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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듣기 등록 2020.03.03 15:43 수정 2020.03.03 15:43
소주는 고려시대에 몽골이 한반도를 침략할 때에 전래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전해오는 문헌 중에서 가장 오래된 '소주'의 표현은 <고려사> 우왕 원년(1375년)에 등장한다. "사람들이 검소할 줄 모르고 소주나 비단 또는 금이나 옥 그릇에 재산을 탕진하니 앞으로 일절 금한다"고 했다. 적어도 우왕 이전에 소주가 도입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원나라에서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과거에 합격했던 목은 이색(1328~1396)은 <목은집>에 소주의 별칭인 아라길(阿刺吉)을 맛보면서 "반 잔 술 겨우 넘기자마자 훈기가 뼛속까지 (强吸半杯熏到骨)" 스민다는 시를 남겼다.

허준은 <동의보감> 액탕편에서 "소주가 원나라 시절부터 시작되었고, 맛이 매우 맵고 극렬하여 많이 마시면 사람이 상한다"고 했다. 이수광의 <지봉유설>(1613년), 서유구의 <임원경제지>(1827년)에서도 소주가 원나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한국 소주의 원류를 찾아 몽골을 찾아갔다. 2014년 6월의 일인데, 이제 다시 그 일을 회상하는 것은, 그때 바로 기록을 남기지 못하기도 했거니와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지금 가만히 앉아서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국 소주의 원류를 찾아 간 몽골
 

아이락과 아르히를 만들기 위해서 머물렀던 돌강아이막의 게르 모습 ⓒ 막걸리학교

 
우리의 전통 소줏고리는 옹기로 된 것인데, 몽골의 것은 어떻게 생겼을까? 우리는 쌀과 누룩을 섞어 발효주를 만들어 증류하는데, 몽골은 어떤 술로 증류를 할까? 몽골에서 도입되었다는 증류 기법은 어떤 형태이며, 몽골을 찾아가면 그 기법을 볼 수 있을까? 그리고 그 기법을 통해서 한반도로 전래된 증류 기법을 추정해볼 수 있을까? 등이 궁금했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 도착하여 박물관을 찾아갔다. 오래된 증류기나 발효 도구를 볼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그곳에 말가죽으로 만든 술자루와 술을 젓는 막대가 있었지만, 증류 장비는 따로 없었다.

현대 몽골의 주민들이 주로 마시는 술은 저도주로 맥주, 고도주로 러시아 문화의 영향을 받아서 보드카가 있었다. 한때 한국 카스 맥주가 몽골 맥주 소비의 1위를 차지했는데 현재는 몽골에서 직접 만들어지는 맥주에 순위가 밀렸다.

몽골의 전통술로는 아이락(аираг, airag)과 아르히(архи, arkhi)가 있다. 아이락은 동물의 젖으로 만든 발효주인데 흔히 마유주로 통한다. 그런데 꼭 마유만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어서 소, 양, 염소, 야크, 낙타의 젖을 사용하기도 한다.

아르히는 아이락을 끓여서 증류한 술로 동물 젖으로 만든 시밍 아르히와 곡물로 만드는 차밍 아르히가 있다. 몽골의 전통 아르히는 시밍 아르히이고, 차밍 아르히는 러시아에서 도입된 것이라고 한다. 술을 끓여서 증류주를 얻는 기술은 아랍에서부터 퍼져나갔기에 증류주의 아랍어인 '아라크(Araq)'에서 아르히라는 말도 생겨났다. 목은 이색이 아라길(阿刺吉)이라고 부른 것도 유사한 발음 속에 있다.
 

발효통에 담긴 아이락을 젓고 있다. ⓒ 막걸리학교

 
마유주인 아이락은 울란바토르 재래시장의 식료품 가게에서 쉽게 맛볼 수 있었다. 커다란 플라스틱 통에 담겨있었고, 막대로 연신 저어 페트병에 담아서 팔았다. 유목민들의 거주 공간인 게르(Gar)에서는 여전히 아이락을 만들고, 이를 증류하는 아르히도 만든다고 했다. 그래서 품질 좋은 아이락이 생산된다는 돌강아이막 지역을 찾아가게 되었다. 돌강아이막의 한 게르에서 나는 유목민과 나흘 동안 함께 생활하면서 아이락과 아르히를 만들어보았다.

정성이 많이 들어가는 귀한 음료

내가 머문 유목민의 게르는 초원 위에 뙤똑 한 가구만 있었다. 게르를 중심으로 500m 반경의 초지에서 양과 소와 말을 키우면서 살았다. 2~3개월이 지나면 초지의 풀이 줄어들기에 또 이동한다고 했다.

게르 안에서는 부부 그리고 아들 둘, 딸 둘로 구성된 한 가족이 살고 있었다. 근처에 부모님이 살고 있어서, 하루는 부모님이 놀러오기도 했다. 게르는 이동식 둥근 텐트인데, 게르 가운데에 나무 기둥 하나를 세우고 나서, 서까래 역할을 하는 나무 막대를 접이식 나무 외벽틀 위에 세우고, 옷을 입히듯이 천막으로 천정과 외벽을 씌워서 만들었다. 2시간이면 작은 게르를 퍼즐처럼 해체하고 다시 세울 수 있었다.
 

몽골 게르 안의 모습. 왼편에 아들은 아이락 발효통을 젓고 있고, 가운데 화덕에서는 어머니가 시밍 아르히를 증류하고 있다. ⓒ 막걸리학교

 
게르에는 출입문이 하나 있고, 게르 중앙에는 화덕과 굴뚝이 놓여 있고, 화덕 옆쪽으로 간단한 부엌 살림이 있었다. 출입문 바로 옆에는 아이락을 만드는 플라스틱 발효통이 있고, 입구에서 가장 먼 안쪽에 침대가 놓여 있었다. 침대 옆에는 작은 기도단이 있어 달라이라마 사진이 있고 그 앞에 정화수가 놓여 있었다.

식구들은 게르를 드나들 때마다 문가의 발효통에 담긴 아이락을 막대로 저어주었다. 아이락을 발효시키려면 3천 번 이상 막대로 저어줘야 한다. 반복적으로 저어주면서 지방이 덩어리지지 않게 하고, 유당 분해 효소인 베타 갈락토시데이스가 원활하게 유당을 단당류로 분해하게 하고, 유산균과 효모를 활성화하도록 돕는다. 완성된 아이락에서는 알코올 기운을 느끼기 어려웠고, 약간 신맛이 도는 요구르트처럼 느껴졌다. 일반적으로 게르에서 만들어지는 아이락에는 2% 정도의 알코올이 들어있다고 한다.

게르에서 먹는 식품은 주로 고기와 유가공 식품들이었다. 채소나 쌀은 주식이 아니었다. 초원이라 우물이나 수도가 없어서 세수도 간신히 하고 머리는 아예 감을 생각도 못했다. 1년 강수량이 100~200㎖밖에 안 되는 건조한 초원이라서 습한 기운이 전혀 없었다. 이곳에서는 곰팡이를 피워 누룩을 만들 수도 없고, 술빚을 곡물도 안 보였다. 오로지 술이 되는 당분을 찾을 수 있는 곳이란, 동물의 유당이 전부였다. 동물의 젖으로 요구르트도 만들고, 치즈도 만들고, 아이락도 만들었다.
 

게르의 화덕 위에서 증류하면서, 냉각수를 윗 대야에 붓고 있다. ⓒ 막걸리학교

 
게르 안에서는 아르히도 만들 수 있었다. 화덕 위에 올려놓은 대야에 아이락을 붓고, 대야에 위 아래가 뚫린 긴 원통을 세우고, 원통 위에 다시 냉각수를 담은 대야를 올렸다. 여기에 소주를 받을 수 있는 끈 달린 냄비를 원통 속에 매달아서 증류된 알코올을 받았다.

원통의 외벽 양쪽에 걸개못이 있어서, 그곳에 냄비의 매다는 끈을 걸었다. 원통과 윗대야 사이에는 증기가 새지 말라고 천을 둘러 끈으로 묶었다. 아주 간단하게 증류주 시밍 아르히가 얻어졌다. 맛은 소주라고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알코올 도수가 10도쯤 될까 싶을 정도로 싱겁고 담백했다.

나는 발효가 된 아이락을 게르의 어린 아들과 함께 차처럼 마시면서, 왜 게르에서 번거롭게 아이락과 시밍 아르히를 만들어 먹을까? 의문이 들었다.

며칠 게르에서 생활해보면서 나는 그 이유를 얼마간 찾을 수 있었다. 아이락과 아르히는 게르 생활자 유목민들에게는 아주 특별한 음료였다. 단백질과 지방 위주의 식단을 구성하는 게르 안에서 신맛 나는 드문 음료가 아이락이었고, 기분이 좋아지는 투명한 액체가 아르히였다.

더 중요한 것은 몽골인들은 마유를 생으로 잘 마시지 않았다. 마유에는 다른 동물 젖보다 유당이 많아서 유당 분해 효소가 없는 이들이 마시면 복통과 설사를 일으킬 수 있다. 그래서 마유를 발효시켜 유당을 유산균과 에탄올과 이산화탄소로 전환해서 마신다. 또한 아이락은 유목민들에게 풍부한 비타민과 미네랄을 공급하는 건강 음료이기도 했다.

아이락은 정성이 많이 들어가는 귀한 음료라서, 게르에서는 손님을 환대할 때 담배와 마찬가지로 먼저 권한다. 이때 아이락을 한 모금이라도 마시고 돌려주는 게 예의이지, 거절하면 무례한 행위로 여겨진다. 나는 아이락으로 증류한 아르히에 노란 동물 기름을 타서 내주는 것을 꾹 참고 마셨다. 그게 게르의 주인인 아버지가 마시는 건강 음료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증류 문화가 만들어낸 각국의 술들

나는 게르의 증류 도구들을 보면서, 고려 말 한반도로 증류 기술이 전래되었을 때의 설비들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동과 세척의 편리함을 위해서 증류 장비들이 더 간결해져서, 가죽으로 된 발효통이 플라스틱으로 바뀌고 나무로 된 증류기 몸통이 알루미늄으로 바뀐 상태였다. 그런데 우리와 다른 것은, 증류 문화가 우리 살림 공간에서는 사라졌지만, 몽골 게르에서는 여전히 요긴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인류 문명사에서 증류주가 등장한 것은 고작 1천 년 정도밖에 되지 않고, 한반도에 들어온 것은 8백 년도 되지 않는다. 몽골에서 전래된 증류 기술은 한반도에 들어와서 옹기 문화와 만나 매력적인 고조리를 만들어내고, 증류할 발효주는 지역 실정에 맞게 마유주에서 곡주로 바뀌었다. 지금 보아서는 몽골 소주가 한반도 소주의 원류였을까? 싶을 정도로 낯설기만 하다.

하지만 증류의 원리는 숫자 '0'의 발견이나 바퀴의 발명처럼, 알고 나면 너무도 간단해서,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 잊어버려도 좋을 정도다. 증류 원리는 간단하지만, 증류주에 지역색과 세월이 담기면서 그 양상은 다양해졌고 강력해졌다. 아르히, 위스키, 브랜디, 그라빠, 슈납스, 바이주, 럼, 데킬라, 보드카, 그리고 소주가 그렇게 분화되어 지역의 대표 술로 자리잡았다.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13세기에 몽골을 통해서 한반도로 들어온 증류 문화는 마치 깨달음처럼 우리 안에 스며들어 있다가, 20세기에 들어 소주 문화로 발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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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평론가, 여행작가. 술을 통해서 문화와 역사와 사람을 만나고 있다. 사단법인 한국술문화연구소 소장이며 막걸리학교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