 적극적 요구보다 소극적 수용을 유발하게 된다. 
 
2008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진보적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세금 감면 같은 간접적 방식보다 정부가 직접 현금을 지급하는 방식이 효과적"이라면서 재난기본소득을 통한 보상을 지지하고 있다. 그렇지만 현금 지급 방식의 보상책이 진보적 학자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공급주의로 잘 알려진 보수주의 경제학자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교수 역시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한 경기 부양책으로 현금을 직접 지급하는 방식이 효과적"이라고 주장한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의 '헬리콥터 드롭'(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듯이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 시중에 뿌리는 것)은 이제 코로나19에 대한 정부 부양책의 상징적 이미지가 됐다. 반드시 재난 상황이 아니더라도 기본소득에 대한 찬성론자들은 미국 기업인 가운데도 있었다.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 이사장인 빌 게이츠, 페이스북 최고경영자 마크 저커버그, 테슬라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 등도 기본소득의 찬성론자들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17일, 코로나19로 위기에 빠진 미국 경기를 회복하기 위해 국민 1인당 1000달러(124만원)를 지급하겠다고 발표했고 실제로 이달 15일부터 단계적으로 1인당 1200달러씩 지급되고 있다. 실행하는 과정에서 깔끔하지 못한 일처리와 실수들도 나왔다. 보편적 원리에 맞는지도 의문이다. 공화당 출신의 대통령이 내놓은 부양책에 민주당 지지자들이 더 환호를 보내고 공화당 내부에서는 불만도 나온다.

이 모든 것이 잘 다듬어지지 않은, 급조된 일회성 부양책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뭔가 변화는 오는 듯하다. 미국의 변화가 불쏘시개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한국에서 이념적 콤플렉스를 벗어나 비로소 재난기본소득에 대해 본격적인 사회적 논의가 전개되고 있는 것도 미국의 이 불쏘시개 때문 아닌가?
 
진보는 늘 위기에 대한 응전을 통해 이뤄졌다. 포스트 코로나는 불확실성에서 시작한다. 모든 것은 철학과 의지에 달렸다. 코로나 해결사로 국제사회로부터 찬사를 듣고, 이제는 180석을 거느린 거대 진보여당 시대를 맞이한 한국이 앞으로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모든 책임은 이 정부가 아닌 이 정부를 만든 국민의 몫, 이 여당이 아닌 이 여당을 만든 국민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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