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년 3월 최경환 의원이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자택을 떠나는 박근혜 전대통령을 배웅하고 있다. 호텔을 이용한 의원들은 친박계가 많았다. 박근혜 전대통령은 의원시절이던 2008년부터 2012년에 호텔을 340회 이용했다. ⓒ 오마이뉴스 이희훈



'자문위원 의정활동 현안 간담회'

구속 수감 중인 최경환 자유한국당 의원(경북 경산청도)이 지난해 서울 서초구의 팔레스호텔에서 '간담회-식대' 명목으로 지출한 정치자금 내역이다. 지난해에만 총 15차례 이 호텔의 일식당과 비즈니스센터 등 간담회장을 이용한 최 의원. 그러나 지출보고서에 등재된 각각의 식사 및 간담회 내역은 오찬-만찬 여부를 제외하고는 '자문위원 의정 활동 현안 간담회'로 똑같이 기재됐다.

최 의원은 세 차례의 비즈니스센터 사용을 제외한 나머지 지출을 모두 이 식당에서 정치자금으로 지출했다. 2017년 한 해만 총 617만3960원 어치.

가장 많게는 저녁식사 비용으로 96만4600원, 점심식사에서는 60만8000원을 지출했다. 한 포털사이트의 이 식당 메뉴 정보에 따르면 점심 메뉴로는 9만5000원짜리 도미머리 조림과 구이세트와 7만9200원짜리 단품 메뉴가 있었고, 저녁 메뉴로는 일본식 코스 요리인 가이세키가 15만 원, 오마카세 코스 19만 원, 사시미(생선회) 세트 23만 원이 있다.

문제는 고가의 메뉴보다 내역에 있었다. 몇 사람이, 무슨 용건으로 이 호텔을 찾았는지 정치 활동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보고서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자료를 보는 국민은 96만 원가량의 식사를 최 의원 혼자 했는지, 또는 수십 명과 함께 했는지 파악할 수 없다.

이미 정치자금법은 정치인의 정치자금 투명도를 높이기 위해 지출 내역의 '육하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지난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정치자금 회계실무'를 제목으로 배포한 자료에는 정치자금법 제37조 2항에 적시된 '지출 상세내역'이 강조돼 있다. '일자, 금액, 목적과 지출을 받은 자의 성명, 생년월일, 주소, 직업 및 전화 번호' 등이 그것이다.


문제는 메뉴가 아니다





그러나 <오마이뉴스>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분석한 20대 국회의원 299명의 2017년 정치자금 중 이 원칙을 지킨 사례는 많지 않았다. 특히 호텔에서 사용한 정치자금 내역이 투명하지 않았다.

최 의원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같은 당 김재원 의원(경북 군위의성청송)은 지난해 5월 대구그랜드호텔에서 1만9800원, 7월 16일 경주힐튼호텔 1만3000원, 엠호텔 4만4000원, 더플라자호텔 3만9000원, 12월 7일과 같은 달 11일, 27일 더플라자호텔 3만5500원 등을 '매식비' 명목으로 지출했다. 역시 세부 목적이 빠진 내역이었다.

같은 친박계로 같은 당 소속이었던 서청원 의원 (경기 화성갑)의 내역과 비교해 봐도 정치자금 정보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서 의원은 호텔에서 간담회를 진행 한 경우 간담회의 목적과 참석 인원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예를 들어 지난해 9월 5일의 경우 '국정감사대책간담회부대비용'을 명목으로 ‘참석인원 2명’이 엠호텔 레스토랑(MU)에서 3만800원을 지출했다는 식이다.

오직 '식대'를 명목으로 호텔을 찾는 의원들도 많았다.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경기 안양 만안)은 지난해 8월 29일 '식대' 내역으로 포시즌호텔서울에서 10만2000원을 지출했고, 주호영 한국당 의원(대구 수성을) 또한 같은 해 롯데호텔에서 11만2500원을 썼다.

내역을 '의원님 식사'라고 기재한 사례도 있었다.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서울 노원갑)은 여의도 글래드호텔에서 7만6680원을 '의원님 식사'로 지출한 것으로 돼 있다. '식대'로 정치자금을 지출했다가 도로 반환한 경우도 눈에 띄었다. 유민봉 한국당 의원(비례대표)은 같은 해 6월 8일과 6월 12일 각각 11만9700원, 11만9800원을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식대'로 지출했다가 당일 바로 반환했다.


3개월 시한부 영수증 공개, 늘어가는 '두루뭉술' 정치자금



'호텔 정치'를 활용하는 국회의원 저마다의 목적은 정치적 이슈에 따라 달라지기도 했다. 그나마 간담회 목적을 명시했기에 분석할 수 있는 내역이었다.

특히 2017년 가장 큰 뉴스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기점으로 이뤄진 간담회도 눈에 띄었다. 친박근혜계(친박계) 의원인 홍문종 한국당 의원(경기 의정부을)은 지난해 2월 15일 홍 의원을 포함한 4명과 함께 '탄핵정국 대선대비 당 상임 고문 간담회'를 롯데호텔에서 진행하면서 31만6000원을 지출했다.

같은 해 5월 9일 19대 대선을 대비한 간담회도 줄이었다. 이 경우 대다수가 민주당 의원들이었다. 송영길 의원(인천 계양을)은 대선을 사흘 앞둔 5월 6일 '선거제도 간담회'를 위해 엠호텔에서 4만4000원을 썼고, 김성수 의원(비례대표)은 '대선관련 의원 간 오찬'으로 호텔올라에서 4월 29일 5만4000원을 지출했다.

같은 당 변재일 의원도 3월 28일 국회의원 대선 관련 간담회를 명목으로 부산 롯데호텔에서 9만3000원을 썼다. 한국당의 경우 윤종필 의원(비례대표)이 '대선공약 개발을 위한 전문가 간담회'를 목적으로 호텔올라에서 26만9000원을 지출했다.

"정치자금의 적정한 제공을 보장하고 그 수입과 지출내역을 공개하여 투명성을 확보하며 정치자금과 관련한 부정을 방지함으로써 민주정치의 건전한 발전에 기여한다."

법문에 명문화된 정치자금법의 목적(제1조)은 정치자금의 '투명한 내역 공개'에 가장 큰 방점을 두고 있다. 문제는 이 법이 활자로서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승수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는 회계 보고서의 부실한 기입을 강제하지 않는 제도적 허점을 꼬집으며 "우리나라의 정치자금은 사실상 보고서만 내면 끝나는 구조다"라고 지적했다.

하 대표는 9월 27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후원금으로 세금 공제 혜택을 받는 정치자금은 세금 수입이 감소하므로 일종의 조세 지출로도 볼 수 있다"라면서 "그런데 구체적으로 어떤 이유 때문에 누구와 호텔에서 밥을 먹었다는 등이 확인이 돼야 하는데 그런 것이 제도적으로 강제돼 있지 않다는 것이 정치자금법의 맹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국회의원 정치자금 영수증 열람기간을 3개월로 제한한 지금의 법체계 문제점도 함께 지적했다. 실제로 정치자금법 제42조 제2항에 따르면, 정치자금의 수입·지출내역 및 첨부 서류를 그 사무소에 비치하고 공고일부터 3개월간 누구든지 볼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돼 있다. 3개월 안에 직접 선거관리위원회 사무실을 방문해야만 영수증을 확인할 수 있도록 법이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하 대표는 "열람기간이 3개월밖에 안 되니까 지출 내역을 두루뭉술하게 적는 것이다"라면서 "제도가 악용돼 구체적으로 적은 사람이 되레 불리한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다, 특히 식비는 공적 활동인지 사적 활동인지 구분이 안 돼 관리 감독이 사실상 안 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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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19-20대 국회의원 총 482명이 6년간 지출한 정치자금 2587억원의 지출내역을 공개합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정보공개를 통해 받은 정치자금 수입·지출보고서 2200여건, 10만 3617매를 전수분석했습니다.
오마이뉴스의 '정치자금 공개 페이지'(http://omn.kr/187rv)에서 의원별로 사용일자, 내역, 금액, 사용처 등 지출내역을 확인할 수 있으며, 원본 PDF파일도 제공합니다. 데이터 저장소(https://github.com/OhmyNews/12-17_KAPF)에서 연도별 지출내역 전체를 데이터파일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습니다.