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성' 숨겨진 것 없이 모두 보여준다, 이것이 저희 모토입니다. 투표하는 유권자들이 정보를 많이 알수록 올바른 선택을 한다고 믿습니다."

미국 연방선거위원회(Federal Election Commission, FEC) 부위원장 엘런 와인트라우브(Ellen L. Weintraub)의 말이다. 미국 정치 자금 전체를 엄격히 관리하는 기구인 FEC가 추구하는 가치를 묻자 그는 주저 없이 '투명성'이라고 정의했다. 정치자금이 어떻게 유입돼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두 알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이 민주주의의 핵심적 요소 중 하나라는 것이다.

투명성 구현을 위해 미국은 정치자금을 사실상 '실시간'으로 공개하고 있다. 누가 누구에게 얼마를 기부했고, 기부자의 직업과 고용주가 누군지와 같은 세세한 정보를 클릭 한 번으로 알 수 있다. 정치인이 어디에 어떻게 돈을 썼는지 역시 투명하게 공개된다.

<오마이뉴스>는 미국 정치 자금의 투명성을 취재하기 위해 9월초 워싱턴을 방문했다. <오마이뉴스>와 만난 엘렌 FEC 부위원장은 '올바른 선택'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후원자가 어떤 후보를 지원했다는 것을 아는 것은 매우 유익한 정보입니다. 이를 통해 정치인들이 어떤 사람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지 알 수 있거든요. 만약에 총기 소유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NRA(미국총기협회)가 어떤 후보를 후원하는지 알기를 원할 겁니다. '후원자 내역'을 아는 것은 후보자가 어떤 철학을 가졌는지 예측 가능하죠. 또한 어떤 가치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때문에 FEC는 투표자들에게 실시간으로 정치자금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 놓았습니다. 유권자의 '올바른 선택'을 위해서죠."





정치자금 '실시간 공개' FEC의 자신감 "볼 수 없는 자료요? 전혀 없습니다"



FEC 활동을 설명해 주기 위해 <오마이뉴스>와 만난 제이슨 부셀라토 FEC 선임연구원 (Jason Bucelato, FEC senior public affairs specialist)에게 'FEC 홈페이지를 통해 볼 수 없는 정치자금 관련 자료'가 있냐고 물었다. "전혀, 당신은 모든 걸 볼 수 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18년 동안 FEC에서 일한 제이슨의 말끝에 자부심이 묻어났다. 그는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면'이라며 말을 이어갔다.

"누구 이름을 검색창에 넣든지 간에 누구에게 돈을 줬는지 다 나오게 돼요. 어디 사는지, 어디서 일하는지, 고용주가 누군지, 언제 돈을 냈는지 모두 나옵니다. 정말 정말 좋아요."

제이슨은 FEC 홈페이지 왼쪽 상단의 ‘선거자금조달제도 데이터’(Campaign finance data) 항목 중 ‘모든 데이터 찾기’(Explore all data)를 클릭했다. 정치인 이름에 '도널트 트럼프'를 입력하자 2016년 대선에서 기부 받은 내역(항목별 분류 가능한 개인 기부액, 4696만7845달러, 총 2만 여 건)과 지출한 내역(3억4305만6732달러, 총 3만 여 건)이 단번에 모두 화면에 등장했다. 실제 험멜스타운(Hummelstown)에 사는 변호사 줄리(Zulli)가 2016년 12월 30일 35달러를 트럼프 재단에 기부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선거비용 관련 자료는 후보자별, 지역구별[집 코드(zip code) 입력]로 쉽게 찾을 수 있게 구현해 놨다.

"모든 자료는 엑셀파일, PDF 파일로 다 볼 수 있어요. 그냥 클릭만해서 엑셀을 열면 보입니다. 아주 쉽고, 아주 좋죠. 법에는 200달러 이상 기부금을 등록하게 돼 있는데, 우리는 모든 것을 다 등록합니다. 그러니 이거(줄리의 사례)처럼 35달러짜리도 등록돼 있죠. 푼돈도 모두 등록합니다."

한국은 연 300만 원 이상의 기부자만 후원 내역을 공개하도록 돼 있다. 미국은 200달러(한화로 23만 원 상당) 초과 기부자를 공개하도록 법이 규정하고 있지만 그의 설명대로라면 아무리 적은 돈이라도, 모두 공개되고 있다.

게다가 미국은 선거가 있는 해에는 선거일 전 20일까지, 그리고 선거일 후 20일까지 수입·지출 내역을 공개해야 한다. 특정 후보자가 누구에게 돈을 받아 어떻게 썼는지 선거 전에 공개함으로써 유권자에게 쓸모 있는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선거일 전 20일부터는 1000달러 이상의 고액기부의 경우 48시간 이내에 보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치자금의 투명성은 '지출'에서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상원이나 하원은 1년에 네 번 분기별로 정치자금 지출 보고서를 FEC에 내야 하고, 대통령 선거기간에는 월별로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 같은 자료는 대게 48시간 안에 온라인에 등록된다.

한국의 경우 정당은 매해 1회 후보자 후원회는 선거 후 1회, 국회의원 후원회는 매해 2회 보고하도록 돼 있다. 미국에 비해 보고 시기가 세분화돼 있지 않다. 더 큰 문제는 지출한 선거비용 공개가 선거 직후 30일 이상 지나서야 이뤄진다는 데 있다. 유권자들은 후보자가 어떻게 돈을 썼는지를 이미 투표가 종료된 후에야 알게 된다.

한국의 선거비용은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하도록 했으나 이마저도 3개월밖에 보지 못한다. 공개되는 내용도 명세서 사본을 게재하는 것으로 세부 항목별 검색은 불가능하다. 국회의원이 지출한 정치자금 자료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정보공개 청구'를 거쳐야 한다. 이 역시 엑셀 등 정보화 된 파일이 아니라 장부를 복사한 형태여서 언론이나 시민단체가 이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일일이 엑셀 등으로 재가공해야 한다. '실시간 공개'는 너무나 먼 얘기다.

한국은 고액 기부 관련해서도 주소와 직업, 전화번호를 포함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직업을 적지 않고 제출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직업을 적지 않음으로써 재벌기업의 직원들이 '쪼개기 후원'을 해도 알 도리가 없다. 현재 KT가 전·현직 국회의원 97명을 대상으로 쪼개기 후원을 한 정황이 드러나 경찰 조사 중에 있기도 하다.

엘렌 부위원장은 힘주어 말했다.

"정치자금의 투명성을 보장하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건 데이터베이스 구축이라고 봅니다. 또한 모든 정보가 선거 전에 나오는 게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선거 전에 나와야 유권자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전달할 수 있죠. 좋은 시스템이 있어도 누군가는 구멍을 찾아내기 때문에 끊임없이 좋은 제도를 만들어야 합니다."


미국 정치자금 제도가 정답이다?





그의 설명대로 '구멍'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미국 정치자금 제도 역시 그렇다. 2010년 대법원 판결 이후 '슈퍼팩(Super PAC, 초강력 정치활동위원회)'이 미국 정치에 등장했다. 슈퍼팩은 특정 후보에게 직접 정치 자금을 전달할 수는 없지만 TV 광고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지지할 수 있게 한 제도다.

투명성에는 영향이 없지만 일부 부자들이 막대한 돈을 한계 없이 선거에 쓸 수 있게 됐다. 선거에서 재벌들의 돈 잔치가 가능한 배경이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슈퍼팩 자금은) 본질적으로 정치 뇌물"이라며 "미국의 정치가 소수지배로 변질됐다"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엘렌 부위원장은 '슈퍼팩' 얘기를 꺼내자 낮게 웃었다.

"네, 대법원에서 그런 판단을 내렸죠. 개인적으로는 100만 달러를 써도 부패한 곳에 쓰이지 않는다면, 돈의 규모는 상관없다고 봐요. 그렇게 되려면 '투명성'이 완전히 보장돼야죠. 회사 법인이 후보자에게 돈을 줄 수 있게 돼있는데 그 돈 뒤에 누가 있는지를 모르는 게 문제죠."

엘렌 부위원장은 "현재 미국의 정치자금 제도 역시 투명성이 완전히 보장되지 않았다, 여기저기 구멍이 난 것들이 있다"라며 "여러 사람들이 어디서 돈이 오는지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더 노력하고 있고 소규모의 기부를 늘리는 노력도 함께 기울이고 있다, 이런 노력들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솔직하지만 조심스럽게 말했다.

"개인적으로 캐나다의 정치자금 제도를 좋아합니다. 캐나다는 지출에 한도를 뒀습니다. 그런 제한을 두지 않으면 부자들이 더 많은 돈을 써서 그들의 의견이 더 많이 반영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캐나다 시스템을 좋아합니다."

미국 정치자금 제도가 '정답'만은 아닌 이유다.


F점의 나라, A점의 도시에 묻다


▲ 엘런 와인트라우브(Ellen L. Weintraub) 미국 연방선거위원회 부위원장. ⓒ 오마이뉴스 김성욱



새겨야 할 것은 '투명성' 그 자체다.

정치적 평등과 한국의 정치자금법'(엄기홍, 의정연구 11권 2호)에 따르면, 미국 학계와 시민단체는 공동으로 <자금공개연구>를 시행했다.

연구에서 정치자금의 공개 정도는 ▲ 정치자금의 수입과 지출에 대한 보고가 의무화 돼 있다면 기부자의 정보(직업 및 고용주 등)와 지출한 곳의 내역이 공개돼 있는지 ▲ 정치자금의 내역이 일반 유권자가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데이터베이스화 돼 있는지 ▲ 정보가 공개돼 있는 곳이 일반인에게 잘 알려져 있는지 등을 통해 판단할 수 있다고 봤다. 이 같은 기준에서, 미국 내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주가 워싱턴이었다.

논문은 "이 기준으로 봤을 때, 한국이 받은 평균 점수는 F학점"이라고 단언했다. 저자는 "(한국은) 정치자금 내역을 인터넷에 데이터베이스화 해야 한다"라며 "정치자금 공개가 선거 이전에 이뤄져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모두 한국에서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는 부분이며, F학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F학점을 A학점으로 바꾸려면 무엇부터 개선돼야 할까. 방향은 '국회'에서 이미 제시하고 있다.

"'강력한 규제'와 '미흡한 투명성'을 특징으로 하는 한국의 정치자금 제도는 기부행위가 가지는 정치적 표현수단으로서의 순기능을 약화시켜 장기적 관점에서 대의민주주의의 발전을 제약할 가능성이 있다.

통제 위주의 현행 정치자금제도를 개방적 관리 체제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이를 위해서는 선거기간 중의 회계보고 강화, 인터넷 공개기간 및 공개범위 확대, 전자보고시스템 구축을 중심으로 한 투명성 강화가 선행될 필요가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 '주요국의 정치자금 투명성 관리 제도' 보고서 중

실시간 공개를 위한 시스템 마련은 '각성'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명확한 제도가 필요하다. 결국 필요한 것은 법 개정이다. 국회의원 스스로가 자신의 정치자금을 더 상시적으로 더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만드는 일이기에, 오랫동안 문제 제기가 이어졌으나 개선이 이뤄지지 않았다. 이제는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국회의원 스스로 발목에 족쇄를 걸고 장막을 걷어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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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19-20대 국회의원 총 482명이 6년간 지출한 정치자금 2587억원의 지출내역을 공개합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정보공개를 통해 받은 정치자금 수입·지출보고서 2200여건, 10만 3617매를 전수분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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