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내민 명함은 달랐다.

명함 왼편에 자리한 단체 로고가 투명했다. 눈동자를 형상화한 모양이었다. 투명한 감시. 명함 한 장으로 단체의 목표를 명징하게 드러낸 셈이다. 바로, 정치자금을 전문적으로 추적해 선거·입법·정책 등에 미치는 영향을 밝히는 미국의 비영리 시민단체 '정치반응센터(Center fot Responsive Politics, 아래 CRP)'다.

"정치가 올바르게 운영되려면 국민들이 실상을 볼 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국민들이 정치를 불신하게 되면 참여하지 않게 되고 그러면, 더 이상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민주주의는 실현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명함을 건넨 당사자. CRP의 셰일라 크롬홀츠(Sheila Krumholz) 대표도 지난 9월 5일(미국 현지시각)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링컨 전 미 대통령의 게티스버그 연설 중 일부를 인용해 '투명성'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감시받지 않는 정치자금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가 아니라 '돈 있는 자들을 위한 정부'를 잉태한다는 지적이었다.


삼성전자의 미국 로비활동 자금, 이들이 밝혔다



이처럼 CRP는 태생적으로 정치인과 부자들에게 불편할 수밖에 없는 단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1983년 프랭크 처치 전 민주당 상원의원(아이다호)과 휴 스콧 전 공화당 상원의원(펜실베니아), 두 정치인에 의해 공동으로 설립됐다. 1988년 의회 선거 당시 국회의원 후보들의 자금 흐름 등을 추적하고 담은 <오픈 시크릿>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펴내는 등 정치자금 추적에 있어선 긴 역사를 자랑하는 단체이기도 하다.

CRP는 지금도 당시 보고서와 같은 제목(www.opensecrets.org)의 홈페이지를 통해 다양한 경로로 모금된 정치자금들이 어떻게 정치와 선거, 정책 등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공개하고 있다. 특히 각종 이익 단체들과 로비스트들의 활동, 그 영향력 등을 분석해 미 정치권을 면밀히 감시하는 역할을 수행하고도 있다.

<오마이뉴스>가 미 워싱턴 D.C.의 L 스트리트 소재 빌딩에 있는 사무실을 찾았을 때도 감시는 계속되고 있었다. 선임연구원인 더글라스 H. 위버는 <오마이뉴스>와 만나, 월스트리트의 자금이 어떻게 미국 정치권에 유입되고 있는지, 그 중 '톱 도너(Top donor, 최대 기부자 혹은 법인)'은 어디인지 확인해줬다. 정치권에 들어오는 각종 후원금에 '꼬리표'를 붙여서 그 흐름과 출처를 추적하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작업의 결과물은 국내에서도 널리 알려진 편이다. CRP는 지난 8월 '삼성전자가 올 들어 지난 6월까지 221만 달러(한화 약 26억 원)를 로비 활동에 썼다'고 밝혔다. 많은 국내 언론들은 이를 인용해 '삼성전자의 역대 최고치 로비활동 자금'이라고 보도했다.

쉽지 않은 작업이다. 더글라스 H. 위버도 "기업들이 자기 이름을 걸고 로비활동 자금 등을 기부하는 게 아니라 다른 현지 법인이나 로펌 등 다른 단체들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일일이 코드화 하는 작업 등을 거쳐야 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미국의 정치자금 제도에게 반드시 필요한 '감시'이기도 하다. 미국은 후보 개인이나 정치인, 정당에 대한 기업 또는 노동조합의 직접적인 후원은 막고 있지만, 기업이나 노동조합이 개별적으로 '팩(PAC)'을 구성해 정치자금을 기부하는 것은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2010년 이후 TV 광고비 지출 등 상한선 없이 간접 기부가 가능한 '슈퍼팩'(Super PAC)이 허용되면서 사실상 무제한적 지원이 가능하게 돼 '금권정치'에 대한 우려가 더 커졌다.

지난 2016년 대선 당시 각 대선 후보 캠프에서 사용한 선거자금 총액은 약 1조2848억 원(2016년 10월 25일 기준)에 달했다. 올해 11월 중간선거는 역대 최고의 돈 선거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CRP의 분석에 따르면, 민주당·공화당 양당 상·하원 통합 전체 모금 총액은 약 1조9142억 원(지난 8월 6일 기준)을 기록했다.


"우리는 지금도 싸우고 있다"






지난 2004년 불법대선자금 사건, 일명 '차떼기 사건' 이후 정치자금법 개정을 통해 기업·노조 등의 정치자금 기부를 막고 정치자금 모금 상한선까지 낮춘 한국과는 정반대의 상황이다. 그럼에도 CRP를 주목해야 하는 까닭은 명확하다.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사망 이후 현실과 동떨어진 정치자금법을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실현시킬 전제조건이 '투명한 감시'이기 때문이다.

이는 오래된 과제이기도 하다. 2016년 5월, 참여연대는 20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우선 다뤄야 할 입법·정책 과제' 중 하나로 정치자금법 개정을 제시하면서 '투명성 강화'가 곧 '정치자금 의의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획득 방안'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런 점에서 미국은 좋은 사례다. 미 연방선거관리위원회(FEC)는 정치자금 수입·지출에 관한 보고 자료를 거의 실시간으로 공개하고 200달러를 초과하는 기부자의 고용주나 인적사항 등 구체적 사항까지 검색·분류 및 다운로드까지 가능토록 하고 있다.

또 CRP를 비롯해 '선거행동펀드(PCAF)', '선거자금연구소(CFI)' 등의 민간단체들이 이를 분석해 시민들에게 종합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선거자금 외 일반 정치자금은 인터넷 공개하지 않고, 정보공개청구를 한 뒤에도 데이터베이스화하기 어려운 PDF 형태의 열람만 가능한 한국과는 확연하게 다른 모습이다.

셰일라 크롬홀츠 대표도 미국 정치의 투명성을 담보하는 데 FEC의 기여도가 컸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투명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정보 접근성'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많은 이들이 손쉽게 정치인들의 '돈'에 대한 정보를 취득하고 그에 대해 판단할 수 있도록 환경을 갖춰야 한다는 얘기였다. 1990년에 펴냈던 <오픈 시크릿> 역시 그러한 작업물의 결과물이었다고도 덧붙였다.

"CRP가 특별히 관심을 기울였던 것은 예산, 정치자금 등의 문제였다. 1990년 펴냈던 <오픈 시크릿>은 그에 대한 보고서였다. 모든 의원들의 정치자금에 대한 '위키피디아' 같은 백과사전이라고 보면 된다. 다만, 돈의 크기뿐만 아니라 '슬라이스 앤드 다이스(Slice-and dice)', 정보를 여러 작은 조각들로 분해해서 다양한 시각으로 볼 수 있게 했다. 사람들에게 돈이 어떻게 미국 정치에서 역할하고 있는지에 대한 큰 그림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는 이어, "정보접근성을 높이는 게 중요한 까닭은 다른 사람들에게 정보를 전파하는 데 있어서도 중요하기 때문"이라며 "지금 우리는 2018년에 살고 있지 않나, 모든 공공 정보는 전자문서화 돼야 하고, 다운로드 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우리도 지금도 싸우고 있다. 미 상원 의회에서는 아직도 정치자금 관련 자료를 전자파일화 하는 것을 회피하고 있다. 이런 핵심적인 내용들은 계속 투쟁해서 얻어내야 할 문제다."


"정치 시스템은 완벽하지 않다. 그래서 '알 권리'를 추진한다"



현재 CRP가 FEC의 자료를 통해 분석하고 있는 정치자금 자료는 어마어마하다. 셰일라 크롬홀츠 대표는 "처음엔 200달러 이상의 개인 기부금 관련 자료가 100만 건 정도 됐고 그 외엔 '정치활동위원회(Political committee, 직접 후원이 금지된 기업이나 노동조합 같은 이익단체들이 간접적으로 정치자금을 기부하기 위해 설치·운영하는 별도의 분리기금)' 자료도 있었다"라며 "지금에 와서는, 분석해야 할 양이 훨씬 많아졌다, 2016년 선거를 예로 들자면 개인 기부금 자료만 3000만 건"이라고 설명했다.

"기술이 많이 발전해서 예전보다 쉽게 처리할 수 있는 상황이긴 하지만 방금 말한 3000만 건의 자료도 선거 운동과 관련된 것만이다. CRP는 그뿐만 아니라 로비 추적, 의원 전체의 정치자금 등에 대한 자료도 축적·분석하고 있다. 또 국회의원 아니더라도 정부 인사들의 자금 정보에 대해서도 추적·분석하고 있다."

CRP는 이렇게 분석한 자료를 '매쉬업(Mash up, 인터넷에 공개된 여러 콘텐츠를 묶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것)' 해 대중에 공개한다. 예를 들어, 미국총기협회가 어떤 의원들에게 어느 정도의 정치자금을 기부하고 있는지 등의 로비 활동을 추적하고 이는 유권자의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그 뿐 아니라 출처가 명확히 공개되지 않은 '검은 돈'에 대해서도 분석하고 있다.

이에 대해 셰일라 크롬홀츠 대표는 "'로비'는 미 헌법상 허용되는 활동이지만 정부가 투명하게 운영되기 위해선 균형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그래서 로비와 그에 따른 결과물은 대중들에게 밝혀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로비 활동에 따른 '대가성' 입법·정책임을 입증할 수 있는 것은 '집단지성'이라고 강조했다. 즉, '팩트(Fact, 사실)'을 공개하는 것만으로도 시민들은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그들도 우리를 향해 '증명할 수 없다'고 한다. 그에 대해 우리가 하는 일은 일단, 점을 연결하는 것이다. 로비스트가 어떤 전력이 있는지, 어떤 활동을 했는지, 어떤 돈을 받았는지 등 팩트를 보여준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돈을 보여주고, 관계를 보여준다'(We show the money, We show the relationship). 그러면 대중들은 그러한 팩트들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그에 대한 결론을 스스로 도출할 수 있다."

그는 그러면서 '알 권리'(right to know)를 강조했다. 이는 CRP가 자신들의 정보를 공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각종 '정보 분석 도구(Learning center)'와 '시민 참여(Act now)' 등의 콘텐츠를 홈페이지에 구현한 까닭이기도 했다.

"CRP는 초당적인 '리서치 단체'로서 데이터들을 가공하고 고급화하고 조합하는 게 우리의 일이다. 그리고 많은 시민들이 그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다. 이런 일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의 정치 시스템이 완벽하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다.

대중들이 우리의 작업들을 통해 많은 이슈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정치에 활발하게 참여할 수 있다고 본다. 만약 정보를 얻지 못한다면 언론이나 유권자들은 본래 해야 할 일들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알 권리'를 계속 추진하고 있다. 알아야 행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Garbage in - Garbage out, 좋은 것만 차용하시라"
'정치자금법 개정' 목소리 높은 한국에 전하는 셰일라 크롬홀츠 CRP대표의 당부

셰일라 크롬홀츠(Sheila Krumholz) 정치반응센터(Center fot Responsive Politics)대표 ⓒ 오마이뉴스 김성욱

셰일라 크롬홀츠 CRP 대표는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투명하게 쓴다면 제한 없이 모금할 수 있도록 한' 미국의 정치자금 제도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했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미국 정치시스템이 완벽하지 않다는 이유 중 하나가 '슈퍼팩'일 듯하다. 어떻게 보나?
"그렇다. 우리가 볼 땐 수많은 개인의 익명성과 독립성을 가장한 돈들이 슈퍼팩과 연결돼 선거운동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예를 들어 계좌 이름은 (후보와) 다르지만, 그 슈퍼팩을 운영하는 이는 후보자의 가족 혹은 캠프 관계자다. 그러한 연계성이 너무나 확실한데도 슈퍼팩이란 명분 아래 운용되고 있다. 교육 받은 시민들에겐 모욕적인 처사다. 미국 선거제도의 어두운 면이 슈퍼팩이라 생각한다."

- 반면, '에밀리리스트'나 '블랙팩'처럼 여성·유색인종 등을 위한 '팩(PAC)'들은 미국 정치자금 제도의 긍정적 측면으로도 보인다.
"흔히 대중적인 인기를 얻거나 지역을 대표하는 이들이 정치인으로 활동하지만, 여성과 특수계층을 대표하는 후보들이 나오는 것은 좋은 현상이다. 그래야 여성, 유색인종, 특수계층들을 제대로 대변할 수 있다. 다만, 에밀리리스트의 경우엔 한계점도 있다고 본다. 여성 후보들을 당선시키기 위한 정치자금 기부지만, 여전히 돈 많은 여성들을 대변하게 된다는 것이다."

- 정치자금의 투명성에 있어 미국의 시스템과 함께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캐나다는 정치자금 모금 상한선이 존재한다. 이에 대한 미국 내 평가는 어떤가?
"미국에서도 (정치자금 모금 등에 대해) 강력한 제한을 둬야 한다는 쪽과 그래서는 안 된다는 싸움이 역사적으로 계속 진행되고 있다고 본다. 그런데 제한이 없어도 된다고 했던 이들은 예전엔 투명성만 보장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선 그 투명성마저 사실상 해체하려 하고 있다. 왜냐하면 후보자에게 '빅 머니'를 주는 사람들에게 투명성은 치명타를 입히기 때문이다."

- CRP가 하는 일을 보면, 비용이나 인력 등이 상당히 들 것 같다. 어떻게 운영되고 있나.
"CRP의 창립 인원은 4명이었다. 내가 다섯 번째 멤버다(웃음). 시간이 꽤 많이 흘렀지만 지금 총 인력은 18명밖에 안 된다. 예산은 50만 달러에서 시작했고, 지금은 200만 달러 정도 된다. 그런데 다른 비영리 단체에 비하면 그다지 많은 예산은 아니다.

이에 대해선 고민이 깊은 편이다. 특정인의 지원을 받으면 우리가 제공하는 정보의 객관성과 신뢰성을 일정 부분 잃게 된다. 그런데 'you get what, you pay for(미국식 속담, 싼 게 비지떡)'라고 하지 않나. 공짜 정보는 그만큼 정확성이 떨어진다. 딜레마다."

- CRP와 같은 활동은 한국 시민사회에서도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다만, 그 비용이나 인력 운용 등이 쉽지 않다는 평가다. 일부 활동가는 차라리 정치자금만을 감시 감독할 수 있는 국가기관이라도 따로 만들어야 된다는 평가인데 어떻게 생각하나?
"민주사회에 있어서 제대로 된 정보를 시민들에게 제공하는 것은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FEC가 정부와 시민을 잇는 큰 다리를 놓고 있다면 우리는 또 다른 다리를 놓는 부가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그래서 FEC와 같은 역할을 하는 정부기관은 있을 필요가 있다. 그래야 정치가 돈 많은 사람들에게 좌지우지 되지 않을 수 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정보 접근성이 가장 중요하다. 중요하되 적은 정보만 아니라 다양하고 많은 정보에 대한 접근이 필요하다. 또 한 가지, 여러분에게 말하고 싶은 건 미국의 데이터시스템의 좋은 부분만 차용하시라는 것이다. 'garbage in-garbage out'이라고 하지 않나. 쓸데없는 것이 입력되면, 출력되는 것도 쓸모없는 것일 뿐이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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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19-20대 국회의원 총 482명이 6년간 지출한 정치자금 2587억원의 지출내역을 공개합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정보공개를 통해 받은 정치자금 수입·지출보고서 2200여건, 10만 3617매를 전수분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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